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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 2 - 이시야마데라 가는중 NHK 光の君(광노군) 의 무라사키 시키부를 보다!
2024년 11월 19일 간사이공항에 내려 JR 에서 이코카 카드 ICOCA CARD 를 구입한
후에 특급 하루카 기차를 타고 교토에 도착해 Bus Ticket Center 에서 원데이 패스
(地下鉄パス 1日券 Subway & Bus 1 Day-Pass) 를 구입한후 호텔을 찾아 1박합니다.
다음날인 11월 20일 비와호수 남쪽에 자리한 이시야마데라로 가기 위해 시마바라구치
島原口 (도원구) 정류소에서 207번 버스를 타고 시조가라스마
四条烏丸 정류소에서 원데이패스를 앞쪽 요금상자 구멍에 넣으니 오늘 날자가 찍힙니다.
지하철 시조역 四条 으로 내려가도 되지만 교토 거리를 익힐겸 가라스마거리(烏丸通 오환통)
를 북쪽으로 6블럭을 걸어 가라스마오이케역 (烏丸御池 조환어지) 에 도착해
원데이 패스를 사용해서는 황색인 도자이센(東西線) 로쿠지조(六地藏) 행 지하철에 오릅니다.
5 정거장 째인 미사사기(御陵 어릉) 역에서 내려서 지상으로 올라가 사철 (私鐵)인 게이한
게이신선 (京阪京津線) 전철역으로 가기위해 지하철 출구 게이트를 빠져 나왔는데
아무리 보아도 게이한역이 보이지 않는지라 게이트 안에 앉아있는 역무원에게 묻습니다.
게이한역이어디냐고 물으니 방금 우리가 나온 곳으로 다시 들어가서 내려가서는 4번 노리바에서
타랍니다. 이제는 구멍에 넣는 원데이 패스가 아니라 둥근 원에 터치를 하는 이코카 패스를
사용해야 하는지라 터치를 하고는 안으로 들어가니 울 마눌은 터치를 하지 않고 그냥들어옵니다.
아니 터치를 해야지? 그러자 푼돈에 민감한 마눌이 조금전에 나왔던 곳을 들어가는데 왜 다시 터치를
해야 하냐며 고집을 피우다가는 돈을 아낄려고 이코카 카드가 아닌 원데이 패스를
게이트에 넣고 들어오기로... 나중에 틀림없이 사단이 생길 것이라 말하고는 지하 2층으로 내려갑니다.
노리바 4번을 찾아 오쓰로 가는 전철에 오르니 곧 지상으로 올라가서 동북쪽으로 달리는데 마치
옛날 시가지 전차 같으며.... 여기 집들은 주로 목조 가옥으로 하도 오래된자라 참 낡아
보이는데.... 전철은 15분 만에 6정거장째인 비와호 하마오쓰(浜大津) 에 도착하는지라 내립니다.
이코카 패스를 출구 게이트에 찍는데..... 아니나 다를까? 울 마눌의 패스는 에러가 납니다.
해서 개찰구 옆에 역무원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는 울 마눌이 지하철로 미사사기에
내려 이코카 카드를 찍지 않고 바로 전철에 탔다고 말하니 전철 요금 230엔을 내라고 합니다.
마눌은 미사사기역에서 그냥 전철을 타면 공짜라고 생각했던 것인데.... 다시 생각해 보니 지하철에서
내려서 지상으로 나가지 말고 바로 전철을 타고 여기 하마오쓰 역에 내려 정산기에서
330엔 티켓을 발급받아 그 종이 티켓을 개찰기 구멍에 넣고 나가는게 가장 편리한 방법인가 합니다.
하마오쓰(浜大津) 역에서 다시 개찰기에 이코카 카드를 찍고는 역 안으로 들어가는데 울 마눌은
이번에도 이코카 카드를 찍지 않을려고 하기에, 찍지 않으면 이시야마역에 내려서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또 다시 겪어야 한다! 그리고 찍어도 패스의 금액은 현재
금액 그대로이고 도착해 나가면서 찍는 때만 돈이 빠져나가니 안심하고 찍으러고 설득을 합니다.
전광판에서 시간을 확인하고는 게이한 이시야마 사카모토선(石山坂本線) 으로 환승
하는데 여행계획서 에는 10시 46분 이시야마데라(石山寺)행 전철을 타면
11정거장을 가서...... 종점인 이시야마데라 (石山寺) 에 도착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마눌은 조금 전에 카드를 되풀이 찍은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뾰루퉁한게 불만인 모양인데
예전에 간사이공항에서 귀국할 때 돈키호테에서 산 큰 미용 크림을 수하물로
부치지 않고 가방에 넣어 들고나가다가 보안수속에서 걸려 모두 압수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 상대방 공항 직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데 마눌은 늘 자기 입장에서 생각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 크림의 경우 수하물은 직원들이 함부로 집어 던지니
부숴지거나 깨질수 있으니 안전하게 가져가기 위해서 가방에 넣어 들고 비행기를 타려는 것이지요?
드디어 이시야마데라역 (石山寺駅) 에 도착해서 나가서는 도보로 10분이 걸린다는 이시야마데라
절로 가기 위해서 역 앞에 안내판을 살펴 보는데 여긴 특이하게도 깃발이 많이 걸려 있습니다.
왼쪽에 비와 호수로 흘러드는(혹은 흘러 나오는?) 강을 끼고 내려가면서 보니 깃발에 그려진
여인의 얼굴이 낯이 익어 자세히 보니 바로 겐지이야기를 쓴 그 무라사키 시키부 입니다?
그런데 깃발이 하나 둘도 아니고 도로를 따라 계속 걸려 있어 살펴보니 바로 1년에 한편씩 대하드라마
를 반드시 제작하는 NHK에서 금연 대하드라마가 바로 겐지이야기인 光の君(광노군) 인데
무라사키 시키부가 여기 이시야마데라 절에 머물면서 겐지 이야기를 구상해 집필했기 때문인가 봅니다?
몇 년전에 교토 남쪽에 우지(宇治) 시에 가서는 우지바시(宇治橋) 다리를 건너니 세계 최초의
여류 소설인 “겐지 이야기” 의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 (紫式部) 의 석상을 보았고
뵤도인과 윤동주 시비에 우지가미신사를 보고 돌아오다가 우지교(宇治橋)
이쪽에 자리한 겐지모노가타리 뮤지엄 源氏物語 博物館(원씨물어박물관) 을 본적이 있습니다.
일본 문학사상 최고의 찬사를 받고있는 11세기에 씌어진 고전 소설 “겐지 이야기” 를
테마로 한 뮤지엄으로 헤이안 시대의 왕조 문화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데,
작가 무라사키 시키부는 일본은 물론이고 전세계에서 최초의 여류 소설가 라고 합니다.
최초 여류 시인 은 BC 7세기 그리스 서정시인 사포 라고 합니다만.... 우리나라는 처용가등
향가(鄕歌) 는 1075년 균여전에 11수와 1281년 삼국유사에 14수등 전부
25수 가 전하는데, 반면에 일본은 759년에 편찬된 만요슈에 노래가 4,516수가 실려있으니!
7세기의 누카다 오키미 額田王(액전왕) 가 빼어난 시인이고 11세기에 무라카키 시키부 는
뛰어난 소설가라? 그리고 한국 최초의 여류 소설가는 20세기인 1917년 월간
종합지 ‘청춘’ 의 현상 작품 모집에 응모한 단편소설 ‘의문의 소녀’ 를 쓴 김명순 입니다.
최남선이 창간한 잡지 ‘청춘’ 에서 이광수가 심사하고 추천해 입선을 시킨 것인데...... 김명순은 일본
유학중이던 19세 때 이응준에게 데이트 강간을 당했으니 이를 소설가 김동인이
왜곡해 소설화 하여 김명순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으니 이 소설이 ‘김연실전’ 입니다.
김명순은 이를 반박하기 위해 소설 ‘탄실이와 주영이’ 를 내놨고 그녀는 보수적인 시대에도 불구하고 성폭행
을 당한 아픔까지도 용기있게 고백했지만..... 김기진이 ‘김명순 씨에 대한 공개장’ 에서 폭행을 당한
김명순에 대해 “성격이 이상하고 행실이 방탕하기 때문” 이라고 언급했으니 아 남자들이여!!! 하나 같이.....
조선 조정이 500년간 한결같이 목숨걸고 지킨게 있으니 바로 “과부재혼금지 제도” 입니다.
남자들은 평소에도 기생을 데리고 놀수 있고 첩을 들여 딴 살림을 차려주며
지방에 사또로 내려가면 관기들을 데리고 잘수 있으며 이혼과 재혼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여자들은 과부가 되면 나이가 젊어도 재혼을 할수 없으며 아이가 없어도 시댁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늙어 죽어야 하는데, 사주단자만 받은후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채 신랑이 죽어 얼굴조차 한번
본적이 없어도 역시 평생 수절이 강요되던 시절이니 문단에 속한 남자들이 모두 저런 태도를 보인 것이지요?
500년간 이어진 과부재혼금지제도가 무느진건, 1894년 동학농민봉기가 일어나자 청군에 이어 들어온 일본군
은 고 아베 신조총리의 외고조부 오시마 요시마사는 경복궁을 공격해 고종을 포로로 잡아 조선군 항복을
받은후에 김홍집 '친일내각' 을 세워 이노우에 공사가 훈수해 과부재혼 금지제도를 폐지하니 "갑오개혁" 이라?
아울러 조정과 왕실 회계를 분리하고 6조를 8아문으로 고치며 과거제 폐지, 조세금납화, 도량형을 통일
하며.... 사법을 행정에서 분리해 재판소를 설치하면서 연좌제를 폐지하고 사노비 제도 폐지와
매매금지, 반상의 신분차별철폐, 천민의 해방, 학교 설립, 태양력 사용, 종두법 실시, 답발령을 시행합니다.
일본은 794년 나라에서 도읍이 헤이안경(교토) 으로 옮겨진 100년후 894년에 당나라에서 안록산의 난과
한반도 후삼국 혼란이 지속되자 문물의 수입창구로 수십차례 대륙에 파견해 왔던 견당사를 폐지하고
국내로 눈을 돌려 국풍이 일어나니... 그중에 겐지 모노가타리 源氏物語(원씨물어) 같은 소설 이 출현합니다.
겐지이야기는 11세기초 무라사키 시키부 紫式部 에 의해 성립한 세계 최고(最古)의 근대
소설로 당대의 이상적 남성상인 히카루 겐지(光源氏) 의 출생과 시련, 그리고
영화와 죽음 에 이르는 과정을 담고 있으니 중국으로 치면 홍루몽(紅樓夢) 에 비길만 합니다.
무라사키 시키부 는 하급 관료인 아버지 후지와라노 타메토키의 딸로, 역사상 가장 오래된 소설중 하나
인 "원씨물어(源氏物語)" 의 저자 인데.... 어머니는 하급 관료인 후지와라노 타메노부의
딸이니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이동하며 생활했는데, 학자이기도 한 아버지에게 한학 을 배웠다고 합니다.
생몰 연도는 970년에서 973년 사이에 태어나서 1014년에서 1025년 사이에 사망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집안이 대 귀족 후지와라 가문이고 아버지가 관직을 역임한 것으로 보아, 당시에는 토우노 시키부
(藤式部) 라고 불렸을 것으로 보이며, ‘무라사키 시키부’ 라는 이름은 그녀 사후에 붙여진 것이라고 합니다.
‘무라사키’ 는 "원씨물어" 의 여주인공 무라사키노 우에 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그리고 ‘시키부’ 는
아버지 관직명, 즉 대학료를 통괄하는 식무성의 식무대승 이라는 명칭에서 유래했다는데....
귀족의 자녀일지라도 여자에게는 가나(문자) 와 와카(일본 고유 형식의 시) 정도만 교육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딸의 재능 을 알아본 아버지는 무라사키에게 한문 까지도 가르쳤습니다.
그녀는 998년에 나이 차가 상당한 지방관 후지와라노 노부타카와 결혼 하여 슬하에 1녀를 두었다고 합니다.
결혼한지 3년후 1001년에 유행하던 전염병으로 인해 남편이 사망 했다고 하는데..... 여러 이유로 그녀
의 결혼생활은 원만하지 못했으니, 남편과의 부부 싸움을 노래로 읊은 것이 지금 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편과 사별한후 무라사키는 "원씨물어" 를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에 대한 평가가
높아서 1005년 이치조왕(천황)의 부인 후지와라노 쇼시의 가정교사 일을 시작하여
대체로 1018년까지 지속했다고 하며 무라사키의 남편은 노부타카라고 하는 것이 통설입니다.
그러나 이론도 존재하니 예로 『권기(権記)』 의 기록에 의거하여 노부타카와 결혼하기 전에 키노 토키부
미와 결혼했다고 하는 주장도 있으며 또한 가마쿠라 시대 공가(조정의 귀족) 의 계보를 집대성한
"존비분맥(尊卑分脈)" 에 의하면..... 그녀가 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첩 이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많은 여성과의 다채로운 연애 와 겐지 사후에 후세들이 경험하는 삶의 갈등 을 그리고
있는 모노가타리 문학으로 헤이안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니 ‘아와레’
문학의 백미 라고 불리며.....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いづれの御時にか、女御、更衣あまたさぶらひたまひけるなかに、いとやむごとなき際にはあら
ぬが、すぐれて時めきたまふありけり。はじめより我はと思ひ上がりたまへる御かたがた、
めざましきものにおとしめ嫉みたまふ。同じほど、それよし下らふの更衣たちは、ましてやす
からず。朝夕の宮仕へにつけても、人の心をのみ動かし、恨みを負ふ積りにやありけむ、いと
あつしくなりゆき、もの心細げに里がちなるを、いよいよあかずあはれなるものに思ぼして、
"어느 덴노의 치세였던가. 뇨고· 고이가 시중들고 계신 분 중에 그다지 고귀한 신분은
아니지만 아름다워 특별히 총애 를 받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이야말로
사랑받을 만한 여자’ 라고 자부하고 계신 분들은 어이가 없다 하여 멸시하고 질투 하신다"
"같은 정도의 고이나 그보다 낮은 신분의 고이들은 더더욱 마음이 편치 않다. 아침 저녁 미카도를 시중들때
마다 그녀들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여 원망을 받는 일이 쌓이고 쌓인 탓인가. 매우 병이 깊어져
가엾게 친정에 돌아가는 일이 잦아진 것을, 미카도 는 점점 더할 나위 없이 그리운 사람으로 생각하셔...."
"여류 문인 무라사키 시키부 (紫式部) 는 973년생으로 "겐지모노가타리" 외에 "무라사키시키부닛키" 와
가집 "무라사키시키부슈" 등 작품을 남겼으니.... 어릴 때부터 한문 서적과 불전, 음악 등을 배웠는
데.... 997년 후지와라 노부타카와 결혼하여 1녀를 얻지만 남편과 사별하고는 겐지모노가타리 를 썼다."
"겐지 모노가타리 는 54권으로 구성 되어 있으니 주인공 히카루 겐지 ( 光 の源) 의
출생에서 연애, 영화, 만년에 이르는 일생 을 다루는 '기리쓰보(桐壷)'
에서 '구모가쿠레'까지를 정편이라 하며 겐지 사후의 이야기를 속편 이라고 한다."
"특히 속편 중에서 무대를 우지(宇治) 로 옮겨 그의 자식 대인 가오루 와 손자인
니오우미야 를 중심으로 그리고 있는 부분을 ‘우지 쥬죠(宇治十帖)’ 라고 한다."
• 제1부 : 히카루 겐지 가 고마노 소닌(高麗の相人)의 예언대로 쥰다이죠덴노(准太上天皇)
에 올라 최고의 영화를 누리는 약 40년간의 시기로, 후지쓰보(藤壷)
중궁 과 무라시키노 우에(紫の上) 를 비롯하여 많은 여성과의 교섭 이 그려지고 있다.
• 제2부 : 부나 지위와는 관계없이 인간 내면의 고뇌 를 중심으로 히카루겐지
의 만년 이 그려지고 있다. 「구모가쿠레」권은 권 명만 존재한다.
• 제3부 : 교토를 떠나 우지를 무대 로 히카루겐지의 후대 인 가오루와
니오우미야, 그리고 우지의 하치노미야의 딸인 오이키미(大君)·
나카노키미 (中の君)· 우키후네 (浮舟) 의 남녀 관계 가 그려지고 있다.
"4백자 원고지 2,600장 에 이르는 장편으로 인생의 무상함이나 자연의 아름다움 을 접하여
생기는 절절한 감동이나 정취를 말하는 모노노아와레 (もののあはれ)’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으며 가나 문장의 모범적인 문체를 완성시킨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헤이안 시대의 미의식에는 ‘오카시(をかし)’ 와 ‘아와레(あはれ)’ 가 있으니 ‘아와레’ 는
깊은 공감과 우미한 정감 을 말하며 "겐지모노가타리" 가 대표적 작품이다.
‘오카시’ 는 강한 흥미를 일으키는 미적 감각으로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가 대표적이다."
대 귀족 후지와라씨(藤原) 집안(아버지, 어머니에 남편이 후지와라) 의 무라사키 시키부
紫式部 는 당시 일본의 독특한 취미 이던 "40가지 향의 냄새"
를 맡는데 일가견이 있었으니.... 茶道(다도) 와 더불어 香道(향도) 가 성행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10분 이상을 걸어서 드디어 이시야마데라 (石山寺 ) 에 도착해 500엔 입장료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는데..... 길 양 옆에 등이 설치되어 있으니 그림과 글자를
보니 모두 겐지이야기에 나오는 한 장씩으로 시간만 있으면 하나하나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