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레바논에서, Bint Jubeil, Lebanon 2007박노해시인, 사진작가, 혁명가, 그리고 - 80년대 군사독재 시대에는 민주 투사이자 저항 시인이었고,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수가 되어 8년을 감옥 독방에 갇혀 있었다. 자유의 몸이 되고 나서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잊혀지는 길을 택했다. 2000년 <나눔문화>를 설립해 새로운 운동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 20여 년간 '지구시대 유랑자'로 전 세계 분쟁 현장과 빈곤 지역에서 낡은 만년필과 카메라로 진실을 기록해왔다. 1957전라남도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상경해 낮에는 노동자로 일하고 밤에는 선린상고(야간)를 다녔다. 1984스물일곱 살에 첫 시집『노동의 새벽』 을 출간했다. 이 시집은 군사독재 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되며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감시를 피해 사용한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 | (좌)1984 『노동의 새벽』 초판본 (우)1991 사형을 구형받고 |
1989〈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19917년여의 수배생활 끝에 안기부에 체포, 24일간의 고문 후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1993감옥 독방에서 두 번째 시집『참된 시작』 을 출간했다. 1997옥중에세이『사람만이 희망이다』 를 출간했다.
| | (좌)1993 옥중시집 『참된 시작』 (우)1997 옥중에세이 『사람만이 희망이다』 |
1998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석방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됐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2000“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권력의 길을 뒤로 하고 비영리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 (www.nanum.com)를 설립했다. 2003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전 세계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이어왔다.
(위) '중동의 눈물' 쿠르디스탄의 설원에서. 2006. (가운데) 대지의 선물을 허리 숙여 거두는 라오스의 농부와 함께. 2011. (아래) 폭음이 끊기지 않는 전쟁의 땅, 파키스탄의 파슈툰 아이들 학교에서. 2011. |
2010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을 모아 첫 사진전 「라 광야」 展과「나 거기에 그들처럼」 展(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304편의 시를 엮어 12년 만의 시집『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를 출간했다. 2012나눔문화가 운영하는〈라 카페 갤러리〉 에서 박노해 사진전을 상설 개최하고 있다. 현재까지 18번째 전시를 이어가고 있으며, 총 3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2014아시아 사진전「다른 길」 展(세종문화회관) 개최와 함께 사진에세이 『다른 길』 을 출간했다.
| | (좌)2010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우)2014 사진에세이 『다른 길 |
2019 박노해 사진에세이 시리즈 『하루』 ,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 『길』 을 출간했다. 2020 첫 번째 시 그림책 『푸른 빛의 소녀가』를 출간했다. 2021 감옥에서부터 30년간 써온 한 권의 책, 우주에서의 인간의 길을 담은 사상서를 집필 중이다.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삶의 공동체 〈참사람의 숲〉을 꿈꾸며, 오늘도 시인의 작은 정원에서 꽃과 나무를 심고 기르며 새로운 혁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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