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공자(孔子)께서 “자신의 사욕을 이겨 예(禮)를 회복함이 인을 하는 것이다.〔克己復禮爲仁.〕”라고 말씀하였는데, 송유(宋儒 사양좌(謝良佐))가 “우선 성질이 편벽되어 극복하기 어려운 곳으로부터 이겨 나가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자애로움은 또한 전하의 성질이 편벽된 곳입니다. 자신의 사욕을 이기는 공부를 반드시 이것으로부터 시작하신 뒤에야 본심의 덕이 온전해져서 성대하게 시행하게 될 것인데, 전하께서는 이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만하게 스스로 성스럽다고 여기고 아랫사람을 경시하여, 모든 사람이 한목소리로 내는 여론을 거스르고 삼사(三司)에서 입 아프게 간쟁하는 공의(公議)를 거절하시곤, 장차 크게 미워하는 악인(惡人)의 괴수를 성상의 교화 속에 함께 받아들여 이로써 성주(成周)에서 형벌을 집행하지 않았던 성대함보다 앞서려고 생각하시니, 신은 삼가 의아합니다.
[주-1] 자신의 …… 것이다〔克己復禮爲仁.〕 : 《논어》〈안연(顔淵)〉에 나오는 말로, 주희의 주(注)에 “마음의 온전한 덕은 모두가 천리이나, 또한 인욕에 의해 파괴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仁)을 하는 자가 반드시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가면 일마다 모두 천리여서 본심(本心)의 덕이 다시 내 몸에 온전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주-2] 성주(成周)에서 … 성대함 : 주나라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의 시대에는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악한 자가 없어서 형벌을 버려두고 쓰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史記 卷4 周本紀》
인(仁)은 사덕(四德 인ㆍ의ㆍ예ㆍ지)의 으뜸으로, 공정함이 아니면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사사롭고 작은 은혜를 인이라고 여기고, 고원(高遠)하고 넓고 허망한 영역에서 분주하게 마음을 쓰시면서 이로써 한 세상을 놀라게 하며 훌륭한 정치를 이룩하기를 바라시니, 전하의 마음에는 대공지정(大公至正)한 방도를 이미 잃은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을 본받아 덕을 행해서 바라는 대로 다스려지는 정치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오래도록 낳고 길러서 만물의 본성을 이루는 것은 진실로 하나의 기(氣)가 유행하는 것이니, 어찌 일찍이 자질구레하게 얽매이는 자취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왕(聖王)이 마음을 쓰는 것도 천리의 자연을 따르고 사사로운 인욕(人慾)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인욕’이라는 것이 어찌 반드시 음악이나 여색, 재물과 이익만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본심의 전체에서 나오지 않고 간혹 사사롭게 계산함을 면치 못한다면 이미 공정한 천리가 아닙니다.
천지의 조화는 쉬지 않고 왕래하여 궁음(窮陰)의 아래에서 처음으로 양기(陽氣)가 생기는데 만물(萬物)을 낳는 마음이 이로부터 비로소 싹트게 되니, 《주역》에서 이른바 “복(復)에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단서는 매우 은미하지만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 삼양(三陽)이 조화하여 모든 사물이 다 형통하는 데 이르게 됩니다. 사람은 천지의 중(中 이치)을 받아서 태어나니, 그 선한 단서의 발현도 이와 같은 것이요, 진실로 이를 확충한다면 온갖 선함이 모두 갖추어져서 이루 다 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주-1] 주역에서 … 것입니다 : 《주역》〈복괘(復卦) 단(彖)〉에, 정자(程子)의 전(傳)에 “도(道)는 반복하고 왕래하여 번갈아 사라지고 번갈아 자라난다.… 양(陽)이 아래에서 회복함은 바로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다.”라고 하였다.
[주-2] 삼양(三陽)이 조화 : 《주역》에 10월은 곤괘(坤卦)에 해당되는데 순음(純陰)의 상이다. 11월의 복괘(復卦)에서 비로소 일양(一陽)이 생기고, 12월 임괘(臨卦)에서 이양(二陽)이 생기며, 정월의 태괘(泰卦)에서 삼양(三陽)이 생긴다. 이는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음(陰)이 줄어들면 양(陽)이 자라나 형통한 상이 있기 때문에, 옛날부터 ‘삼양개태(三陽開泰)’ 또는 ‘삼양교태(三陽交泰)’의 단어로 길상적(吉祥的)인 의미를 상징하였다.
하늘을 섬김에 그 이치를 어기지 않을 뿐
일곱 번째 상소[七疏] 1725년 영조1년 11월 21일, 좌의정 병산 이관명 선생
삼가 아룁니다.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 절기는 동지가 되었는데, 우리 성상께서는 여막에서 슬퍼하시는 가운데 계절의 변화에 따라 놀라고 울적하실 것이니, 어떻게 마음을 가누고 계십니까? 죄를 지은 천한 신은 황량한 초야로 물러나 웅크리고 있으면서 혼궁(魂宮)의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대정(大庭)에서 위문을 드리지도 못하고 있으니, 북쪽을 바라보고 대성통곡하며 스스로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백발의 몸이니 세상에 대한 미련일랑 모두 사라진 상태이지만 하늘이 부여한 떳떳한 성품은 현명한 자든 어리석은 자든 똑같이 지니고 있고, 더구나 신은 망극한 은혜를 받았기에 나라를 걱정하고 군주를 사랑하는 마음이야 벼슬에 나아가거나 물러나거나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밤낮으로 오직 한 가지 생각이 마음속에 맴돌고 있으니, 어찌 감히 말을 조심하라는 경계만 다시 지키며 묵묵히 한마디 말도 하지 않겠습니까.
아, 천지의 조화는 쉬지 않고 왕래하여 궁음(窮陰)의 아래에서 처음으로 양기(陽氣)가 생기는데 만물(萬物)을 낳는 마음이 이로부터 비로소 싹트게 되니, 《주역》에서 이른바 “복(復)에서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단서는 매우 은미하지만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 삼양(三陽)이 조화하여 모든 사물이 다 형통하는 데 이르게 됩니다. 사람은 천지의 중(中 이치)을 받아서 태어나니, 그 선한 단서의 발현도 이와 같은 것이요, 진실로 이를 확충한다면 온갖 선함이 모두 갖추어져서 이루 다 쓸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국가의 운수가 위태로운 때에 처하고 천시(天時)의 절기가 양을 회복하는 시기를 만나셨으니, 정신을 가다듬어 치세를 도모하기를 부지런히 하여 게을리 하지 않되 조종께서 돌보아 주신 명을 받들고 백성들이 기대하는 마음에 부응하기를 생각하시는 것이 이러한 때에 시급히 해야 할 일이거늘 시국이 날로 어지러워지고 국세가 날로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은 또한 무슨 까닭입니까. 어찌 전하의 총명하고 예지(睿智)한 마음에 미진한 바가 있고, 자애롭고 인자하시며 공손하고 검소하심에 미치지 못한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전하께서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자질과 치세를 바라는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천도(天道)를 본받아 성상의 마음에 증험해 보고 미루어 시행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하늘이 오래도록 낳고 길러서 만물의 본성을 이루는 것은 진실로 하나의 기(氣)가 유행하는 것이니, 어찌 일찍이 자질구레하게 얽매이는 자취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왕(聖王)이 마음을 쓰는 것도 천리의 자연을 따르고 사사로운 인욕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인욕’이라는 것이 어찌 반드시 음악이나 여색, 재물과 이익만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만약 본심의 전체에서 나오지 않고 간혹 사사롭게 계산함을 면치 못한다면 이미 공정한 천리가 아닙니다. 이 때문에 그 일이 비록 작은 것 같아도 그 흐르는 폐단은 반드시 정사와 일에 피해를 입힐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궁궐에서 한가롭게 쉬시는 중에 성심(聖心)을 잡아 기르시는 바를 신이 감히 억측하여 논할 수 없으니, 일을 시행하는 사이에 마음 쓰시는 것을 가지고 말해 본다면 어리석은 신이 죽을죄를 짓습니다만, 또한 제대로 미루어 시행하지 못하셨다고 이를 만합니다. 인(仁)은 사덕(四德 인ㆍ의ㆍ예ㆍ지)의 으뜸으로, 공정함이 아니면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전하께서는 사사롭고 작은 은혜를 인이라고 여기고, 고원(高遠)하고 넓고 허망한 영역에서 분주하게 마음을 쓰시면서 이로써 한 세상을 놀라게 하며 훌륭한 정치를 이룩하기를 바라시니, 전하의 마음에는 대공지정(大公至正)한 방도를 이미 잃은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을 본받아 덕을 행해서 바라는 대로 다스려지는 정치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공자(孔子)께서 “자신의 사욕을 이겨 예(禮)를 회복함이 인을 하는 것이다.〔克己復禮爲仁.〕”라고 말씀하였는데, 송유(宋儒 사양좌(謝良佐))가 “우선 성질이 편벽되어 극복하기 어려운 곳으로부터 이겨 나가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자애로움은 또한 전하의 성질이 편벽된 곳입니다. 자신의 사욕을 이기는 공부를 반드시 이것으로부터 시작하신 뒤에야 본심의 덕이 온전해져서 성대하게 시행하게 될 것인데, 전하께서는 이렇게 하지 않으시고 오만하게 스스로 성스럽다고 여기고 아랫사람을 경시하여, 모든 사람이 한목소리로 내는 여론을 거스르고 삼사(三司)에서 입 아프게 간쟁하는 공의(公議)를 거절하시곤, 장차 크게 미워하는 악인(惡人)의 괴수를 성상의 교화 속에 함께 받아들여 이로써 성주(成周)에서 형벌을 집행하지 않았던 성대함보다 앞서려고 생각하시니, 신은 삼가 의아합니다.
공자께서 ‘삼인(三仁)’이라고 칭찬하신 것은 그들의 행동이 똑같이 지성스럽고 간절한 뜻에서 나왔기 때문이고, 자문(子文)과 문자(文子)에 대해서 ‘인’으로 인정하지 않으셨던 것은 그들에게 사사로운 인욕이 없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인의 본체를 알지 못한 채 어려운 일만 구차하게 힘써 행한다면 끝내 자장(子張)의 당당함을 면치 못할 뿐입니다. 밝고 거룩하신 전하께서 마음을 제어하여 일을 행하실 적에 한결같이 천리에 부합하게 하고 혹시라도 털끝만큼의 사사로운 뜻이 개입하지 못하게 하신다면, 앞으로 성심(聖心)이 한번 바르게 되어 조정에 영향을 주면 백관이 바르게 되고 사방에 영향을 주면 만백성이 바르게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니, 전하께서는 무엇을 꺼리시기에 실행하지 않으시고 오래도록 이렇게 답답하게 놔두시는 것입니까.
아, 군주의 직무는 정승을 논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역대 명철하고 의로운 군주를 한번 살펴보아도 모두 현명한 인재를 얻어 함께 다스리는 것을 급선무로 삼았습니다. 오늘날 인재가 적기는 하지만 전하의 즉철(則哲)한 밝으심으로 조신(朝紳) 가운데에서 구하셨다면 어찌 신보다 현명한 자가 없었겠습니까. 그런데 당초 매복(枚卜)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 밖이었고 의정부에서 녹봉만 축내면서 보잘것없는 기량이 모두 드러났으니, 종합적으로 따져 봐야 하는 정치의 측면에서 논한다면 속히 변통해야 합니다. 더구나 신의 형편상 애써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신이 이미 분명하게 선을 그었을 뿐 아니라 성상께서도 벌써 통촉하셨습니다. 그런데 은총을 잘못 내리시고 특별한 예로 구속하여 직무를 방치한 채로 내버려두어, 신의 죄는 나날이 쌓이고 나라의 체통은 점차 손상되었으니, 신은 답답하고 울적한 가운데 성상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실로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의 집안은 세록(世祿 대대로 녹을 받음)의 가문으로 대대로 나라의 은혜를 받았거니와, 신이 입은 융숭한 은혜는 실로 옛날의 역사책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입니다. 감격하여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신명(神明)께서도 굽어 살피고 계시니, 만약 신이 조금이나마 국가에 도움이 된다면 몸 전체가 가루가 된다 하더라도 또한 달게 여길 것인데 어찌 감히 일을 피해 스스로 편할 계획을 도모하겠으며, 또한 어찌 감히 영화를 사양하여 명예를 훔치는 계책을 꾀하겠습니까.
미천한 신의 어리석은 견해로는 어느 시대마다 급선무가 있기 마련인데, 토복(討復)의 의리가 바로 오늘의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은 실로 나약하여 소매를 잡아끌거나 난간을 부러뜨리는 직언을 올려 성상이 깨달으시기를 기대할 정도는 못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의 재주로는 감당하지 못할 일을 무리하게 하면서 조정 반열의 말석에서 쓸데없이 분주하고 장부와 문서 사이에서 구구하게 힘을 쓰고는 이를 일컬어 “이것이 국정(國政)을 돕고 성상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다.”라고 한다면 그 누구를 속일 수 있겠습니까.
신이 도성을 나와 면직을 청한 지 두 달이 되었습니다. 말도 궁하고 뜻도 다하였으나 성청(聖聽)은 아득하니, 밤낮으로 근심하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불쌍히 여겨 살피시어 신의 위급하고 절박한 자취가 염치없이 다시 조정에 나아갈 수 없음을 분명히 아시어, 먼저 신이 맡고 있는 총재의 직임을 체차하신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실록 편찬사업은 두서 있게 진척될 가망이 있다면 이미 공적으로나 사적으로 다행인 것인데, 신의 본직(本職)을 풀어 주는 것이 그 단서가 될 것입니다.
글로 번거롭게 해 드리는 것도 매우 황공하여 며칠 동안 묵묵히 있으면서 공손히 처분을 기다렸으나 밝으신 유지는 내려지지 않고, 창관(倉官)이 다시 성상의 명으로 녹봉을 실어다 주면서 끊임없이 왕래하고 있으니 신은 이에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도망쳐 숨고 싶으나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보잘것없는 천한 신이 성상의 명을 어긴 것이 지금까지 여러 번이었으니 국법으로 따져 본다면 만번 죽을죄이나 염치 한 가지만은 내던질 수 없기에, 성상께서 신하를 예로 부리는 은혜를 망녕되이 믿고 필부의 빼앗기 어려운 뜻을 지키고자 합니다. 사정은 비록 불쌍히 여길 만하더라도 행적이 오만하니, 황공하고 두려워 잠시도 편안하지 않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천지와 부모 같으신 성상께서는 신의 충성스러운 정성이 실로 성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음을 살피고 신의 마음속 진심이 형식적으로 꾸미는 겸양이 아님을 헤아리시어, 신의 비천한 말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여 성상의 덕을 빛나게 하고 국사를 다행스럽게 하십시오. 그리고 속히 녹봉을 실어 보내는 명을 환수하고 신의 직명을 삭탈하시어 초야에서 한가롭게 지내면서 성상의 은택을 흡족히 받을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이것이 바로 신의 몸이 물러났으나 말은 쓰이는 것이며, 살아서는 하늘을 순히 섬기고 죽어서는 편안해진다는 것입니다.
병산집(屛山集) 제5권 소차(疏箚) 22수
[주-1] 일곱 번째 상소〔七疏〕: 《승정원일기》 영조 1년 11월 21일 기사에 보인다.
[주-2] 성상께서는 … 것이니 : 경종(景宗)의 상중(喪中)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주-3] 혼궁(魂宮) : 왕이나 왕비의 국장(國葬) 뒤 3년 동안 신위(神位)를 모셔 두는 궁전을 말한다.
[주-4] 주역에서 … 것입니다 : 《주역》〈복괘(復卦) 단(彖)〉에, 정자(程子)의 전(傳)에 “도(道)는 반복하고 왕래하여 번갈아 사라지고 번갈아 자라난다.… 양(陽)이 아래에서 회복함은 바로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다.”라고 하였다.
[주-5] 삼양(三陽)이 조화 : 《주역》에 10월은 곤괘(坤卦)에 해당되는데 순음(純陰)의 상이다. 11월의 복괘(復卦)에서 비로소 일양(一陽)이 생기고, 12월 임괘(臨卦)에서 이양(二陽)이 생기며, 정월의 태괘(泰卦)에서 삼양(三陽)이 생긴다. 이는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음(陰)이 줄어들면 양(陽)이 자라나 형통한 상이 있기 때문에, 옛날부터 ‘삼양개태(三陽開泰)’ 또는 ‘삼양교태(三陽交泰)’의 단어로 길상적(吉祥的)인 의미를 상징하였다.
[주-6] 자신의 …… 것이다〔克己復禮爲仁.〕 : 《논어》〈안연(顔淵)〉에 나오는 말로, 주희의 주(注)에 “마음의 온전한 덕은 모두가 천리이나, 또한 인욕에 의해 파괴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인(仁)을 하는 자가 반드시 사욕을 이겨 예에 돌아가면 일마다 모두 천리여서 본심(本心)의 덕이 다시 내 몸에 온전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주-7] 성주(成周)에서 … 성대함 : 주나라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의 시대에는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악한 자가 없어서 형벌을 버려두고 쓰지 않았음을 말한 것이다. 《史記 卷4 周本紀》
[주-8] 공자께서 …… 때문이고 : 삼인은 은(殷)나라의 세 명의 어진 사람으로 주(紂)의 서형(庶兄)인 미자(微子)와 숙부 기자(箕子) 및 비간(比干)이다. 미자는 주가 무도한 것을 보고 떠나갔고, 기자와 비간은 간언하다가 비간은 죽음을 당하고 기자는 종이 되었다. 공자가 “은나라에는 삼인이 있었다.” 하였는데, 주희의 주(注)에 “세 사람의 행동이 같지 않으나 똑같이 지성스럽고 간절한 뜻에서 나왔다. 그러므로 사랑의 이치에 어긋나지 않아 마음의 덕을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였다. 《論語 微子》
[주-9] 자문(子文)과 …… 때문입니다 : 자문은 춘추 시대 초(楚)나라 사람으로 투누오도(鬪穀於菟)의 자(字)이고 문자는 진문자(陳文子)로, 제(齊)나라의 대부이니, 이름이 수무(須無)이다. 자문이 벼슬할 때 기뻐하는 기색이 없고 물러날 때 서운해 하는 모습이 없이 후임자에 묵묵히 인수인계하였는데 공자가 인(仁)을 허여하지 않았다. 주희의 주(注)에 “자문이 모두 천리에서 우러나와 인욕의 사사로움이 없었는지 알 수 없다.”라고 하였다. 문자는 최자(崔子)가 임금을 시해하는 것을 보자, 곧바로 그 나라를 떠났는데 공자는 이에 대해서도 인을 인정하지 않았다. 주희의 주에 “그의 마음이 과연 의리의 당연함을 보아서 훌훌 벗어 버려 얽매인 바가 없었는지, 아니면 이해의 사사로움에 부득이해서 아직도 원망과 후회를 면치 못하였는지 알 수 없다.”라고 하였다. 《論語 公冶長》
[주-10] 자장(子張)의 당당함 : 자장은 춘추 시대 전손사(顓孫師)의 자이다. 《논어》〈자장(子張)〉에 “증자(曾子)가 말하기를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함께 인(仁)을 하기 어렵다.’” 하였는데, 주희의 주에 “당당은 용모가 훌륭한 것이다. 외면만 힘쓰고 스스로 높은 체하여, 도와서 인을 할 수 없고 또한 남의 인을 도와줄 수 없음을 말씀한 것이다.” 하였다.
[주-11] 즉철(則哲) : 군주가 사람을 알아보는 명철함으로, 《서경》〈고요모(皐陶謨)〉에 “요 임금께서도 어렵게 여기셨으니, 사람을 알아보면 명철해서 사람을 제자리에 쓸 수 있다.〔惟帝其難之, 知人則哲, 能官人.〕”라고 하였다.
[주-12] 매복(枚卜) : 의정(議政) 중에 결원이 생겼을 때, 왕명에 따라 시임(時任) 의정들이 빈청(賓廳)에 나와서 그 후보자로 원임(原任) 의정의 좌목(座目)을 써서 승전색(承傳色)을 통해 입계(入啓)하는 일. 시임이 없을 경우에는 원임들이 입시하여 전단자(前單子)에 낙점을 받았고, 원임 가운데 적임자가 없을 경우에는 새로운 인물로 추가하여 뽑았다. 《六典條例 吏典 議政府 枚卜》 《銀臺條例 吏攷 大臣》
[주-13] 소매를 …… 직언 : 삼국 시대 위(魏)나라 사람인 신비(辛毗)는 그의 간언(諫言)을 듣지 않고 내전에 드는 문제(文帝)의 옷깃을 잡아끌었고, 한(漢)나라 사람인 주운(朱雲)은 성제(成帝)가 그의 충간(忠諫)에 노하여 끌어내게 하자 난간을 잡고서 직언을 하다가 난간이 부러졌다는 고사로 모두 직간을 한 신하들이다. 《三國志 卷25 魏書 辛毗傳》《漢書 卷67 朱雲傳》
[주-14] 살아서는 …… 것입니다 :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나오는 말로, 《근사록집주(近思錄集註)》 권2 〈위학(爲學)〉에도 나오는데, 주희의 주(注)에 “인인(仁人)의 몸이 살아 있으면 하늘을 섬김에 그 이치를 어기지 않을 뿐이요, 죽으면 편안하여 하늘에 부끄러운 바가 없다.”라고 하였다.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문화연구원 | 황교은 채현경 오항녕 (공역) | 2015
在江外辭職疏[七疏]
伏以日月駛邁。節届南至。惟我聖上嚴廬哀疚之中。感時驚惕。若何爲情。負罪賤臣。屛伏荒野。跡阻 魂宮之執䇺。禮闕大庭之奉慰。北望長號。只自涕泣。白首餘生。世念都灰。而秉彝之天。賢愚同得。况臣受恩罔極。憂愛之忱。無間進退。夙夜一念。耿結于中。豈敢復有三緘之戒。默無一言乎。噫。天地之化。往 o來不息。窮陰之下。一陽復生。而生物之心。自此始萌。易所謂復見天地之心者也。其端甚微。而其進不已。以至於三陽交泰。品物咸亨。人受天地之中以生。其善端之發見亦若是也。苟能擴而充之。則萬善俱備而有不可勝用矣。今殿下當國家傾否之運。値天時回陽之節。勵精圖治。孜孜不懈。思所以承祖宗眷佑之命。副億兆祈嚮之情者。此時宜急。而時象日益渙散。國勢日益岌嶪者。抑獨何哉。豈殿下聰明睿智。有所未盡。而慈仁恭儉。有所未臻而然耶。臣愚竊以爲殿下非無有爲之資願治之心。而不能體 a177_110c天之道。驗之聖心。推而行之之故也。何以言之。天之所以長發生育。以成萬物之性者。是固一氣之流行。而曷嘗有規規之跡哉。是以聖王之用心。亦循天理之自然。不容人欲之私。夫所謂人欲者。豈必聲色貨利之謂哉。若不出於本心之全體。而或未免計較營度之私。則已非天理之公也。是故其事雖若微矣。而其流之弊。必至於害政而害事。可不懼哉。殿下所以操養聖心於燕閒蠖濩之中者。臣不敢臆度論也。以其施之事爲之間者言之。臣愚死罪。亦可謂不善推矣。仁爲四德之首。而非公則不能行之。今 o殿下以私恩小惠。認以爲仁。崎嶇役志於高遠曠蕩之域。欲以此驚動一世。陶鑄至治。殿下之心。已失其大公至正之道矣。其何以體天行德。以做從欲之治乎。孔子曰克己復禮爲仁。宋儒之言曰先從性偏難克處克將去。慈愛者。亦殿下性偏處也。克己之功。必自此始然後。本心之德全而行之沛然矣。殿下不此之爲。傲然自聖。輕視羣下。咈萬口一辭之輿論。拒三司苦爭之公議。將使元惡大憝。同囿於聖化之中。思以此軼過於成周刑錯之盛。臣竊惑焉。孔子之稱三仁。以其同出於至誠惻怛。而子文,文子之 a177_111a不以仁許之者。以其不無人欲之私也。若不識仁體。而務爲苟艱之行。則終不免爲子張之堂堂而已。以殿下之明聖。制心行事。一當天理而無或使一分私意參錯其間。則將見聖心一正。而推之朝廷。百官以正。推之四方。萬民以正矣。殿下何憚而莫之爲。久爲此泄泄耶。嗚呼。人主之職。莫大於論相。試觀歷代明君誼辟。皆以得賢共理爲急。當今人才眇然。而以殿下則哲之明。求之朝紳。豈無賢於臣者。而當初枚卜。已出衆望之外。伴食中書。伎倆畢露。論以綜核之政。宜速變通。况臣情勢之難强者。不但臣自畫 o之已審。聖明亦已洞燭。而假以謬恩。縻以優禮。一任天工之癏曠。臣罪日積。國體漸損。臣抑塞悶鬱。誠莫曉聖意之攸在也。臣以世祿之家。代受國恩。及至臣身。所被隆恩。實史牒之所罕聞。感激圖報之忱。神明鑒臨。如使臣少有補於國家。則磨頂放踵。亦所甘心。豈敢爲避事自便之計哉。亦豈敢爲辭榮盜名之策哉。微臣愚迷之見。以爲一代自有急先務。討復之義。卽今日之急先務也。臣誠懦弱。旣不能牽裾折檻。以冀聖聰之開悟。强其才之所不逮。碌碌奔走於周行之末。區區効力於簿書之間。而稱之 o曰此可以輔國政而酬主恩則其誰欺乎。臣之出城控免已兩箇月矣。辭窮意竭。天聽邈然。日夕憂悶。罔知攸計。何幸殿下曲加矜察。灼知臣危迫之跡。不可冒沒更進。先遞臣摠裁之任。史役庶有就緖之望。已不勝公私之幸。而本職之解卸。此爲之兆爾。文字瀆溷。亦極惶恐。含嘿累日。恭竢處分。而明旨不下。倉官復以上命輸致祿俸。往來不絶。臣於是愕然失圖。寧欲逃遁而不得也。螻蟻賤臣。坐違 君命今幾遭矣。揆以邦憲。合被萬戮。而廉隅一節。不可放倒。妄恃聖明禮使之恩。欲守匹夫難奪之志。 o情雖可矜而跡涉偃蹇。惶隕震駴。食息靡寧。伏乞 天地父母。察臣犬馬之誠實出愛君。諒臣肝膈之悃非由飾讓。將臣蒭蕘之說。少賜開納。以光聖德。以幸國事。亟收祿俸輸送之命。鐫削臣職名。俾得優游畎畒。涵泳聖澤。則是臣身退而言用。生順而沒寧矣。臣無任云云。
병산집(屛山集) 제5권 소차(疏箚) 22수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