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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3 (토) 수락산 내원암
첫 멀티 등반 & “뭐하는 거야! 오른손을 놓으면 어떡해!”
수락산은 처음으로 멀티등반을 해본 곳이었다.
암장에서 출발해 북한산과 비슷한 거리를 달려 수락산 초입에 도착했다.
어프로치 시작!
어프로치 초반부
(근진, 아직 쌩쌩한 어조로) “동원형, 어프로치 짧다고 하니까 이번에는 형을 잘 따라가 보려구요. 북한산에서 대단하시던데요~ 선생님 뒤를 바짝 쫒아서 가시다니. 하하”
(동원형, 역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응~ 수락산은 짧다고 하니까 금방 가겠지.”
분명 북한산 때보다는 덜 힘들었지만, 그래도 만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동원형, 저 멀리를 바라보며) “생각보다는 긴데? 짧다고 생각하니까 더 긴 거 같아.”
(근진, 헉헉대며) “그러게요. 후~후~ (쉼 호흡 소리) 괜히 짧다고 했어요. 헉헉.”
괜히 시작부터 설레발 쳐서 조금 죄송하더라구요.
하지만 이거슨! 도봉산에서의 죄송함에 비교하면 애교수준이 되고 맙니다...
중반 이후 어프로치의 선두는 미준 선배님.
등반장소 직전의 구간은 북한산보다 가파른 경사였지만 꾸준히 똑같은 속도로 올라가시는 걸 보고 감탄했다.
나는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더 빠르게 올라가야 했다. 동원형이 바로 앞에 있어서 더 수월하게 따라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등반을 시작하면 분명히 빌빌대면서 민폐를 끼칠 테니 어프로치라도 잘하자라는 마음에 꾸준히 따라갔다.
짧은 구간이었지만 날씨가 더웠고 땀은 역시나 많이 난다.
중간에 쉬면서 물을 마실 시간도 없었지만, 짧은 어프로치라고 들었기 때문에 참고 올라갔다.
어프로치가 끝나자마자 역시 선생님께서는 옷을 벗어서 말리신다.
나도 옷을 하나 더 가지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스박스를 갖고 올라오신 경필 선배님과 병건 선배님이 참 존경스러웠습니다.
그 안에서 온갖 것들이 오후까지 나오더군요.
교육생들은 선생님 주위에 둘러 앉아 매듭법을 교육받고, 선배님들은 등반을 시작하신다.
여러 가지 매듭법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
(도봉산에서 까베스통 매듭법의 실전편을 능무 선배님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아쉬움이 남는 등반
왼쪽의 몇 개 루트는 슬랩 구간만 이어진 것이 아니고 잡을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루트가 중반을 지나서는 북한산과 비슷한 슬랩 등반으로 이어졌고, 끙끙대긴 했지만 어찌어찌 올라가긴 했다.
백운대에서 빌레이를 보는 사람과 이렇다 저렇다 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해야지 서로 호흡을 맞추기 쉽다는 것을 깨닫고 빌레이 파트너인 동규형과 이래저래 얘기를 많이 했다.
오른쪽 루트는 다 어려워 보여서 시도할 엄두도 못 냈다.
다음에 도전해야지.
점심식사 조건인 5루트를 등반하고 시간이 남아서 어려운 벽에 도전했다. (이름은 잘 모르겠더라구요.)
흥열 선배님과 종훈 선배님을 비롯해서 많은 선배님들이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하셨지만 도저히 갈 수가 없었다.
밸런스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저 멀리 계신 선생님께 한 번만 시범을 보여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멀티등반을 시작
1피치까지는 큰 무리가 없었다. 다만 1피치가 연습 등반 때의 1피치보다 훨씬 1피치였다는 것이고 그 높이에 얼어버렸다.
연습 때까지의 1피치 높이에 이제 막 적응이 되어 높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질 때 쯤 시작한 멀티 등반은 나를 거의 패닉 수준으로 몰아갔다.
(1피치에서 선등빌레이를 보면서 후등자가 올라오는 자일을 당기다가 잠시 손에서 놓자)
(종신 선배님, 화나신 표정으로) “뭐하는거야! 오른손을 놓으면 어떡해!”
(본인 오른손 왼손도 구분 못하고 얼떨떨한 상태에서 왼손에 힘을 주자)
(종신 선배님, are you crazy? 의 표정으로) “오른손으로 자일 잡으라고!”
최초의 후등빌레이 경험이었다.
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자일을 당기되 너무 당기면 올라오는 사람 밸런스가 무너지고,
당긴 자일은 내 확보줄 위에서 사려야 하고,
그 와중에 테라스에서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 등등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멀티’로 겪는 것은 돌고래 IQ인 나에게는 벅찼다.
(똑똑한 돌고래의 IQ 가 100을 넘는대요. 허허.)
올라오시던 선배님(어느 분인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께서 추락하시는 경우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나의 저질 빌레이로 선배님께서 올라오시고, 몇 분 더 올라오셨다.
테라스가 조금 북적북적 해질 때 쯤 제 앞의 등반자들이 하나 둘 씩 올라가기 시작했고, 나 역시 올라갈 순서가 되었다.
아직도 생생한 1피치에서 바라보는 다음 구간은 볼트를 따지 않고 갈 수 있기는 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퀵도르의 도움을 받아서 이래저래 올라갔다.
정상(?)에서 너무 긴장해서 확보를 한참을 하고 있자 재만 선배님께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셨고, 무서워서 그렇다고 대답하자 처음에는 원래 다 그런 거라고 다독여 주셨다.
재만 선배님 감사드립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편한 정상 테라스에서 엉거주춤하고 앉아 있는 절 보고 선배님께서 더 불안해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끔찍했던 하강
하강하는 순간은 끔찍했다.
밑을 보는 순간 다리가 풀려 중간에 매달려서 다리를 달달달달 하고 떨었다.
한 번 벽에 붙고 나니 더 긴장이 되서 온 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오른손을 놓칠까봐 왼손으로 오른손을 꽉 쥐었다.
혼자서 “이럼 안돼”, “내려가자”, “안 무섭다”, “무섭지 않다”를 혼잣말로 연신 읊조리며 내려왔다.
다행히 1피치 구간즈음에 다다러서야 긴장이 풀렸고, 1피치를 지나면서부터 급한 마음에 자일은 거의 놓다시피 하면서 내려왔더니 착지를 하면서 뒤로 살짝 넘어졌다.
넘어진 상태에서 다 내려왔다라는 마음보다 ‘이제 살았다.’ 아니 ‘이제 떨어져 죽지 않는다’ 라는 생각이 들어 긴장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오른손에 쥐가 났고, 팔꿈치로 땅을 밀고 일어났다.
일어서서 맥없이 “하강...” 을 외치고 그 주위를 몽유병 환자처럼 돌아다녔다.
(아마 바보처럼 입을 헤~ 벌리고?)
하강 후 짐을 정리하고 하산을 했다.
내려와서 백숙과 닭도리탕으로 뒤풀이를 했고, 맥주가 너무 맛있었다.
2012.06.30 (토) 암장청소
늦게 가서 죄송했지만, 그만큼 더 열심히 하려 했습니다.
2012.07.07 (토) ~ (일) 간현암
엘리다 완등 & “야! 조근진! 너 빌레이 똑바로 안 볼 거야! 뭐하는 거야!”
실내의 스포츠 클라이밍과 비슷하다는 얘기를 듣고 굉장히 기대하고 있던 간현암 이었다.
주중에 토익 학원을 다니느라 정신이 없어 주말에는 친구를 만날까 고민하기도 했고,
학원에서 내주는 숙제가 은근히 양이 많아서 숙제를 해야 했고,
1박 2일을 보낼 침낭이 없다는 핑계로 야영을 할지 말지 고민했다.
하지만 야영을 언제 또 해보겠냐 라는 생각으로 동규형에서 매트리스를 빌리기로 하고 야영을 해보기로 했다.
역시 야영하기를 참 잘한 것 같아요.
첫 날
아주 이상적인 어프로치
어프로치라고 할 것도 없이 리어카에 짐을 싣고 야영장까지 갔다.
이틀 동안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물이 굉장히 불어나 있었고,
(사실 저는 처음이라서 물이 많은지 적은지 알 수 없었지만, 선배님들께서 그렇게 얘기 하시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거죠. 헤헤.)
물놀이를 하기에는 약간 흙탕물이었다. (그래도 물놀이를 하는 사람은 참 많았지만)
오~오~오~오~오~오~오!!!!! 야영장이다!
샤워장을 발견하고 기뻐서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종신 선배님의 닫혀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시무룩해졌다.
선생님께서 시간이 애매하니 점심을 먹고 등반을 하러 가자고 하셨다.
아침에 늦지 않게 정신없이 나오느라 점심을 못 챙겼다.
다행히 동규형과 동원형께서 점심을 조금 더 싸오셔서 나누어 주셨다.
동규형 동원형 감사합니다.
점심을 먹고 텐트를 치고 리어카를 끌며 올 때 봤던 등반장소로 향했다.
엘리다를 완등한 등반!
등반할 수 있는 루트가 참 많았다.
간현암을 오르기 위해 준비해온 초크백을 허리에 차며 초크의 힘을 빌려서 잘 오를 수 있기를 기대했다.
왼쪽부터 차근차근 하나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 동안 여러 선배님들의 후기에서 첫 1피치가 어렵다는 문장을 그 때 온 몸으로 실감했다.
몸이 덜 풀린 것보다 ‘오른다’는 긴장감, 특히 나는 높이 대한 두려움으로 굉장히 더디게 올라갔다.
그래도 무사히 오르고 하강했다.
루트를 하나하나 완료해나가면서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현재의 내 실력으로 올라갈 수 있는 모든 루트를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루트의 곳곳이 젖어있었다. 초크를 바르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손이 미끄러져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힘이 아니라 밸런스다’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올라갔다.
몇 개의 루트를 완료하고 약간 달아올랐을 무렵 여러 선배님들께서 엘리다에 도전하고 계셨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기... 내가. 오를 수 있을까?’
잠시 쉬면서 엘리다를 오르는 선배님들의 모습을 멀리서 구경하고 있던 찰나,
멀리서 종신 선배님께서 부르셨다.
(종신 선배님, 이리로 오라는 손짓을 하시면서) “근진~! 여기 한 번 해봐야지! 여기 재밌어!”
(근진, ‘올 것이 왔다’라는 표정, 마음속으로는 담담하게 ‘좋아. 저기 올라가 보자.’ 라는 생각으로, 팔을 풀어주기 위해 열심히 흔들면서) “네!”
엘리다의 난이도를 여쭤보니 5.10b 라고 하셨다. (아마 능무 선배님께 여쭤본 듯 해요.)
잠깐 장소와 시간을 옮겨 실내암장으로
그 동안 실내암장에서 5.10a 까지만 완료했었고, 5.10b 는 아직 내 수준이 아니었다.
4월부터 주말반으로 다시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빌빌댔지만, 한 달 동안 기본에 충실해서 감을 찾았고 5월 중순 즈음부터는 다시 4번 벽과 7번 벽으로 돌아와 있었다(참고로 작년 이 맘 때쯤 7번 벽에서 연습을 하다가 학교를 다닌다고 못나왔었습니다).
그런데 5월부터 아직까지 5.10a를 하고 있다.
5.10a를 완등하기는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고 대부분의 경우 뒷심이 부족하여 마지막 몇 개의 홀드를 밸런스를 완전히 무너뜨린 채 완등했다. 심지어 어떤 날은 수차례 떨어지기도 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5.10b 로 넘어가지 않은 채 5.10a 만 계속했다.
그렇게 한 달이 넘게 5.10a만 수 십 차례 도전했지만 실력은 늘지 않은 채 정체되어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6월의 주말 어느 날,
마찬가지로 5.10a를 도전하고 있었고 역시 뒷심부족으로 매트리스에 떨어졌다.
누워서 벽을 보면서 뭐가 문제인지 고민하고 있던 순간,
(주말 반에서 운동하고 있는 친구) “왜 그래, 지난번에는 그 코스 잘 하더만, 오늘은 왜 자꾸 떨어져.”
(근진, 의아해하며 약간 아쉬운 듯) “그러게 말이다~ 요새 왜 이러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정체기가 왔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조급한 마음은 갖지 않고, 언젠가 되겠지 하는 마음에 암장에서는 지구력을 기르는 방법으로 바꿔서 정작 7번벽은 잘 붙지 않았다. 멀티를 잘하려면 지구력이 필요할테니...
다시 간현암
어느새 팔자 매듭을 나의 카라비너에 연결하고 종신 선배님은 빌레이를 볼 준비를 하고 계신다.
첫 부분은 생각보다 쉬웠다. 그래도 그 부분에서 힘을 빼면 안된다는 생각에 신중하게 올라갔다.
엘리다의 크럭스인 오버행을 마주하는 순간.
‘음~ 이 정도 난이도를 올라가면 굉장히 기쁘겠는데.’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걸 오르면 다시 실력이 쭈욱쭈욱 늘어날 거야!’ 라는 생각과 함께.
크럭스 부분은 마치 뚝섬 외벽에서 느꼈던 것처럼 홀드 사이의 간격이 꽤 멀었다.
이래저래 시도했지만 당연히 실패.
플래싱을 내심 바라긴 했지만 감을 잡고 내려왔다.
다른 선배님들께서 올라가시다가 중간에 쉬겠다고 외치면
밑에 계신 선배님들은 “쉬는게 어딨어~ 그냥 붙어서 올라가~”라고 연신 외치셨다.
밑에서는 그 말을 들을 때 마다 재밌어서 웃었다.
하지만 막상 내가 벽에 붙어서 오르다가 쉬겠다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으니,
그래도 웃겼다. (음?)
당황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재밌어서 조금 웃었다.
그렇다.
내가 이 때까지만 해도 웃으며 싸돌아다니고 벽도 타고 그랬다.
멀티를 가야~ ‘아~ 여긴 어디? 나는 누구?’ 한다.
2피치를 가야~ ‘아. 이거 괜히 시작한 건가.’ 라는 생각도 하고.
첫 번째 시도를 실패하고 내려와서 능무 선배님과 병건 선배님께서 오르는 것을 차분히 봤다.
크럭스 부분 손과 발 포인트 체크.
미준 선배님 말대로 이미지 트레이닝.
좋아. 이번에는 할 수 있다.
다시 올라갔다.
플래싱이 안되면 플플래싱이라도 하자. (아. 물론 플플래싱은 없는 단어입니다. 흐흐.)
왼손을 잘 정리해야 하고,
힐-훅은 발끝에 다음 홀드를 잡을 때 까지 끝까지 긴장을 늦추기 말고 힘을 줘야 하고,
왼손 마지막 홀드는 좋으니 잠시 쉬었다가 오른손 초크칠 하고,
마지막 홀드를 똬~악! 하고 잡는 순간!
기뻤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약간 업 되서 손발이 같이 움직이면서 오르니 밑에서 선배님들이 차분하게 오르라고 하셨다.
크럭스를 통과한 다음 엘리다의 홀드는 좋은 편이었다.
그렇게 엘리다를 완등하고 하강하는 순간 동원형이 사진을 찍어주셨다.
페이스북에 올리니 주위에서 다들 신기해하고 재밌어한다.
동원형 사진 정말 잘 찍어주셨더라구요.
감사합니다~!
그 후 엘리다의 크럭스를 완벽하게 공략하겠다는 마음으로 동원형에게 노텐션으로 부탁드렸다. 크럭스만 올라가겠다고.
이곳은 암장이다. 떨어져도 된다는 생각으로 올랐다.
마지막 부분에서 손이 미끄러져서 놓칠 뻔 했지만 여기서 떨어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오른손으로 같이 잡았다가 손과 발을 다시 정리하고 크럭스 부분을 통과했다.
크럭스 부분 다음은 멀티를 위해 힘을 아꼈다.
엘리다를 할 때 까지만 해도 참 기뻤다. 하하.
깍쟁이에 도전하려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기다리다가 멀티 등반조로 편성되어 저~쪽으로 가게 되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내일 멀티를 하면 힘들테니, 오늘 해둬야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려와서는 다음 날 멀티에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병건 선배님께 죄송했던 멀티 등반
시작하기 전부터 긴장하기 시작했다.
높이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멀티의 시작은 곧 시스템의 시작이었기에.
내 차례를 미리미리 준비하고, 자일을 연결하고, 올라가는 자일 풀어주고 등등 여전히 정신이 없었다.
병건 선배님과 다은 선배님의 도움으로 차분히 하나씩 해나간 다음 등반시작.
다행히 1피치는 해본 구간이었기 때문에 무난하게 올라갔다.
하지만 역시 1피치까지였다.
이제부터 테라스에서 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긴장을 늦출 세도 없이 미준 선배님께서 빌레이 볼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성천 선배님께 빌린 슈퍼베이직을 쌍볼트에 걸고 자일을 걸었다.
밑에서 출발 신호를 들었고, 병건 선배님을 향해 출발이라고 외쳤다.
긴장하자.
병건 선배님의 빌레이를 보기 시작한지 채 몇 십초 지나지 않아,
위에서 출발 소리가 들렸고, 미준 선배님께서 출발하셨다.
혼자 남았다.
내가 해야 하는 것은 세 가지.
미준 선배님의 올라가는 자일을 풀어드리고,
병건 선배님 등반 자일을 당기고,
당긴 자일을 확보줄에 사리고.
정신이 없었다.
천진반이 되고 싶었다.
아니, 두 개도 필요 없다. 손이 하나만 더 있었으면.
가장 중요한 병건 선배님 등반 자일을 당기면서 나머지 두 가지를 하려 했지만
결국 터져버렸다.
(1피치 테라스에서 병건 선배님 빌레이를 보던 도중)
(병건 선배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내가 있는 쪽을 올려다보시며) “야! 조근진! 너 빌레이 똑바로 안 볼 거야! 뭐하는 거야! 줄 안 당겨!”
(근진, 슈퍼초사이어인이 아니라 슈퍼초긴장인 상태로) “죄송합니다! 당기겠습니다!”
자일을 당겼다. 그런데 너무 자일이 너무 많이 올라온다.
아...
병건 선배님 얼마나 놀라셨을까.
끝이 아니었다.
순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준 선배님 등반 자일이 내 확보줄을 순식간에 당겨갔다.
긴장감 레벨 업.
잘 사려져 있어서 더 이상 풀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미준선배님 등반 자일이 내 확보줄을 휘감은 상태에서 선배님이 올라가시니 자일이 딸려 올라간 것이다.
다행히 중심을 잃을 정도는 아니었다.
만약 위에서 자일 업 이었다면 다행이었지만 하지만 나는 완료를 들은 기억이 없다.
내가 자일 업을 외치지도 않았다.
고로 미준 선배님은 등반중이시다. 선배님께서 올라가시면 자일 때문에 밸런스를 잃으실 것이다.
재빨리 생각했다.
오른손으로 병건 선배님의 등반 자일의 텐션을 확인했다. 아직 텐션이 있다. 발을 올리지 않으셨다.
자일을 바위에 널브러뜨리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래 사람을 확인했다.
없어. 좋아.
오른손은 병건 선배님 등반 자일을 잡은 상태에서 왼손으로 미준 선배님 등반 자일을 마구 집어서 왼쪽으로 던졌다.
다행히 미준 선배님의 등반 자일은 풀렸고, 병건 선배님 등반 자일은 아직 텐션이 있었다.
내가 슈퍼베이직으로 빌레이를 보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병건 선배님 등반 완료.
뭐 했냐고 혼났다.
하지만 올라와서 제가 긴장해있는 걸 보시곤 이렇게 저렇게 하는 거라고 따뜻하게 말해주셨다.
병건 선배님 감사합니다.
자일을 정리하고 2피치를 시작했다.
1피치에서 확보를 풀고, “출발!” 하고 외치는 그 순간부터,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발을 두어 번 뗀 다음.
그 다음부터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서 엉키기 시작했다.
머리가 엉킨 만큼 손발은 동시에 나가려고 했고, 발을 디딜 곳을 찾기 위해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얼어버렸다.
쉼 호흡을 한 번하고 다시 손을 뻗어 홀드를 찾고 잡지만 홀드는 역시 좋지 않다.
발도 불안하다. 내 발을 내가 믿지 못한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위에서 빌레이를 봐주시고 계시는 선배님. 그리고 떨어져도 죽진 않을거야 라는 생각.
동원형이 힘들어하던 크럭스에 도착했다.
올라가다 미끄러졌다.
그대로 추락 약 2~3m 를 떨어지면서 뒤집어졌다. 뒤집어지면서 추하게 소리 질렀다. 막 질렀다.
무서울 시간도 없었다. 그냥 멍했다.
왼손가락은 까지고, 오른손가락은 살짝 접질렸다.
상처가 깊었는지 피가 많이 났다.
텐션을 받아서 쉬면서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려가고 싶었다.
어떻게든 2피치 테라스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높이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확보를 한 다음에야 아래를 겨우 볼 수 있었다.
저 아래 누군가가 보인다. 아. 멀다.
2피치 테라스에서 대기.
동원형이 오버행 크럭스 부분에서 힘들하고 계신다.
손도 아프고 겁이 났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에서 종신 선배님께서 시간이 오래 걸리니 나는 오른쪽 루트를 통해서 올라오라고 하셨다!
올라가면서 고도감 때문에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오버행 크럭스 보다는 훨씬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정상에서 선생님과 선배님들 모습이 보이자 신이 나서(?) 퀵도르와 볼트를 마구마구 잡고 올라갔다.
(종신 선배님, 눈을 살짝 흘기며) “조근진이 열심히 하는 줄 알았는데, 퀵도르랑 이거저거 막 잡고 올라오는 거 내가 다 봤어~”
(근진, 왼쪽 얼굴은 멋쩍은 표정, 오른쪽 얼굴은 태연한 표정으로) “아하하하...하.....하.........”
경치를 조금 즐기다 하강
이미 정신은 만신창이가 되었기 때문에 하강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적었다.
하강을 하고 내려와 선배님들을 기다렸다가 자일을 사리고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터벅터벅.
영화가 상영되는 야영장
늦게 왔는지 수수부꾸미와 냉열무국수는 후기를 통해서 알았다. 재만선배님의 퀘사디아와 은순 선배님의 수제비가 너무 맛있었다.
퀘사디아를 재만 선배님께서 만드셨다는 걸 모른 상태에서 먹고, ‘아~ 여기 피자 배달도 되는 구나~ 다음에 페퍼로니 토핑으로 시켜먹자고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이 반찬 저 반찬에 저녁을 흡수하고 막걸리도 몇 잔 마셨다.
맥주는 꽤 마셨다.
경필 선배님께서 정말 많은 것들을 준비해주셔서 영화를 봤다.
애니메이션과 세레또레 앞 부분은 놓쳤지만,
터칭 더 보이드는 열심히 봤다.
영화가 사람을 힘들게 한다.
둘째 날
선생님의 일어나란 소리에 한 방에 기상
한 번이라도 더 해보자라는 생각에 둘째 날에도 멀티 등반을 하겠다고 해서 선생님을 따라나섰다.
선생님은 분명 새벽 1시 55분에 누우셨는데, 6시 28분에 일어나셔서 씻으신 다음 48분에 장비를 챙겨서
“자~ 다들 준비했죠~?”
“갑시다~”
“뒤에 다 준비해서 따라오세요~”
(시간은 약 3~4분의 오차가 있습니다.)
선생님, 젭알........ ㅠ_ㅜ
아침을 안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미친 듯이 빠르게 텐트로 튀어 들어가서(아마 제 교육생활 중 가장 빠른 움직임이었을 듯해요.) 가방을 뒤집어엎어 스니커즈를 하나 챙긴 다음 다시 튀어나와 그 와중에 새벽에 습기 차면 안 되니까 텐트 지퍼 닫는 것 까지 잊지 않고, 꼼꼼히 닫은 다음 선생님을 따라 나서려했지만, !!!
다른 선배님들이 이제 막 준비를 끝내시고 천천히 걸어가고 계셨다.
약 235.8 kcal 정도를 소모한 느낌이 들었다.
275kcal짜리 스니커즈를 먹으면서 걸어갔다. (가서 먹었나? 흐음, 이건 기억이 잘...)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둘 째날 멀티 등반 시작
같은 루트를 올라가게 되던 그렇지 않던 걱정되기 시작했다.
‘오늘 그냥 아래서 한다고 할까.’ 라는 고민을 하면서 3번째 등반자가 되어 어느새 자일을 피셔맨 매듭법으로 연결하고 있었다.
그래. 일단 가 보자.
아침부터 몸이 안 풀린 상태에서 올라가려니 힘들었다. 손가락도 말썽이었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은 아침부터 깍쟁이와 허니문에 줄을 거셨다. 신기했다.
1피치부터 어려운 구간이었다. 게다가 물이 마르지 않아서 미끄럽기 까지 했다.
연정 누나는 여길 어떻게 올라간 걸까.
계속 빌빌대고 있으니 밑에서 민중 선배님께서 왼쪽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어찌어찌 1피치 완료.
올라가서 민중 선배님 빌레이를 보려고 준비를 하는데, 테라스에서 올라오는 사람의 위치를 확인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크럭스 부분에서 미끄러지실 수도 있으니 긴장을 하고 봤다. 전 날처럼 보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선배님께서 올라오시다가 중간에 추락하셨다. 아마 크럭스 부분이셨으리라.
자일이 살짝 딸려 갔다. 다행히 잘 잡았다.
민중 선배님께서 줄을 풀어달라고 하셔서 줄을 풀어드렸다.
이 때도 전 날 성천 선배님께 빌린 슈퍼베이직을 갖고 있었지만, 용한 선배님께서 크럭스에서 줄을 풀어줘야 할지도 모르니 슈퍼베이직을 사용하지 말고 하강기로 빌레이를 보라고 하셔서 줄을 풀어드릴 수 있었다.
역시 선배님!
2피치는 어떻게 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분명히 전 날과는 다른 길로 갔던 것 같은데 어떤 길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날은 2피치에서 혼났다.
(역시 2피치에서 빌레이를 보면서 자일을 차~아~암 예쁘게 사리는 걸 보시고)
(용한 선배님, 표정변화 없이) “너 지금 뭐하는 거니. 자일 사리는 거 안 배웠어? 그게 뭐야.”
자일을 사리고 나서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정신이 없었는지 3피치 역시 기억이 안 난다.
다만 정상에서 본 간현암의 경치는 너무 좋았다.
조금 나아진 하강
오. 하강 순간이 한결 여유로워 졌다!
이제 하강할 때 크게 겁먹지 않고 내려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른한 야영장
야영장으로 돌아왔다.
늦은 점심을 먹고 그저 늘어져 있었다.
둘째 날이 피곤했던 것은 상대적으로 분량이 줄어든 둘째 날에 대한 기록이 보여주는 것 같다.
선배님 몇 분께서 일찍 집에 가신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수영실력 검증을 위한 물놀이
너무 피곤해서 자고 싶었지만, 물놀이를 안했다가는 후회할까봐 뒤늦게 합류했다.
뭘 하다 늦었는지 선생님과 다른 선배님들은 이미 계곡으로 가셨다.
다행히 흙탕물은 전 날보다 맑게 개었다.
물놀이를 하기에 충분했다.
물은 참 시원했다.
경필 선배님께서 갑자기 뛰어드실 때는 정말 놀랐다.
어휴~ 그 바닥이 돌이 아니었기에 다행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돌아오는 길에는 선생님께서 리어카를 끄셨다.
종훈 선배님과 뒤에서 보조를 맞췄다.
언제나 느끼지만 선생님은 보폭도 크고 걸음걸이도 빠르셔요.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에서 발이 꼬이지 않기 위해서는 선생님의 보폭에 맞춰서 움직여야 했다.
오로지 선생님의 발만 보면서 박자를 맞춰서 짐을 옮겼다.
암장으로 돌아와서 아구찜을 먹으러 갔고,
야영비를 잘못 걷었다는 걸 알고 또 멘붕이 왔다
결국
으아어어아어어아라라어ㅏ어어어엉ㅇㅇ엉엉ㅇㄹㅇㅇㄹ;ㅣ머;ㄹ디머
의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2012.07.14. (토) 도봉산 선인봉
비오는 날 등반 & “낙비!!!!! 낙비!!!!! 낙비!!!!!”
암장은 집에서 45분 ~ 50분 정도 걸린다. 8시 출발이니 6시 50분에 나가면 조금 일찍 도착한다. 그런데 토요일에 7시 16분에 일어났다. 이빨 닦다가 너무 세게 닦아서 잇몸에서 피가 날 뻔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도착했다.
그런데 가볍다?
아....... 배낭.................
몸만 내려왔다.
배낭을 다시 갖고 내려와 택시를 타고 암장으로 갔다.
이미 늦었다.
다른 분들은 출발하셨고 성천선배님만 조금 늦으신다고 하신다.
다행히 성천 선배님의 차를 타고 갈 수 있었다.
도봉산 도착!
어프로치, 체력이 좀 붙었나?
가는 길에 동규형에게 전화해서 자일 하나만 들고 기다려 달라고 했지만, 그냥 올라가셨다.
자일을 받기 위해 서둘러야 했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어프로치라고 하셨으니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올라가면 아무리 늦어도 중반이후에는 자일을 업고 오르는 누군가를 만나겠지 라는 생각에 보폭과 속도를 늘렸다.
다행히 모든 분들이 중간에 쉬고 계셨고, 그 전에 혜미 선배님과 미준 선배님을 만났다. 혜미 선배님의 자일을 받고 다시 올라갔다. 중간에서 모든 분들께 인사드렸다.
습기는 많았지만 날이 덥지 않아서 그랬는지 어프로치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등반 ‘시작!’
정작 나는 아침에 육성으로 듣지 못해서 아쉬웠다.
선생님의 “내가 산에 가면 비가 안와!”
흐흐.
이번주 토요일에 들을 수 있으려나.
올라가니 정말 비가 안 왔다. 나중에는 잠깐 쏟아졌지만.
선생님께서 줄을 걸으셨고, 침니 구간에서 윗부분에 벌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하셨다.
겁나게도 그 루트를 첫 번째로 등반했다.
일단 침니 구간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쉴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캠을 회수하면서 내 하네스 양쪽에 무언가가 주렁주렁 매달리면서 잘그락 거리는 소리가 너무 좋았다.
어렸을 때 본 책에서 벌들은 다른 벌들에게 신호를 보낼 때 8자를 그린다고 했다. 벌 한 마리가 날 보더니 8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건 등반 중 안정된 자세에서 느끼는 새로운 종류의 긴장감이었다.
(근진, 달래듯이) “얘들아, 착하지~ 나 쏘면 안돼~ 에이~ 늬들 왜 막 5 마리씩이나 나오고 그러니~ 그러지 마라~ 응?”
머리를 들이밀었다. 벌들이 살짝 뒤로 물러선다.
이 때다 싶어서 올라갔다.
그러다 5~6마리가 또 나온다.
(근진, 살려달란 듯이) “들어가, 들어가. 나도 빨리 올라갈게. 응? 우리 이제 곧 있으면 런던 올림픽도 열리는데 평화적으로 하자~”
어쩔 수 없이 그냥 올라갔다.
선생님이 밑에서 말해주신 대로 언더로 크랙을 뜯으면서 올라가다가 종료지점 직전에 잠깐 레이벡같은 구간이 나왔다.
완등.
잡을 곳이 많아서 할 만한 곳이었다.
멀티가 문제죠. 멀티가..........
두 번째로 등반한 코스는 볼트따기. 볼트따기는 어려웠다. 볼트만 잘 따면 될 줄 알았는데, 볼트를 딴 다음에 홀드를 찾기 어려운 구간이 나왔다. 밑에서 여러 선배님들께서 볼트를 딸 때는 반동을 잘 이용하라고 하셨는데 반동을 이용할 수 없어서 힘으로 올라갔다.
볼트따기가 보다 그 사이사이 이어지는 구간이 홀드를 잡을 곳이 없어서 힘들었다.
간현암에서 다친 손이 아직 낫지 않은 상태였고, 오른손을 밑을 수 없는 상태여서 중간에 얕은 홀드를 잡고 빌빌댔다.
어쩔 수 없이 떨어질 걸 각오하고 살짝 도약을 해서 왼손을 뻗었고,
다행히 왼손 검지에 그 다음 퀵도르가 걸렸다.
살짝 아찔한 순간이었다.
간현암에서 다친 손이 낫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빌빌대는 등반이 되었습니다. 는 변명이고, 실력이 점점 퇴보해가는 총무입니다. 으헝헝. ㅜ_ㅠ
멀티 등반 시작
멀티를 위해서 선생님께서 침니 구간을 통과해서 줄을 걸러 올라가셨다. 가 벌에 쏘이셨다!!!!
선생님 벌에 쏘이신 곳은 괜찮으신가요?
내 차례를 기다렸고, 선생님은 이미 정상에 올라가 계셨다.
1피치는 슬랩으로 출발.
밑에서 봤을 때는 군데군데 파인 곳이 많아서 가기 쉬울 것 같았지만 역시나 정작 벽에 붙고 나니 손도 발도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았다. 자일의 텐션으로 올라갔다. 미끄러지기도 많이 미끄러졌다.
2피치는 말도 안되는 구간이었다.
멀티를 괜히 왔다 싶었다.
시작하자마자 홀드를 찾지 못해 갈 곳을 잃었고, 방황했다.
위에서 성천 선배님께서 자일의 텐션을 이용해서 오른쪽 벽으로 넘어와서 올라오라고 하셨고, 그렇게 올라갔다.
2피치 테라스에서 동규형 빌레이를 보면서 형이 올라오는 걸 봤다.
너무 잘 올라오셨다. 부러웠다. 나보다 세 배정도 빨리 올라오신 것 같다.
2피치 테라스에서 성천 선배님과 순서를 바꿔서 내가 먼저 올라갔다.
정상이 멀지 않았기에 힘을 내서 올라가려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구간이었고 특기인 벽에 기대 빌빌대기를 시전했다.
위에서인지 아래에서인지 선배님께서 퀵도르 있으면 볼트에 퀵 걸고 볼트를 따라고 하셨다.
퀵을 걸고 볼트를 딴 다음, 다음 볼트에서도 어찌 될지 모르니 퀵을 챙기려 볼트에서 퀵을 뺐다.그리고 하네스에 걸었다.
그리고 다시 올라갔다.
그 순간!
(성천 선배님, 굉장히 큰 소리로) “낙비!!!!! 낙비!!!!! 낙비!!!!!”
퀵도르가 하네스에 제대로 안 걸린 상태로 손을 놔버린 것이다.
낙비란 단어를 처음 들어봤고, 내가 퀵을 떨어뜨렸다는 감각도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무슨 상황인지 느꼈다.
고개를 돌릴 수 있는 밸런스가 아니었고 고개를 돌리지 못한 채 퀵도르가 바위에 튕기는 소리만 들렸다.
“탁~ 타닥~ 탁. 탓! ..ㅌㅌ..ㅌ....”
F=mgh
2피치 테라스는 바닥뿐만 아니라 1피치 테라스에서부터도 충분히 높았다.
끔찍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겁을 먹었다. 한심하다는 생각과 함께 밑에 계신 분들이 걱정 되서 손발이 떨렸다.
‘아무 일 없겠지, 아무 일 없겠지, 아무 일 없겠지.’ 라는 생각만 하면서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가서 확보를 한 다음에도 손발이 떨렸다.
내려와서 선생님께 혼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선생님뿐만 아니라 선배님들도 혼내지 않으셨다.
앞으로 조심하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정상 종료 직전
왼쪽을 고도감에 보고 겁에 질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위에 계신 선배님들께 여긴 어떻게 올라가나요 라고 물어보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종훈 선배님과 능무 선배님 동시에, ‘뭐하니? 응?’ 이란 표정으로) “야, 비온다. 그냥 빨리 올라와.”
정상에서 확보를 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쏟아졌다.
경치 따위를 구경할 시간은 없었다.
까베스통 매듭의 실전편을 배우는 하강
하강하기 전부터 비가 왔다.
능무 선배님과 내 뒤이어 올라오신 다른 루트로 올라오신 장환 선배님께서 바로 하강을 하라고 하셨고,
“(능무 선배님, 쌍볼트에서 어떤 작업을 하시면서) 근진이, 한 줄 하강 할 줄 알지?”
“(근진, 깜짝 놀라) 네? 아니요? 두 줄 하강이란 다른가요?”
“(능무 선배님, 여전히 매듭을 지으시면서) 방법은 똑같아.”
“(장환 선배님, 능무 선배님의 말을 바로 이어받아서) 그런데 줄이 더 잘빠지지.”
“(근진, 불안함 잔뜩 드러내면서 옆 사람 귀 따가울 정도로) 많이 빠지나요? 주욱 내려가나요? 두 줄보다 ‘훨씬’ 어렵나요?”
“(장환 선배님, 평상시 어조로 차분하게) 아, 아니~ 그냥 잘 잡으면 되~”
하강을 하려면 오른쪽에 계신 장환 선배님과 나의 위치를 바꿔야 했다. 그런데 내가 하강을 시작해야 하는 쌍볼트는 내 손이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나의 확보를 옮겨야했다.
이 때 까베스통 매듭의 실전편!을 보게 된다.
비가 오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신속하고 안전하게 확보를 옮기는 작업.
능무 선배님께서는 하강하는 자일을 퀵도르에 까베스통 매듭을 묶고(이 당시에는 이미 묶여진 상태)
까베스통 매듭에서 멀지 않은 부분을 나의 카라비너에 다시 까베스통 매듭으로 묶으셨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자일을 잡고, 왼손으로 확보기를 해제한 다음 장환 선배님을 넘어서 자리를 바꿨다.
순식간에 자리를 바꿀 수 있었고 바로 이어서 하강 준비를 했다.
비가 꽤 오는 중이라 걱정되기 시작했지만, 서둘러 내려가야 했으므로 하강을 외치고 내려갔다.
역시 하강을 시작할 때는 빌빌댔다. 그래도 여차저차 하강을 했다.
거친 호흡으로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내려갔고, 비가와도 생각보다 크게 다른 건 없는 것 같았다.
간현암에서 이틀 멀티 등반을 한 것이 하강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없앤 것 같다.
그래도 아직 무섭긴 하다.
내려와서는 동원형 퀵도르를 개시한 날 막비너로 만들어버린 것도 죄송했지만, 밑에 계신 분들을 위험에 빠뜨린 게 한 것이 너무 죄송해서 조용히 있었다.
동원형에게 퀵도르는 새걸로 꼭 사드려야 겠다.
동원형 후기를 보면 자일에서 물이 주륵주륵 흘렀다는데, 왜 저는 경험하지 못했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하강할 때는 그런 데 신경 쓸 정신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무섭거든요...
모든 분들이 하강을 했고 자일을 사리고 짐 정리를 한 다음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하산했다.
하산하는 길은 힘을 많이 안 빼서 그런지 체력적으로는 수월했다.
하지만 돌이 떨어지는 소리에도 놀라 그쪽을 쳐다보며 2피치에서 들리던 퀵드로 떨어지는 소리를 기억해 냈다.
시무룩해졌다.
암장으로 돌아와 보쌈을 먹고 약속이 있어 먼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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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쓰다보니 사고를 참 많이도 쳤습니다.
앞으로 조금 더 신중하게 등반하겠습니다.
첫댓글 생생한 후기ㅋ 그래도 난 멀티 해보지도 못했는데 잘했어! ㅎ
도봉산 멀티는 쉽지 않더라구요.ㅠ
돌고래 IQ.. 235.8 kcal.....
ㅋㅋㅋㅋ 근진이, 너 요렇게 재미있는 앤줄 몰랐네~ 출근길 쟈철에서 푹소터트린 일인! (부끄럽게..;;)
글고 하강이 글케 무섭나??
다은씨 하강은 아직도 나도 무서운데.ㅋㅋ 특히 인수봉 하강코스는 쥐약 - -;;
재밌으셨다니 기뻐요! 호호.
이제 좀 나아졌지만, 수락산 때는 멀티 끝내고 하강할 때 엄청 무서웠었어요.ㅠ_ㅜ
아... 그렇군요..;; 전 하강이 젤 신나서..ㅋㅋ 전 올라갈 때가 더 무서워요...
근진아, 등반중 누구나 실수는 할수는 있지만, 그 실수가 나 자신이나 그누구에게는 큰 위험이 될수가 있다. 한번 실수했으니 다신는 안 할거야.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는 밑에 대기하는 사람에게 다 들릴수 있게 제일 큰 소리로 외쳐줘야 함. 그리고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데 "낙비"라고 크게 여러번 외치는데도 밑에 대기 하시는 분들은 너무 신경 안 쓰는거 같아서(제가 볼때) 좀 불안 했읍니다.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챙겨야 하겠죠....
참 근데 하강할때 사진 보니까 시선(고개)가 왼쪽으로 가던데, 그런 자세가 불편하지 않아??
네, 낙비를 외치지 못한 것도 죄송했어요.
앞으로는 조심해야죠!
하강할 때는 오른손으로 자일을 풀어주니까 왼쪽을 보게되는 거 같아요.
근진이 정말 많은 경험했네.... 즐감
네, 산에 다니면서 정말 많은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흐흐.
오 후기 너무 재밌어요~~아직 근진씨랑 많이 등반 못했는데 생생해서 바로 옆에서 한 것처럼 느껴져요. ㅋㅋㅋ Are you crazy표정 ㅋㅋㅋ
하강 저도 엄청 싫었는데 장갑 좋은것 구하니까 이제는 총총총 내려와요~장비의 힘이란....ㅋㅋ
재밌는 후기는 선배님만 하려구요~
아, 역시 장비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ㅎㅎ
도봉산 선인봉
저는 왜 선인사로 알고 있었을까요.
허허.
고쳤어요!
그나저나 선생님 뵌지 너무 오래 된거 같아요.
쇼생크가 쉽지 않은데 벌과 대화하는 여유 대단혀!
그 루트 이름이 쇼생크이군요.
아! 3피치에서 끌어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토익 공부하랴 산에 오르랴.. 총무하랴..
바쁜데 언제..이런 후기까지 올렸데.. 대단해!
이제 2주 밖에 안남았어!! 졸업까지 무사히 안전 등반하자구!
네!
날씨도 다행히 날씨도 우리 기수를 도와주고 있어요.
안전등반!
길어서 보다가 다 도망가겠다. 꼭 서현이 일기숙제 하듯이 올렸네... 어쨋든 재미는 있네 ㅎㅎ
아하하하.
후기를 한글이나 워드에다 먼저 쓰고 인터넷으로 옮겨느라 항상 써놨었는데,
다듬질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한꺼번에 다듬고 올렸어요.ㅎㅎ
넋나간 근진이가 확실히 보이네 ^^ 밀린일기 끝?!!
네!
밀린 숙제 끝이예요!
(아이고, 후련해라.ㅎㅎ)
샘말대로 읽다가 중간에 빠져요
나중에 다시볼께요
암튼 후기볼때마다 자연암벽하고싶은생각이
절로생기네요
내년에 꼭 시작하셔요!
예 그렇게할까여??ㅋ
저도 읽다가 나갑니다....
도봉산 선인사(?)...하긴 사람 이름마저 바꿔놓는 사람이 뭔 할말이 ㅜ.ㅜ
시간 되실 때 하나씩 천천히 읽으시면 될 것 같아요.ㅎㅎ
밀린 후기 쓰느라 완전 고생했어요! 근진씨 첫
후기 재밌게 읽어서 그 다음 후기들을 내심 기다렸어요
ㅋㅋ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