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첩은 그림을 모아 엮은 책을 말한다. 예쁜 그림이나 못난 그림이나 자신이 그린 작품은 소중하다. 허투루 버릴 수 없다. 인생도 한 폭의 그림이다. 우리 인생은 굴곡진 삶이 있기 마련이며, 아무리 험하게 한평생을 살아왔다 해도 잊지 못하고 이해하고 순응하였기에 여태껏 존속되지 않았을까. 인생이나 그림이나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인간의 품성을 바로잡고 사회의 일원으로 산다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하루의 생활도 인생이며, 지나간 삶도 인생인 것이다. 오늘은 내 인생을 엮어 ‘인생 화첩’을 만들어본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살아가는 일 즉 삶을 말한다. 살아간다는 의미는 살아 있는 기간을 말하기도 한다. 인생이란 화두에서 출발해 나름대로 하나의 실천적 삶을 살아가는데, 동‧서양을 통해 공자‧노자‧예수‧석가모니 등 성인들의 삶도 있었으며, 그리고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한 소크라테스의 삶도 있었다. 이들 말고도 선각자가 수도 없이 많았다.
가깝게는 우리 젊은 청춘의 인생도 있고, 현재 진행형의 인생도 있으며, 황혼길의 인생도 있다. 이 모든 게 우리들의 인생이라 쉽게 정의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는 자괴감도 들기 마련이다. 우리가 삶의 문제를 절실하게 의식하는 그것은 어떤 당면했을 때의 사정이다. 부풀어 올랐던 포부는 세월과 함께 바람 빠진 풍선이 되어 지금은 주어진 삶에 안주하려 하고 멀리 있는 파랑새를 바라만 보고 있는 것 같다.
지난달 초, 아이들이 프랑스에서 14시간 비행 끝에 무사히 도착했다. 건강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두 돌 된 외손녀가 잘 적응했기에 한결 마음이 놓였다. 가족 모두는 통영으로 섬 여행을 떠났다. 8월은 팔팔 끓었다. 바닷가 모래도 팔팔 끓는다. 팔팔 끓는 8월이 없다면 바다는 무슨 맛으로 살까! 8월 또한, 바다가 없다면 무슨 멋으로 살까! 8월의 바다에서 우리는 만났고 서로 사랑하고 바다는 8월이 있기에 지내왔던 이야기를 털어 낼 수 있었다. 진청색을 풀어놓은 듯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한바탕 물놀이 후 왈칵왈칵 사발 채로 들이켜던 냉커피 맛이 그렇게 달콤할 줄 정말 몰랐다.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 별인가. 생활에 쫓겨서 하늘마저 쳐다볼 틈도 없이 평생을 삶에 매달려 살아왔건만 모든 걸 접고 보니 아무것도 없는 것을 그렇게 허둥대며 살아왔던가. 햇살에 잘게 부서져 반짝이는 윤슬도 없고 연대도 ‘통영에코파크’ 마당의 은행나무잎이 실바람과 주고받는 일렁임도 나풀거림도 없다. 과유불급이라고 고요도 지나치면 정적이 된다. 깊은 정적이 때론 마음을 심란, 산란하게도 하지만 지금 내가 걸어가는 길은 정적은 길어져도 마음이 우울하기는커녕 점점 맑고 고요해진다. 거북의 등껍질처럼 상처투성이의 내 마음이 비로소 그림처럼 형체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는 심해의 쪽빛이 아닌 에메랄드빛으로 깨어질 듯 맑게 피어나고 있었다. 8월의 바다에는 내 경박한 노년의 꿈도 출렁거린다. 내가 있는 한 나의 8월은 언제나 되돌아오고 또 되돌아올 것이고 그리고 끊임없이 출렁이는 바다를 그리워하듯, 가족들이 보고 싶을 거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화선지에 그림을 그리듯 울창하고 협소한 미로에 쌓여있는 화폭이라는 숲을 산고의 아픔을 겪으면서 시계추와 같이 왕래한다. 마치 살아가면서 고통과 시련 혹은 기쁨과 환희라는 형용 색색의 물감을 배합하여 인생이라는 화폭에 감흥과 감성의 진통으로 포착된 이미지로 자연과 통하며 영혼의 울림으로 삶에 임하고 있다.
근 한 달여! 프랑스 아이들이 한국의 여름나기에 동참했다. 연일 ‘폭염경보’가 전달되고, 아침부터 에어컨을 켰지만, 길거리에 나서면 불가마 속이다. 에어컨도 너무 오래 켜고 있으면 머리가 무겁고 어깨 부위가 뻐근하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어본다. 더운 바람인데도 실내의 찬 공기보다 신선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외손녀는 마냥 밖을 나가자며 떼를 쓴다. 계절은 이렇게 덥다가도 시나브로 바뀐다. 이게 자연의 섭리며, 우리가 살아가는 보통의 삶이기에 순종할 수밖에 없으며, 2025년 8월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