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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우리 천관지 9월호에 실을 원고인데..
김새잖어
회진 뱃사공 이야기
이제석(회진, 대덕중24회, 010-5115-7727)
우린 가끔 TV나 언론을 통해 다른 지방의 뱃사공에 관한 사연들, 특히 큰 강을 끼고 있는 뱃사공에 관한 이야기들을 접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난 TV나 신문에 나온 강가주변의 이야기 보단 우리 회진지역의 해변가 뱃사공에 대한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 1965년도에 회진반도와 덕도를 연결하는 간척사업으로
덕도라는 섬이 육지가 되면서, 지금은 사라지고 잊혀져 버린 회진 뱃사공에 대한 추억과 사연들을, 어르신들의 증언을 토대로 해서 회진지역의 역사적인 현장들을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한다.
회진반도 건너편에는 덕도라는 섬이 있다. 덕도에는 덕산, 장산, 대리, 신상, 신덕리 5개 마을과, 장흥군에서 유일한 유인도인
또 다른 섬인 노력도가 있는데
현재 약 1,500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간척사업이 완공되기 전 까지 덕도지역 사람들은 육지로 나오는 길은 현재 덕산 수문통인 덕산나룻터에서 예전 회진 미광다방이 있던 근방의 회진나룻터까지 나룻배를 이용 해서 나올 수 있는 방법 밖에 없다. 물론 물이 빠진 썰물 때는 대장간이 있었던 덕산노두머리 에서 삼산노돌목까지 돌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인 십리 노둣길이 있었지만 말이다.
그때 당시의 나룻배 사진이라도 한 장 있으면 좋으련만 사진이 없어 나룻배를 이용했던 어르신 들의 증언을 토대로 나룻배의 형태를 참고로 먼저 그려보자.
배의 길이는 약 6~7m,
폭은 2.5m 이내고, 뱃머리는 ㄷ자형으로 계단이 설치 되어 있어 손님들이 편하게 타고내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배의 양쪽면으로는 손님들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이 설치되어 있으며, 배뒷편인 뱃고물 왼편에는 조그마한 놋쇠가 박혀있고 그 위에다 나무로 만들어진 기다란 노를 놓고 손으로 저어서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회진나룻터에서 덕도나룻터로 건너는 거리는 450여m 정도 밖에 안되는 짧은 거리이다.
하지만 협소한 폭만큼 물쌀이 8노트 (14.5km/h)정도의 빠른 유속이라 나룻배가 건널 때는 바로 직선으로 건너지 못하고 갓쪽으로 물쌀을 거슬려 올라 비스듬히 대각선 방향으로 건너는데도 나룻터 지점에서 100여m 이상 떠밀려 내려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물이 세게 빠지는 썰물때에는 덕산나룻터에 접안해야 될 나룻배가 장산리 뻘등까지 밀리기도 하고, 물이 많이 들어온 밀물때에는 회진나루터에 접안 해야 될 배가 작은북리 앞에 있는 똥섬까지 떠밀려 갈 때도 있다.
나룻배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날은 대덕장날이다. 대덕장날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룻배를 서로 먼저 타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들기 때문에 뱃사공은 삿대로 물장을 쳐서 더이상 배에 못오르게 제지한다. 나룻배의 승선인원이 특별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로지 선장의 직감적인 판단에 따라 승선인원 이 정해진다. 배에 승선해서 얌전히 앉아있지 않거나 장난을 치는 사람들은 험한 욕설을 듣거나 바닷물 세례를 받기도 하고,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은 삿대로 맞는 경우도 더러 있다. 선장의 난폭한 행동과 거칠고 험한 욕설을 듣지않고 건너가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배에 탄 사람들은 남여노소 누구나 구분없이 모두다 선장의 말에 절대복종 해야만 한다. 이러한 뱃사공의 거칠고 난폭한 언행은 안전사고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수 십 년 동안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거센 물쌀로 배가 뒤집혀질 뻔한 때도 있고 바닷물에 잠기는 위험한 때도 여러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인명사고는 발생하지 안했다.
그럼 나룻배를 이용하는
삯(요금)은 얼마나 되었을까? 나룻배 삯이 별도로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회진과 덕도지역의 각 가정에서 부담해 내는 현물인 나가시를 일년에 한 두번씩 거두어 주는데, 봄에는 보리쌀
한 되, 가을에는 쌀 한 되 정도 되었으며 보리나 쌀이 없는 가정에서는 볏짚으로 대신 내기도 한다. 볏짚은 매년 가을철이 지나 겨울이 오기 전에 이엉을 엮어 초가지붕을 교체 하는데 농사가 없는 뱃사공에게 꼭 필요한 물품이다. 그리고 외부에서 온 손님들은 현금을 주고 나룻배를 이용한다.
이와 같이 덕도지역 주민들은
뭍으로 나오는 유일한 교통수단 인 나룻배와 뱃사공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 등 애증이
교차 하는 여러 추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덕도주민들이 뱃사공에 대해서 정말로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한 사건들은 따로 있었다.
1894년 갑오동학혁명 때 장흥석대뜰에서 관군에게 패한 동학농민군 500여명은 물이 빠지고 없는 썰물 때를 이용해 삼산노돌목에서 덕산노두머리로 난 십리 노둣길을 따라 피신했고, 일부는 회진에서 나룻배를 이용하여 덕도까지 피신을 했는데, 관군은 피신해온 농민군을 검거하기 위해 덕도를 건너려 하면 뱃사공은 몸이 아프다거나 술에 취해서 건널 수 없다는 등 여러 이유를 대면서 시간을 지체시키거나 건네주지 안했다.
일제 강점기 때에는 성암 김재계 선생을 비롯한 덕도 지역에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이분들을 검거하기 위해 일본순사들이 덕도를 건너려 할때도 뱃사공은 알게 모르게 덕도주민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뱃사공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연기를 피우거나 깃발로 신호를 보내 일본순사들 이 와서 덕도를 건너려 한다는 상황을 미리 알려주거나 시간을 지체시켜 피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만들어 주었다.
이와 같이 회진 뱃사공은 덕도지역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편리함을 준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학농민군과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와 피난처가 되도록 도움을 준 숨은 공로자이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 고장의 엄연한 역사적 사실에서 잊혀저 버린 뱃사공의 활동 상황들을 조사하고 발굴하여, 회진과 덕도사이의 중간쯤에 나룻배 모형 위에 뱃사공의 동상이라도 세워놓고 공적을 기린다면,
이것 또한 우리 고장 선조님들의 보이지 않은 숨결이 살아 숨쉬는 삶의 역사 현장이 되고, 우리 지역의 문화 관광자원이 되지 않을까 염원해 본다.
2016. 8. (회진을 ♥하는 사람 이 제석 씀)
글속에 나온 마을 중 대리에 판서공파의 파조 판서공할아버지의 유택이 있습니다
그당시에 섬이었는데 왜 이곳에 안장하였을까요?
회진항!
일제 수탈의 역사와
한반도끝!
섬과육지를 하나로 연결했던ᆢ
삶에 애환을 적절하게표현한글
정말 마음깊이
잘읽고 갑니다,
시간여행~~~
감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