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 찰스 다윈
조금은 차원이 달라 보이는, 이런 두꺼운(655쪽) 책을 읽겠다고 마음먹는 데는 내 나름대로 독서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맹자, 톨스토이, 니체와 같은 반열에 올릴 수 있는 인물이 ‘찰스 다윈’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찰스 다윈은 1809년 영국에서 태어났다 . 올해로 탄생 217주년을 맞는다. 『종의 기원』이라는 이 책은 1869년 발표했으니, 발표된 지가 167년이 지났다. 그는 73살까지 살았고, 올해로 죽은 지가 144주년이 된다. 아마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그가 존경스러운 이유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고, 가장 똑똑하다고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것이 살아남는다.”
요즘은 누가 뭐래 해도 간단명료한 것을 좋아한다. 구질구질하다면서 핀잔주기를 여사로 하고, 오래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핵심을 빙빙 돌린다며 짜증을 내고, 핵심만 말하라고 한다. 그러나 19세기 다윈이 살던 시대는 지금과 달랐다. ‘신의 섭리’라는 신비로만 얼버무렸던 자연 세계의 정교한 기능들을 ‘자연선택 이론’즉 ‘知的’이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것은 이전까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이론이었다. 『종의 기원』이 없었다면, 인류는 자연 세계의 정교함에 대해서 아마도 까막눈이었을지 모른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신이 완벽히 자연계에서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온갖 생명체를 촘촘히 심어 놓고,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다져 온 ‘존재의 대사슬’이자, ‘생명의 사다리’개념이었다. 물론 이 개념들은 다윈이 처음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윈은 “동일한 屬에 속한 종들은 공통 조상으로부터 내려온 것들이 확실하다.”라고 하고, 인류의 오만함에 찬물을 끼얹는 도발을 했다. 그것은 16세기 ‘코페르니쿠스’가 주장한 ‘지동설’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지금, 인간이 지구의 중심에 있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이제 인간은 철저히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 변모되었다. 『종의 기원』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과 더불어 인류 지성사에 혁명을 몰고 온 책으로 꼽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다윈은 과학자 범주를 넘어 혁명적 사상가로 평가받는다. 심지어 어떤 역사가는 “지성의 거두 다윈과 마르크스, 프로이트 중에 유일하게 다윈만이 오늘날까지 건재하다.”라고 했다. 이것이 160년이나 지난 오늘날까지 전 세계 지식인들이 여전히 『종의 기원』에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70 평생 동안 2,000명의 지인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는데, 동식물과 자연 현상을 관찰하던 박물학자*로서 방법론을 자신에게 적용한 것처럼 거의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 모았던 수집가 기질 덕분에 우리는 지금 그의 마음까지를 해킹하고 있다. 그는 20세부터 70세까지 거의 매일 한 통 이상의 편지를 썼다. 그렇게 넓게 소통한 능력은 분명히, 휼륭한 ‘커뮤니케이터’였음을 보여준다.
*博物學者 : 19세기까지 광물, 식물, 동물 등 자연물의 종류, 성질, 분포, 생태 등을 연구하는 사람을 지칭하던 용어였으나, 20세기 들어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지질학 등으로 분화되면서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하 독후감은 따로 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