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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보’가 문제되는 것은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이 확고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에 회의가 들기 때문이다. 산업화의 진전으로 인한 빈부의 격차, 이념과 국가이익만을 앞세우는 야만적인 전쟁, 과학이란 유토피아가 배태한 생태계 파괴의 재앙 등이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다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열어놓고 다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각 집단의 구성원들이 지닌 역사의식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아울러 시대에 따라서도 다양한 대답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진보(進步, progress)란 어떤 개념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각자의 가치관과 입장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쓰일 수 있겠지만, 대체로 ‘인간의 역사가 계속해서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규정은 몇 가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주체의 문제이다. ‘인간의 역사’란 누구의 역사란 말인가? 엘리트인가 주변부 사람들인가? 둘째, 가치의 문제이다. ‘좀 더 나은 방향’이란 어떤 가치를 기준으로 하는가? 물질적인 것인가 도덕적인 것인가? 셋째, 목적론의 문제이다. ‘나아간다’는 것은 어떤 종착점을 전제로 하는가? 혹은 끝없이 움직이는 것인가? 선택이 다양할 수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대답도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역사가 이를 보여준다.
동서양의 전통적 역사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가 앞으로 진보 ? 발전해 나간다는 관념은 근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분명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고대 중국과 그리스 ? 로마의 경우를 중심으로 살펴볼 때, 전통적 역사관은 대체로 감계(鑑戒) 사관, 상고사관, 순환사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감계사관이란 역사 속에서 후대에 귀감이 될 만한 도덕적 규범을 찾아 그것을 역사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자 하는 것을 가리킨다. 쉽게 말해 교훈적 역사관이다. 중국에서 이러한 사관의 대표적인 예가 사마광의 《자치통감》이다. 그는 책 속의 <진서표>에서 “본받아야 할 선한 일, 경계해야 할 악한 일”을 다루고자 한다고 그 저술목적을 밝히고 있다. 로마의 역사가 리비우스 역시 《로마사》에서 역사서를 통해 “국가가 모방할 것은 택하고 치욕적이며 부끄러운 것은 피할 수 있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상고사관은 이상적 가치기준을 고대에서 찾는 것을 말한다. 아득한 고대에 일종의 황금시대가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윤리가 쇠퇴하게 되었음으로 다시 고대의 이상적 원형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맹자》에서 “후세를 본받을 수 없는 연유는 후세의 사람들이 선왕의 도를 행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은 곧 요 ? 순 ? 우 등 고대 선왕의 정치를 이상화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스의 헤시오도스가 《노동과 제일(祭日)》에서 과거를 황금시대-은시대-동시대-철시대로 나눈 것도 동일한 변화관념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르네상스가 고전 ? 고대적 가치의 부활을 목표로 했다는 사실 역시 일종의 상고주의적 경향이다.
순환사관은 마치 자연현상이 주기를 가지고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처럼 역사도 시간에 따라 비슷한 양상이 되풀이된다는 관념이다. 역사가 선대의 질서와 후대의 무질서를 반복한다는 맹자의 일치일란설(一治一亂說)이나, 자연의 근본요소인 목 ? 화 ? 토 ? 금 ? 수가 순서에 따라 운행함으로써 이들의 상호작용에 따라 만물이 생성 ? 변화한다는 오행설(五行說)이 대표적이다. 플라톤 역시 《티마이오스》에서 인간사회가 야만상태에서 출발하여 문명을 이루었다가 대파국을 겪고는 다시 야만으로 되돌아가는 순환을 계속해 왔다고 주장하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인간의 정치체제는 예외 없이 왕정-참주정-귀족정-과두정-민주정-중우정의 단계를 반복한다고 말하였다.
이 세 측면의 역사관은 서로 강력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그것은 역사를 주로 윤리와 도덕의 관점에서 바라보면서(감계사관), 그 이상적 기준을 고대에서 찾고(상고사관), 따라서 선대의 원형과 후대의 변질이 끊임없이 반복 ? 순환한다고(순환사관) 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 어떤 의미에서든 진보 ? 발전한다는 관점의 반대편에 위치한다. 물론 고대라 해서 진보사관이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리스의 전성시대였던 기원전 5세기경, 아르키메데스나 히포크라테스와 같은 과학자들의 저작들에 그러한 흔적이 보이며, 서기 2세기의 유학자 하휴가 《춘추공양전》에 대한 주해서에서 역사가 쇠란(衰亂)-승평(升平)-태평(太平)의 시대로 점점 발전한다는 장삼세론(張三世論)을 펼친 것도 그 한 예이다. 하지만 그것이 주류를 형성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근대와 진보사관
역사가 진보한다는 관념은 17세기 유럽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여 18세기 계몽사상기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었으며, 19세기에 이르러 절정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흐름을 선도한 것은 17~18세기 유럽의 지성계를 관통했던 이른바 ‘고대인과 현대인의 논쟁’이었다. 이 논쟁의 핵심은 학식 면에서 당시의 현대인(지금으로서는 근대인)은 이미 고대인을 앞질렀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의 대학자들은 언제나 변함없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모든 문제는 그들로부터 시작되었고, 그에 대한 대답도 그들의 저작 속에서 찾아질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혁명이 진행되면서 세계와 자연을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과 개념이 제시되었고, 따라서 공론화(空論化)의 경향이 있었던 고대철학은 힘을 잃게 되었다.
고대인을 앞서는 근대인의 선두주자는 베이컨과 데카르트처럼 귀납법이나 방법론적 회의와 같은 새로운 과학개념으로 무장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에 따르면, 고대는 언제나 회귀해야 할 영원한 이상이 아니라 단지 ‘세계의 유년시절’에 불과하다. 인류역사의 진행과정은, 비유하자면 마치 한 인간이 태어나 성장하는 것과 유사하며, 따라서 근대가 어른이라면 고대는 어린애라는 것이다. 17세기 말 퐁트넬은 ‘고대인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 현대인’이라는 이중적 이미지로 이를 상징화하고 있다.
18세기에 들어 콩도르세는 《인간정신의 진보에 대한 역사적 시론》(1793)이라는 글에서, 인류의 발전을 가로막을 어떤 제한도 존재하지 않음을 천명하고 있다. 마치 하층의 동물들이 점점 자신의 기능을 발전시켜 왔듯이 인간 역시 그렇게 될 것이며, 이러한 육체적 발전에 적절한 교육이 더해지면 정신적 ? 지적, 심지어는 도덕적 측면까지도 계속해서 진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에 대한 이렇듯 지나친 낙관론은 과학과 이성의 힘에 대한 과도한 신뢰에서 나온 것으로, 진보사관의 물질적 ? 과학적 기반을 잘 보여준다.
진보사관의 절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조는 19세기 실증주의이다. 그 대표격인 콩트는 《실증정치학체계》(1851~1854)에서 ‘인류의 3단계 진화법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인류는 가족에 기초하여 사제와 군인이 지배한 신학적 단계(고대)에서 국가를 중심으로 사제와 법률가가 득세한 형이상학적 단계(중세 및 르네상스기)로, 최종적으로는 산업경영자와 과학자의 가르침을 따라 전 인류를 사회단위로 삼는 실증적 단계(자신의 시대)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그의 진보사관은 과학적 지식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과학에도 각 발전단계에 따른 위계가 존재한다. 그는 자연과학을 거쳐 발전해 온 사회과학이야말로 실증적 단계를 지탱해 나가는 근간이라 보았다. 사회의 진보를 필연적으로 본 스펜서의 진화론 역시 콩트와 연결선상에 있다.
19세기 진보사관에서는 18세기의 조화로운 진보관과는 달리 역사를 구성하는 요소들 간의 갈등을 전제로 하는, 좀 더 복잡하고 우회적인 모습도 보인다. 헤겔은 세계사의 전개를 자유가 확대되는 과정으로 보았다는 의미에서 진보사관적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어떤 흐름이 있으면 반드시 그것에 반하는 다른 흐름이 있어 이 둘이 비판적으로 서로를 지향하면서 발전해 나간다는 변증법적 접근법을 제창하였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각 역사시대가 서로 대립되는 두 세력 간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진단했으나, 종국에는 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의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일견 암울하면서도 여전히 발전적 측면을 인정하는 역사관을 제시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발전적 요소와 종말론적 요소를 함께 내포하고 있는 사상을 진보사관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역사관도 이 경우에 속하지만, 가장 대표적인 예는 역시 기독교 사관이다. 기독교적 종말론은 역사 속에서 때로는 유대적 메시아 사상으로, 때로는 천년왕국사상으로 표출되었다. 역사개론서에서는 직선적 발전사관의 출현을 기독교의 영향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러한 종류의 종교적 ? 목적론적 ‘발전’사관은 현세 그 자체보다는 내세에서의 구원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진보사관과 동일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기독교 신학자들은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진보사관은 20세기에 들어, 특히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급속히 약화되었다. 인간의 역사는 과학의 발전과 사회적 평등에 바탕을 둔 희망찬 유토피아를 향하기보다는 오히려 비인간적인 살육과 전체주의적 독재가 횡행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로 귀결될 것이라는 회의가 지식인들의 정신을 지배하였다. 냉전은 끝났지만, 전 지구를 위협하는 생태계적 재앙과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을 여전히 가로막고 있다.
결론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는 진보사관의 출현이 대체로 과학기술의 발전, 물질생활의 증진, 세속주의의 득세 등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고대사회에 이러한 관념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과학은 편리성과 풍족함 대신에 인류 전체를 파국으로 몰고 갈 위험성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현 시대의 지식인들은 더 이상 계몽과 진보라는 달콤한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 속에는 차별과 야만과 오만함이 함께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비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 물음 자체부터 특정한 지역이나 계급, 인종, 성의 구성원에 의해 독점되어서는 안 된다. 그 대답도 각 집단의 구성원들이 지닌 역사의식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글의 앞부분에서 주체, 가치, 목적론의 문제를 제기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포스트모던적 성찰에 기대자면, 단일한 총체로서의 역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오직 다양한 ‘역사들’만이 존재한다. 그러면 역사들은 진보하는가?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아마 ‘역사들’이 진보할 때 비로소 ‘역사’도 진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 더 생각해볼 문제들
1. ‘역사는 진보하는가.’라는 물음은 사실에 대한 물음인가 혹은 담론에 대한 물음인가?
바꾸어 말해서, 이 물음은 적절한 사실들이 수집되면 누구나 동일한 대답이 가능한 것인가,
또는 근본적으로 각자(각 집단)의 역사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2. 이 물음을 한국사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대답의 주체는 누구일까? 만약 흔히 주장되는
대로 그것이 민족이라면, 민족의 진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과연 민족은 한국사를
구성해 온 다양한 집단과 범주 모두의 이익과 가치관을 아우를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한국인의 역사를 적절히 해석할 수 있는 인식의 틀로서 기능할 수 있을까?
3. 역사의 진보라는 문제를 역사 속의 각 대립범주의 구성원 입장에서 대답해보자.(여성 대
남성, 백인 대 흑인 또는 동양인, 엘리트 계급 대 종속계급, 부자 대 빈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