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리우는 1976년 중국 서북부 간쑤 성의 란저우 시에서 태어나 열한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하버드 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마이크로 소프트 등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한 후 하버드 법학 전문 대학원을 졸업했다. 법무 법인에서 변호사로 7년간 일했다.
“휴고, 네뷸러, 세계환상문학상 사상 첫 3관왕 석권”이 타이틀 광고이다.
『종이 동물원』은 SF, 환상문학, 대체 역사, 전기, 하드보일드 소설에 이르기까지 켄 리우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작품집으로 「종이 동물원」을 비롯하여 중국계 미국인인 작가의 시선에서 바라본 동북아시아의 역사적 굵직한 사건들을 SF 환상 문학 장르에 녹여낸 작품들도 많이 실려 있다. 오늘은 「종이 동물원」의 서사를 따라가 보자.
엄마는 우는 아이를 달래려고 종이로 호랑이를 접어 준다. 냉장고 위에 보관해 둔 포장지였다.
“엄마의 종이접기는 특별했다. 엄마가 숨을 불어넣으면 종이는 엄마의 숨을 나누어 받았고, 엄마의 생명을 얻어서 움직였다. 그건 엄마의 마법이었다.”(p14)
(내 기억 최초의 종이접기는 비행기와 종이배였다. 아빠가 읽고 폐지가 된 어제는 우리들의 장난감이었다. 종이배를 접기 전 단계에서 삼각형으로 접어 머리에 쓰면, 장군이나 해적의 모자가 되기도 했다. 대야에 종이배를 띄웠고, 냇가에 가져가기도 했다. 산골이 온 세상이었기에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 후로는 공, 새, 꽃, 상자,학 등 나는 제법 종이접기를 좋아하지만, 호랑이 접기는 해 본 적이 없다. 그것들이 살아 움직이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아빠는 결혼 중개회사 카탈로그에서 엄마의 사진을 보고 결혼하기로 한다. 영어를 잘한다던 말은 거짓말이었다. 미국인인 아빠와 영어로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모두 중개회사에서 대신 써 준 것이었다. 부모의 결혼 1년 후에 주인공은 태어난다.
“내 부탁을 받고 엄마는 포장지로 염소와 사슴, 물소도 접어 주었다. 거실을 뛰어다니는 종이 동물들을 라오후(호랑이)는 으르렁거리며 쫓아다녔다.”(p16)
(종이 동물들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환상적인 묘사가 인상적이다. 아이는 외롭게 혼자 놀지 않고, 종이 동물들과 엄마와 함께였다. 아이에게 종이 동물 이외의 다른 장난감은 없었다는데 종이 동물들만으로도 충분했던 것 같다.)
주인공이 열 살 때, 도시 반대편 새집으로 이사 간다. 엄마는 영어를 못한다. 놀러 온 엄마들이 영어로 흉을 보는 이야기를 주인공이 듣게 된다. 그 동네에 살던 ‘마크’가 스타워즈 장난감을 들고 왔다. 광선검에 불이 켜지는 오비완 케노비 인형을 자랑한다. ‘마크’는 주인공이 종이로 접은 호랑이를 보여주자 "네 엄만 쓰레기로 장난감을 만들어 주냐?"라고 묻는다. 친구의 말을 듣고 살아서 움직이던 라오후가 갑자기 포장지 쪼가리로 보였다고 한다.
(열 살이면 종이 동물이 살아 있으리라는 환상이 깨질 법도 하다. ‘마크’는 정말로 낡아버린 라오후를 보고 적의감 없이 물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장난감을 가져 본 적이 없던 아이는 친구의 말을 듣고 비로소 환상에서 깨어난 것 같다.)
주인공은 엄마에게 영어로 말하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겠다고 해서 엄마와의 대화가 점점 끊긴다. 엄마는 영어도 공부하고, 미국 음식도 배우지만 주인공도 성장하여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엄마는 암으로 죽는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빠는 순식간에 늙어 버린다. 아빠는 혼자 살기 너무 큰 집에서 이사하기로 한다. 여자 친구와 아빠의 이사를 돕다가 종이 동물들을 본다.
“이런 종이접기는 처음 봐. 너희 엄마 진짜 멋진 예술가셨구나.”(p27)
(종이 동물들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 엄마 생각이 더 간절했을 주인공의 마음이 느껴졌다. 엄마의 마법이 사라진 것과 엄마의 죽음이 연결된 것 같았다. 따스한 시선을 가진 여자 친구를 통해 비로소 주인공은 잊혔던 기억과 감정들을 되살리게 된 것은 아닐까.)
청명절에 우연히 엄마의 종이 동물들을 보게 된다. 안쪽에 빽빽한 한자가 적혀 있었다. 중국 관광객이 읽어 준 엄마의 편지를 듣게 된다. 편지에서 엄마는 아이를 향한 마음은 영어로 쓸 수 없었다고 한다. ‘온 마음을 담아서’ 편지를 써야 하기 때문에 중국어로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엄마는 1957년 허베이 성 쓰구루라는 곳에서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대기근이 중국을 덮쳐 3000만 명이 죽기도 했다. 쓰구루는 종이접기 공예로 유명한 고장이었는데, 엄마의 어머니가 종이 동물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1966년 문화 대혁명 때 홍콩에 친척(외삼촌)이 있다는 이유로 핍박받다 부모를 잃고 10살에 고아가 된다. 엄마는 홍콩으로 붙잡혀가 ‘입양’된다. 남자아이 둘을 돌보고 갖은 집안일을 한다. 시장 할머니의 주선으로 미국인인 아빠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아빠는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해주었지만, 엄마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도 아무것도 이해하질 못했다고 한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정말 행복했다. “너한테 내 언어를 가르치면, 내가 한때 사랑했지만 잃어버렸던 것들을 작게나마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너한테 처음으로 종이 동물을 접어 줬을 때, 그래서 네가 웃었을 때, 난 세상 모든 걱정이 사라진 것만 같았어.”(p33)
(엄마에게 종이접기는 아이와 마음을 나누는 소통의 도구였고, 자신이 과거에 잃어버렸던 숱한 것들을 되살리게 해주는 언어의 문을 여는 열쇠였다. 아이는 자라고 결국, 엄마보다는 자신을 더 생각하게 되므로 엄마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는 자기 생각에 맞춰주길 바란다. 엄마의 마음을 늦기 전에 알아봐 드렸더라면, 돌아가신 후에 덜 슬펐을지도 모르겠다.)
(편안한 문체로 써진 이야기가 더 큰 감동을 주는 경우가 있다. 담담한 문체, 긴 시간을 이야기한 것 같으면서도 물 흐르듯 서사가 이어진다. 아이를 향한 사랑을 주제로 한 스토리는 아이만의 마법으로 묘사되는 종이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환상을 만들어 낸다. 엄마와 어린 시절에 나누었던 따뜻한 교감을 나이가 들수록 잊어갔던 근원적인 것들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모습이 다행스러웠다. 엄마가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였다. 늦게 도착한 편지지만, 주인공이 읽을 수 있었고, 엄마의 마음을 되살릴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