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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회의 행복시.hwp
서평>
행복을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
- 구준회 3시집 『그 이후 또 하나의 행복』 -
朴 水 鎭(시인)
사람은 왜 사는가? 대답은 하나다.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누구나 행복하기 위해서 날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행복하기 위해서 시를 쓰고 시집을 세상에 내놓는다. 문제는 행복이 빛깔도 형태도 없는 추상 명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현자들은 저마다의 가치와 체험을 통해 행복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테면, 붓다는 <잡아함경>에서 ‘건강하라. 덕을 쌓으라. 스승들의 가르침을 경청하라. 진리를 따르고 · 경전을 공부하라. 집착의 굴레를 벗어던져라.’라고 여섯 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친다. 서양의 철학자 칸트 또한 행복하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고, 누군가를 사랑해야 하며,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또 인간관계와 처세술 이론의 대가 카네기는 무엇보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행복론의 대표격인 러셀의 주장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는 사실 어린 시절의 조실부모와 네 번의 결혼이 말해주듯 불운한 가족사의 대명사이다. 행복은 언제나 현실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신기루 같은 것이기에 러셀이 말하는 ‘건강과 열의, 서로에 대한 사랑, 균형감을 갖는 비개인적 관심, 생활을 위한 노력, 결과를 받아들이는 체념, 용기와 희망과 흔들리지 않는 신념’ 등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인간의 영원한 과제인 행복을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에 나선 시인이 있다. 구준회 시인이다. 그는 이미 『우산 하나의 행복』 과 『사람 하나의 행복』 시집을 펴낸 바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자신의 제3시집 『그 이후 또 하나의 행복』이라는 시집을 냈다. 작고 소박한 하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시인의 시세계를 들여다보자.
우리가 언제 한번 빨래가 돼 본 적 있나
한 물속에서 팔 다리 얼싸안고 돌아본 적 있나
젖을 대로 젖어 풍차 타고 빙빙 엉켜본 적 있나
<중략>
아무리 휘둘려도 끝내는 만나는
크게 휘둘릴수록 마침내 하나 되는
우리가 언제 한번 빨래가 돼 본 적 있나
빨래의 눈물이 돼 본 적 있나
-<드럼세탁기> 일부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이 드럼세탁기 속 빨래와 같다. 전생의 애인과 이생의 사랑과 내세에 미지의 모습으로 다시 만날 차마 끊을 수 없는 인연들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아간다. 지지고 볶고 울고 웃으며 초심에서 변심으로, 변심에서 초심으로 그네를 타면서 사랑과 감사와 원망과 미움 그 모든 것이 또 다른 업(業)이 되어 쌓이는 줄도 모르고. 그러나 그것이 또한 사랑이요 행복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시인은 하나가 되어 무아지경으로 돌아가는 세탁의 과정을 보며 ‘몸도 섞이고 말도 섞이고 영혼도 섞여 도는 열락의 땅’이라고 노래한다.
우산 하나만 있어도
이 부끄러운 날을 가릴 수 있기에
우산살만큼의 집에서
큰길의 비를 바라본다
<중략>
큰길의 비를 바라보며
그동안 내 눈이 흘려온
물기 묻은 행복을 털어준다
행복도 눈물을 흘린다
-<젖은 행복> 일부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려 하지만 왠지 그의 행복은 젖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시인이 가지는 원초적 외로움일 수도 있고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기도 한다. 구 시인이 철저히 가슴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는 사실은 시집 전편에 흐르는 시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일견한 바에 따르면, 가장 많이 쓰인 시어는 단연 ‘사랑’이었다. 무려 40여 회 이상이 보이는데 이는 또 앞서 언급한 현자들의 행복론의 공통점이 누군가를 사랑하라는 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어떤 시에서는 무려 5회 이상 사용되기도 한 것을 보면 시인은 행복의 길을 분명히 알고 있어 보인다. 그 다음으로 많이 쓰인 시어로는 30여 회 보이는 ‘눈물’에 이어 ‘그리움’, ‘외로움(외롭다)’, ‘슬픔’, ‘이별‘ 등인데 이렇게 감정언어가 많이 쓰인 것을 볼 때 시인은 여전히 촉촉한 가슴으로 시를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옥은 때가 중요해
~
달빛도 부서졌다 갔고
바람도 쓸어보고 갔고
겨울 아궁이 매운 향기로 훈제도 되어야
그 무늬 나오지
사람도 그 묵기쯤 되어야
한옥향이 나오지
- <한옥향> 일부
시를 왜 쓰는가? 그 또한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시는 본시 가슴으로 쓰는 것이지만 더 큰 완성을 위해서는 가슴에서 머리로 가는 여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러셀의 말을 빌면 균형감을 갖는 비개인적 관심에 힘을 쏟는 일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은 너무나 협소하고 가변적이어서 공감과 전파에 한계를 드러낼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절제와 객관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 <한옥향>은 새로운 행복의 길로 가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걸음 더 나아가 시와 시인의 일치도 공감의 중요한 요소가 됨을 기억해야 한다.
미의 추구를 통해 인간 영혼을 감동시키는 예술에는 문학을 비롯해 회화, 무용, 건축, 음악, 사진 등 다양한 장르가 있다. 그러나 다른 예술에 비해 시와 수필은 작품 자체 뿐 아니라 글쓰는 사람의 인품이 작품 평가와 직접 연결된다는 점만큼은 부인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작품 그 자체로 가치를 평가하며 작가의 사적 생활은 부기나 참고사항에 그치는 다른 예술과 달리 시와 수필은 사람과 글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바로 그 가치가 상실되는 경우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그만큼 글은 기록문화라는 자체로도 엄중하지만 인간성과의 일치를 요구하는 높은 기대치로 인하여 그 과정이 흔히 구도의 자세에 비유된다. 글을 쓰고 발표하는 일이 마부위침(磨斧爲針)과 같이 끊임없는 자기연마와 높은 인격의 성숙까지를 요구하는 일이어서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시인이 살아온 행적이나 그의 이상이 현재 생활과 부조화를 이룰 경우, 지나치게 사생활이 드러나는 글보다는 그야말로 객관화된 진리나 자연물 등을 소재로 에둘러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너무나 원론적인 얘기이지만, 글 속에 ‘나’가 없어도 이미 ‘나’는 충분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절제와 절제, 세월에 녹슬지 않는 정조의 시를 쓰는 일은 참으로 지난한 일이지만 그만큼 큰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옷으로 시를 짓는다는 디자이너 진태옥 님의 말에서 의미있는 시학을 배운다.
“주름 하나 선 하나도 이유나 의미가 없으면 걷어내 비우고 또 비운다. 진정한 미니멀이란 결국 몸에 붙어있는 각질까지 떼어내는 것. 아프도록 걷어내야 본질이 보인다. 원래 열정과 흥분에서 출발하지만 이제는 침묵에서 시작한다. 덧칠하고 욕심부리고 싶지만 그걸 참고 내려놓고 또 비운다.”
꽃생명 하늘가 하늘
꽃 한 송이 무게가 인간과 같고
꽃 한 송이 눈물이 / 사람만큼 뜨겁다는데
운동장 가 화단
기인 매미소리
핀 바도 진 바도 놓쳤는데
눈짓 남은 자리
땡볕 운동장 가
한 생명이 봄 다녀간 자리
칠 년쯤 아파야 날개를 얻는다는
매미소리 찾아와 맴도는
꽃자리
- <지는 걸 몰랐네> 전문
사람은 행복해서 행복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 행복을 노래한다. 사랑하는 순간에 사랑을 노래하기보다는 사랑이 저만큼 지나간 뒤에 사랑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다. 구준회 시인의 시집을 읽는 길안내도 이에 다름 아니다. 그의 제3시집 『그 이후 하나의 행복』을 숙독하며 그의 행복과 사랑을 응원한다. 그리고 더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새로운 시세계가 열리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