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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긋불긋 6월의 이야기는
길목마다 꽃으로 피고
어둡던 생각도
답답한 심정도
꽃을 보면 위로가 된다.
상쾌한 기분이라는 꽃말을 가진
금계국
네 노란 자태에 세상 모두가
마음 전환되었으면......
<김승호의 시 '금계국>
참 흔한 꽃이다.
차를 몰고 도심을 벗어나면 샛노란 금계국을 안볼래야 안 볼 수가 없다.
대체 누가 심었는지 도로 주변엔 금빛찬란한 꽃이 지천이다.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는 물론 한적한 시골길에도 어김없이 금계국이 산뜻한 얼굴을 내민다.
일주일전에 경기도 화성 제부도 제방밑 도로를 지나가는데 금계국이 마치 마라토너를 응원하는 관중처럼 길쪽을 향해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무려 십여리나 이어져 있었다.
흔하지만 반가운 꽃이다. 외려 금계국의 질긴 생명력을 알고나면 더 사랑스러울 터다.
주말에 청주시 문의면 오지마을인 '벌랏'에 다녀오다가 시원한 감로수 한 모금 얻어마시기 위해 월리사에 들렸다. 강렬한 햇볕에 대지가 달구어져 섭씨 30도를 웃도는 한증막같은 날이었다.
법주사 말사인 월리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조선시대 효종때 중창한 유서깊은 사찰로 해발 462m의 샘봉산 자락에 아늑하게 터를 잡고 있다. 샘봉산은 조선 중기의 무신인 이괄이 난을 일으킨 후 피신했던 산이라는 전설이 있다.
샘봉산 고지대에 터를 잡아 달이 가까워 '월리사'라고 했다는데 막상 가보니 그리 높지도 않고 고색창연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다만 정갈하고 단정한 절이었으며 경내와 주변엔 여름꽃이 매혹적인 자태를 드러냈다.
대웅전 마루에 앉아 구름이 만들어내는 온갖 형상에 눈을 빼앗기면 세상의 기억마저 아득해 지는 듯하다.
벌랏마을 가는 길은 여름에 유난히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다.
도로는 회전구간이 많고 폭이 좁지만 여름엔 녹음이 짙은 울창한 나무터널과 간간히 보이는 대청호수, 오지의 시골풍경이 일품이다.
벌랏마을 산책을 마치고 문의쪽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월리사표지판이 보인다.
일차선 어두운 숲길로 들어서면 사찰 초입에 '이구당 부도(부처의 사리를 안치한 탑)'가 나오고 시야가 확트인 쾌적한 길이 사찰로 인도하는데 길가에 금계국이 환영하듯 이어져 있다.
그리고 멀리 월리사가 보일때쯤 드넓은 평지와 산자락은 금빛물결(Golden Wave)이 휘몰아치는듯 했다.
'골든웨이브'.
무리지어 수없이 피어나는 밝은 오렌지색 때문에 미국 사람들이 금계국을 부르는 이름이다.
월리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금계국 군락을 보면 왜 영어로 금빛물결인지 알 수 있다. 보는 눈은 똑같다.
금계국은 수없이 보았지만 넓은 산자락에 이처럼 무리지어 자태를 뽑내는 광경은 드물다.
북아프리카가 고향인 금계국은 지금이야 개나리, 진달래, 코스모스처럼 길가에 흔히 접하는 꽃이지만 1990년대 이전에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외래꽃이었다.
만약 예전부터 뿌리를 내린 자생꽃이었다면 나훈아의 '고향역' 가사는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이 아니라 '금계국이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이 됐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기찻길 주변에도 '금빛물결'이 수놓고 있기 때문이다.
국화과 식물인 금계국은 뿌리와 씨앗이 동시에 번식하기 때문에 강한 생존력을 갖고 있다.
해가 잘들고 물빠짐이 좋은 곳이면 어디서나 잘 사는데 비옥한 곳보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 더 잘자라는 모진 운명을 타고났다.
흙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 밑바닥부터 온갖 고생을 겪어왔지만 결코 밝은 표정과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처럼 거친 야생과 토양에 최적화된 꽃이지만 소박하면서도 화려함을 잃지 않는 꽃이다.
월리사에서 시원한 감로수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있는데 원주실 보살님이 맨바닥에 주저앉아 잔돌을 고르고 있었다. 그에게 "금계국 군락이 쾌 넓은데 일부러 심었느냐"고 물었다.
보살님은 미소를 지으며 "토양이 맞는지 금계국 군락이 소담스럽게 잘 자란다"고 했다. 월리사는 금계국 뿐만 아니라 알록달록 다채로운 여름꽃들로 사찰을 운치있는 꽃대궐로 만들었다.
절마다 계절을 상징하는 특색있는 꽃이 있다. 가을 고창 선운사는 푸르른 동백나무 사이에 피빛처럼 붉게 물든 꽃무릇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서산 개심사는 늦봄에 고혹적인 외모의 귀부인 같은 주먹만한 왕벚꽃으로 명성이 드높고 세종 영평사는 수천만송이의 흰색 구절초가 탐방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시인 나태주는 '오직 혼자서 피어있는 꽃이 더 의초로울때가 있다(시 혼자서)'고 했지만 꽃은 홀로 있을 때보다 무리지어 있을때 예쁘다. 이제 월리사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엔 '금계국의 명소'가 될 터이다.
여름을 대표하는 꽃이 된 금계국의 꽃말은 '상쾌한 기분'이다.
시인 정호승은 시 '꽃'에서 "마음속에 박힌 말뚝을 뽑아 / 그 자리에 꽃을 심는다 / 꽃이 인간의 꿈이라면 / 인간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며 노래했다.
때이른 더위때문에 산책하는 내내 등줄기엔 땀이 맺혔지만 눈은 호강하고 기분은 상쾌했다. 더 없이 아름다운 오후다.
첫댓글 멋지네요
언제 시간있는 분들 모여 함께 트레킹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