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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국제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다큐 사진의 거장인 고 최민식 선생 예술정신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나갈 것인가에 대한 대담에 앞서 참석자들이 잠시 환담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진철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최영철 시인, 신상해 협성문화재단 상임이사. 전민철 프리랜서 jmc@kookje.co.kr |
본지는 지난 2월 영면한 다큐 사진의 거장 최민식 선생의 치열한 작가 정신과 예술혼을 조명하는
기획시리즈를 7차례에 걸쳐 실었다.
지난 8월 5일 최민식 사진상 제정 기사를 보도했으며, 독자들의 관심 속에 연재된 기획 시리즈 결산과 함께
앞으로 최민식 선생의 예술정신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논의하는 대담을 마련했다.
▶일시:2013년 9월 26일
▶장소:국제신문 편집국 회의실
▶참석자
- 최영철 시인
- 신상해 (재)협성문화재단 상임이사
- 이진철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사회 : 박창희 국제신문 편집부국장
- 정리 : 배재한 기자
◇ 최영철
- 100년 후 선생의 사진은 예술사진으로서는 물론
- 역사적 자료로서도 큰 가치를 인정받을 것
◇ 신상해
- 최민식 사진상은 선생의 치열한 작가혼과 정통 다큐멘터리 정신을
- 계승하는 작품을 찾을 것
◇ 이진철
- 최 선생의 스토리 재구성하고 널리 알리되 무리하게 '띄우는' 작업은 경계해야
▶ 박창희 = 지난 시리즈를 통해 최민식 선생을 조명한 것은 대단히 의미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 시리즈를 8회로 일단락 짓고 또 다른 콘텐츠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최 선생과 인연이 있는 분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먼저 최 선생과의 개인적 인연과 추억을 말씀해 주십시오.
최영철 |
▶ 최영철 = 정확히 기억은 없지만 80년대 초반인 1983년께 제가
부산 중앙동 출판사에 근무할 때 선생께서 카메라 메고
왔다갔다 하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실제로 처음 뵌 것은 80년대 초반이지만
자주 만난 것은 90년대였습니다.
선생의 사진 중 외다리 외팔이로 신문을 팔던 소년의 실제 인물을
봤습니다. 한쪽 다리로 중앙동 육교를 뛰어오르는 것을 봤죠.
혼을 빼고 쳐다보며 인간승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최 선생의 사진을 통해 그 분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인간이 갈수록 허약해지고 나약해지는 세상에서 강철같이
뛰어다닌 마지막 인간을 포착하고 기록한 선생의 작가정신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 이진철 = 저는 먼저 간접적으로 책을 통해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1982년 중학교 2학년 시절 영광도서에서
우연히 '인간'이라는 사진집을 들추다가
마치 세상이 멈춘 듯 한 먹먹함에 눈시울을 붉히고 한동안 움직이질 못했습니다.
깊은 감명을 받았고, 예술과 미술의 영역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술이론을 공부하고 시립미술관에서 일하며 2006년 용두산미술관 분관에서 '최민식 사진전'을 준비하면서
선생을 만나고 또 댁을 찾기도 했습니다.
▶ 박창희 = 최 선생은 기증 기부가 체질화 된 분인 것 같습니다.
선생은 인간애의 발로인지 모르지만 사진을 찍어서 남에게 주는데 인색함이 없었습니다.
▶ 최영철 = 저도 최 선생이 찍어준 얼굴사진을 출판사 등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신상해 |
▶ 신상해 = 저는 2000년대 초반 작품을 통해 만났습니다.
사상지역 문화단체를 이끌고 있었는데, 낙동강 사진전을
하면서 선생의 낙동강 작품 사진을 통해서 만났습니다.
초창기 낙동강 사진은 최 선생의 작품이 유일합니다.
▶ 박창희 = 선생이 세상에 남긴 것 중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또 우리가 이런 것은 꼭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견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젊은 작가들은 예술혼 측면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 최영철 = 모든 예술은 당대 기록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을 사진으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선생의 작품은
가치있다고 생각합니다. 100년 지나면 좋은 역사적
자료이자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기록원에서 선생의 사진을 소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이진철 = 예술세계 측면서 본받아야 할 점은, 최 선생이 자신의 이득이나 욕심을 위해 작품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 최영철 = 창작욕의 근원은 자기성취 욕구입니다.
선생께서 평생 작품활동을 한 것은 작가로서도 충분히 존경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 신상해 = 선생의 사진은 일관되게 인간에 대한 배려와 존중, 휴머니즘 인본주의를 추구했습니다.
결국에는 한마디로 열정입니다.
▶ 박창희 = 최 선생은 카메라의 렘브란트가 아니라 카메라의 성인 같았습니다.
가난구제에 대한 신념이 굳세었습니다.
▶ 최영철 = 선생의 작품을 가난에 초점을 맞추는 것 곤란합니다.
고난에 굴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했습니다.
이진철 |
▶ 이진철 = 전쟁의 현장을 찍은 제임스 나트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영화의 표지로 장식됐습니다.
최 선생은 인간을 주제로 자기 삶 전체를 내놓고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누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한 길을
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감동적입니다.
▶ 박창희 = 책을 보면 최 선생은 가난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가난을 고발하고 당국자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 신상해 = '사진은 사상이다'라는 선생의 책이 있습니다.
치열한 작가정신의 표현이지만 사회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비판의식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박창희 = 그렇게 본다면 최민식 사진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안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평가도 사진계와 학계 등에서 다시 한 번 이뤄져야 합니다.
▶ 이진철 = 비판적 시각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습니다. 최 선생을 너무 띄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우리 부산이 가지고 있었던, 부산의 예술가 최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새롭게
재구성되고,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 신상해 = 사진학계에서 사진가 최민식에 대한 탐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은 대단히 아쉽습니다.
다큐사진가 최민식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박창희 = 누가 하겠습니까, 협성문화재단에서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제정된 사진상의 정착과 활성화도 필요합니다.
▶ 신상해 = 올 최민식 사진상 시상식 때 최민식의 사진세계와 예술혼에 대한 주제발표의 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박창희 = 개인의 이름을 걸고 제정한 사진상은 처음 있는 일이죠.
▶ 신상해 = 지금 인터넷에서 뜨거운 관심이 일고 있습니다. 최민식 사진상 만큼은 최 선생의 치열한
작가정신, 정통 다큐멘터리 작가의 혼을 계승하는 사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제1회 최민식 사진상의 모집기간은 10월 18일까지로 연장됩니다.
최종 발표는 11월 5일 입니다.
▶ 이진철 = 올해가 첫 회인 만큼 최민식 사진상 정착방안을 고민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이 공정하고 투명한 과정을 거쳐 수상자로 결정하는가가
이 상 정착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 신상해 = 협성문화재단은 누가 봐도 승복할 수 있는 심사과정을 거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품 응모자의 이름을 완전히 가린 채 블라인드 테스트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 이진철 = 지금 이시대에 다큐 사진가로 생업을 이어갈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시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최민식 사진상이 다큐 사진을 활성화하는 기폭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 최영철 = 협성건업의 정철원 사장은 매년 좋은 작품이 안 나오면 격년제로 시상하되
상금을 두 배로 올리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 신상해 = 이번에 최민식 사진상을 첫 회 실시해보고 호응도를 봐 가며 평가할 것입니다.
▶ 박창희 = 사진상 기금을 마련해 최민식 사진상의 영속성을 담보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 신상해 = 사진상의 영속성을 갖기 위해 우리 재단이 중심이 돼 최민식 사진상 기금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단, 이 상이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합니다.
▶ 박창희 = 최민식이라는 훌륭한 콘텐츠를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 최영철 = 최 선생의 작품 무대가 자갈치입니다. 자갈치 시장 벽면을 통해 최 선생의 작품을 영상으로
만나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신상해 = 지금은 문화 콘텐츠의 시대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자갈치 시장이 더 많은 흡인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 이진철 = 선생의 예술혼을 잇기 위해서는 공공적인 기관이 있어야 합니다. 최 선생의 카메라 앵글은
가난한 사람을 향했지만 최 선생의 인간적 가치와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서는 다소 고급스럽고
품위있는 내용의 자료집, 수준 높은 전시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사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 박창희 = 최민식 선생 작품 속 주인공의 오늘은?
자갈치 시장에서 겁먹은 표정으로 단속반에 끌려가는
아주머니는 어떤 모습일까?
외다리 외팔이로 신문을 팔던 청년은 오늘 어떤 모습일까?
이렇게 몇 분을 찾아 한자리에 모아 이야기를 듣는 것도
의미있을 것입니다.
▶ 이진철 = 재미있는 아이디어입니다.
▶ 최영철 = 타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식어가는 시대, 이번 최민상 사진상 제정이 우리 지역과 동시대의
거장을 기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신상해 = (가칭)최민식기념사업회 등 공공적 공동체 결성도 필요합니다. 최민식 사진상 등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기념사업회가 있어야 최 선생의 예술혼을 기리는 작업도 탄력 받고 관련 사업도 지속성이
담보될 것입니다.
▶ 이진철 = 최민식 선생이 욕심 없이 50년 이상 작품활동을 했다고 해서, 평생 가난한 사람을 탐구하며
가난하게 살았다고 해서 최 선생님에 대한 예우와 평가가 낮춰지거나 남루해져선 결코 안 될
것입니다.
※ 공동기획: 재단법인 협성문화재단,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