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5일 신년주일예배 설교문 / 눅 6:39-49 / 제자의 반열에 이르라
할렐루야!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땅에서 생명으로 살아야 할 삶의 도리를 설교하신 평지설교 중 마지막 부분입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17절.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왔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근방에 사는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20절.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셨습니다. 군중의 숫자에 매료되어 예수님을 따르지 마십시오. 군중들은 예수님을 따를 수도, 죽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과 나의 일대일 관계일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유행으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생명을 걸고, 예수님의 제자의 반열까지 이르리라.” 생명은 뿌리를 내려야 열매를 맺습니다. 여기저기 유행따라 산 건너 물 건너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다보면 결국 멸망의 길로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28: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붙잡히게 하시리라
1. 제자는 자기 자신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41절
영의 세계는 눈이 맑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세상으로부터 온 것 세 가지가 있는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육신의 정욕은 결국 안목의 정욕. 즉 눈에 보이는 대로 다 가지고 싶어 하는 유혹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눈이 맑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41절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이 있다는 뜻입니다. 무리(군중)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을 보는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예수를 십자가에.” 다 죽일 사람만 있고, 다 남 탓입니다.
우리 시대 가난의 원인이 사회에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사회를 멸시합니다.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잘못되어 있어서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청년실업, 결혼과 출산, 교육, 자영업자들의 몰락, 지방소멸 등등. 그러나 제3세계 나라에서 대한민국은 기회의 땅이라고 말합니다. 한국 못 와서 안달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신문의 뉴스를 보면 항상 “경제는 어렵고 정치는 혼란이다.” 그래서 그 당시 “사람들 참 힘들게 사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보니 그때가 좋았다는 것입니다. 사회를 보는 눈도 있어야 사회가 발전하겠죠. 사회가 구조적으로 발전해야 하지만 결국 열매를 따 먹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입니다. 즉 자기 자신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영 안에 사는 사람의 특징은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서 자기 자신을 갱신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새 시대에 걸맞은 준비를 할 수 있고 준비가 된 사람들을 통해서 또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 티를 보고 우리 자신의 눈에 든 들보를 생각나게 해야 합니다. 시야가 흐리지 않도록 회개기도 합시다. 이렇게 하였을 때 내 눈의 티가 들보같이 보입니다. 제자는 자기 자신을 보고 시대의 극한 상황을 빨리빨리 넘어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2. 제자는 생명의 변환을 가져온 자들입니다. 43-45절
창세기 3장 이후 사람의 생명은 마귀 생명, 뱀의 생명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생명이 마귀 생명인데 열매를 맺은들 무슨 좋은 열매를 맺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나무는 그 열매로 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과나무 생명은 사과 열매를 맺습니다. 원숭이 생명은 아무리 원숭이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도 원숭이 노릇을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 구절은 생명이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마귀생명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생명의 변환을 이루게 되니
빌립보서 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참됨, 경건, 정결, 사랑, 덕, 기림은 존경을 말합니다. 이런 열매를 맺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회개기도를 통하여 내 눈을 깨끗하게 해서 영의 세계를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어서 예수 생명, 부활 생명으로 거듭난 자가 되십시오. 이것이 제자됨의 기초입니다.
3. 제자는 집을 지어가는 사람들입니다.
46-4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님은 집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서 걱정되어 물어볼 때 “너네 집은 잘 있냐?, 집은 잘 돌아가?” 이렇게 물어봅니다. 집은 존재 자체를 말하며, 돌아가다 즉 일이 잘 되냐는 뜻입니다. 집은 그 사람의 ①존재 자체 그리고 ②일이나 행동.
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초입니다. 기초 공사(주추)를 제대로 하지 않고 흙이나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홍수로 큰물이 나거나 저수지가 무너져 탁류 같은 것이 흐르면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기초공사는 반석 위에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반석은 무엇이죠? 47절 말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 즉 말=말씀을 말합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이란 말씀 위에 지은 집이란 뜻입니다.
우리의 존재가 말씀에 기초할 때 그 기초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합당한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이나 행동이 말씀에 기초한다면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집을 찬송가 204장처럼 “잘 짓고 잘 짓세 우리 집 잘 짓세”가 되려면 합당한 기초는 말씀, 견고한 기초도 말씀입니다. 무리는 유행을 따라갑니다. 제자는 말씀을 따라갑니다.
48-49절 말씀을 보면 큰물과 탁류가 나옵니다. 큰물은 나라가 뒤집힐 만큼의 시험을 말하고 탁류는 이교도 세력이 확장됨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말씀에 기초한 집을 지어놓는다면 나라가 뒤집혀도, 이교도 세력이 기세를 부린다고 하더라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2-13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금이나 은이나 보석은 불이 나도 타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을 금 같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반면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운 집은 상황과 조건만 달라지면 금세 믿음을 팔아먹는 사람을 말합니다. 집의 기초는 견고하고 합당한 말씀 위에, 집의 재료는 금, 은, 보석 같은 믿음으로 지으십시오.
2025년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 큰물이 흘러오고 있습니다. 이단의 세력들은 탁류로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말씀 위에 집을 지어서 합당하고 견고한 기초공사를 하고 금이나 은이나 보석 같은 믿음으로 영적인 나의 집을 아름답게 잘 지어서 주님께 칭찬받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요한복음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도둑은 종교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종교생활하러 오신 분이 있다면 빨리 생명으로 넘어가셔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첫째, 회개기도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영 안에 거하며 둘째, 예수님을 모시어서 예수 생명, 부활생명으로 사는 자가 되어 예수님의 선한 열매를 풍성히 맺는 자들이며 셋째, 기초는 말씀으로, 건물은 믿음으로 아름다운 집을 지어가는 복된 예수님의 제자의 반열에 이르러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2025년 되기를 소망합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