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덜어내기·3
이현애
요즘 와서 또 뒷걸음질이 늘었다. ‘시와 문인화─그 덜어내기’라는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 이저런 생각이 주변 정리를 하게 한 까닭이다. 이만큼 오기도 서러웠는데 새삼스레 또 뒷걸음질이라니 말도 안 되는 짓이지만 어쩌랴 세상은 온통 떠오르는 해의 빛으로 찬란할 것인데. 언제나 빛나고 싶지만 지금은 지는 놀 쪽에 앉아 반대쪽 구경하기에 바쁘다. 그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근래에는 서숙 출신 작가보다는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전공한 작가들이 한글, 한문, 사군자 전각 등에 두루 정통하고 이들 분야를 동시에 넘나들면서 옛 사람들이 고집하던 여기적인 정신이나 철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법까지 조화시킨 실험정신이 잘 나타난 작품들을 내 놓으며, 독특한 현대 문인화로써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이런 멋진 젊은 작가들이 앞서 날아다니고 있으니 골방 출신 작가인 나는 주눅이 들어 슬그머니 발뺌을 해버리고 싶기도 해서다. 예지있는 그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고뇌하며 통쾌하게 박차고 나가기도 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이탈 하지 만도 않는 아취가 앞으로의 가능성을 얼마나 빛나 보이게 하는지. 다만 퓨전 사상이 어디든 끼어듦으로써 우리의 문화적 전통이 국적없는 다문화 사상으로만 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일부 조심스러운 시선이 있지만 온고지신 법고창신 하는 이들이 있으므로 염려 안 해도 될 것 같고 그저 참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저만큼 꼬장한 매화가지가 슬쩍 걸쳐오고 좍좍 속을 비운 대가 시적시적 옷깃을 여미는데 연이 속 넓은 잎 사이로 훌쩍 꽃대궁을 올린다. 그러자 동으로 난 담 밑에 국화가 찬바람에도 눈매 곧추 세운다. 난은 또 타협하지 않는 선을 지으며 결코 아닌 것과는 유유상종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는데 내 어찌 이들과 쉽게 갈라서겠는가.
추사 선생은 70평생 동안 10개의 벼루와 1000개의 붓으로 덜어내기를 하고 또 했단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56년을 살면서 1천 8백 편의 시를 써서 세상과의 소통을 꿈꿨다 하는데, 게으른 나는 비록 벼루 한 개일지라도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몽당비처럼 몽그라지거나 또는 노인네의 머리털처럼 송글송글 빠져 볼이 홀쭉해진 붓이 늘어나는 숫자에 눈이 실실 감기기를 바란다. 또 옮겨 쓰고 지우고 구겼다가 다시 편 파지더미가 높이 높이 키를 세우는 것을 기꺼워하며 할 일을 끝낸 늦은 밤과 남는 시간이면 문인화와 시와의 조응을 위해 가슴을 두근댄다.
일단 제자 되기를 청하여 문하에 들어오면 스승들은 선 그리기로부터 시작해 옥석을 가리기 위한 시금試金질을 시킨다. 가장 쉬운 듯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선 그리기다. 선을 그어보라 하고 옆에 서서 그의 호기로움과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가늠한다. 그 담금질 끝에 비로소 난蘭을 쳐보게 하는 것으로 문인화에 입성시킨다.
계절상 순서를 보자면 매, 란, 국, 죽이 서순이지만 칼칼하면서도 온유하며 고결한 그의 기품이야 말로 감히 옆에 가까이 하기 주저하게 하는 난부터 만나게 해서 선의 변화를 깨우치게 한다. 스승의 가르침대로 그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좀 되지 않았나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다. 선 그리기쯤이야 쉬워 보이지만 격이 있는 난의 고결함을 닮은 선을 쳐 내기란 가장 어려운 작업이다. 담박한 작설차 한잔 우려내 옆에 놓고 그 향에 취한 맑고 정결한 마음으로 선을 지어 보면 어떨까 하지만 감히 흉내가 안된다. 대가의 반열에 올라 세인들의 인정을 받아도 작업 중간 중간 선에서 자유롭기를 꿈꾸며 선과 씨름을 한단다. 선線 그리기가 선禪 닦기가 아니었을런지. 나는 더군다나 항상 작업 시작을 선과의 싸움판부터 벌린다. 대게 그 싸움판만으로도 불계패를 당하는 것으로 끝나기도 해서 자괴감이 들 때가 더 많다.
난은 봄에 피는 춘란과 여름에서 가을까지 꽃이 피는 혜란으로 나뉘는데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보통 한 꽃대에 한 개의 꽃을 올리는 춘란春蘭과 여러개의 꽃을 내거는 혜란蕙蘭을 많이 그린다. 송의 유신이었던 정사초는 송이 망하고 원이 세워지자 세상을 버리고 원의 곡식은 먹지 않겠다는 뜻으로 뿌리가 들어난 난을 그린 것을 시작으로 선비의 충성심과 절개를 상징하여 즐겨 노근란露根蘭을 그리기도 했다.
다음에는 대竹치기다. 곧은 줄기에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에게서 강직한 지조와 절의를 배우며, 청빈한 선비의 삶과 정신과 닮았다 하여 군자라 칭하고 즐겨 대를 치므로써 필력을 연마한다. 난에서 익힌 선으로 죽죽 그어 오르다 보면 난을 치며 졸았던 가슴이 좀 펴지는 것 같다. 노怒한 기분으로 대를 친다고도 하고 잘 익은 술 한잔에 적당히 적셔진 후면 더 호방한 기운이 생동 한다고도 한다. 나 개인적으로는 난보다 쉬웠다. 곧은 줄기를 쳐 올리다 보면 눈에 가시 같은 부분이 있기 마련, 난蘭 작품은 먼저 그어놓은 선이 아무리 선禪 같아도 그 중 단 한 획이 성에 차지 않으면 일순에 파지로 전락하나 대 작품은 약간의 서툼을, 발묵이 잘 된 잎으로 스리슬쩍 감추기도 한다. 대를 표현하는 데는 먹물의 농담과 붙끝의 기세에 따라 설월죽雪月竹, 풍죽風竹, 노죽露竹, 우죽雨竹, 추순抽荀-죽순, 치죽穉竹-어린 대나무, 노죽老竹, 고죽枯竹-마른 대나무, 절죽折竹-꺾인 대나무, 고죽孤竹 등으로 다양하니 문인화란 단순함을 주된 미학으로 잡지만 이렇듯 심오한 심화心畵가 따로 없다 하겠다. 흉중성죽胸中成竹, 즉 휘어질지언정 꺾이지 않는 지조와 절의의 기상을 먼저 터득하고 난 후 대를 쳐야 한다고 옛인들은 말했다. 중국의 서성 왕희지의 아들인 왕휘지는 “이 사람이 없이 어찌 하루라도 살 수 있겠는가. 하가일일무차군야何可一日無此君耶라 하며 대를 차군此君 (-이 사람)으로 불렀다고 한다
성긴 대 나무 사이에서 노니는 저 맑은 바람 한 줄기나 대금산조 한 가락도 불러 세우기 어려우니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이번에는 이른 봄의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 가지에서 화면의 구성과 황금분할을 꿈꾼다. 흰 눈이 아직 남아있을 때 피는 매화는 그 모습이 청초하고 순결하여 얼음과 눈에 많이 비유되었고, 굽힐 줄 모르는 선비정신과 어울린다 생각하여 군자로 칭하며 곁에 두고 거울로 삼고자 하였다. 후세 사람들에게 매처학자梅妻鶴子로 불리운 송나라 임포는 매와 학을 처자식 대신으로 삼고 사랑하며 살았다 한다. 모두 다 덜어냈음인가. 요즘도 그렇게 다 놓고 살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매가 맑고 깨끗한 것은 꽃을 야위게 밀어 올리며 나무 끝이 연한 가지는 살찐 꽃망울을 올린다. 가지가 겹친 곳에는 꽃이 많고 홀로 쭉 뻗은 가지에는 꽃이 성기게 달린다. 줄기는 용처럼 구불구불하고 쇠처럼 강하게 그려야 하며 가지 끝이 긴 것은 화살처럼, 짧은 것은 창을 닮게 그려야 한다.”고 옛 사람들은 정의 했다.
색깔의 차이에 따라 홍매紅梅와 백매白梅로 구분하거나, 나고 자라는 위치나 연륜에 따라 그 형태를 구별해서 그리기도 한다. 즉 고매枯梅, 어린 신매新梅, 무성한 번매繁梅, 성긴 소매疎梅. 산매, 야매 등등 여러 종류이나 어떤 매를 쳐 내던 무겁고 가벼움, 대범함, 동動, 정靜, 강剛, 유柔가 함께 어우러져야 하니 윗분들의 정의를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하겠다. 모든 예술이 처음 시작 할 때는 법칙을 따라야 하나 나중에는 무법으로 돌아가 자기만의 독특한 법을 재창출해야 한다. 매 하나만 가지고도 넘어야 할 산이 이리도 험난한데 법을 통과한 무법을 창출하려니 군자가 아니면 어찌 그 옆에나 가보겠는가.
끝으로 다른 꽃들이 만발하는 계절을 참으며, 가을의 찬 서리에도 굽히지 않고, 늦게까지 피는 국화에서 그 인내와 지조를, 먹색의 농담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능력을 배운다.
만물이 시들고 쇠락해 가는 시절에 홀로 피어나는 그의 모습은 오탁汚濁한 현세를 외면하며 사는 오상고절傲霜孤節한 군자를 연상케 한다. 그래서 옛부터 국화는 만향晩餉, 오상화傲霜華, 선선상중국鮮鮮霜中菊, 가우佳友, 절화節華, 금화金華 등으로 불리면서 꿋꿋한 충절과 은일의 상징으로 사군자화 속에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국화는 단독으로 그려지는 경우보다 괴석이나 대나무에 기대게 하여 화면을 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역시 군자격인 돌과 대를 곁들여 그 품격을 높였다. 중국 동진의 ‘고금 은일시인의 종宗“이라 평가받는 도연명은 특히 국화를 가까이 하여 자신을 경계하는 규범으로 삼았다.
국화는 늦가을에 피는, 서리에도 오연한 꽃이므로, 한꺼번에 쏟아져 아름다움을 다투는 부드럽고 화사한 봄철 꽃과는 그 특성이 다르다. 화선지 위에 옮겨졌을 때 만절晩節을 굳게 지켜 그윽한 향을 품는 군자를 대하는 느낌이 들어야 하는 것이다.
문인화의 소재로는 다양하지만 위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예부터 매, 난, 국, 죽을 주로 쳤고 여기에 솔松, 연, 포도, 파초, 조롱박, 호박, 모란, 목련, 노안蘆雁 등을 넣어 사군자 중에 여기로 그리기도 하였다.
이로써 네 군자를 만나 봤으니 지루하실 테지만 군자를 만나기 위한 네 친구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단단하고 먹이 잘 갈리면서 물이 쉽게 마르지 않는 벼루에, 너무 빨리 갈리면 찌꺼기가 생기거나 너무 까칠해서 제 몸을 너무 아끼는 먹은 너무 서서히 갈리어 먹색이 좋지 않아지므로 좋은 먹을 골라 적당한 힘의 세기로 먹을 갈면서 흉중성군胸中成君하며 마음을 갈고 닦는다. 군자를 만나는데 이 정도 쯤의 중용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무엇이든지 적당하기는 어렵다 하겠다.
먹은 송진을 함유한 소나무 뿌리나 관솔 등을 태워 만든 송연묵松煙墨, 유채나 동백기름을 재료로 한 유연묵油煙墨 등이 있다. 좋은 먹은 향기가 나며 반듯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로써 먹 갈기가 끝났으면 붓을 골라야 하는데 붓은 털 종류에 따라 양모, 황모(족제비털), 낭호(이리털), 계호(닭털), 죽필(대나무)에서 태아의 머리칼로 만든 태모필까지 다양하다. 털 종류가 붓의 등급을 나누는 건 아니고. 저마다 독특한 질감을 나타내 작품 특성이나 작가의 선호도에 따라 달리 쓰인다. 마음에 드는 붓을 고르면 그 한 자루로도 쇠꼬챙이 같은 가느다랗고 강직한 선에서부터 물이 흐르듯 유연하고 굵은 선까지 자유자재로 그려낼 수 있다
이제 준비가 다 되었으니 비었으면서 가득 찬 화선지 위에서 군자를 네 친구와 더불어 만나면 된다. 화선지는 거칠지 않고 매끄러우며 앞뒤 구분이 쉽게 되는 것이 좋다. 글씨나 그림을 그릴 때 발묵潑墨이 자연스러우면 된다. 일가를 이루면 네 친구의 좋고 나쁨을 그리 탓하지도 않는다. 난을 치다 보면 초나라 우국시인 굴원屈原과 만나고 대와 씨름 하다보면 왕휘지와 조응하며 국화를 갖다놓으면 도연명과도 화답할 수가 있다. 또 속넓은 연잎과 놀고 있으면 송宋나라의 주돈이가 읊은 애련설愛蓮設이 찾아온다.
이렇게 해서 네 가지 군자격의 사군자 소재 및 문방사우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이렇게 주마간산식으로 훑어보는 것으로는 그 진수를 느끼지 못할 듯싶고 더군다나 글이 짧아 더 흥미롭게 얘기를 펼치지 못해 아쉽다. 추사 선생의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은밀한 말씀이 귀를 쩌렁쩌렁 울린다.
또한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심미안에 맞게 품격 높은 작품을 보여드려야 할 텐데 졸작을 올려 모처럼 호기를 부려보았다. 그러나 그 대가들의 작품은 자주 접할 기회가 많을 터이므로 졸작으로 호사를 누려보았으니 이해하시기 바라며 앞으로는 더욱 문기 어린 작품으로 부끄러움을 만회하려 한다.
어느 작품을 대하든 감상은 작가의 몫이 아니고 제2의 창작이므로 감상하시는 분들이 준비할 것은 열린 눈과 귀 그리고 마음이니 자유롭게 품격을 느껴보시면 좋을 듯하다. 귀 명창이 소리 명창을 만든다는 말처럼 눈 명창이 그림 명창을 만들 수 있지 않을지. 오늘도 차군此君들과 함께 노는 꿈을 꾼다.
이현애 / 1998년 『시와산문』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가끔 길을 잃어버린다』, 『모든 것들은 뒤에 머문다』가 있다. 제8회 한국녹색시인상을 수상했고 현재 <시의 밭>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