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에서 의지를 갖고 하는 선택이 아니라, 그저 흐름대로 가다가 주변의 상황으로 인해 길의 모퉁이를 꺾어 도는 순간들이 있다. 왕룽은 꺾이고 꺾이는 대로 나아갔을 뿐인데 그 길이 모두 대지주가 될 수 있게 해준 지름길들이었다. 이처럼 <대지>는 판타지같은 이야기였다. (애몽)
“어쩌다보니”
어쩌다보니 결혼해서 얻은 아내 오란은 야무지고 현명하고 성실했고
어쩌다보니 가뭄에 못 견뎌 피난 간 남방에서는 폭동 속에 금화를 얻어 돌아오게 됐고
어쩌다보니 오란이 숨겨온 보석 덕분에 훨씬 많은 땅을 가질 수 있게 됐고
어쩌다보니 긴 풍년 덕분에 쓰고도 남을 돈을 축적하게 됐고
어쩌다보니 가뭄에 한가해져 찻집에 드나들며 첩까지 들이게 된다. (애몽)
물론 모든 시기와 운이 잘 맞아서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면 이뤄질 수 없다는 것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의 성실함과 땅에 대한 집착은 밑바탕에 줄곧 깔려있다. 하지만 가난했던 왕룽이 피난가지 않은채 가뭄과 기근이 몇 년이나 계속 됐다면 성실했던 그도 도적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성실했던 왕룽이라도 그가 금화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대지주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이 묵묵히 농사짓고 먹고 자고 일하며 평온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어쩌다 보니 갖게 된 금화로 왕룽은 자신의 땅으로 되돌아가 대부호가 되어버린다. 결국 금화는 왕룽에게 운이었을까, 불운이었을까 (여행, 시카)
과연 부의 축적이 왕룽 인생의 목표였을까?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땅이 얼마만큼 인지에 대한 성찰 없이 그저 땅을 사들이기만 했을 뿐이다. 농사만 지을 줄 알았던 왕룽이 대지주를 감당하기에 무리였을까. 대지주가 될 정도라면 결코 평범해서는 될 수 없다. 우리가 그동안 소설이나 영화에서 흔히 보아온 대지주는 황부자의 모습인데, 왕룽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대지주를 따라하는 듯 하지만 뭔가가 어설프다. 게다가 줄곧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펄벅이 왕룽의 속마음을 우리가 읽을 수 있게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서술한 덕분에 왕룽은 우리에게 미워하려해도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여행, 시카, 애몽)
모임에서는 왕룽과 오란의 삶을 주로 이야기하긴 했지만 주변 인물들 역시 할 이야기가 많다.
기근에 가족을 잃고 홀로 살면서 왕룽의 관리인 노릇으로 평생을 살다간 칭, 황부자 집의 종이었지만 어여쁜 얼굴로 편한 종노릇을 하며 살다 큰 찻집도 경영하고 왕룽의 첩을 보살피며 말년에도 잘 지낸 토츄엔, 기근에 도적떼의 무리에 속해 살다 부자가 된 조카 왕룽에게 협박하듯 평생 붙어살게 된 작은아버지, 좋아하는 여자가 집안의 종이기는 했지만 나이 많은 아버지가 취한 바람에 군인이 되겠다며 집을 떠난 왕룽의 셋째, 왕룽의 젊은 셋째보다는 조용하고 안전한 나이든 왕룽의 곁에 있고 싶다고 하는 리화 역시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상상하게 만든다. 이렇듯 주변 인물들조차 버릴 게 하나 없도록 쓰여진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면 <대지>는 참 좋은 소설이다. (애몽)
“안심하세요 아버지, 땅은 팔지 않을 테니까요”라며 왕룽의 머리 위로 서로 쳐다보며 미소 짓는 첫째와 둘째의 눈빛을 “왕룽이 결혼하는 날이었다”라는 첫시작점에서 상상이나 했을까. 그 눈빛을 왕룽이 보지 못해 그나마 다행이다. 참 씁쓸함과 슬픔으로 가득한 소설이다.(애몽)
---------------------------------------------------
왕룽은 어떤 사람인가 :
남편으로서 다정다감했던 사람, 가장으로서 책임감 있는 사람, 전형적인 농업인, 투박하고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나가는 굳은 의지를 가진 사람, 돈이 많음에도 많은 여자를 거느리지는 못한 순진한 사람, 자신의 행동에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수없이 느끼는 사람.
오란은 어떤 사람인가 :
왕룽이 준 복숭아를 귀엽게 먹던 사람, 왕룽이 우유부단할 때 강단있게 결정하는 사람, 종살이 때도 헛으로 살지 않았던 눈치빠른 사람, 위기대처에 매우 현실적인 사람, 여자로서의 매력을 갖지 못해 주눅들어있는 사람, 진주 두알조차 말한마디 못한 채 줘버리는 불쌍한 사람, 죽어갈 때도 괜한 돈 쓰지 말라며 그돈으로 땅을 사라는 미련한 사람
영원한 제국님 + 바다맘님 발제문 :
왕룽과 땅의 관계, 과거 농업사회에서의 인간과 땅의 관계, 현재 인구가 소멸되고 있는 시점에 미래의 땅도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어떻게 변화할까?
-시골의 땅은 여전히 팔리지 않아 공시지가가 떨어지고 있다.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땅의 가치는 지금의 현상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누가 정권을 잡을지 모르니 여전히 땅은 사둘 필요는 있다.
-왕룽시대의 땅은 그저 농산물로 인한 부의 축적도구였고, 지금의 땅은 도시는 주거, 지방은 휴양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듯 용도로서의 쓰임이 달라질 뿐 땅의 가치는 계속 올라갈 것이다.
시카님 + 수련님의 발제문 :
왕룽시대는 가족, 친족,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모는 자식을 낳고 키운 것만으로 여생을 보장받을 수 있음을 당연시할 수 있는가? 심지어 지금 세상에서 왜 우리는 부모의 재산이 나에게 올 것이라고 당연시 생각할까?
-----------------------------------------------
모임책도 성실히 잘 읽어오고 발제문 숙제도 착실히 해온 회원님들이 성실한 왕룽과 같은 결을 가졌다고 느껴지는 모임이었습니다. 열띤 이야기 너무 좋아요😄
첫댓글 좋은 시간이예요
즐거움이 묻어 나네요~^^
아 ------ 부러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