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팸어랏'"이쯤 되면 나오는 노래 / 서로 마주 보며 오버하는 노래 / 했던 노래 또 하고 / 완전 영원할, 망할 노래…."
호수의 여인(신영숙)과 갈라핫(박인배)이 배를 타고 나오며 부르는 이중창 '이렇게 흘러가는 노래'에 관객은 폭소를 터뜨렸다. '오페라의 유령'과 같이 호수와 촛불이 등장하는데, 우스꽝스러운 노랫말로 그 낭만에 찬물을 끼얹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패러디의 시작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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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스팸어랏’의 정성화(왼쪽)와 김호. /오디뮤지컬컴퍼니 제공
2005년 토니상 작품상 수상작으로 이번에 국내 초연된 뮤지컬 '스팸어랏(Spamalot)'은 다른 뮤지컬의 유명한 인물이나 장면을 가져다 기막히게 뒤집었다. '그리스' '캣츠' '시카고' '노트르담 드 파리' '맨 오브 라만차' '미스 사이공' '아이다' '지킬 앤 하이드' '헤어스프레이' '헤드윅' 등 친숙한 공연들은 물론이고 그룹 '소녀시대'의 춤, CM송까지 패러디가 넘쳐났다.
'스팸어랏'은 막이 오르기 전 "휴대전화를 꺼달라"는 안내를 영어·중국어·일어로 엉터리 통역하면서부터 객석을 무장해제시킨다. 똑똑하진 않은데 의욕만 넘치는 아서왕(정성화)이 원탁의 기사들과 성배(聖杯)를 찾아가는 이야기도 웃음의 연속이다. 연예인의 티켓 파워를 조롱하는 노래, 객석의 어느 엉덩이 밑에서 성배를 찾는 결론, 오케스트라의 연주까지 이 희극에 가담한다. 말[馬] 타는 시늉을 하는 배우들의 몸짓에 일단 중독되면 "따그닥 따그닥" 하는 소리만으로도 즐거워진다.
한국화가 잘 된 작품이다. 신영숙은 노래·대사·동작에서 뼛속 깊은 코미디의 내공을 보여줬다. 반 박자 빠르거나 느린 정성화의 엇박 코미디, 잠자던 희극 본능을 깨운 김재범, 개그맨보다 웃긴 정상훈의 조합도 절묘했다. 엉망진창 굴러가는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이 뮤지컬이 들려주는 노래는 이렇다. "인생 뭐 있나요, 웃어봐요 / 인생 별거 없어요, 웃어봐요…."
▶아서왕 역은 박영규·정성화가 나눠 맡는다. 12월까지 서울 한전아트센터. 1588-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