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소속 이주영 국회 예산결산 특별위원장이 최근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으로 돼 있는 정부의 예산안 제출 시점을 120일 전으로 앞당기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회의 예산 심의기간을 현재 60일에서 90일로 늘리고, 정부가 매년 5~6월쯤 각 부처에 예산 지출한도를 통보할 때 국회 예결위에 그보다 10일 앞서 그 내용을 보고하도록 했다.
국회 예산 심의기간은 미국의 경우 240일, 영국과 독일은 120일이다. 반면 우리는 60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국정감사 한다고 몇 주 보내고 대정부질문 한다고 다시 몇 주 보내고 나면 실질적인 예산 심의기간은 고작 20일 정도다. 한 해 300조원에 이르는 나라 살림살이를 겉만 핥고 통과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다.
헌법에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우리나라 국회는 2000년 이후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을 빼고는 법정시한에 맞춰 예산안을 의결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국민의 세금을 걷어 충당하는 예산안 심의는 뒷전으로 미뤄둔 채 정쟁(政爭)에 매달리다 막판에 여야가 자기네 이익을 챙기기 위해 적당히 숫자 몇 개 바꾼 후 손 털고 일어서는 게 관행이 되다시피 했다.
작년에도 세종시 문제와 미디어법, 4대강 사업을 두고 논란만 벌이다 결국 12월 31일 밤 몸싸움 끝에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그 와중에도 국회는 예산을 깎기는커녕 여·야 의원들이 경쟁적으로 지역 민원사업을 밀어넣어 1조원을 더 늘렸다. 세금을 1조원 더 걷도록 여야가 야합(野合)한 것이나 한가지다.
국회의 이런 탈선(脫線)을 막으려면 예결위원회를 상설화해 예산과 결산에 대한 연중 심사가 이뤄지도록 하거나, 예산 집중 심의기간을 설정해 이 기간 중에는 예결위 소속 의원들은 예산 심의 외에 다른 활동을 제한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국회 예산심의를 돕는 국회 예산정책처도 전문가 중심으로 보완해 예산에 무지(無知)한 의원들에게 예산을 잘라낼 칼을 쥐여주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