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여름 내음이 가시는 8월말에 김장배추 모종을 심었다. 올해는 늦추어 심을까말까 하다가 며칠 전 이 여름 같은 날씨에 모종을 사서 심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니 심어도 괜찮을 거라는 조언도 있고 사나흘 물 주면 살아난다고 했다. 이웃 몇몇 분은 그물망을 덮어 햇볕에 타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었다. 나는 준비된 그물망도 없고 해서 그대로 두었다. 한낮에는 시들해졌다가 해가 지면 기운을 차리는 어린 모종이 대견했다. 나흘 지나니 한낮에도 굳굳하게 자세를 유지했다. 잘 길러내면 맛있는 김장김치가 되리라 믿는다. 2박3일 간의 김장 잔치가 그려진다.
간헐적 농부가 배추 한 포기 길러내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거름을 땅 위에 고루 뿌려 며칠 둔 다음 쇠스랑이나 괭이로 파 일구고 토양 살충제 뿌리고 밑비료 후 평평하게 고른다. 물을 충분히 주어 깊이 스며들도록 해야 한다. 그러찮으면 모종이 말라죽는 경우도 생긴다. 잡초 방지와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비닐 멀칭 후 대접 크기의 원 모양으로 구멍을 낸다. 배추 모종 심을 자리다.
모종 이식 후 모종 아래에 왕겨를 깔아주고 물을 준다. 왕겨를 깔아주는 이유는 수분 방지와 어린 모종이 햇볕에 타는 걸 방지한다. 실제로 한낮에 비닐멀칭한 곳에 손을 대보니 상상 이상으로 뜨겁다. 잎이 비닐 위에 닿으면 그냥 하얗게 말라 죽는다. 이식 후 사나흘 아침 저녁 지극정성으로 물을 주어야 한다. 대단위로 농사짓는 분들이야 기계의 힘을 빌리겠지만 간헐적 농부는 물뿌리개다.
고향에 살지만 농사는 짓지 않는 한 친구가 그런다. 그런 생고생을 왜 하냐고. 요즘 농촌에서도 절임 배추를 사서 김장하거나 아예 사서 먹는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배추 안 심는 집이 더러 있다. 절임배추로 김장하거나 사 먹는 게 훨씬 싸게 치인다고 한다. 이 좋은 세상 편하게 살아야한다는 거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고생을 사서 하니 말이다.
다른 친구가 말을 거든다. 돈은 돈대로 들고 힘들기는 하지만 보람이 있단다. 그게 살아가는 힘이고 재미란다. 작고 여린 생명체를 가꾸고 돌보는 희열을 느낀다는 거다. 늙어가면서 빈둥빈둥 놀면 뭐 하냐고. 시간 죽이는데 농사짓는 게 최고란다. 머리로 느끼는 맛과 가슴으로 느끼는 맛이 다르다는 거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인터넷으로 구입한 김치는 먹다 남으면 버리기도 하지만 누이들이 담아 보내준 건 하나도 안 버리고 끝까지 다 먹는다.
마을 정자나무 아래에서 땀을 식히다가 짧은 토론의 한 장면이다. 어리고 어린 70순 아이들의 이야기에 9순 넘은 아재들은 빙그레 웃기만 한다.
마을 노인회에 가입 신청도 안 했는데 나도 모르게 가입된 것 같다. 행사 때마다 참석하라고 연락이 온다. 적은 금액이지만 찬조는 하지만 입회비는 없는지 여쭈어봐야겠다.
ㅎㅎ배추 이야기 하다 뜸금없이 노인회로 흘렀네. 어제는 귀한 비가 조금 내렸다. 오늘도 비가 온다는 예보다. 텃밭농사는 하늘이 거의 대부분을 짓는다. 김장 때 쓸 거라고 뿌려둔 무싹도 다 올라왔다. 예쁘기 그지없다. 한낮의 햇볕이 염려스럽기는 하나 배추도 무도 잘 견뎌줄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