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ce quarrels with America not because the pair are so different but because they are so alike
프랑스가 미국과 반목하는 이유는 서로가 너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비슷하기 때문이다.
NESTLING in a valley near Aix-en-Provence, Plan de Campagne is a familiar French landscape. A strip of garish hoardings on stalks reaches into the distance. Le Plan Bowling, a 30-alley indoor centre, squats near the El Rancho Tex-Mex grill, a clay-coloured mock hacienda, complete with cactuses and sombreros. Two McDonald's fast-food joints rival Buffalo Grill, where poulet Kentucky and assiette Texane are served under a red roof topped with giant white buffalo horns. All this is ringed by vast parking lots, crammed with gas-guzzling 4X4s. Welcome to France, cradle of anti-Americanism.
엑상프로방스 근처 한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플랑 드 캄퍄느 지방은 프랑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경이다. 쭉 널어서 있는 현란한 지주 광고판은 멀리까지 뻗어있다. 30개의 레인을 갖춘 실내 스포츠 센터인 르 플랑 볼링장은 시골 농장을 흉내 내어 지은 진흙 색 건물 엘 란초 텍스-멕스 구이 식당 근처에는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이 식당은 선인장과 챙 넓은 솜브레로 모자로 장식되어 있다. 두 개의 맥도날드 패스트 푸드점은 버팔로 그릴과 경쟁을 한다. 버팔로 그릴은 커다란 흰색 물소 뿔로 장식된 빨간색 지붕 아래에서 켄터키식 닭 요리와 텍사스 식 요리를 제공한다. 이 모든 장소들은 굉장히 넓은 주차장으로 이름나 있으며, 휘발유를 많이 소비하는 사륜구동 자동차가 빽빽이 들어 차 있다. 반미주의의 요람 프랑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Beyond the Romanesque churches and lavender fields of the tourist trail, France is changing. Slowly, its way of life is beginning to resemble that of the country it loves to hate. Over four-fifths of the French now live in towns or suburbs—more than in America. Less than 4% of the French workforce is in farming. French intellectuals and editorialists may still philosophise in smoke-filled cafés, but their countrymen flock to Hollywood films and devour American brands. American culinary sins—fast food, TV-dinners—are on the rise in the land of gastronomy, and with them child obesity. Yet the more that ordinary French people embrace such American ways, the more the elite seems fixated with an anti-Americanism that runs far deeper than just differences over Iraq. What is it about the French and America?
관광명소인 로마네스크풍의 교회와 라벤다 들판을 제외하고는, 프랑스 전체가 변화하고 있다. 천천히, 프랑스인의 생활 방식은자신들이 혐오하는 미국인의 생활 방식을 닮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프랑스인의 5분의 4는 현재 도시나 도시근교에 살고 있는데, 이는 미국보다 더 높은 수치이다. 프랑스 노동인구의 4% 이하만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프랑스 지성인들과 논설위원들은 여전히 담배 연기가 가득 찬 카페에서 철학적 사색을 할지 모르지만, 평범한 프랑스인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려고 몰려들고 미국 브랜드에 열광한다. 미국식 잘못된 식습관인 패스트 푸드와 즉석 냉동식품은 미식가의 나라인 프랑스에서 증가하고 있는 중이고, 이와 함께 아동 비만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 프랑스인들이 이와 같은 미국 방식을 받아 들이면 받아 들일수록, 프랑스 엘리트들은 이라크에 대한 단순한 견해 차이 이상으로 훨씬 깊이 흐르고 있는 반미주의에 더욱 더 집착하고 있는 것 같다. 프랑스인과 미국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France has no monopoly on anti-Americanism. But no other country gets such scorn from Americans for harbouring the sentiment. France's defiance over Iraq explains much of this today. But that disagreement swelled into an exchange of insults because it drew from a deeper well of American assumptions about the French—their unreliability, ingratitude, superciliousness—that are in turn inspired by the force of French anti-Americanism.
프랑스 만이 반미주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미 정서를 가진 것에 대해서 미국인들로부터 프랑스와 같은 경멸을 받는 나라도 없다. 현재 이 점은 이라크 문제에 대해서 프랑스가 반대 했던 일로 상당 부분 설명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라크에 문제에 대한 의견차로 인해 양국이 서로에게 모욕적인 말을 할 정도로 악화된 이유는, 미국인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프랑스인들은 신뢰할 수 없고, 배은망덕하며, 거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에 프랑스 반미주의 세력은 이러한 생각을 부추킴으로써 이러한 의견차가 생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French anti-Americanism is unlike other European varieties, because it prevails not only on the political left but on the right too. Anti-Americanism in Spain used to be a largely right-wing phenomenon, and the tradition is venerable among right-wing writers in Britain. But only in France has it inspired the most potent strain of right-of-centre politics for nearly half a century. President Jacques Chirac derives most of his support from this tradition, whose champion is still Charles de Gaulle, the president who converted France's dollar reserves into gold and, in 1966, defiantly pulled France out of NATO's military command.
프랑스의 반미주의는 다른 유럽국가들의 반미주의와는 다르다. 왜냐하면 반미주의가 정치적 좌파뿐만 아니라 우파에도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반미주의는 주로 우익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전통은 영국의 우익 성향 작가들 사이에서는 유서 깊은 것이다. 하지만 오직 프랑스에서만 반미주의는 거의 반세기 동안 중도 우파 정치의 강력한 흐름을 고취시켰다. 쟈크 사라크 대통령은 이와 같은 전통에서 자신의 지지기반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전통의 최고 챔피언은 여전히 샤를 드 골 전직 대통령이다. 그는 프랑스의 달러 보유고를 금으로 전화하였고, 1966년에 도전적으로 프랑스군을 북대서양 조약기구, NATO 통합군에서 철수 시켰다.
Some, such as Philippe Roger, the author of “L'Ennemi Américain”, detect an undercurrent of anti-Americanism going back to the denigration of pre-revolutionary America by French thinkers in the 18th century. It reappeared, often as cultural snobbery, in the 19th century, and hardened into contempt in the 20th, most virulently among communists, as American industrial might grew. A rash of publications during the 1920s and 1930s—“L'Abomination Américaine” (1930), “Le Cancer Américain” (1931)—railed against the inhumanity of American life. “Out with the Yankees!” wrote one pamphleteer. “Out with the people and their products, their methods and their lessons, their dances and their jazz! Let them take back their Fords and their chewing gum.” The sentiment has found an echo, especially in the columns of France's national newspapers, ever since. The durability of anti-Americanism prompted Jack Straw, Britain's foreign minister, to call it an ancient French “neurosis.
<미국이라는 적>을 쓴 작가 필립 로제와 같은 일부 인사들은 18세기 프랑스 사상가들이 독립전쟁 이전의 미국을 비하했던 것으로 거슬러 올라 가 현재의 반미주의 정서 밑에 깔린 저의를 찾는다. 이와 같은 비하의 움직임은 19세기에 재등장 하였으며, 종종 문화적 속물근성으로 나타났었다. 20세기에는 미국의 산업력이 커지자 공산국가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게 경멸감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혐오스러운 미국인(1930)>, <암적 존재 미국인(1931)>과 같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잇따라 출간된 책들은 미국적 생활의 비인간성에 대해서 조롱하였다. 한 팸플릿 저자는 “양키 추방!” “미국인, 미국 상품, 미국 방식, 미국의 생활신조, 미국 춤과 재즈 추방! 미국인들이 포드자동차와 껌을 가지고 돌아가게 하자” 라고 썼다. 이러한 정서는 반향을 일으켰으며, 특히 그 이후 전국적으로 보급되는 프랑스 신문의 칼럼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반미주의가 오랫동안 지속되자 영국 외무 장관 잭 스트로는 프랑스의 반미주의는 프랑스의 노이로제라고 불렀다.
Scratch the surface of the denunciations from on high, however, and French anti-Americanism is not quite what it seems. First, because it is an elite doctrine that is often not shared by ordinary people. Second, because it is used by the political class more as a scapegoat for its own troubles than as a reasoned response to real threats. And, third, because it implies that the French clash with America out of antipathy. The real reason is rivalry, tinged with jealousy.
고위층에서 생겨난 미국에 대한 비난을 한 꺼풀 벗겨보면, 프랑스의 반미주의는 액면 그대로는 아니다. 첫 째 반미주의는 프랑스 일반인들이 대게는 공감 하지 못하는 엘리트 계층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둘째, 정치계층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한 희생양으로 반미주의를 이용 하는 것이지, 반미주의는 실제 위협에 대한 이성적인 반응은 아니다. 셋째, 반미주의는 프랑스인들이 반감에서 미국과 충돌 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이유는 시기심을 담고 있는 경쟁심이다.
“It is an article of faith among American intellectuals”, wrote Thomas Frank, the author of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that countries such as France resist Hollywood films because they are snobs, dedicated to bringing ‘culture’—in the form of arty, disjointed films—to the masses.” Certainly, French intellectuals cherish low-plot, high-art films, and the French Ministry of Culture leads a guerrilla war to defend such works from a vulgar American invasion. But what do French people actually watch?
<캔자스는 무엇이 문제인가? >의 저자 토마스 프랭크는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은 속물이며, 예술적인척하는 지리멸렬한 영화의 형태로’문화’를 대중에게 전달 하려는데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할리우드 영화를 거부한다는것이 미국 지성인들 사이에서 갖고 있는 한가지 생각이다” 라고 말했다. 물론, 프랑스 지성인들은 줄거리에 의존하지 않는 고상한 예술 영화를 소중히 생각한다. 그리고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쏟아져 들어오는 미국 작품으로부터 그러한 영화들을 보호하기 위해 게릴라 전을 주도한다. 그러나 실재로 프랑스인들은 어떤 영화를 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