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 교회와 바울을 괴롭혔던 율법주의의 가장 큰 도전은 할례였던 것 같다.
아마도 바울 자신이 아닌 바울을 따르는 사람들, 그와 함께 있는 이방 사람들에 대한 요구였을 것 같다.
할례는 해도 되고 안되는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보다 더 중요한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흠이 있고, 연약함이 있다. 바울도 육신의 연약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은 갈라디아 교회가 그를 위해 눈이라도 빼주고 싶을만큼 아끼고 사랑하도록 했다.
연약함이 극복된 것이다.
무할례 역시 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은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을 즐거워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할례로 인한 도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의 지배 아래 있지 못한 삶의 증거에 불과할 것 같다.
연약함, 상처, 과거의 죄악 등 모든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려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는 바울의 고백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중요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씀으로 들린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는 더 이상 어떤 내적 치유 과정도 중요하지 않다.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붙잡고, 그 분이 내 안에 사시면서 나를 지배하고, 다스리신다는 이 중요한 한 가지 사실만이 중요할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 붙잡히지 못한 인생이 계속해서 자신의 과거에 집착할 뿐이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녔는가?
그렇다면 누가 뭐라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그 은혜만을 위해 달려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