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내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우울증에 대해 썼을 때
산후 우울증이라는 것은 서구 사회에서 요란했었지만
어린이 우울증이라는 말은 없었다.
우리네 경우에는 산후에 엄마들이 제일 호강하는 때이고,
가족관계가 단단해 산모 혼자 내버려두지 않아 오히려 편하고 즐겁게 지내는데,
뿔뿔이 지내는 '개인 행동 단위'의 서구인들은 산후에 혼자 지내는 것이 보통이어서
그들에게는 우울증이 심할 수 있다고 여겼다.
우리는 오히려 가까운 이들과 분리되지 않아 (중요한 사람을 '포함하는 행동단위' 때문에)
가까운 이들과의 분리가 되지 않아서
포함한 사람들의 문제를 짊어지고 살며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고 봤다.
보기를 들어 대입 준비하는 아이들을 둔 우리네 엄마들이 우울증에 걸린다는 것을
서구 엄마들의 경우와 비교해서 연구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창 한 없이 즐겁게 놀아야 할 어린이들이 우울하다니!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그 수렁에서 헤어나게 해 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울증은 자기 답게 살지 못하게 하는 아주 고약하게 나쁜 증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이 무기력하게 끌려다니거나
바깥에서 몰아가는 힘에 휩쓸려서 삶의 흥미을 잃어서는 안되고
각기 자기다운 '솔선'의 (initiative) 덕목을 활발히 살려 살아야 하니까...
우리는 수요모임, 심리학 교실, 연구 모임에서 우리 자신을 늘 살펴,
우리의 문제를 찾아내고,
바꾸고 고치고,
자라고,
영글어 가려 애쓰고 있다.
늘 그래왔듯이 지난 수요모임에서도 요즘 하고 있었던 놀이 시기의 우리를 되돌아보고,
무엇이 문제였고,
어떻게 마음을 고쳐먹고,
삶의 방향을 바로 잡을까 함께 심각하게 궁리해 봤다.
그런데 마침 오랜만에 온 한 '니'가 아주 중요한 자기 이야기를 했다.
어렸을 때 온 동네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이나 소포를 전달해주는 우체부가
모두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것이 고맙고 좋아서,
자기도 커서 우체부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얼마나 아이다운 귀한 생각인가!
그런데 어머니에게 말씀드리니 어머니가 안 된다고 딱잘라 막으셨다고 한다.
집안을 온통 혼자 돌보셔야 했던 어머니는
자신과 달리 딸이 자라서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으셨을까?
딸의 앞날 인생 길을 당신의 삶과 따로 독립해 구분하고
딸이 원하는 대로 자신과 다르게 살기를 응원해주실 생각을 우리네 어머니들은 못 하신다.
사랑하는 딸의 삶을 당신의 삶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셨으니 말이다.
우리는 이렇게 '포함 단위'로 구분없이 겹쳐서 살아가고 있다.
아이답게 우체부로 꿈을 시작하지만,
자라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
이해깊은 사랑을 나누어주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작가나 언론인이 될 수도 있고,
문제를 풀어주고 힘을 나누는 교육자나 복지사가 될 수도 있을거라 여기면,
힘들게 발 품만 파는 듯이 여겼던 배달부로 너무 힘에 겹게 살 것이 안타까워 못하게 막기만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니 따님도 어머니의 생각과 달리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며 살 생각도 못하고
그냥 접어버리고 만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다른 '니'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어머니들 사랑으로 자랐다는 걸 깨닫는다.
어머니들은 자신의 경험에서 쌓아온 지혜로 딸을 가르쳤고,
딸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기회도 가지지 못한 채
엄마의 말만 따르고,
마치 꼭 지켜야 할 진리라도 되는 양 순종하며,
자신만의 다른 생각도 하지 않고 다른 길을 찾아 갈 엄두도 내지 않았다.
물론 시행 착오도 있어서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어른들도 아이다운 생각을 무시했을 수 있고,
때로는 아이답게 표현한 것이 엉뚱하게 거짓말 같이 되기도 했고,
이해 받지 못하니 주눅 들어 걱정으로 쌓여 늘 불안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아야 하는데,
제대로 이해 받지 못하는 것 같아 눈치만 보게 되었을 수 있다.
우리 모두 다 다르게 태어난 다른 사람이니,
당연히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것을 원하고,
다르게 표현하고,
다르게 다른 사람을 알아가며,
갈등도 하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되며,
그러면서 보람되게 이웃과 살아가는 것을 익히는 거다.
그런데 우리네 아이들은 엄마 말 잘 듣기 부터,
(그래야 착한 아이, 순한 아이 소리 듣지.)
동네 어른들에게 인사 잘 해야지,
(그래야 예의 바른 아이 소리 듣지.)
유치원 학교 가서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지,
(그래야 교육 잘 받았다 칭찬듣고, 벌 안 받고 모범생 되지.)
우리 세상에서 알아주는 대학교의 돈 잘 버는 전공과에 들어가야지,
(그러니 한 길에서 온 국민이 경쟁을 해야 할 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과 서로 알아주며
서로 달라도 사랑하며 살기를 포기한다.
어떻게 다 다른 사람인데
똑 같이 살아야 한다고 좁은 틀 안으로 밀어 넣으려고만 하는 걸까!
그러면 이 길에 걸맞지 않는 많은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어 할까!
서로 다를 기회를 가지면,
경쟁하지 않고 자기와 다른 동무가 얼마나 신통해 보일까!
어떤 문화에서는 '괴짜'가 흠이 아니다.
통상의 특징 없는 사람이 오히려 인기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하는가!
나는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전공과에 입학해서 공부해 본 적이 있다.
그 때는 (1958년) 대학 가는 것이 별로 힘들지 않았다.
내가 가려던 연세 대학은 그 때 입학시험도 따로 보지 않고 고등학교 성적으로 뽑았다.
학원도 없었던 때 였으니 맹렬히 공부하지 않아도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공부 시간에 책상 밑에 소설 책 놓고 읽을 수 있었던 때였다.
의예과와 의과 대학 본과에 가서도 꽤 잘 해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생리학, 생화학 실험시간이면 주사기로 정맥에서 피를 뽑아 실험을 해야 했다.
그런데 나는 한 해 동안 한번도 친구에게 팔을 내밀기만 했지,
친구의 팔에 주사기 바늘을 찌르지 못했다.
찌르려 들면 주사 바늘이 아주 굵어 보이니 할 수가 없었다.
친구가 "안 아파 그냥 해 봐!" 해도 나는 찌를 수 없었다.
그러고 본과 2학년이 되니,
성적은 잘 나왔지만
무의촌에 가서 일하는 의사가 되려는 마음 만으로 의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냥 해도 될까?
그 때 마침 루쏘의 에밀을 읽었다.
우리네 아이들을 각자 건강하고 복되게 기르자!
몸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마음 건강도 중요하다!
이렇게 마음 먹고 마음 공부하기로 하고,
두 해 손해보면서 전공을 바꾸었다.
내 친구 현증이는 나보다 현명하게 더 빨리 의예과 한 해만 하고 자신의 길을 바꾸었다.
지금도 나를 제일 잘 봐주는 친구이다.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가 먹은 마음을 뭐라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받아주셨다.
그 동안 낸 등록금 아깝다, 시간 허비 한 것 아깝다 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런 기회를 더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초등학생 때 부터 의과대학 갈 준비를 한다니!
기막힌 일 아닌가!
학교 공부하면서 친구들과 잘 지내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잠자는 시간을 아끼며 학원에 다녀야 하니,
악몽이 따로 없다.
자기답게 살고 싶은 미래의 꿈이 따로 있나?
어른들이 정해준 직업이 자신의 생생한 삶을 살려줄 것인가?
아예 어른들이 정해준 각본대로 꼭두각시 되어 살려니,
우울해진다,
희망이 없는 상태 (hopeless),
힘이 없는 상태 (helpless)가 우울한 것이다.
똑 같은 틀 안에서
똑 같이 경쟁하라면
아이들이 우울해질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극 소수 몇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것에 걸맞아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모두에게 맞는 길이 아닌데 모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니 문제이다.
그러나 다양한 꽃이 풍성하게 활짝 핀 꽃밭처럼
풍성하게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을 그려보며
우리 어른이 바뀌고
우리 문화를 바꾸면
어린이 우울증이라는 말은 없어질 것이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을 우리 함께 꿈꾸고 실현해 보자.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사람하는 것이 우리 중심 과제이다.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제대로 사랑하는 것임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못할까?
우리가 잘못된 욕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같은 길을 가야한다고 믿는 것이 잘못이는 것을 깨닫자
잘못된 가치를 믿고 있다는 것을 참회하고 우리 삶을 바꾸기로 하자.
우리 사회가 중요하다고 믿는 것이 아이의 특징 살리기를 방해하고 있다.
보기를 들어 만능이라도 된다는 듯 요즘 힘을 쓰는 AI에 대한 태도도 그 중 하나다.
사람의 머리가 건강하고 사람답게 다양하게 자랄 기회를 방해하기만 한다.
사람답게 넘어지기도 하면서,
털고 일어나 걷기도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다투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면서,
위로 받기도 하고,
위로 하기도 하면서,
풍성한 마음으로 같이 사는 세상을 만들면 될 것이다.
바로 건강한 마음으로 사는 착한 세상이 되면
어린이 우울증은 사라질 것이다.
ㅁㅇ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