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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파노라마
예레미야는 가장 암흑한 시기에 누구보다도 괴로운 사명을 감당한 선지자입니다. 왜냐하면 장장 40년 동안이나 눈물로 호소하며 심판을 경고하였으나, 이를 막지 못하고 기어코 유다의 멸망과 하나님의 성전이 불타는 비극적인 광경을 목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이상은 “끓는 가마가 북에서부터 기울어져 있는”(1:13) 광경이었습니다. 북쪽 바벨론을 통한 심판의 불이 발등에 떨어진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이 나팔 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4:19) 하고 말합니다.
흔히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9:1)하고, 동족을 위한 “큰 근심과 고통”(롬 9:2)이 예레미야 선지자에게는 있었던 것입니다.
① 그러면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문제(問題)는 무엇인가?
㉠ “배역(背逆)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 행하지 아니하리라”(3:12)
㉡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3:14)
㉢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3:22)한 “배역과 돌아오지 않음”입니다.
② 그런데 하나님은 이 문제(問題)에 대한 해답(解答)을 어떻게 제시해주셨는가?
㉠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29:10) 하십니다. 돌아오지 않은 그들을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돌아오게” 해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서의 중심 단어 중 하나가 “돌아오게 하리라”(29:14, 30:3, 10, 31:23, 32:44, 33:7, 26)는 말씀입니다.
③ 선지자 예레미야의 사명을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1:10)하고 말씀합니다. 그의 사명은 파괴적(破壞的)인 면과 건설적(建設的)인 두 면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예루살렘이 멸망하였다가 회복될 것을 나타냅니다. 파괴하고 파멸 당함은 인간의 죄악 때문이나 “건설하며 심게 하는”, 즉 회복하여주심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 먼저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하신 심판에 대한 경고부터 생각해 보겠습니다. 남쪽 유다는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함을 보면서도 각성도, 회개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쫓고 그에게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3:8)하고 책망하십니다.
㉡ 예루살렘 그 넓은 거리를 왕래하며 찾아보아도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5:1).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 문에 서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려 들어가는 사람들을 향해,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성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7:4)하고 선포하게 하십니다.
㉢ 하나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7:25-26) 하십니다. 그래서 “뽑고, 파괴하며, 파멸고, 넘어뜨리리라” 하시는 것입니다.
④ 다음은 “건설하며, 심게 하셨느니라”하는 점입니다. 이점이 18장에 나오는 토기장이 비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18:3-4) 합니다. 이 광경을 보여주신 후에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18:6)하고 말씀하십니다.
㉡ 24장에서는 무화과 두 광주리를 보여주시는데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24:2) 합니다. 형제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와 포로로 잡혀간 자 중 어느 편이 “좋은 무화과”라 여겨지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24:5-6) 하십니다.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18:4),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24:5) 하시는 여기에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⑤ 급기야 예루살렘은 시드기야 제11년 4월 9일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군대에 의하여 함락되고 맙니다(39:2).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제부터는 “건설하며 심게 하는” 말씀을 대언합니다.
㉠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29:10)하고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 이처럼 “돌아옴”이 어떻게 해서 가능하여진다는 것인가? 결정적인 말씀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31:31) 하신 “새 언약”에 나타납니다.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31:32) 하십니다.
㉢ 이 새 언약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23:5)로 나타납니다. 33:15절에서도 “그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하고 거듭 말씀합니다. “다윗에게 한 공의로운 가지를 나게 하리라”는 말씀은, 다윗의 자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돌아오게” 해주시겠다는 명백한 예언인 것입니다.
㉣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33:20-21)하고 언약의 불변성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바벨론으로부터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이를 예표로 하여 사탄의 포로 된 자들을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⑥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불에 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옛 언약이 파해졌다는, 즉 인간의 행위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력구원의 불가능성이 명백하게 입증이 된 시점, 즉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고, 성전이 불타버린 절망적인 지점에서 새 언약(言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구원이란 인간의 행위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가능하여진다는 점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선지서의 해답(解答)이 있는 것입니다.
㉡ 이런 해답이 주어진 것은 여기가 처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언약의 관계입니다. 언약(言約)의 관계란 언약을 믿는 믿음의 관계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시조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관계가 단절이 되었을 때에도 “여자의 후손”이라는 원 복음을 말씀하심으로 관계가 이어지게 해주셨습니다.
㉢ 이 원 복음은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창 22:18)하고 아브라함 언약으로 진전(進展)이 되고
㉣ 다윗에게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삼하 7:12)하고 다윗 언약으로 주어집니다.
㉤ 이제 예루살렘이 멸망한 이 시점에서 “새 언약을 세우리라”(렘 31:31) 하십니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만 하신 약속이 아닙니다.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서도 “내가 그들과 화평(和平)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言約)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하게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겔 37:26) 하셨습니다.
⑦ 이런 맥락에서 선지서에는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세워주신 언약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다시 상기하고 강조해야 할 점은 예루살렘이 멸망 당한 치명적인 죄는 우상숭배입니다.
㉠ 그리고 우상을 숭배했다는 것은 십계명의 1-2계명을 범했다는 교훈적인 의미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세워주신 메시아 언약을 버렸다는 신학적인 의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그들이 메시아 언약을 버렸는가? 그 이유를 44장을 통해서 분명히 들을 수가 있습니다.
㉡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그래서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않겠다”(44:16-18)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기복신앙 때문입니다.
⑧ 그리고 기복신앙은 필연적으로 거짓 선지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어느 선지서보다도 예레미야서에서는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 간의 대결이 치열하게 전개됩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이 멸망하게 된 가장 혼란한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종말적인 말씀을 하시면서,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마 24:11)하고 경계하셨습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미혹(迷惑)하는 것인가?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23:17)하고 듣기에 좋은 낙관적인 말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가리켜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렘6:14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6:13-14)하고 말씀합니다.
㉡ 유다의 증상은 결코 심상(尋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치명적인 상황에 이르렀는데도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영합하는 말만 했던 것입니다. 이 점은 오늘날 긍정적인 설교를 해야 부흥이 된다, 축복하는 설교를 해야 성도들이 좋아한다는 등의 풍조(風潮)에 경종을 울리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 또한 거짓 선지자들은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하게 하였다”(18:15)하고 말씀합니다. “옛길”이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간 길입니다. 다윗이 행한 길입니다. 즉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신 길이 옛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변질을 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내 백성은 잃어 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였기”(50:6) 때문이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6:16) 하십니다.
⑨ 28장에는 선지자 하나냐와 선지자 예레미야가 논쟁하는 것이 나옵니다. 하나냐는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28:2-4)하고 예언합니다.
㉠ 그런데 예레미야는 29장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29:10) 하면서,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자녀를 낳으며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사로잡혀 가게 한 성읍의 평안을 구하라”(29:5-7)하고 말합니다. 백성들은 누구의 말을 좋아하겠는가? 이런 의미에서 예레미야서는 어느 선지서보다도 현대교회에 적실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⑩ 예레미야서는 마지막 부분에서 장장 6개 장(46-51장)을 할애하여 열방들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열방이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 이는 선민 이스라엘(구약교회)이 열방의 중심(中心)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도 역사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열방(불신 세계)은 멸망 당하나 하나님의 교회는 징계하실 지라도 “버림을 받지 않을”(51:5)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2-3).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계획하시고 언약하신 바는 반드시 성취하시고야 마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