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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이티엠산악회 원문보기 글쓴이: 상선약수(지운흥)
⑭ 일차 4월 21일
페루 나스카[경비행기 탑승 지상화 관광]-(차량8:00)-리마
멕시코 칸쿤
나스카 관광을 끝내고 리마로 돌아 가는 길에 바라본 경비행기 지상화 투어 전경
달리는 버스 안에서 촬영한 나무 지상화.
어제 저녁 나스카로 이동하면서 버스 안에서 찍은 사진과 위치가 거의 동일하다. 우연이라고 해야하나...
팬 아메리카 고속도로
잉카인들의 주식인 옥수수
끝없이 이어지는 황무지
이카에 도착하여 각 종 포도주를 시음하고 점심식사
모래 사막에 건설된 마을이 삭막하게 보인다.
멕시코, 쿠바 주변 지도
⑮ 일차 4월 22일
페루 리마 08:45 이륙-(항공6:42)-쿠바 하바나 도착 15:27-하바나[시내관광, 포격식 관람 30분]
이른 기상 후, 리마 공항으로 이동, 08:45 리마 출발 [LA2412]
15:27 [쿠바] 아바나 도착
쿠바 (Cuba)
위치 : 북아메리카 카리브해상 서부
인구 : 1114만 명(2017년 기준)
수도 : 아바나
면적 : 11만 860㎢
언어 : 스페인어
종교 : 가톨릭교
화폐 : 쿠바 페소1 CUC = 1,300원 / 1 CUP = 55원 // 1 USD = 0.873CUC 1 CUC = 24 CUP
1492년 콜럼버스(Columbus, C.)가 발견한 후 스페인의 식민지로 편입된 이래 400여 년간 스페인의 통치를 받다가 1898년 미·서 전쟁으로 미국에 양도되어,
4년간 미군정을 거친 뒤 1902년 5월 20일 독립하였다.
독립 이후 카스트로(Castro, F. R.) 정권 수립까지 정치·경제면에서 미국의 영향권 하에 있었으며, 1903년 미국과 관타나모 기지 조차 협정을 체결하여 현재에도 미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다.
독립 이후 독재, 부패, 쿠데타가 빈발하는 가운데 변호사 출신의 카스트로가 6년 간의 혁명 운동 끝에 1959년 정권을 장악하여, 소련을 비롯한 공산 제국의 원조를 받아가며
극좌경 성향의 사회주의 건설을 위하여 공산 통치를 해 나갔으며, 이 과정에서 1962년 소련의 중거리 미사일 반입과 관련하여 쿠바 봉쇄 사건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카스트로의 장기집권에 이어 동생 라울 카스트로(Raul Castro) 국가평의회 의장이 2008년 2월 24일 취임하여 집권하고 있다.
쿠바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은 스낵식으로...
쿠바 아바나 코모도로 호텔
카리브해 말레콘 해변을 배경으로...
카리브해 말레콘 해변 전경
쿠바 아바나 식당에서 5중주단의 재즈를 들으며 저녁식사
■ 쿠바음악
쿠바는 아메리카 대륙을 향해 항해에 나선 스페인에 의해 1492년에 발견되었다.
이 섬의 토착 원주민들은 유럽으로부터 들어온 질병과 스페인의 혹독한 식민지배로 인해 전멸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스페인은 아프리카로부터 수많은 흑인들을 노예로 데려오게 되는데, 이로 인해 쿠바는 브라질과 함께 중남미에서 아프리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음악적 특성을 지니게 된다.
아프리카 기원의 많은 민속 리듬들이 들어옴과 동시에 스페인의 식민지배가 이어지는 동안 스페인 사람들의 라틴적인 기질과 유럽 문화의 다양한 요소들이 배합되면서
음악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춤과 노래를 중심으로 하는 쿠바의 대표적인 음악들이 만들어지게 된다. 스페인의 무곡 콘트라단사(Contradanza)에 아프리카의 요소들이 결합된 춤곡
단손(Danzon)을 비롯해, 아프리카의 리듬을 바탕으로 시작해 쿠바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댄스음악으로 유행했던 룸바(Rumba), 역시 아프리카를 기원으로 하는 쏜(Son) 등을 손꼽을 수 있다.
19세기 말 쿠바는 독립을 성취하게 되지만, 20세기에 들어 미국의 자본이 급격하게 들어오면서 음악적으로도 큰 변화를 맞이했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요소들을 바탕으로 한 쿠바의 음악은 미국 재즈의 영향 속에 더욱 세련된 모습과 높은 음악적 완성도를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 CABANA 포격식장
식민지 시절 아바나를 지키는 성문지기들에게 알리던 신호였던 포격식 관람
쿠바 수도 아바나(La Habana) 야경
30분 정도 진행된 포격식 모습
⑯ 일차 4월 23일
쿠바 하바나-(차량0:40)-코히마르[헤밍웨이 집 관광]-(차량0:40)-하바나[시내 관광]
아바나 위성지도
좌측 끝 적색 표시점이 숙소였던 코모도로 호텔, 아바나 위쪽 해변은 말레콘 해변
■ 호세 마르티 (Jose Marti) 기념비 외관 관광
혁명광장 북쪽에 위치한 탑으로 그 안에는 쿠바 독립에 관한 역사가 담긴 박물관이 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탑의 꼭대기로 올라가면 아바나의 거의 모든 지역을 볼 수 있다.
이 탑은 19세기 후반에 조국의 아버지로 기억되는 쿠바 혁명의 국가적 영웅 인 호세 마르티 (Jose Marti)를 기리기 위해 1950 년대에 세워졌다.
■ 체 게바라 (Che Guevara) (1928년~1967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의대를 졸업했으나 의사의 길을 걷는 대신 사회의 병을 고치는 혁명가가 되었다.
피델·라울 카스트로 형제와 만나 쿠바에서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혁명을 성공시켰다.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라틴아메리카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볼리비아 혁명 당시 볼리비아 정부군에 사로잡혀 39세 나이에 총살당했다.
□ 라틴 아메리카의 게릴라 지도자이자 혁명 이론가
□ 경력 : 쿠 바의 산업부 장관(1961) 쿠바 중앙은행 총재(1959)
■ 체 게바라 명언
○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 수단이 비열하다면 결코 목적은 정당화 될 수 없다.
○ 우리는 이론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오직 행동이다.
○ 잠자는 자는 꿈을 꾸지만, 잠자지 않는 자는 꿈을 이룬다.
○ 나는 천천히 걷는다. 하지만 적어도 뒤로 가지는 않는다.
○ 불가능은 가능을 위해 존재한다.
○ 너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냐? 나의 인생은 고난극복의 연속이다.
○ 포기란 배추를 셀 때만 필요한 단어지, 그 외에는 쓸모가 없는 단어이다.
○ 우리는 처음 숫자를 셀 때 1부터 센다. 하지만 모든 일의 처음은 0부터 시작한다.
○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그리고 내일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라.
○ 태양을 향해 쏜 화살은 태양근처까지라도 간다.
○ 인생은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네가 계속 폐달을 밟는 한 너는 넘어질 염려가 없다.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는 문구가 새겨진 혁명광장의 체 게바라 벽화 앞에서...
쿠바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특산품으로는 사탕수수, 시가 등이고 그리고 올드카가 연상된다.
쿠바 올드카
쿠바 수도 아바나 도로는 한산하다.
자동차 한 대가 몇 억원 한다고 한다. 당 간부나 기업가 등이 자동차를 구입하고, 중상류층은 월급으로는 자동차를 살 수 없다고 한다.
■ 헤밍웨이 박물관 투어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 ~ 1961)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을 헤밍웨이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헤밍웨이가 집필을 했던 서재와 그의 낚시 도구 및 사냥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소설 소재의 종을 배경으로...
헤밍웨이가 거주했던 서재 내부 모습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헤밍웨이는 우연히 쿠바(Cuba)에 들르게 되었고 쿠바에 반해 20년 넘게 정착해 살았다.
그는 아바나 동쪽 코히마르에서 낚시를 즐기며 글을 썼다.
‘노인과 바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 헤밍웨이의 대표적인 작품이 전부 쿠바에서 집필되었다.
120년 전 쿠바 사탕수수밭으로 보내진 조선인들
애니깽이라 불리는 그들의 아픈 역사를 더듬어 보다.
신대륙을 찾아나선 콜럼버스가 쿠바에 첫발을 디딘 후 원주민의 대다수는 유럽인들이 가져온 천연두와 질병, 가혹한 노동착취로 숨졌다.
그 결과 1550년에는 오직 5,000여명의 원주민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카리브 해의 천국’ 쿠바에 불어 닥친 불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18세기 말부터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은 19세기 초에 세계 제일의 생산량을 자랑했다.
스페인 통치자들은 사탕수수밭에서 일할 노동력이 필요했고, 부족한 노동력은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을 수입해 메꿨다.
이때부터 수입하기 시작한 흑인 노예는 1840년대에 이르면 40만 명에 달했다.
그 질곡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원주민과 흑인 노예들의 피가 자연스럽게 섞여 오늘날의 쿠바인을 만들었다.
애니깽은 부귀영화를 이룰 수 있다는 꾐에 속아 120년 전 멕시코 유카탄 반도 메리다 지역의 애니켄(용설란 선인장) 농장을 향해 태평양을 건넜던 조선인들.
그들은 머나먼 땅 쿠바까지 흘러왔고 사탕수수 농장에서 흑인 노예들과 함께 채찍으로 매 맞고 때론 굶어가며 일했다.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애니켄(용설란 선인장) 농장에서 일하던 애니깽들은 그토록 고생해서 받은 돈을 모아 독립운동 자금에 보탰다고 한다.
지금,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지구 반대편의 섬나라에서 고향과 부모형제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살아야 했던
그들의 흔적은 지금 어디쯤에 남아 있을까?
이제는 한국말도 까맣게 잊고, 얼굴도 변해버렸을 그들....
사탕수수 음료를 마시며....
■ 노인과 바다의 배경지인 코히마르(Cojímar) 마을
코히마르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영감을 주었던 어촌 마을이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종군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실과 용감하게 싸우다 패배하는 인간의 모습을 간결하고 힘찬 문체로 표현했다.
1952년에는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195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된 코히마르 해변
코히마르 마을 사람들이 만들었다는 헤밍웨이 동상
헤밍웨이가 생전에 즐겨 찾았던 곳
쿠바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와 말마차
■ 쿠바 올드카
쿠바에 올드카가 많은 이유는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한 무역 봉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쿠바는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1961년 미국과 수교를 단절하게 된다.
미국과의 수교 단절로 인해 자동차뿐만 아니라 자동차 부품 공급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자신의 차는 자신이 자체적으로 수리하는 문화가 생기게 됐다.
이런 이유로 인해 쿠바 아바나 시내에선 아직도 1940~70년대에 생산 된 캐딜락, 뷰익, 포드 등 다양한 올드카들을 볼 수 있다.
차량이 거의 없는 한산한 쿠바 시내 도로
■ 카메라 광고 배경지이며, 쿠바인들이 즐겨 찾는 장소인 말레콘 해변
말레콘(Malecon)은 스페인어로 방파제라는 뜻으로 카리브해의 거친 파도로부터 수도 아바나를 보호하는 구조물이다.
방파제의 길이는 8km.
말레콘은 외국인에게도 명소지만 쿠바 사람들에게도 더할 수 없는 휴식처이다.
우리나라와 쿠바의 끈은 생각보다 끈끈하다.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던 한국인들이 대거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주한 인연이 있다.
쿠바는 한국전쟁 때 경제 원조를 보내오는 등 우리와 돈독한 관계였다.
쿠바 하면, 사회주의 독재국가라는 이미지와 함께 음악과 여유, 휴식 등의 단어가 함께 떠오른다.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호기심이 밀려드는 것을 어쩔 수 없으나 생각보다 쿠바는 안전하고 깨끗한 나라다.
건물이 좀 낡고 차의 연식이 오래 돼서 그렇지만 길에 휴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은 깨끗한 나라인 것은 물론이다.
또한 카스트로의 인종차별 금지 정책으로 전통적으로 백인, 흑인 간 차별이 없으며 외국인에게도 친절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쿠바 아바나 '대부2'의 배경이 된 '카프리 호텔'과 올드카
쿠바 아바나 코모도로 호텔에서 바라본 카리브해 일몰
⑰ 일차 4월 24일
쿠바 하바나 11:10 이륙-(항공1:20)-멕시코 칸쿤 도착 11:30-[자유시간]
아바나 공항으로 이동, 11:10 하바나 출발 [4O-4903]
11:30 [멕시코] 칸쿤 도착, 가이드 미팅, 호텔로 이동
기내에서 바라본 쿠바 수도 아바나 전경
칸쿤(Cancún)
미국인들이 은퇴 후 가장 살고 싶은 곳, 중남미 청춘들의 허니문 열망지로 늘 앞 순위에 오른다.
1970년대 초만 해도 칸쿤은 산호로 만들어진 ‘7’자 모양의 길쭉한 섬이었다.
고기잡이 배나 드나들던 한적한 어촌마을은 휴양도시로 개발되며 섬 양쪽 끝이 뭍과 연결됐고 초호화 시설을 갖춘 호텔들이 들어섰다.
몰디브의 바다처럼 연둣빛 라군(석호)으로 채색돼 있지는 않지만, 해변의 규모에 있어서는 압권이다.
바닷가에 긴 평행선을 그은 듯 흰 모래사장은 20여km 이어진다.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산호 산맥이 섬 일대를 지나고 있고 산호가 파도에 부서져 하얀 모래를 만들었다.
멕시코 칸쿤 위성지도 (적색 표시점은 숙소였던 칸쿤 베이 리조트)
칸쿤 베이 리조트
대서양 변의 칸쿤 베이 리조트
여성들이 상반신을 노출하고 해수욕을 즐긴다는 레츠 플레리 호텔 전경
칸쿤 해변 풍경
칸쿤에서의 첫 날밤
밤 기온이 30도가 넘지만 습도가 낮아 덥다는 느낌은 없다.
칸쿤에서의 밤은 깊어 간다. 직녀성 별자리를 보며 긴 여정의 피로를 풀어 본다.
10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