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가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박인희 ♬
누구에게나 그렇듯 꿈많은 소년이 어느 한 소녀를 동경하면
그 소녀의 생김새와 마음은 다 천사를 닮았으리라.
1970년 어느날 청아한 음색과 시적인 감성으로
음악펜들을 열광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몰아 넣은 혼성 뚜엣이 혜성처럼 나타났다.
뜨와에모와라는 이름으로 데뷔한 박인희와 이필원이 그들이다.
더욱이 통기타 음악을 유난히 좋아했던
세대들은 더욱 박인희를 좋아 했었다.
당시 숙명여대 불문과에 재학중이던 박인희는 이필원과 팀을 이루어
'약속', '세월이가면' 등으로 인기를 휘몰아
많은 펜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면서 인기 절정에 다달았다.
1972년 박인희의 결혼으로 뜨와에모와는
해체되고 각각 솔로로 독립을 하였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우상같은 존재로서
자리매김이 되어 가고 있었으며,
시적이며 다분히 감성적이면서도
문학적인 그의 음악은 인생과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면서도 강력한 메세지를 전달하곤 하였다.
그래서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노래는
빛이 바래지 않고 더욱 더 우리가슴에 와 닿는가 보다.
그의 많은 노래들중에서 '세월이가면', '다리위에서',
'끝이없는길', '겨울바다', '미루나무', '햇님달님', '나는너 너는나',
'그리운 사람끼리', '눈빛만보아도', '얼굴', '이사도라' 등
많은 노래가 우리 마음속에서 자리잡고 있으나,
특히 그녀의 대표곡이라고 할수 있는 노래는
'봄이오면', '방랑자', '모닥불'일 것이다.
모닥불은 당대의 어느 누구라도 한 번 불러보지 않은
사람이 없으리 만큼이나 인기를 누렸던 노래이다.
여름밤 바닷가에서 빙 물러앉아 통키타의 선율에 맞추어 부르는
모닥불이야말로 인생을 노래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가수로 유명해지자 자기가 생각하던 삶과 달라지면서
마음의 갈등도 많이 겪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언제 빵 한 조각을 위해 노래했던가, 아니다.
스타가 되고 싶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다.
그럼, 왜 노래를 불렀나. 노래가 좋아서,
그냥 부르고 싶어서,
그냥, 부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
나는 수 많은 사람들의 환호나 갈채보다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영원히 살아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녀는 지금 미국에서 살고 있다.
그녀의 노래엔 박건호씨의 가사가 많다.
고교시절부터 시를 쓰던 박건호씨는 박인희의 뒤를 따라다니며
자기 시를 노래로 불러 달라고 떼를 썼던
그렇게 박인희의 음성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박건호는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1969년 시집
「영원의 디딤돌」을 출간했고
「모닥불」을 발표하면서 가요 작사가 활동을 시작했다.
작품 및 저서로 시집「영원의 디딤돌」「타다가 남은 것들」
「물의 언어로 쓴 불의 시」「추억의 아랫목이 그립다」
「고독은 하나의 사치였다」「기다림이야 천년을 간들 어떠랴」
「나비전설」「딸랑딸랑 나귀의 방울소리 위에」등 열 권의 시집이 있고,
산문「오선지에서 빠져나온 이야기」
「너와 함께 기뻐하리라」「시간의 칼날에 베인 자국」등이 있다.
1972년 발표한 '모닥불' '슬픈 인연', '단발머리',
'아! 대한민국' '잊혀진 계절' 등
1970~1980년대 여러 대중가요의 노랫말을 쓴 작사가
3천여 편의 대중 가요 가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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