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고 요란하던 보궐선거가 끝났습니다. 선거 결과에 만족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가 선거로부터 시작되지만, 선거만 치르고 나면 결과가 만족스럽다는 것보다는 만족스러워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점은 어떻게 할까요. 그래도 당선만 되면 특정된 임기를 마치도록 되어 있는 제도 또한 문제입니다. 대통령은 5년, 국회의원이나 지방의원 및 단체장들은 대부분 4년의 임기를 보장받고 있는 이유로, 아무리 불만스러운 결과에도 꾹 참고 5년, 4년을 기다릴 수밖에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이 선거제도 맹점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200년 전에 다산 정약용은 요즘처럼 직접·보통선거는 아니지만, 간접선거와 유사한 선거제도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그런 제도를 통한 정치의 선진화를 도모했던 점은 당시로서는 참으로 획기적인 주장이자 선진적인 정치사상이었습니다. “천자(天子)의 지위는 어떻게 해서 얻어졌는가. 하늘에서 떨어졌는가. 아니면 땅에서 솟아났는가.… 천자는 여러 사람이 추대해서 이루어진다(衆推而成者也) 여러 사람이 추대해서 이룩된 사람은 또한 여러 사람이 추대해주지 않으면 이룩되지 못한다는 것이다.”(湯論)
“뜰에서 춤추는 사람이 64명인데, 이 가운데서 1명을 선발하여 지휘봉을 잡고 맨 앞에 서서 춤추는 사람들을 지휘하게 한다. 지휘봉을 잡고 지휘하는 사람의 지휘가 곡조에 제대로 맞으면 모두가 존대하여 ‘우리 무사(舞師)님’ 하지만, 그 지휘봉을 잡고 지휘하는 사람의 지휘가 곡조에 맞지 않으면 모두가 그를 끌어내려 앞전의 대열로 복귀시키고 유능한 지휘자를 재선하여 올려놓고 ‘우리 무사님’하고 존대한다. 그를 끌어내린 사람도 대중이고 올려놓고 존대해주는 사람 또한 대중이다. 대저 올려놓고 존대하다가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여 올리는 사람을 탓한다면 이게 어찌 이치에 맞는 일이겠는가.”(같은 글)
“이른바 역(逆)이란 무엇인가. 옛날에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추대하였으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추대하는 것은 순(順)이고, 지금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세웠으니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세우는 것은 역이다.”(古者下而上 下而上者 順也 今也 上而下 下而上者逆也 : 같은 글)
다산의 주장대로라면 다산 당시에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향식 선거제도는 역적으로 매도당했으나, 옛날의 뜻을 받드는 현대의 선거제도로 발전하여 상향식 선거제도나 정치제도가 자리 잡은 일은 참으로 큰 역사 발전의 한 단계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상향식 원리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고, 그 원리에 맞는 모든 제도가 원칙대로 지켜지고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상향식[下而上]의 원칙은 살아 있으나 하향식[上而下]의 낙하산 인사가 판치는 것만 보아도 원칙이 무시되고 있음을 금방 알게 됩니다.
악단에서 지휘자를 언제라도 교체할 수 있고, 천자도 수시로 바꿔버릴 수 있었던 고대의 제도를 복원하지 못하고, 정해진 임기를 꼬박 기다려야 하는 대중들을 어떤 방법으로 위로해 줄 수가 있을까요. 그래서 선거를 잘 해야만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나라 형편이 말이 아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