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시계를 대신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고 배 고프면 자연스레 끼니를 챙겨먹고
어두워지면 활동이 어려우니 집으로 가서 쉬거나 잠자리에 들었을 것입니다.
달리 시계가 필요 없었지요.
그만큼 인간의 생활이 단순하였습니다.
문명이 한참 발달한 이후에도 시계는 그다지 필요 없었습니다.
여전히 해를 보거나 나무의 그림자 길이를 보며 시간을 짐작하면 되었으니까요.
어릴적 친구들과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시간 가는줄 모르다가
문득 해를 보고서 점심때가 되었구나 하고 짐작하였으니 해를 시계 삼은 것은 그 역사가 길고도 오랜 모양입니다.
하늘을 쳐다보며 시간을 짐작하다가 기원전 몇 백 년쯤에 이집트의 어느 똑똑하고 약삭빠른 사람이 긴 막대기를 땅에 꽂고 눈금을 그려
시간을 측정한 것이 최초의 시계입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 발생지 중 한 곳이 이집트이니 그곳에서 최초의 시계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당연할 것 입니다.
우리나라는 나무가 많으니 굳이 막대기를 꽂지 않아도 나무그림자는 지천이었을터 널린게 해시계였으나
이집트는 사막지대라 나무가 귀하다보니 나무대신 막대기를 꽂았을 테고 그래서 최초의 해시계를 이집트에 양보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다음은 물시계 그리고 물시계를 대용한 모래시계, 그러다가 기계로 만든 시계가 나타난답니다.
최초의 기계시계는 독일인이 프랑스 어느 법원건물에 만든게 최초였다는데 이게 기네스 북도 아니고 최초를 찾는게 목적이 아니니 이쯤하고
독일인이 최초의 기계시계를 만들었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나란히 강하나를 사이에 두고 문명이 더 발달하고 더 부강했던 프랑스에서 독일인을 데려다가 시계를 만들었다니
그렇다면 독일에는 더 일찍이 시계가 만들어졌다는 얘기지요.
정확한 시계가 널리 보급된 것은 교통수단으로 기차가 발단된 후 입니다.
정거장마다 시계가 틀려서 기차를 놓치기 일쑤였다나요.
그래서 통일된 시계가 나오고 나중에는 수백 수천년이 지나도 1초가 틀리지 않는 원자시계가 나왔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모래시계 볼 일이 많아졌습니다.
사우나에 가면 조그만 모래시계가 놓여있더군요.
21세기에 다시 모래시계라니 ....
7080세대로 불리우는 저희 세대에게 시계는 좀 더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중 하나가 시계입니다.
학교 근처 주점이나 식당 빵집 어디에서나 주머니에 돈이 떨어지면 누군가가 카운터로 다가가며 호기롭게 손목에서 시계를 끌렀고
주인은 별 말없이 설합에 보관하였습니다.
꼭히 현금이 필요하면 전당포로 달려가기도 했었지요.
저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노란색 오리엔트 손목시계도 전당포만 대여섯번 들락거렸을겁니다.
하루에 한번씩 손톱으로 태엽을 감아주지 않으면 꼴깍 잠들어버리는 그래서 다시
주변에 정확하다고 알려진 시계를 보며 시간을 맞추거나 좀 더 정확하게 맞추려고 라디오를 켜서
또~ 또~ 또~ 똥~ 하는 경쾌한 시보에 맞추었었는데 어느날인가 친구놈이 밥 줄 필요 없이 손목을 흔들기만 하면
저절로 태엽이 감기는 시계를 차고 왔더군요. 이름하여 자동손목시계.
당시 공무원 둬달 월급은 족히 넘는 금액이었지요 아마.
그렇게 남녀노소 모두가 하나씩 시계를 차고 다닐 때였으니 매스컴으로 시계를 선전하는 문구가 쏟아지고
저의 아내가 다닌 중고등학교는 어느 시계메이커가 운영하는 재단이었고 시골 살던 친구 형이
당시에는 알아준다는 H미술대학 갈 때 그린 첫 산업미술 디자인도 시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도심 번화가의 요지는 시계점포가 쇼윈도를 번쩍거리며 버티고 있었고
동네마다 시계 수리점이 들어서 내가 살던 작은 읍에도 다방이 3개 시계수리포가 3개 있었더랬지요.
물론 가장 많은 것은 선술집이었고.
80년대가 되면서 시계의 환금성은 떨어졌습니다.
아무도 술값으로 시계를 풀지도 않았고 받아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시계는 점점 더 좋아져서 손톱으로 태엽을 감거나 따르락따르락 소릴내는 자동태엽감기 시계도 한물가고
배터리를 넣으면 몇 년 동안 밥 줄 필요도 없는 편리한 시계가 나왔지요.
들리는 소문으로 어느 백화점에 가면 기백만원 기천만원짜리 시계가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더니
마침내보석으로 만든 억대의 시계가 그 자태를 매스컴에 드러냈습니다.
시계는 부의 상징이되기도 한 때였지요 요즘도 드물게 그런 기사가 나옵니다만.
그리고 90년대.
핸드폰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핸드폰이란 놈은 무슨 일인지 어찌된 영문인지 닫혀있든 열려있든 건드리기만 하면 시간이 먼저 튀어 나옵니다.
핸드폰이면 문자 그대로 전화기의 역할을 충실히하면 될 터인데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고 마치 자기가 시계인양
얼굴 한가운데 시간을 표시하고 있으니 우리는 한동안 난처했습니다.
<시계를 보아야하나 핸드폰을 보아야하나?>
버릇이되어 핸드폰 통화를 한고난 후 폰을 닫고는 다시 손목시계를 쳐다보기도 하였지만. 마침내 우리는 깨닫게됩니다.
하루에 단 한 번도 손목시계를 보지 않는 날이 점점 더 많아짐을.
핸드폰이 허리띠 가죽주머니에서 안주머니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있을 때만해도 가끔 손목시계를 쳐다 보았는데
이제 핸드폰이 문자 그대로 손에서 떠나지 앓고, 떠난다해도 셔츠 윗 주머니에 잠간 들어가 있어 한시간에 한두번은 꺼내고
급기야 어느 손에든 핸드폰을 들지 않으면 불안 초조 허전해지는 금단증상까지 생겨 지하철이라도 타면
젊은이들은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거나 게임을 하거나 이어폰을 꽂아 음악 듣는 풍경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이제 손목시계의 자리는 사라졌습니다.
낼모레가 팔순이신 저의 어머니조차 손목시계를 풀어 잠자리 머리맡에 두시고 사나흘에 한번씩 보는 눈칩니다.
벽시계가 따로 있긴하지만 그래도 아까우니 한번씩은 봐야겠다는 생각이신게지요.
그 많던 손목시계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우리주위엔 수많은 시계가 우리를 옥죄고 있는 건 아닌지?
PC하단에 보이는 시간. 휴대전화의 시계및 알람, 시각통보. 사무실, 거실등의 시계
그리고 무수히 예정된 접촉과 거래을 위한 시계등등.
그래도 손목시계를 차야 했을 때가 그래도 지금 보다는 인간적이었던 것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