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쉬베이홍(徐悲鴻 : 1895~1953)
중국근대의 유명화가이며 애국자이고 특출난 미술교육가인 쉬베이홍(徐悲鴻)에 대한 이야기임
유럽회화의 실제적 기법과 전통적 중국화풍의 장점을 잘 조화시켜 새로운 화풍을 창작한 쉬베이홍
작품은 현재 중국과 미국에서 한 점당 수백억에 팔리는 세계 최고의 화가로 평가 받고 있다.
쉬베이홍(1895~1953)은 江蘇省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화가였던 부친 쉬다장(徐達章)으로 부터 그림을
배웠다. 1916년 상해 복단대학에 입학하여 수시로 그림을 취미 삼아 그렸던 그는 1917년 전문적 그림
공부를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온 다음 北京대학 초빙교수로 재직하며 화법연구회를 조직하여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그러던중 1919년 知人의 도움으로 프랑스 파리에 국비유학을 가서 유럽회화의 精粹를 배우게 된다.
그는 1920년 당시 봉건체제 타도와 개혁을 주장했던 5.4운동 정신 - 과학과 민주사상-을 바탕으로
中國畵 改良論을 저술하였다. 1922년 귀국후 난징(南京) 中央大 예술과와 상하이(上海) 南國예술大
교수를 역임하면서 어우양위첸(歐陽偉晴)등과 현실주의 운동을 주창하였으며 프랑스, 벨기에. 독일,
이태리, 소련등을 돌면서 중국미술전람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쉬베이홍의 그림에는 愚公移山처럼 寓意的 표현과 깊이, 그리고 애국주의 사상과 감정이 담겨 있으며 특히 1930년대 일본의 침략으로 민족적 수난이 심해지자 유화 田橫五百士를 그려 중국민족의 단합을
도모하였다.
그는 사실을 중시하고 조화를 추구하여 " 정밀함을 다하여 광대함에 이른다"고 주장헀으며
객관적 대상의 미세한 변화를 깊이 관찰하고, 다듬고, 개괄하여 전체적 통일을 추구하였다.
1949년 7월 중국 전국 문학예술가 대표회의에서 중국 문학예술계 연합회 상무위원이 되었고, 이어서 전국 미술가협회 주석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중국미술대학 학장으로 재임중 1953년 중국문학예술활동가 대표대회 참가하였다가 갑작스런 뇌일혈로 사망함.
붙 임 : 徐悲鸿(Xu Beihong 1895-1953)中.pp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