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겨운 옛 한국 사진 4
의정부시 [Uijeongbu-si, 議政府市], Korea, 1965
Photographer Bruce Richards
포항 [Pohang, 浦項] Korea, 1960's
Photographer Unidentified
기계면 성계리 지하수 개발 모습
Seoul, Korea, 1966
photographer Unidentified
제12회 과학전람회 1966
바지교복을 입은 여학생들
Seoul Korea, 1968
photographer Neil Mishalov
시장 Seoul, Korea, 1966
PhotographerFrank Daum
1966년시장 모습 지금은 시장에 할머니 아주머니들이 많지만 당시에는 아이들이 시장통에 많이 있었다.
사진 상단에 연구소 입구라는 간판이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서대문 구청 건설대 발대식 Seoul, 1969
합동 구청사 정문에서의 건설대 발대식 장면이며, 도로벙비, 청소관리, 등 환경정비단으로 각동 대표들이 참석한 장면의 차려자세가 군대사열을 연상하게 한다.
종로 [Jong-ro, 鍾路] Seoul, Korea, 1968
홍능에서 문화촌가는 버스가 1번이었나??? 종로를 지나갑니다. 종로에서 내려서
4번버스 마장동에서 세검정가는 버스타고 학교를 갔습니다.
Seoul Korea, 1968
photographer Neil Mishalov
시청앞 왼편 덕수궁 철담장
Seoul Korea, 1968
photographer Neil Mishalov
수원시 [Suwon-si, 水原市] Korea, 1968
photographer Neil Mishalov
수원시 [Suwon-si, 水原市] Korea, 1968
photographer Neil Mishalov
수원시 [Suwon-si, 水原市] Korea, 1968
문화정육점이 보입니다.
photographer Neil Mishalov
Korea, 1960's
이동하는 야외 가설극장과 경운기
경운기로 영화를 선전합니다.
Korea, 1968
1960년대 극장 쇼무대의 트위스트 김 1960년대 극장 쇼 공연사진.
<트위스트 김>과 한 사람이 노래를 하면서 춤을 추고 있는 있는데
저 사람이 극장쇼의 전설이라는 <체리보이>입니다.
1968년경 부산의 극장무대로 추정되는 사진.
Korea, 1969
photographer Don Lopez
Korea, 1967-1968
photographer Tony Note
춘천시 [Chuncheon-si, 春川市] Korea, 1965-1966
photographer Maurice Cammack
부산시 [Busan, 釜山市] , Korea, 1969-1970
경찰서 옆에 중화요리집이 있습니다.
photographer Frank Keilor
서울역 [Seoul station, ─驛] Seoul, Korea, 1968
서울역에는 항상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습니다.
photographer palMeir
명동 [Myeong-dong, 明洞] Seoul, Korea, 1966
Photographer Stephen Dreher
people watching funeral cortege of Queen Yun
평택시 [Pyeongtaek-si, 平澤市] , Korea, 1960's
이골목에는 특히 여관이 많이 있네요.
Photographer Bruce Richards
Seoul, Korea, 1967-1968
Seoul, Korea, 1967-1968
경주시 [Gyeongju-si, 慶州市] , Korea, 1968
새해인사 Seoul Korea, 1967
오른쪽 부터 가수 이금희, 영화배우 태현실, 윤정희, 문희
새해인사 Seoul Korea, 1967
오른쪽부터 전계현, 최지희, 김지미, 이빈화(영화배우), 나옥주(연극배우),
윤경희(국악인)
서울역 Seoul Station. Seoul , Korea, 1967
이태원 [Itaewon, 梨泰院] . Seoul , Korea, 1967
이태원 시장 모습
이태원 [Itaewon, 梨泰院] . Seoul , Korea, 1967
이태원 시장 모습
숭례문 [Sungnyemun Gate, 崇禮門] . Seoul , Korea, 1967
남대문인 숭례문 옆으로 전차가 지나갔습니다.
Seoul , Korea, 1967
전후 재건중인 동대문 부근 모습
Seoul , Korea, 1967
한강로 삼각지 부근 모습
Seoul , Korea, 1967
미스코리아선발대회 Miss Korea Beauty Contest
1967년 6월 13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열한번째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진 (眞) 홍정애, 선 (善) 최양지, 미 (美) 정영화
Korea, 1966
뻥튀기 과자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Korea, 1960-1966
Photographer Robert Garfias
Korea, 1968. 12. 3
육군2군사령부(현재 2작전사령부) 소속 여군들이 1968년 12월 3일 거행된 사령부 신청사 준공식에 참가하고 있다.
여군들이 휴대하고 있는 개인화기는 M-3 기관단총으로 1970년대 말까지 운용되다 K1 소총의 개발과 함게 자취를 감춘다.
여군의 역사는 6ㆍ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9월 1일 ‘조국을 구하는 데는 남녀 구분이 있을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여자 배속장교에 의해 여자의용군 교육대가 창설된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여자의용군 제1기 500명은 전쟁에 필요한 훈련을 이수한 후 육군본부와 첩보대 등에 배치돼 행정업무 및 첩보수집, 선무심리전의 임무를 수행했다.
51년 육군본부에 여군과가 설치됐고 53년에는 여군 간부 후보생 1기 30명이 탄생했다. 69년 9월 특전사 여군 중대가 창설됐다. 71년 10월에는 여군 하사관 후보생 1기 50명이 임관했으며 73년 7월에는 초대 여군 중대장 권행옥 대위와 병사 17명을 모체로 본부사령실 예속으로 여군 중대가 창설되기에 이르렀다.
여군이 비약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은 90년 이후부터다. 90년 여군 병과를 남군과 동일한 제병과로 분류해 여군 장교의 활용 범위를 확대했다. 93년 임관한 보병장교를 전원 소대장에 배치하고 이후 중대장과 연대장까지 역임하는 등 군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게 했다.
공군에선 97년 처음으로 여성에게 사관학교 입학을 개방했다. 이어 육군사관학교(98년)와 해군사관학교(99년)가 차례로 문을 열었다. 2001년부터는 공군과 해군에서 여학사 장교, 부사관을 모집하고 있다.
2002년 1월에는 양승숙 국군간호사관학교장이 장군으로 임명돼 첫 여군 장군으로 기록됐다. 같은 해 11월에는 여군이 군의 주류인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국방부 여군발전단(단장·추순삼 대령)이 창설됐다.
여군발전단은 2006년 1월 1일부로 국방부 인사국 내 국방여성정책팀으로 전환되면서 각 군의 여군을 포함해 여성군무원과 공무원을 아우르는 본격적인 여성정책 임무를 수행하고 2008년 국방여성정책과로 개칭을 거쳐 지금까지 국방여군 및 군무원ㆍ공무원의 근무여건 향상과 권익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0년에는 송명순 장군이 최초의 전투병과 출신 장군이 됐다.
남학생만의 학군장교 제도인 ROTC도 2010년 숙명여대를 비롯해 6개 대학에 여성 ROTC를 처음으로 인가해 60명을 모집했고 올해는 전국 ROTC 인가대학 110개교에서 190명(숙명여대ㆍ성신여대 모집 정원 제외)을 자유경쟁으로 선발했다.
세계에서 여군은 운용하는 국가는 55개국 이상으로 미주와 유럽에서는 전체 군인 대비 여군비율이 10% 이상, 이스라엘은 33% 이상, 남아공은 22% 이상의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경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일하게 군복무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현재 여군의 역할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프랑스는 잠수함이나 기동헌병을 제외한 전투기 조정사나 해ㆍ공군 특전사 등의 분야에서 여군의 문호를 개방했다. 대만은 여군 UDTㆍ낙하산병ㆍ전투기조종사, 함장 등의 분야에서 활용하고 있다. 북한은 고사포ㆍ방사포ㆍ보병 등 전투병과에 여군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Seoul, Korea, 1969
'시사포토'지의 1969년 4월호의 기사 1969년 당시의 '별난 직업'
여체를 곱게 다듬는 남자 미용사.
24세의 총각미용사가 여체를 마음껏 주무르는 맛사지를 하면서도
미안하기는 커녕 외려 돈을 받는다는 소개글이다.
새장사 Korea, 1968
photographer Neil Mishalov
새를 포장합니다.
Korea, 1960-1966
Photographer Robert Garfias
Korea, 1966
Photographer Dave Hazelton
Korea, 1966
photographer Dave Hazelton
Seoul, Korea, 1967
1967년 어느 날 한국일보를 비롯한 서울지역 신문, 통신사 사진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68년 첫 발행된 ‘보도사진연감’표지 촬영을 위해서다.
35mm 라이카와 펜탁스, 니콘F 카메라가 보이고 대형카메라인 스피드 그래픽도
눈에 띈다. 나름 멋쟁이였던 이들은 6,70년대 격동의 현장을 발로 뛰며
시대의 기록을 남겼다.
베트남전 취재 중 다리를 잃은 이도 있고 중상을 입으면서도 버마 아웅산사태
폭발현장을 전한 이도 있다. 지금은 상당수가 이세상에 없지만 그들이
남긴 한 장의 사진들은 역사의 순간으로 남아있다.
Korea, 1970's
가발제조 장면
Wig manufacturing scene
당시 외화획득에 기여를 했다.
Korea, 1966
길거리 상인입니다. 이곳은 머리빗, 혁대, 손톱깎기, 지갑 등 팝니다.
Photographer Dave Hazelton
Korea, 1960-1966
Photographer Robert Garfias
Seoul, Korea, 1968
멍게 해삼장수...해삼을 옷삔으로 찍어 먹었던 생각 난다.
안양시 [Anyang-si, 安養市] Korea, 1968
Photographer Neil Mishalov
태극당 하드통
아이스크림은 서양에서도 19세기 중반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산업화됐으며 한반도에는 일제시대 들어 소개됐다.
최초로 아이스크림을 판 곳은 조선호텔로 알려져 있지만 아이스크림이
대중화된 것은 1960년대 들어서다.
1963년 삼강산업(롯데삼강의 전신)이 국내 최초의 대량생산 아이스크림인
'삼강하드'를 출시하기 전까지, 시중에 유통된 아이스크림은 물에 설탕과
사카린을 섞어 얼리거나 팥앙금과 팥물을 넣어 만든 아이스바 타입의
'아이스케키'가 주종을 이루었다.
한여름이면 아이스케키라고 쓰인 나무상자를 둘러멘 까까머리 고학생들이
이를 팔러다니곤 했다.
그러나 1962년 식품위생법이 시행되면서 아이스케키는 불량식품의 대명사가
되어 추방해야 할 품목으로 인식됐고, 이후 최신 설비를 갖춘 아이스크림
생산업체들이 생겨났다.
초기 삼강하드처럼 얼음이 많은 아이스바가 많았지만, 차츰 유가공기술
및 냉동기술이 발달하면서, 유지방 함량이 높은 고급 아이스크림이 출현했다.
대일유업(빙그레의 전신)은 74년 독자기술로 아이스크림 '퍼모스트 투게더
(현 투게더)'를 내놓았고 이 밖에 '아맛나' '비비빅' '누가바' '바밤바' '쌍쌍바'
'쮸쮸바' '조안나' '브라보콘' '싸만코' 등 현재까지도 장수상품으로 군림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