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와 5·18의 진실을 알고 ‘서울의 봄’ 영화를 보라
주요 선거가 있을 때마다 발도 없이 떠도는 유령같은 선전·선동 영화가 출연한다. 4년 전, 21대 총선 전에 10·26을 다룬 ‘남산의 부장들’ 영화가 박정희 대통령과 우파 이미지 죽이기를 하였듯이, 올 11월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 영화는 12·12 ‘국난극복’을 ‘군사반란’으로 규정짓고 군을 혐오 집단으로 만들며 망자가 된 전두환 대통령을 독재자와 학살자로 확인 사살을 하고 있다.
영화 평론가들은 1979년 ‘신군부’와 현 ‘신검부’를 억지로 연결 지어 22대 총선에서 보수진영에 악영향을 주려고 작심이라도 한 듯이 픽션이라는 방어막을 치고 실제와 허상과 각색을 넘나들면서 전두환을 전두광 악마로 만들고 군을 쓰레기 집단으로 격하시키고 싶었겠지만, 어찌된 일인지 전두환 대통령의 실제 카리스마를 부각시키고 있다.
10·26과 12·12의 진실을 아는 우파가 이 영화를 보면 전두환 대통령의 카리스마 리더십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전두환 대통령의 7년 통치 기간을 ‘대한민국의 봄’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의 12·12 구국 결단이 없었다면 ‘평양의 봄’이 잠시 존재했을 것이다.
좌익들의 주기적인 선동 영화에 역사관이 형성되지 못한 학생들마저 영화의 피해자가 되거나 ‘연예인들이 문화전쟁에 더 이용당하지 않도록 12·12와 5·18의 진실을 압축해서 말하고자 한다.
#진실 1.
12·12는 군사반란과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김재규의 패륜적 쿠데타를 진압한 국가 위기 극복의 역사다.
12·12는 패륜범 김재규가 궁정동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弑害)할 때에 정승화 참모총장은 시해 장소인 궁정동에 있었고, 시해범과 같은 차를 타고 육군본부 벙커로 갔으며, 김재규가 시해범임을 알면서도 권한 대행 대통령에게도 보고하지 않았고 비상 국무회의에서 침묵 등 시해 가담 혐의점이 있어서 참고인 조사를 위해 정승화를 연행하는 과정에 일어난 합수부 측과 정승화 총장 수사를 반대하던 군부 세력과의 충돌이었다.
역사는 현상계로 존재하기에 가정이 의미가 없지만, 1979년 12월 12일. 만약 정승화가 연행되지 않았더라면 김재규는 복권되어 정승화와 함께 철권 정치와 군정을 시작했을 것이고, 김재규와 정승화는 권력을 위해 패악을 저지른 악인들이었기에 최악의 독재를 했을 것이다. 정승화 총장 연행에 실패하여 김재규의 군사독재가 열렸다면 1980년 서울의 봄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서울의 봄’ 영화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도 동남아 후진국 군부 정치를 겪고 있을 것이다. 전두환이라는 구국 대통령 덕분에 군을 혐오하고 역사의 진실을 호도하는 ‘서울의 봄’ 영화를 상영해도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진실 2.
전두환 구국 대통령을 악마로 만든 것은 5·18 특별법 제정과 12·12, 5·18사건 상고심 선고공판과 역사 뒤집기였다.
김영삼 정권 출범 직후인 1993년, 검찰은 12·12 관련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공소를 기각했지만, 1995년 노태우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받던 김영삼 정권은 정치적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12·12의 정당한 법 집행을 위한 합수부 수사는 ‘반란’으로, 5·18의 광주 ‘폭동’은 ‘민주화운동’으로 역사 심판과 규정이 180도로 바뀐다.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니라 최악의 역사 뒤집기였다.
1995년 12월 21일, 5·18 특별법은 김대중에게 불법 정치자금 약점이 잡힌 김영삼의 정치 야합과 추악한 거래가 빚은 입법 참사였다. 거짓과 공작 정치가 역사에 개입하여 만든 5·18 특별법은 철저한 반공국가였던 대한민국을 좌경화시킨 비극의 출발이었고, 지금의 좌우 진영의 극한 대립을 초래한 원죄였다.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심리로 열린 12·12, 5·18사건 상고심 선고공판에서 12·12 사건은 김재규 일당의 패륜적 거사와 쿠데타는 묻히고, 구국 차원의 합수부 조사와 합수부장을 했던 전두환 대통령은 ‘군사반란’과 ‘군사반란 수괴’로 몰렸다. 북한의 5·18 모략전쟁과 김영삼 정권이 5·18 반역의 역사를 민주화 역사로 뒤집은 추악한 정치 전쟁에 전두환 대통령이 희생이 되었다.
역사가는 김영삼 정권의 IMF 경제 위기 초래는 독선과 무능의 결과였고, 12·12와 5·18 역사 왜곡은 무지하고 무도한 대한민국의 정체성 파괴이며, 김영삼의 역사바로세우기 재판은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구국의 영웅을 무너뜨린 악행이었고, 정치적 판결로 사법 쿠데타를 자행하여 대한민국이 5·18의 인질이 되도록 만든 국가 정체성 전복 사건으로 정리할 것이다.
#진실 3.
5·18은 북한 악마들의 모략전쟁이자 먹고 먹히는 정치 전쟁이다.
5·18은 적화통일의 기회만 엿보던 김일성이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적 혼란을 틈타 특수 공작조를 은밀하게 침투시켜 악의적인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군인과 경찰 복장으로 위장하여 민간인을 살해하여 소요 군중을 흥분시키고 진압 군경을 무자비하게 살상한 세계 전사에서 볼 수 없었던 북한 악마들의 모략(謀略)전쟁이었다.
5·18은 미 국무부가 기밀 해제한 문건에서 ‘김대중 추종자들(Kim Daejung followers)’과 ‘북한 민간 공작대원들(North Korean Agents)’이 개입하여 벌어진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안기부 작성 문서에는 김대중을 "광주 사태의 배후 조종자", "북한 연방제 추종자" 등으로 명시하고 있었다.
북한은 북한을 이용하여 정권을 찬탈하려고 했던 5·18 김대중 추종자들을 인질로 잡고 대한민국을 적화시키려고 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추종자들은 뱀이 뱀 꼬리를 물 듯이 김영삼의 정치자금 약점을 잡았고, 약점이 잡힌 김영삼 정권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덮기 위해 김재규의 패륜 쿠데타를 진압한 12·12를 ‘군사반란’으로 매도하고, 5·18 국난극복 계엄군을 학살자로, 폭동을 민주화운동으로 탈바꿈시키면서 계엄군 지휘선상에 없었던 전두환 대통령에게 ‘내란’과 ‘내란 수괴’로 뒤집어 씌우는 악마의 대리 심판을 했다.
우리는 ‘서울의 봄’ 영화를 본 사람들과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 상기 3가지 진실을 먼저 읽고 거짓과 허상의 영화를 보길 바란다. ‘서울의 봄’ 영화 감상은 2시간 21분이 걸리지만 12·12와 5·18 진실은 5분이면 바로 깨달을 수 있다.
2007년 5·18을 다룬 ‘화려한 휴가’에서는 집단 사격을 기정사실처럼 다루어 계엄군을 악마처럼 편집했지만 집단 사격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서울의 봄’ 영화가 아무리 군을 혐오집단으로 추락시키고 ‘국난극복’을 ‘군사반란’으로 매도해도 대한민국 국군은 국민을 위한 충성심은 변함이 없고, 구국 영웅의 카리스마 흔적은 절대로 지우지 못할 것이다.
2023년 12월 5일, 사)국군명예회복운동본부
<위 글은 사)국군명예회복운동본부가 발표한 '12·12와 5·18의 진실을 알고 ‘서울의 봄’ 영화를 보기 바란다'는 글을 전재한 것임을 밝혀둔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