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모락산, 품에 안기다
-부부 등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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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장소 ː 모락산
○ 성 명 ː 안 영 호, 황 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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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산, 품에 안기다
-부부 등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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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도시 의왕의 한가운데에는 대형 산소통이 놓여 있다. 바로 푸르른 모락산이다. 해발 385m, 숲속 그늘로 이어진 장장 11㎞(주1) 산림욕장이 우리를 반긴다. 가장 길고, 가장 쾌적한 산책로라니 어찌 자랑거리가 아닌가?
□ 모락산 진입로
산림욕장 남쪽 입구는 오전동 끝자락에 자리한 의왕문화원옆 이른바 개나리아파트 사거리에 있다. 일반버스 1-1, 5-2, 60, 8, 8-1번 등이 다녀 교통이 편리하다. 나와 아내는 오늘 지루한 장마로 조인 가슴을 펴기 위해 산행길에 올랐다. 열린 세코스중 제1코스를 택하여 출발한 것이다.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 내려오는 사람이며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건강이 좋으시군요.”
“어서오세요. 좋은 날씹니다.”
낯선 사람이면 어떠냐? 이 산에서 만났으니 그것도 인연 아닌가? 모두가 고장사람끼리인데, 나도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작년에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쓴 바(주2) 있다.
「모락산에 처음으로 오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군데군데 게시된 캐치프레이즈 「서로 먼저 인사하며 건강 찿자」와 그 실천 현상이었다. 피해가는 다른 산길에 비해 그것 만으로도 사람향기 나는 자랑거리 아닌가?」
발걸음 가볍게 출발한 것이다.
□시(詩)를 읊으며
모락산 남쪽진입로에는 진달래가 유별나게 피어 난다고 한다. 여름이라서 개화된 꽃이야 볼 수 없지만, 잘자란 진달래나무 앞에 설명판이 제격이라 눈에 띈다.
「…옛사람들은 진달래 꽃잎을 따서 술을 빚어 마셨는데, 이를 두견주라 한다」
그러고보니 내가 올봄에 이곳 꽃잎으로 두견주를 담았으니 나야말로 옛사람의 길을 따른 기분이다. 시(詩)를 즐겨 읊조리는 아내가 소월의 「진달래꽃」을 입에 올린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 옵소서』
“행복하기 때문에 시를 읊으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읊으기에 행복감에 취하나 봐요. 당신이 두견주에 취하듯…”
“참 멋진 말이군요. 듣고 보니 나도 그말에 취합니다 그려.”
“우린 진달래처럼 활짝 피었다가 죽을때도 함께 죽어요. 절교 높은 이 고장의 명산을 벗삼아 살아가니까요.” 손을 잡고 다시 걷는다.
□「맨발로 걷는 길」과 혹부리 영감
길이 곧게 뻗었다. 제법 백색 비단이 깔린 듯 매끈하다. 이른바 마사토 흙으로 손질했기 때문이겠지. 보송보송한 길옆에 「맨발로 걷는 길」표지가 보인다. 큼직한 팥배나무 설명판이 서 있는데 여기가 맨발로 걷는 길의 시발점이란다.
“여기서부터 1,200보 걷는 거요.”
“신발 벗고요?”
“그럼요, 사람들이 빗자루로 쓸며 걷기도 해요. 맨발 걸음이 건강에 좋대요.”
“등산길에 이 길이 있어서 모락산이 인기 있나 봐요.”
“「모락산 체육공원」까지여요. 상당한 거리라오.”
“길 양쪽이 이상한데요? 양쪽이 깎아 내려간 언덕이어요.”
“잘 보았군요, 아주 옛적에 이 길을 인공적으로 쌓아올린 것 같다고도 하더군요. 아직은 수수께끼 같데요. 정상에 모락산성이 있으니…” 진지한 대화가 오갈 때 널찍한 그루나무 앞에 한 노인이 서서 우리와의 말문을 연다.
“혹부리영감 이야기 알죠?”
“전래동화죠. 그것을 왜요?”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날이 저물어 동굴에 들어가 있을 때 도깨비들이 나타났어요. 그때 혹부리영감이 개암나무 열매를 입에 넣고 ꡐ와드득ꡑ깨물었는데 앗!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도깨비들이 혼비백산 했대요.” 노인이야 말로 신이 났다.
“그랬군요.”
“아 그 도깨비를 혼내준 개암이 바로 이거거든 이거.” 듣던 아내가 덩달아 신이 나는 모양이다. 아직 익기도 전인 개암나무 열매를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더구나 혹부리영감을 만난 듯, 다음엔 아이들을 데려와 이야기 하겠단다. 재미있는 등반길 시작이다.
□돼지바위
맨발로 걸어가는 길 오른쪽으로 「돼지바위」가 있다. 큰 등치의 엄마 ․ 아빠돼지가 작은 새끼돼지 10여마리를 품안에 안고 있는 형상이다.
돼지! 보기만 해도 풍성해서 부자 될 것 같고 특히 돼지꿈은 재물을 인도한다고 해서 사람들은 좋아한다. 오늘밤 나에게도 돼지꿈 점지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야 보통사람들의 심정아니겠는가? 만인을 돼지꿈으로 유도하는 이 바위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체육공원으로 걸음을 옮긴다.
□모락산 체육공원 (소운동장)
드디어 300평 넓은 마당에 다다랐다. 산속의 체육공원이다. 알리는 글과 갖가지 운동기구가 눈에 들어온다. 산림의 효과는, 신체운동과 정서적 효과 외에 산소호흡 효과와 피톤치드 흡입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다.
수목은,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향성 물질을 발산하는데, 그 속에는 살균력이 강하고 사람에게 유익한 피톤치드가 들어있어, 진통․ 항생․ 살충․ 혈압강화․ 강장․ 거담․ 이뇨 등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소운동장에 설치된 운동기구도 다양하다.
높낮은 철봉대, 허리돌리기,거꾸로 눕기, 역기, 벤델, 훌라후프 등등 벌써 남녀노소가 만지고 뛰고 매달리고 돌리고 있다. 표정도 갖가지, 소리도 모션도 제각각 아닌가?
잠깐 살펴본 동작들이 하도 재밌어 오늘 등산길에 즐거움을 더해준다. 여기서 서쪽으로 100m 아래에는 모락산 약수터가 있고, 동쪽으로 150m 아래엔 「쉼터 약수터」가 있다.
□ 모락산 약수터
이 약수터의 물줄기는 유독 가느드랗다. 2리터병 받는데 6~7분 정도 걸리니 말이다.
“물맛이 최고야. 이게 어디서 나오나 궁금해 하는 약수거든.”
“모락산 약수야 다 생명수이지요. 물맛이 좋거든요.” 크고 작은 다람쥐가 마당에서 뛰어 놀고 있다.
“벌써 어린 새끼다람쥐가 많아 졌어.”
“다람쥐들이 오늘 운동회 하나봐요.” 우리가 응원도 하고 구경꾼도 된 것 같다.
이곳 모락산은 그만큼 식물과 동물과 사람이 한데 어울리는 현장으로 변하다니, 정말 즐거움이 배가 된다.
장기 서너판을 두고나선 어른들이 베드민턴 경기에 재미를 붙인다.
뚝..딱...뚝...딱...! 스매싱!.......와! 실수할때에는 더 신바람나서 웃는 것이다. 여기 오는 사람은 다 같은 동호인인가? 스포츠 좋아하는 아내가 벌써 한게임을 뛰었다.
구슬땀에 젖어도 약수를 드리키면 그만이다. 그래서 모락산은 정(情)과 정이 얽혀 열려가는 인간관계를 맺어주나보다. 다시 큰범바위를 향해 전진하였다.
□ 큰범바위
큰범바위에 다다를 때는 제법 더위를 실감한다. 등받이가 후줄근하고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힌다. “호랑이 앞에 오려니 겁부터 내는거 아니람?”
큰범바위 형상은 암수놈이 나란히 하늘에 치솟는 듯 뽐내며 멀리 백운산 정상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새끼 호랑이들은 5m 거리 언덕아래에 떨어져 있다.
“그럴 듯 하군. 호랑이는 새끼를 강인하게 기르려고, 저 언덕밑으로 굴러 떨어뜨린 거 같아요.” 품안에 끼고 도는 형상의 돼지 바위와 뚝 띄어 놓은 범바위 형상이 대조적임을 실감한 아내가 웃으며 농담을 한다.
“보고나니 정말로 기가 막히는 군요.”
“모락산이 사람들에게 큰 교훈을 주는 거요.”
“바른 자녀 교육시키는데 귀감이 되지.” 윗사거리를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 잣나무숲
윗사거리에서 절터 약수터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잣나무숲에 이르니 코끝이 시원하다. 나무향이 상큼한 것이다. 배출 산소량이 수목중 제1위라는 잣나무숲 아닌가?
“피톤치드 효과가 나는 거겠죠?”
“신라때 당나라에서 들어왔다고 해서 「신라송」이라고도 칭해요.
소나무와 같은 종이니까. 그런데 열매도 좋고, 산소배출량도 1등이니 더 대접받죠.”
“옛부터 「녹음방초승화시」라 했지요. 꽃보다 녹음이 좋다는 뜻이지만.”
“같은 값이면 잣나무숲이 최고라 하겠네요?”
“공기는 「코로 먹는 음식」이란 말 들어 봤나요?”
“무슨 뜻이죠?”
“입으로 먹는 음식은 어른이 하루 4㎏ 정도, 공기 흡입량은 24㎏이나 되는데, 사람이 새로운 화학물질에 적응하기 위해선 3세대 즉 90년 정도의 긴 세월이 필요하다더군요, 겁나지요?”
“적응력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니? 결국은 깨끗한 공기를 마시는일이 중요하겠어요.”
“모락산은 우리를 건강하게 하는 병원임에 틀림없군요.”
대화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해화대」입구에 도달했다.
□ 동쪽 전망대 (별칭 海花臺)
절터 약수터 가는 길에서 남쪽으로 30m 삐어간 우리는 큰바윗돌위에 서게 됐다.
“동쪽 전망대를 별칭 「해화대」라!” 모락산 토요포럼(주3)에서 뜻을 모아 별칭으로 부르는 곳이란다. 강원도도 양양에 「하조대」가 있듯이 작명사용 하는 것 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잣나무숲을 이웃하면서 앞에는 백운산과 바라산이 솟았고, 아래로는 백운호수가 파르스름하게 하늘을 떠받고 누워있어, 절경중에 절경이라 아니 하겠는가?
한참 경치에 취한 우리는 목마름을 느낀다. 마시고, 먹고, 대화하며 생각에 젖는다.
아내가, 시 한수(주4) 읽는 여유를 찾는다. 그것이 행복의 실마리라나? 가끔 나를 부축 할때 애송하는 시이다.
『 남편
아버지도 아니고 오빠도 아닌
아버지와 오빠사이의 촌수쯤 되는 남자
…… 세상에서 제일 가깝고 제일 먼 남자
이 무슨 원수인가 싶을 때도 있지만
지구를 다 돌아다녀도
내가 낳은 내 새끼를 제일로 사랑하는 남자는
이 남자일 것 같아
다시금 오늘도 저녁을 짓는다.
그러고보니 밥을 나와 함께 가장 많이 먹은 남자
전쟁도 가장 많이 가르쳐준 남자.
여보여!』
우리는 커피잔을 맞든다. 햇살이 따가운 오늘도 그늘을 마련해 준 모락산 산림욕장 숲처럼 인생길에도 시원하게 그늘이 되어 준 커피맛! 중요한 것은 심신을 건강하게 이끌어 주는 산중에서의 따뜻한 커피같은 부부되길 다지는 속뜻이 깊다.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절터 약수터
별칭 해화대에서 절터 약수터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두어 골짜기 돌아서서 찾은 절터지만 범상치 않은 듯한 지형 아닌가? 말 그대로 옴팍하다. 콸콸 쏟아지는 약수와, 키큰 활엽수들이며, 마당에 흩어진 기왓장 조각, 그리고 크고 작은 경고와 안내판 내용에서 위압감까지 느낀다. 「모락산 일원이 임영대군파 능인 종친회 소유로 사유림이란 것」이고 「임영대군은 세종대왕의 넷째아드님」임을 밝히는 것들이다. 나중에 문헌에 의해 알아냈지만 이 절터에 「경일암」(주5)이란 사찰이 있었고, 하늘을 받들고(경), 태양을 숭배한다(일)는 뜻이라고 알게 됐다.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사찰이 6.25때 포화를 입어 파괴 됐다니 아깝고 섭섭하기 그지없다. 약수로 목을 추기고 나니 온몸에 찬 기운이 돈다.
“여긴 겨울에 얼음이 빨리 얼고 눈도 천천히 녹는데요,”
“정말 시원한 곳인가 보다 아낙네들이 「냉장고」라 부르는 걸 보니 뒤는 막히고 앞은 트였지만 그늘이 짙고, 습기가 많아서겠지. 그걸 명당 터라 하는가?” 아무튼 간단없이 흐르는 대량의 약수 덕분에 갖가지 동식물의 보고가 된 것 같다.
이곳엔 정말 다양하고 색다른 동․식물이 많다고 한다. 소사나무가 서 있고, 금강제비꽃, 꿩의바람꽃, 고로쇠나무와 비비추가 눈에 띈다. 습한 곳을 더듬어 내려갔더니, 파충류인 맹꽁이, 두꺼비, 가재도 있다. 풀밭엔 살모사도 숨어 있단다. 울창하게 하늘을 가린 고목 숲과 약수 때문인지, 새벽이면 각종 새들의 울음 또한 장관이란다. 소쩍새, 말똥가리, 꾀꼬리, 뻐꾸기, 산까치와 꿩, 올빼미, 그리고 집박구리, 산비둘기, 조롱이… 역시 절터약수터야말로 보물창고라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 모락산 성터
절터에서 다시 잣나무숲길로 되돌아와 윗사거리에 왔다. 모락산성으로 오르는 타이어층계 오르기를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산성 쪽을 쳐다보니 높이가 대단했다. 목재층계가 위아래로 110개 고무타이어층계가 300개 도합 400여 층계를 올라야 한다. 입구 첫 부분은 40도 정도의 기울기더니, 곧바로 70~80도의 절벽으로 변해 가파르다. 그렇지만 양쪽에 튼튼한 쇠기둥과 로프가 있고, 더구나 바닥의 폐타이어 촉감이 주는 착신효과 때문에 마음을 놓았다. 걱정하던 아내도 거뜬히 해 낸 것이다.
드디어 산성 입구에 닿았다. 팔각정이 땀에 저린 우리를 반기는 것 같다. 산성의 정상부가 뜻밖에 넓은 벌판 아닌가? “역시 성터로군”
이 성(주6)은, 백제시대 축조된 산성으로, 산의 정상부를 중심으로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란다. 둘레 820m이고 성벽은 산의 정상부, 남쪽 봉우리와 능선, 서쪽 능선의 사면을 이용하여 축조 했다는 것이다. 백제 전성기인 근초고왕(346~374년)부터 고구려 장수왕(413~491년)의 남진정책 때까지로 추정되어 있고, 당시 도성인 풍납토성에서 직진거리20㎞에 위치한 산성으로 안양천로를 통해 강서일대로 나가는 요충지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모락산을 그 옛날에도 중요시 했네요.”
□ 모락산 전투 전승 기념비
모락산성의 정상부 한쪽에 전승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6.25때 중공군 개입으로 후퇴했던 우리 국군이 수도 서울 재탈환에 결정적으로 공헌한 승리의 싸움터라 기념비를 세운 것이란다. 이 전투는, 중공군이 수리산과 모락산에 진지를 편성하여 유엔군의 진출을 저지할 때 1951년 1월30일 13시 1사단 15연대 1대대와 2대대가 공격에 나섰고, 미군전차중대도 아군을 지원하였단다. 4일간의 전투는 백병전에 이르는 등 치열하였다니 지금 듣기에도 서늘하고 머리끝이 솟구친다. 새겨진 비문을 읽고 숙연한 감정에 싸여 우리는 고개를 떨구었다.
결국 모락산 전투결과 국군이 중공군 1개연대를 격파함으로써 수도서울 탈환의 교두보를 확보하기에 이르렀다니 이 전승기념비의 건립 의미를 되새겨 모락산에 오를 때마다 참배하려 마음 먹는다.
□ 태극 깃발아래
서쪽으로 300m 더 걸어서 휘날리는 태극 깃발아래 섰다. 서울 수복당시 중앙청에 꽂힌 태극 깃발을 연상한 나는 감개 무량하다. 조금전 백병전에 이른 치열한 전투 현장을 답사한 감정 때문이리라. 하늘에 구름이 가려 태양이 보이지 않다고 해도 결코 태양의 존재를 부인할 순 없는 것처럼, 내 조국, 내 고장, 내 부모 그리고 나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거 아닌가? 태극 깃발아래 당당히 서 본다. 이때는 “야호!” 보다 “만세!”가 제격이다. 민세를 부르다 이어서 크게 웃는다. 함께 웃자. 웃음에는 건강이 따르고 희망과 미래가 다가온다. 모락산이 가져다주는 최대의 선물이 바로 웃음과 건강과 희망이 아니던가? 때마침 정오를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치 모락산의 정기가 종소리에 한데 모아졌다가 퍼지는 것 같아 감회롭다.
□ 사인암․ 임영대군 묘소
내손동쪽으로 내려오게 되는 북쪽 산림욕장 길은 비교적 험준하다. 한참내리다가 다시 봉우리를 올라 큰바위 앞에 선다.
「사인암」이란다. 벌써 그 안내문을 읽기 전에 그 위용에서 위압감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접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