【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ㆍ1604~84) ‘독수기(讀數記)】
한 번 척 보고 다 아는 천재도 있고, 죽도록 애써도 도무지 진전이 없는 바보도 있다.
끝이 무디다 보니 구멍을 뚫기가 어려울 뿐, 한 번 뚫리게 되면 크게 뻥 뚫린다.
한 번 보고 쉽게 안 것은 얼마 못 가나, 피땀 흘려 얻은 것은 평생 내 것이 된다.
물고기 세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는 동양화가 있다. ‘삼여도(三餘圖)’라는 것인데, 여기에서 삼여(三餘)란 뜻밖에도 독서하기 좋은 세 시기를 뜻한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왕래(王朗) 열전의 주석인 위략(魏略)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떤 사람이 홍농(弘農) 직에 있던 동우(董遇)에게 시간이 없어서 독서를 못한다고 말하자 동우는 “마땅히 세 가지 나머지(三餘ㆍ삼여)만 있으면 독서할 수 있다"라고 답했다. 누군가 삼여가 무엇이냐고 묻자 동우는 “겨울은 한 해의 여(餘ㆍ나머지)이고, 밤은 하루의 여(餘)이고, 흐리고 비 오는 날은 때의 여(餘)이다”라고 답했다. ‘삼여도’는 세 마리 물고기처럼 유유자적하게 놀라는 뜻이 아니라 잠시의 틈만 있어도 공부하라는 뜻의 ‘권학도(勸學圖)’이다.
조선의 유명한 독서광은 백곡(柏谷) 김득신(金得臣ㆍ1604~84)이다. 그의 시문집 ‘백곡집(栢谷集)’에는 자신이 읽은 글의 횟수를 기록한 ‘독수기(讀數記)’라는 특이한 글이 있다. 백곡집에는 ‘독수기’와 ‘고문 36수 독수기(古文三十六首讀數記)’가 있는데, ‘독수기’ 첫머리는 “백이열전은 1억 1만 3,000번을 읽었다."라는 것으로 시작한다.
백곡이 책을 읽은 횟수?
〈백이전(伯夷傳)〉은 1억 1만 3천 번을 읽었고, 〈노자전(老子傳)>,〈분왕(分王)>,〈벽력금(霹靂琴)>,
〈주책(周策)〉,〈능허대기(凌虛臺記)〉,〈의금장(衣錦章)〉,〈보망장(補亡章)〉은 2만 번을 읽었다.
〈제책(齊策)〉,〈귀신장(鬼神章)〉,〈목가산기(木假山記)〉,〈제구양문(祭歐陽文)〉,〈중용서(中庸序)〉는 1만 8천 번,
〈송설존의서(送薛存義序)〉,〈송수재서(送秀才序)〉,〈백리해장(百里奚章)〉은 1만 5천 번,
〈획린해(獲麟解)〉,〈사설(師說)〉,〈송고한상인서(送高閑上人序)〉,〈남전현승청벽기(藍田縣丞廳壁記)〉,〈송궁문(送窮文)〉,〈연희정기(燕喜亭記)〉,〈지등주북기상양양우상공서(至鄧州北寄上襄陽于相公書)〉,〈응과목시여인서(應科目時與人書)〉,〈송구책서(送區冊序)〉,〈마설(馬說)〉,〈후자왕승복전(朽者王承福 傳)〉,〈송정상서서(送鄭尙書序)〉,〈송동소남서(送董邵南序)〉,〈후십구일부상서(後十九日復上書)〉,〈상병부이시랑서(上兵部李侍郞書)〉,〈송료도사서(送廖道士序)〉,〈휘변(諱辨)〉,〈장군묘갈명(張君墓碣銘)〉은 1만 3천 번을 읽었다.
〈용설(龍說)〉은 2만 번 읽었고,
〈제악어문(祭鱷魚文)〉은 1만 4천 번을 읽었다. 모두 36편(1만 번 이상 읽은 책)이다.
책을 읽고 '독수기'를 쓴 이유?
〈백이전>,〈노자전>,〈분왕〉을 읽은 것은 글이 드넓고 변화가 많아서였고,
유종원(柳宗元)의 문장을 읽은 까닭은 정밀하기 때문이었다.
〈제책>,〈주책〉을 읽은 것은 기발하고 특출하기 때문이고,
〈능허대기>,〈제구양문〉을 읽은 것은 담긴 뜻이 깊어서였다.
〈귀신장>,〈의금장>,〈중용서〉 및 〈보망장〉을 읽은 것은 이치가 분명하기 때문이고,
〈목가산기〉를 읽은 것은 웅혼해서였다.
〈백리해장〉을 읽은 것은 말은 간략한데 뜻이 깊어서이고,
한유(韓愈)의 글을 읽은 것은 드넓고 농후하기 때문이다.
무릇 이 여러 편의 각기 다른 문체들을 읽는 것을 어찌 그만 둘 수 있겠는가?
갑술년(1634)부터 경술년(1670) 사이에 《장자》와 《사기》, 《대학》과 《중용》은 많이 읽지 않은 것은 아니나, 읽은 횟수가 '만 번'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독수기〉에는 싣지 않았다고 한다.
김득신은 ‘백이열전’을 억만(십만) 번 읽은 것을 기념해 서재 이름을 억만재(億萬齋)라고 했는데, 이런 독서량에도 과거운(科擧運)은 별로 없어서 번번이 낙방했다. 그러나 그는 쉰아홉 때인 현종 3년 임인년(壬寅年ㆍ1662)에 드디어 문과에 급제한다. 그래서 김득신은 끈질긴 노력의 대명사로도 불렸다.
김득신의 ‘독수기’는 독서가(讀書家)의 나라였던 조선의 많은 선비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다독가(多讀家)이 자 그 자신이 방대한 양의 저술을 했던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도 그중 한 명이었다.
다산은 ‘김 백곡(金柏谷ㆍ김득신)의 독서를 변증한다’라는 글을 남겼는데, 그는 김득신이 ‘백이열전’을 11만 3,000번 읽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에 호기심이 생겼다. 다산은 독서를 잘하는 선비라면 하루에 ‘백이열전’을 100번 읽을 수 있으니 1년이면 1만 3,600번은 읽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게 3년이면 10만 8,000번을 읽을 수 있지만 그 사이에 질병과 우환이 생길 수도 있고, 또 독실하게 효도하는 군자였으니 조석으로 부모의 안부를 묻고 잠자리를 살피는 등의 일에 든 시간을 빼면 4년이 걸려야 11만 3,000번을 읽을 수 있다고 계산했다.
다산은 ‘백이열전’을 읽는 데만 이미 4년의 세월이 걸렸는데, 그 많은 책들을 어떻게 다 읽을 수 있었겠느냐면서 ‘독수기’는 김득신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가 작고한 후에 “누가 그를 위해서 전해 들은 말을 기록한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백곡 김득신이 괴산에 있는 취묵당에서 독수기를 쓴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만약 후대의 자손이 내 〈독수기〉를 보게 되면, 내가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을 알 것이다.
강인한 집념의 끈질긴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음을 후손들에게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此在集中, 不須書, 而故錄之.
이 글은 문집 중에 반드시 써야 할 것은 아니었지만 일부러 기록했다.
使惰叢後孫, 隨處目之,
게으른 후손에게 처하는 곳에 따라 보여줘
以知先祖勤學, 以繼其萬一之志云耳.
선조가 부지런히 배운 것을 알게 하여 만일의 뜻을 계승하도록 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