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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월 8일 수요일
[(백)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머무르신다(제1독서).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놀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시고 풍랑을 멈추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11-18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5-52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45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모두 흩으시고는 기도하시러 산에 가십니다. 저녁 무렵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던 제자들은 맞바람을 만나 고생합니다. 실제로 큰바람이 불면 호수에서도 1미터가 넘는 파도가 일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다가가십니다.
그리고 유령이라 착각하고 비명을 지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르 6,50) 하고 안심시키시며 배에 오르십니다. 그러자 풍랑이 멈춥니다. 그렇게 빵의 기적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던 제자들이 다시 주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어둠을 헤치고 물 위를 걸어오신 주님!
오늘 독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1요한 4,16-18)라는 확신에 찬 고백을 들려줍니다. 그러니 두려움 없이 서로 사랑하자고 합니다. 울리히 샤퍼(U.Schaffer)의 시에 김종성(사도 요한) 신부님이 곡을 붙인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이라는 생활 성가를 소개합니다.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 아무도 그대가 준 만큼의 자유를 내게 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 그대 앞에 서면 있는 그대로의 내가 될 수 있는 까닭입니다. / (중략) / 나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 이 모든 것을 당신 앞에 하나 되어 노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들으며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돌아보면 어떨까요.(김동희 모세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집안에 자녀가 태어나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안타깝게도 태어나면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유전자의 결함으로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큰 수술을 몇 번씩 해야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부모님은 처음에는 이런 의문을 가진다고 합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아이로 인해서 경제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기도 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어렵게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 가정의 화목이 깨지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분노에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태어나면서 심장 판막 수술해야 했던 아이, 태어나면서 신체의 일부가 없었던 아이, 태어나면서 뇌에 이상이 있었던 아이도 보았습니다. 육체의 병은 치료하고 고칠 수 있지만, 평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유전적인 결함이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자매님은 아들이 두 명입니다. 한 명은 보통 아이들과 같았습니다. 잘 자라주었고, 직장 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결혼해서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은 보통 아이들과 달랐습니다. ‘다운 증후군’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자매님은 그 아이를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선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달라스 지역에 장애인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임원이 되었고, 장애인 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였습니다. 본당 자선 음악회 수익금도 자매님의 요청을 받아들여 장애인 학교에 기부하였습니다. 장애인 학교에는 자매님처럼 하느님의 선물을 받은 부모님들이 있었습니다. 모두 기쁘고, 당당하게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역시 하느님의 선물을 받은 목사님도 열정을 다해서 장애인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자매님은 ‘꿈’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집을 마련하는 겁니다. 정부의 지원과 후원금으로 이 학생들이 언젠가 부모님들이 없어도 모두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집을 마련하고 싶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 선물 주셨으니, 마땅한 길도 마련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호수 위를 걸을 때였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만 두려움에 빠졌고, 물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두려워하느냐?” 그리고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풍랑을 잠재우시고, 호수 위를 걸으시는 분이심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걱정과 근심이 앞선 사람은 컵에 남은 반 잔의 물을 보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이 반밖에 남지 않았네.’ 그러나 희망과 용기를 가진 사람은 컵에 남은 반 잔의 물을 보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직 반이나 남았네.’ 컵에 남은 물은 변함이 없습니다. 다만 내 생각에 따라서 그 물은 걱정덩어리가 되기도 하고, 갈증을 풀어주는 희망이 되기도 합니다. 꽃이 지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본향으로 가는 존재임을 자각한다면 이 세상에서의 두려움과 걱정은 나를 영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습니다.
진화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우리의 몸은 ‘두려움’을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연약한 인간을 압도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자연재해, 사나운 동물, 독이 있는 벌레, 먹으면 죽을 수 있는 식물, 추위, 배고픔, 병, 폭력, 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을 이겨내고, 피하고자 인간은 두려움을 기억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두려움은 인간의 지혜와 협력으로 하나둘씩 해결됐습니다. 지금, 진화의 피라미드에서 인간은 다른 모든 생물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는 또 다른 차원의 두려움이 있습니다. ‘걱정, 근심, 불안, 초조’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걱정, 근심, 두려움, 초조와 불안으로 가득 차면 내 몸도 그렇게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좋은 체격을 가졌어도, 많은 배움이 있어도 그것들은 무기력하게 되고 맙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 희망, 믿음, 온유함과 친절로 가득 차면 나의 몸 또한 그렇게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비록 건강하지 못해도, 많은 배움이 없어도 얼마든지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이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빵 공장을 세우고, 수상 스키를 타라는 뜻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치네.”
<물 위를 걷는 사랑>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마르 6,48)
고운 벗들을
집어삼키려
검푸른 입
힘껏 열어젖힌
거센 물살을
거침없이 꾸짖듯
흐트러짐 없이
지르밟고 나가는
애틋한 사랑
나도 하고 싶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가신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2017년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는 한 목사가 신도들 앞에서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보여준다고 하다가 강물에 빠지면서 악어에게 물려 죽은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예수님의 물 위를 걷는 기적 사건을 대하면서 예수님의 초능력에 초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물 위를 걷는 기적이 전해주는 의미는 단순히 그런 초능력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님께서는 물 위와도 같은 위태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가오시며 늘 함께하시고 힘이 되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풍랑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리고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멎었다고 전하고, 요한복음에서 보면 그들이 가려고 하는 곳에 배가 이미 다다랐다고 전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님께서 함께하실 때 세상의 어떤 풍파도 가라앉을 수 있고, 그분이 함께하실 때 우리가 가려고 하는 어떤 곳에도 당도하게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복음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 아보 (Abo)
활동년도 : +781년
신분 :순교자
지역 : 트빌리시(Tbilisi)
같은 이름 :
성 아보는 모슬렘 아랍인이었는데, 그루지아(Georgia)의 트빌리시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진리를 확신하였으나 자신의 신앙 고백을 두렵게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루지아 왕자의 향료 제작자였는데 이 나라는 모슬렘 법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의 주인이 카스피 해 북쪽의 카자리아(Khazaria)로 피난가게 되자 성 아보 역시 그를 수행하여 그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782년에 그는 트빌리시로 귀향하였고, 그 얼마 후 아보는 모슬렘 왕에게 인도되어 배교자로 낙인찍혀 순교하였다. 성 아보의 축일은 오늘날도 그루지야 공화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성 베드로 토마스(Peter Thomas)
활동년도 : 1305-1366년
신분 : 주교
지역 :
같은 이름 :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성 베드로 토마스(Petrus Thomas)는 프랑스 남서부 가스코뉴(Gascogne)의 브레이유(Breil)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에는 성당도 없었지만, 다행히 카르멜회와 연관을 맺게 되고 그의 능력을 인정받아 콩돔(Condom)에서 수련을 시작하였다. 1342년 그는 카르멜회의 총경리가 되었다. 이 직책 때문에 그는 아비뇽(Avignon)으로 갔는데, 당시 그곳에는 교황이 머무는 곳이라 즉시 그의 성덕이 고위성직자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는 설교에도 매우 뛰어났으므로 교황 클레멘스 6세(Clemens VI)의 장례식에서 강론하도록 초청받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제노바(Genova), 밀라노(Milano), 베네치아(Venezia)의 교황대사로서 힘든 정치적 문제들을 원만히 타결하는 수완을 보였다. 그는 1354년에 파티(Patti)와 리파리(Lipari), 1359년에 코론(Coron), 1363년에 칸디아(Candia)의 대주교 그리고 1364년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명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교황 우르바누스 5세(Urbanus V)를 위해서 세르비아, 헝가리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을 여행하면서 투르크족에 대항할 십자군을 조직하였다. 1365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를 공격하는 원정대에 참가하여 화살을 맞고 심한 부상을 당한 그는 3개월 뒤인 136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키프로스(Cyprus) 파마구스타(Famagusta)의 카르멜회 수도원에서 운명하였다. 그래서 그를 순교자로 공경하는 지방도 있다. 그에 대한 공경은 1609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승인되었고, 1628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에 의해 카르멜회 안에서 1월 8일에 축일을 기념하도록 결정되었다.
성녀 구둘라(Saint Gudula)
신분 : 동정녀
활동지역 : 브뤼셀(Brussel)
활동연도 : +712년
벨기에 브뤼셀을 찾는 사람들은 성녀 구둘라 대성당을 찾고 있지만, 성녀의 전기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녀는 비트겔(Witger) 백작과 그의 아내인 모뵈주(Maubeuge)의 성녀 아멜베르가(Amelberga, 7월 10일)의 딸로 니벨레스(Nivelles)의 수도원에서 그녀의 사촌인 성녀 제르트루다(Gertrudis, 3월 17일)로부터 종교적인 생활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성녀 제르트루다가 사망한 후 그녀는 부모의 집이 있는 알로스트(Alost) 근교 함(Hamme)으로 돌아와 함께 지내면서 오로지 이웃을 위한 자선활동과 신심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녀의 집과 모르셀(Moorsel) 성당이 약 3km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그녀는 매일 아침 성당에 가서 기도하였다.
성녀 구둘라는 사망한 후 고향 마을에 있는 성당 정문 앞에 묻혔다.
그 후 그녀의 유해는 모르셀 성당에 안치되었다가 978년 브뤼셀로 옮겨졌고, 1047년에는 성 미카엘(Michael)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1579년 칼빈주의자들에 의해 그녀의 묘는 파괴되었고 유해 또한 흩어지고 말았다.
그녀의 자매인 성녀 라이넬디스(Reineldis, 7월 16일)는 생트(Saintes)에 살다가 야만족의 침입 때 살해되었다.
성 세베리노 (Severinus)
신분 : 선교사 수도원장
활동지역 : 노리쿰(Noricum)
활동연도 : +482년
같은이름 : 세베리누스 쎄베리노 쎄베리누스
노리쿰(도나우 강 남부와 오스트리아 중부 및 바이에른의 일부를 포함한 지역의 로마 시대 명칭)의 사도로 알려진 성 세베리누스(또는 세베리노)의 출생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때 동방의 모처에서 수도자였음은 확실하다.
453년 이후 성 세베리누스는 오스트리아의 노리쿰에 정착했는데, 이곳은 이방인들의 본거지였다.
그는 도나우(Donau) 강을 따라 비엔(Vienne)에서부터 파사우(Passau)에 이르기까지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파사우와 파비아네(Favianae)에 최초로 수도원들을 세웠다.
그는 특히 훈족의 족장인 오도아케르(Odoacer)의 존경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후에 그의 유해는 이탈리아로 옮겨져 나폴리(Napoli)의 산 세베리노(San Severino)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가끔 대 환난 시기에 성인을 보내시어 백성들의 영적 지도자를 삼고, 그의 표양과 행위로 인해 많은 이들을 멸망에서 구하시며, 영육간의 고민을 풀어 주시고, 그들의 신앙과 도덕을 보존케 하고 견고케 하려고 하시는 때가 있는데, 성 세베리노도 역시 이와 같이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중의 하나였다.
때는 5세기의 중엽 지금의 오스트리아 지방의 사방에서 야만족의 침입을 받고 대단히 위험한 상태에 있었을 때, 뜻밖에 천사와 같이 나타나 말과 행실로써 사람들에게 고행과 사랑을 권하고 또한 끊임없는 노력으로써, 오스트리아(당시의 노리쿰)를 야만족의 손에서 구해낸 것이 성 세베리노였다.
그러나 이 거룩한 사제가 어디서 탄생했는지, 또 그의 고향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것은 섭섭한 일이다.
언젠가 그것에 대해 누가 물으면 "하느님의 일꾼에게 고향이나 형통의 이야기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한 것은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위험한 교만 죄에도 떨어질 염려가 없을 것입니다.
잘난 체하거낭 교만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써 어떠한 선행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다만 천국 사람중의 하나가 되력 하는 것 외에는 하등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고향같은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하고 대답했다 한다.
다소 판명된 것은 그가 잠시 동양에 이주(移住)하고 있었다는 것뿐이다.
세베리노는 엄격하고도 거룩한 생활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엄동설한에도 언제든지 맨발이었다.
음식은 하루종일 조금도 취하지 않을 때도 가끔 이었다. 그의 복장은 누추했고, 그의 조그마한 오막살이는 갈대와 진흙으로 만든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대부분 집에 있지 않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기도와 보속과 자선을 가르치며 권면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하나 구하지 않았으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는 자선을 청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고 사치생활을 하며, 죄악의 생활에 빠져 있는 부자들 진심으로 회개하여 보속을 하라고 권했다.
어떤 때 그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는 하느님의 정의(正義)와 죄에 대한 무서움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언제든지 그의 충고를 받아들이도록 했다.
사제 세베리노에 대한 존경은 점차 높아져 이제는 그의 훈계에 반항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
그는 곳곳에 그리스도교의 축복을 받게 하고 육신상의 자선 사업을 행했다.
어느 곳에 가든 병자를 낫게 하고, 가난한 이를 도와 주었다.
그는 누구에게든지 위로를 주는 사랑이 갚은 아버지였다.
그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공경을 받고 있었던가는 항상 여러 집에서 그를 모시려고 경쟁을 한 사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멈루고 있는 집은 내외의 원수들이 침입을 못하고 항상 평화가 깃들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강복을 받고, 또한 그의 기도로 병을 낫게 해 주기를 원하며, 먼데서 찾아오는 이도 많았다.
어느 날 12년간이나 고통으로 신음하며 전혀 수족을 쓰지 못하는 청년이 마차에 실려 어머니에게 부축 받으며 성인에게 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하고 성인이 물으니까, 어머니는 제발 아들의 병을 낫게 해주기를 열심히 부탁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경건한 세베리노는 이에 대답하기를 "그것은 나로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이는 다만 하느님뿐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좋은 것을 가츠려 드리리다. 당신은 용기를 내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십시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반드시 당신을 불쌍히 여겨 주실 것입니다…"했다.
그 어머니는 마침 자선을 베풀 물건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의 저고리를 벗어서 그것을 성인에게 드렸다.
세베리노는 그의 갸륵한 심정을 보고서, "그 옷은 입으십시오. 그 대신에 집에 돌아가거든 반드시 자선을 하십시오"라고 말한 다음 기도를 바치니
그 즉시 아들의 병은 완치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아주 작은 한 가지 예에 불과하나, 그의 기도에 대한 힘의 위대함을 표시하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그는 482년 1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이 소식을 들은 국민은 누구하나 이 성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