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가 다음과 같다.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찰나의 이야기'
그리고 노벨문학상 선정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말한다.
'한강은 모든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범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각각의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지니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문체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로 자리매김했다.' 직관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읽으면서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번역이 되어도 이 느낌이 전해질까하는 생각은 많이 든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처럼 정서적인 유대없이 이해하기 어려운 맥락이 이해된다면 정말 잘 쓴 글이 아닌가 싶다.
'수난을 겪다'는 뜻의 동사와 '배워 깨닫다'는 뜻의 동사입니다. 거의 흡사하지요? 그러니까 지금 이 부분에서, 소크라테스는 일종의 언어유희로 두 가지 행위가 비슷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본문 85쪽 중
'그녀는 일 년 동안 상복으로 입을 옷들을 꺼내 육십 센티 폭의 행어에 걸었다. 검은색 봄가을 면셔츠와 반소매 블라우스 한 장씩. 검은색 면바지와 진 한 벌씩.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와 긴 모직코트 한 벌씩. 검고 굵은 털실로 뜬 목도리와 짙은 회색 장갑.
됐다. 아무것도 따로 살 필요 없겠어
행어 앞에 서서 그녀가 무심코 중얼거리자, 여태 침대에 걸터앉아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아이가 물었다.
왜 일 년 동안 까만 옷만 입어야 돼? 덤덤한 목소리로 그녀는 대답했다.
마음이 밝아질까봐 그런 거 아닐까.
마음이 밝아지면 안 돼?
죄스러우니까.
할머니한테? ...그치만 할머닌 엄마가 웃으면 좋아하잖아.
그제야 그녀는 아이를 돌아보고 웃었다.
- 본문 89쪽 중
언어가 갖고 있는 느낌이 있고 언어 유희가 있다. 잘 모르지만 인간이 생각하는 수난과 죽음이라는 건 그냥 각자의 생각대로 애도되는 것 같다. 우리는 형식을 지키느라 진정한 인생의 의미를 못 느끼면서 사는 건 아닌가 싶다. 다 놓치고 살아서 죽을 때 파노라마로 다시 보여주는 게 아닐까. 되돌아보고 눈물 흘릴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