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지음/손성현 옮김/김진혁 해제/포이에마 2018년판
우연한 곳에서 도스토옙스키를 만나는 행운
1
이 책은 원래 읽고자 하는 도서목록에 대개 포함되지 않는 종류의 책이었다.
특히, 신학은 지루하고도 어려운 철학의 한 분야로 여겨, 구미가 동하면 문학작품을 통해 접하는 습관이 있다.
1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새롭게 대두된 전후 피폐하게 변화된 환경을 정신적으로 극복하고자 1921년 경 스위스의 아라우 대학에서 진행된 대학생 총회강연 행사에서 신학자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이 학생들 앞에서 강연한 자료들을 모아 정리하여 발간한 책이다.
책 표지에 ‘도스토옙스키’가 언급되어 있지 않았다면 펴보지도 않았을 책이었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이란 부제가 언급되어 있어 급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떠올렸고, 내용 중 등장하는 ‘조시마’ 장로와 얼마간 관련이 있을 거란, 그것도 흥미롭게 대화형식으로 조목조목 따지는 장면이 연상되며 주의를 끌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2
-무엇이 악마인가? 인간-신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 저편의 하나님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하나님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정신이 다름 아닌 악마다. 하나님을 향하도록 창조되었으며, 그래서 그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하나님에게서 벗어나고자 거인·영웅적인 환상에 도취되어 스스로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거짓말을 형상화한 것이 곧 악마다. (본문 중에서)
3
우연히 발견한 책에서 1902년대 어느 스위스 신학자의 눈으로 본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세계를 따라가 보는 행운을 누린다. ‘도스토옙스키’가 누군가. 그는 대학시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로 며칠 밤을 지새우며 단숨에 읽게 만들었고, ‘신과 인간’ 그리고 삶에서의 인생관 등을 새삼 진지하게 돌이켜보게 만들며 이마를 망치로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준 그 러시아의 대단한 문학 작가가 아니던가.
부끄러운 일은 그렇게나 작가에 대한 관심이 많아 관련 자료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 신도였다는 사실을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4
-조시마 장로가 영혼을 돌보는 일 또한 놀랍게도 부정이라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사람들의 어깨에 놓인 짐을 벗겨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자기 인생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그 문제 속으로 제대로 파고들도록 인도한다. 왜 그럴까? 그는 짐을 지는 것, 인생의 문제 속에서 버텨내는 것이야말로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5
-그는 전혀 다른 요구를 거듭 제시한다. 그것은 어린 아이처럼 되라는 요구이다.... (중략) ...그러나 도스토옙스키가 그려낸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면 어른들보다 뛰어난 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무방비 상태로 인생 앞에 서는 것이다. (중략)
이것이 아직 때묻지 않은 어린이의 본질이다. 어린이가 이런 경탄과 경악과 환희를 잘 간직하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교육의 유일한 목표다... (중략)... 왜 그런가? 그렇게 어린이로 돌아간 사람, 자신을 활짝 열고 깨끗한 양심을 회복한 사람, 내적인 움직임에 자신을 내맡길 수 있는 사람 속에서는 수많은 경탄과 경악을 거쳐 서서히, 혹은 갑자기 가장 위대한 것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그 위대한 것은 곧 ‘하나님에 대한 감각’이다. 이 감각은 어떤 도덕적인 상태나 종교적인 상태가 결코 아니다. 이 감각 자체가 이미 한 조각의 ‘부활’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바로 이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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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암시로 가득하고, 비유로 가득하고, 의미로 가득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이 세상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허무하고 덧없는 요소들 속에서 ‘영원한 본질의 불멸성’이 드러나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인생은 평생토록 그 불멸을 찾아 헤맸던 격정적인 탐구의 여정이었다. (본문 중에서)
그랬다! ‘도스토옙스키’는 평생을 위에 언급한 그대로 ‘신’의 존재를 놓고 인류의 모든 것을 걸어 평생 그 해답을 찾아 열정적으로 탐구하며 살아간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 당찬 포부와 거대한 야망과 압도적 스케일에 젊은 시절 경도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마도 ‘고전’이라는 미명하에 길이 인류사에 명작으로 기억된다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은 영원히 녹슬지 않는 채 그 날카로움을 지성사에 길이 남기리라 여겨진다.
(202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