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도둑
조수현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앞에 24시간 편의점이 하나 있다. 임산부였던 지인이 퇴근마다 남편 부탁으로 캔 맥주를 샀는데, 어느 날인가는 ‘무알콜 맥주도 있으니 한번 드셔보라.’라며 한 캔을 선물해 주셨단다. 바로 그 여자 사장님이 운영하는 작은 편의점이다. 건물 1층 모퉁이에 조그맣게 자리 잡고 있는 편의점이지만 친절하고 다정한 사장님 덕분에 항상 손님이 붐비는 편이다.
편의점 앞에는 손님이 쉬어갈 수 있는 파라솔 1개와 의자가 있고, 모퉁이에는 사장님이 가꾸시는 화분이 열댓 개쯤 놓여도 있다.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화분에는 빨강 제라늄, 노랑, 분홍 카랑코에, 패랭이, 노란 소국이 피어 있다. 올망졸망 가지런히 놓여 있는 화분을 볼 때마다 소박한 사장님과 닮았다는 생각에 미소가 나온다. 종일 좁은 공간을 지키는 사장님이 잠시 바깥 공기를 쐴 수 있는 때가 화분에 물 주시는 시간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내 마음이 간 적도 있는 편의점이다.
<화분 가져가신 분 갖다 놔주세요. 백합이 나올 거예요.>
나는 며칠 전 편의점 앞을 지나가다 익숙한 사장님의 글씨를 보았다. 누군가 사장님이 심어 놓은 백합 화분을 집어 갔다는 것이다. 이번이 한번이 아니란다. 작년 이맘때에도 사장님이 아끼는 화분이 없어져서 비슷한 내용의 글이 붙어 있었다. 글을 읽는 나조차 속상해서 ‘집에서 키우던 수국 화분 가져다드릴까?’ 생각할 정도였는데 올해 또 이런 일이 생겼다.
이처럼 우리는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꽃을 도둑맞은 사연을 목격한다. 우리 아파트 대표님은 단지 구석진 땅에 매년 봄 사비를 들여 꽃을 심고 가꾼다. 4월 말부터 알록달록 꽃들이 피기 시작하면 그곳은 버려진 땅이 아니라 사람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곳이 된다. 그런데 이곳에도 꽃 도둑의 손길은 미친다. 가장 좋은 자리에 심어 놓은 백합을 쑥 뽑아간 것이다. 꽃이 뽑힌 자리에 ‘뽑아간 꽃 도로 심어 놓으라.’라고 적어 놓은 말뚝이 1년째 서 있다.
이렇듯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작은 카페 앞에도 ‘꽃 뽑아가지 마세요.’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게 되;었고, 자주 시청하는 뉴스채널 <사건 반장>에서도 봄이면 화단에 심어 놓은 꽃을 뽑아갔다는 제보 사연이 하루가 멀다고 나온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남이 정성껏 심고 가꾼 꽃을 훔쳐 가는 사람도 될 수 있을까? 백번 양보해서 꽃 도둑도 꽃 주인처럼 아름다운 것을 볼 때 기분이 좋고, 꽃을 가까이에 두고 보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치자. 하지만 그 꽃을 피우기 위해 값을 내고, 가꾸었을 누군가를 떠올리지 못하고 훔쳐 가다니 양심 불량이다.
세상에 대가 없이 얻는 것이 있을까? 아름답고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크고 작든 반드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한다. 사소하게는 돈이 될 수 있고, 크게는 시간과 정성이 될 수 있다. ‘꽃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꽃은 좋아하는데 내 돈 주고 사기엔 아까우니 훔쳐서라도 키우겠다는 건가? 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마음도 없는 이기주의자가 남의 물건을 탐내는 행위일 뿐이다.
휴일 점심쯤 가족과 공원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편의점 앞을 지나가는데, 마침 새로운 꽃모종을 사 와서 화분에 옮겨 심고 있는 사장님이 보인다. 싱글벙글 웃으며 작은 모종을 꺼내시는 사장 표정이 싱그럽다. 백합 화분이 사라진 자리는 이제 새 꽃 화분으로 채워질 것이다. 꽃을 도둑맞아도 매년 새로운 꽃을 사서 심고 가꾸는 마음과 함께 꽃이 주는 순수한 기쁨과 아름다움을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사장님의 그 정성이 감사해서 편의점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며, 나직이 “사장님 파이팅”하고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