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새소식] 시각장애인의 지방선거, 혼란과 모순의 날
시각장애인의 지방선거, 혼란과 모순의 날
지난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선거)가 치러졌다. 그 무렵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이하 한시련)에서는 ‘시각장애인들의 선거 참정권 침해 사례’를 모집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인 투표권. 하지만 시각장애인이 자신의 참정권을 행사하기까지의 과정은 수월하지 않았다.
* 정보혼란 조장하는 공보물, 점자규정 준수도 ‘의무화’ 해야...
2015년 7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점자형 선거공보가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되었다. 그 이후 점자형 공보물 제작은 증가했지만 그 질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시각장애인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우선 점자형 선거공보물이건만 점자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2017년 한국 점자 개정 이후 개정 점자의 사용을 권장하고 있고, 올해 치러진 점역·교정사 자격시험도 개정 점자로 시행되었다. 하지만 공보물 가운데 일부는 괄호와 소수점 등의 기호가 예전 점자로 표기되어 있었다. 수험생의 경우 학습의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우려로 개정 점자 사용을 보류하고 있지만 선거 공보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점역교정사 L 씨는 “개정 점자와 예전 점자의 혼용은 독자인 시각장애인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며 “한글 맞춤법을 준수하는 것처럼 점자규정 준수도 의무가 아니겠느냐”는 말을 남겼다.
한편 교정과 편집 문제도 제기되었다. 가장 유의할 부분은 글자가 변형된 사례이다. ‘정’이라는 글자가 윗줄과 아랫줄, 즉 ‘ㅈ’과 ‘영’으로 쪼개진 탓에 점자에서는 ‘자영’으로 읽히게 된 것이다. 점자는 풀어쓰기 방식이기 때문에 점역·교정을 할 때, 그 부분을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시각장애인 J 씨는 “점역 후 교정도 하지 않고 인쇄하는 거냐”며 “후보자들이 점자형 공보물을 각 기관에 맡길 때 점역사와 교정사가 있는 제대로 된 곳에 맡겼으면 한다”고 한숨을 토했다. 사정이 이러니 점자형 공보물 자체에 점역·교정을 맡은 기관 이름을 실어달라는 요청도 제기되고 있다.
* 모순된 응대, 비밀투표 원칙과 사전투표 의미는 어디로
그뿐 아니라 투표소에서 기표하는 과정에도 문제가 있었다. 시각장애인 B 씨는 선거 당일 이동지원을 받기 위해 지역 선거관리위원회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이동지원은 지체장애인이 우선이라 원칙적으로 어렵다”는 거였다. 선거안내문에 따르면 ‘중증장애인은 활동보조인 및 교통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그 내용과는 판이한 응대였다. B 씨는 “결국 이동지원을 받았으나 기분은 좋지 않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편 선거보조용구 대신 활동보조인의 손을 빌려야 했던 사례도 있다. 담당직원이 보조용구를 준비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한 것이다. 그리고 기표홈(칸)이 작아 도장을 맞춰서 찍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다. 시각장애인 Y 씨는 “투표 보조용구가 있음에도 제때 사용할 수 없고, 혼자 투표를 못 하니 선거의 기본 원칙인 비밀보장이 깨질 수밖에 없다”며 씁쓸함을 표했다.
또 사전투표 지원 문제도 거론되었다. 시각장애인 투표보조 용구가 구비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사전투표는 굳이 거주지 투표소가 아니더라도 전국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의 경우 사정이 달랐다. 해당 주소지 투표소에만 투표보조용구가 제대로 구비되어 있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시각장애인에게 있어서 사전투표의 의미는 퇴색된 셈이다.
한시련 김훈 정책연구원은 “현재 메일을 통해 받은 불편 사항을 정리 중에 있고 끝나는 대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에 제출할 것”이라며 진척 상황을 밝혔다. 워낙 산적한 문제가 많다 보니 그것을 취합하는 데도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연구원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중앙선관위의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매 선거마다 닦달하다시피 협조 요청을 합니다. 점자형 공보물은 묵자형 공보물과 다르니 그에 대해 후보자들에게 정확히 안내해 달라, 투표소 직원들에게 보조용구 및 장애인 서비스 교육에 신경을 기울여 달라고 말이죠.”
답은 언제나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지난 선거의 판박이다. 원인은 이미 드러나 있고 그것을 매번 짚어주지만 해결하는 데 게으른 탓에 벌어진 일이다. 정보제공과 투표지원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지방선거는 지방 선관위 담당이고 공보물이나 홍보물 안내, 서비스 교육도 그쪽에서 하고 있을 것”이라는 모호한 가정문으로 답했다. 그리고 마무리는 늘 그랬듯 예산과 인력의 부족으로 끝맺었다.
앞으로 2년 뒤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그 미래에도 오늘과 같은 문제가 재연되고 말 것인가? 누군가는 나서서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각장애인의 참여, 단합된 목소리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귀, 중앙선관위의 분발도 필요하다. 그리하여 시각장애인의 참정권이 장애 없이 행사될 수 있는 ‘그 날’을 바란다.
(2018. 7. 1. 제10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