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에 삼성아파트 정문에서 창익이 성을 만나기로 했다. 시계바늘이 10시를 넘어간다. 인자 출발헌다고 전화를 했다. 청소도 못한 채 집을 나섰다. 매가라인 네거리 모퉁이에 창익이 성이 지달리고 있다.
“성, 미안허요.”
“재성이 옹가?”험시로 언제나 그렇듯이 다정허니 손을 내민다. 이미 택시를 잡아놓고 있다. 돈은 목포역에서 찾아야 헐 모양이다.
목포역 건널목에 있는 광주은행에서 돈을 찾았다. 역 광장 주변 나무그늘 의자에는 낯익은 노숙자들이 보인다. 언젠가 집회를 허는디 시끄럽다고 따지고 들었던 젊은 노숙자도 보인다. 여기저기 갈 곳 없는 노인네들도 당신들끼리 한담을 나누고 있다. 아, 광장....
창익이 성이 예매를 해놓으셨단다. 시간이 얼추 맞다. 개찰구를 지나 고속열차 젙으로 갔다. 승무원이 목례를 헌다. 위에 삘건 조끼를 입은, 아리따운 승무원이 “어서 오세요.”하고 인사를 헌다. 꼭 ‘은하철도 999’를 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창익이 성도 그런단다.
10호 칸에 올랐다. ‘자리가 쬐깨만 넓고 길믄 쓰겄는디...’ 그러고 봉게 읽을 거리도 하나도 안 갖고 왔다. 성이 아조 살살 코를 곤다. 나도 선잠에 빠져들었다. 한참을 헤매고 있는디 내 다리를 살째기 민다. 창익이 성이 일어서서 나갈락 헌다. 언능 다리를 오그렸다. ‘칫간에 가실랑가?’
한참을 지달려도 안 온다. 똥을 싼다고 해도 여러 번 쌀 시간이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객실 배깥에서 누군가허고 전화를 허고 있다.
객실 사이 오르내리는 계단에 붙박이접이의자가 있다. 다리를 쭉 펴고 올려놓고 있다.
“성, 여가 계셨소?”
“응, 여가 겁나게 편허네, 야?”
“저기는 다리를 펼 수가 없어서...”
나는 이짝에 앙겄다. 다리를 올려놓았다. 허리를 조깨만 오그링게 다리 올려놓기가 좋았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광을 무심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때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가, “안녕하세요?” 헌다. 고개를 돌렸다. 아까 열차에 오를 때 “어서 오세요.”하던 그 승무원이었다. 차말로 이삐다. 훤칠헌 키에 눈이 둥굴고 서글서글허니 생겼다. 콧날은 곧게 뻗어내려왔고 콧볼이 오동통허니 곱상이다. 볼은 팽팽허니 긴장해있고, 입술 윤곽이 뚜렷허다. 부처님 입술보다 약간 도톰허다. 왜, 객실에 안 계시고 이곳에 나와 계시냐고 묻는다. 여가 편해서 근다고 했다. 무담씨 말 걸어보고잪다.
“여기가 시방 어디쯤 되께라?”
“익산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낭자, KTX 여성 노동자들 아직도 싸우고 있다요?”
“많이 복귀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래요?”
“저는 신임이라 잘 몰라요.”
“근데 뭐하는 분들이세요?”
“뭐 허는 사람들 같소?”
“두 분 다 인상이 참 좋으시네요.”
“그래라? 고맙소.”
“우덜은 선생들이다요. 서울 출장 가요.”
“어머, 그러세요. 저도 선생님 되고 싶었는데요. 공부를 못해서...”
“낭자, 여그 취직을 허셨으믄 공부 잘했겄그만이라.”
“저 잘 못했어요.”
“선생님, 근데 무슨 과목이세요?”
“알아맞춰보쑈, 뭔 과목이겄는가?”
“국사?”
“국자는 맞었는디...”
“국어선생님이세요? 어쩐지 옷차림이....”
“선생님은요.”
“사회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왜 그런지 사회를 통 못했어요. 과외까지 받았다니까요?”
“낭자, 넘의 돈 묵기 힘들제라?”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듣는다. 천천히 다시 야그했다.
“남.의.돈.묵.기 힘들제라?”
“...???”
“돈 벌기 힘들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그제서야 ‘아하!’ 하고 웃는다.
“힘들지요. 선생님들같이 좋은 분들만 있으면 좋은데, 가끔은 이상한 분들도 있어요.”
그 말에 지난 번 원회추 2차 상경투쟁 때 장면이 떠올랐다. 그 때도 고속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는디, 꽁지머리를 헌 60대 취객이 여승무원을 고래고래 닦아세운 일이 있었다. 웃통을 벗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디 그런 난리가 없었다.
“선생님들 밤 드실래요? 아까 저 쪽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심심할 때 먹어라고 주셨어요.”
엄지 손톱만한 밤 여섯 알을 조끼에서 꺼내준다.
“아이고 고맙소. 근디 성, 이거 생밤 아니요?”
창익이 성이 깨물어본다. 나도 깨물었다. 삶은 밤이다.
“...???”
가타부타 선뜻 대답을 허지 않응 것 봉게로 밤을 안 묵어봤능갑다.
“낭자, 나눠묵읍시다.” 허고는 다시 한 알썩 줬다.
마침, 그 때 밀차가 지나간다. 미에로화이방가 뭣잉가를 시 개 샀다.
“이쑈, 낭자도 한나 드이쑈, 야?”
“고맙습니다.”허고는 밝게 웃는다.
만약 그가 북녘 봉사원이었다믄, “일없습네다~!”험시로 똑같이 밝게 웃었을 것이다.<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