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룡이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홍룡 폭포. 수려한 경관을 배경 삼아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의 위세가 당당하다. 양산시 제공 여행이 주는 즐거움. 벅찬 가슴을 안고 숨겨진 비경을 찾아가는 설렘이 첫 번째일 것이다. 여기에다 미지 세계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알게 되는 기쁨까지 보탠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673년 원효대사가 지은 천년고찰 관음사 옆엔 신선도 쉬어갈 폭포 은어 떼 지어 노니는 계곡 굽이굽이 물안뜰 마을 입구 '세계인환영' 비석 국경 초월한 사랑 절절한 사연 담겨 경남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천성산 깊은 산 속에 자리 잡은 홍룡사를 찾아가는 과정이 그랬다. 서기 673년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지었다는 전통사찰. 사철 오색 물보라가 끊이지 않는다는 홍룡폭포를 품은 절이다.
조선 선조 때까지 영남 제일 선원으로 꼽히다가 임진왜란 때 불탄 후 1910년에 새로 지은 홍룡사. 그 모습이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을 제대로 보여준다는 설명에 찾아간 사찰이다. 언제부터인지 대웅전 뒤편 홍룡폭포를 찾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는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입구부터 범상치 않았다. ■시대를 앞서 간 '러브 스토리 ' '虹龍瀑布(홍룡폭포), 世界人歡迎(세계인환영)'. 홍룡폭포에서 시작된 계곡 물이 논과 밭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만나는 물안뜰 마을 입구에는 붉은색 한자가 새겨진 비석이 서 있다. 그 뒤편에는 창립인 '權順度(권순도)'라는 세 글자가 또렷이 남아 있다. | 권순도가 물안뜰 마을 유지들과 시를 지으며 여생을 보냈다는 가홍정. |
이정표라 보기에는 무언가 독특하다는 느낌에 마을 주민을 붙들고 사연을 물으니 기막힌 '러브 스토리'가 흘러나온다. 스토리의 주인공 권순도는 1860년 6월 13일 이곳 물안뜰 마을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미국인 선교사로부터 배운 영어를 앞세워 1888년 제3대 부산본부세관장으로 취임한 영국인 J. H. 헌트 씨의 관사에 허드레 일꾼으로 들어간 그는 세관장의 외동딸 리즈 헌트와 사랑에 빠져 이 마을로 도피 행각을 벌인다. 격노한 세관장이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다 실패하자 임신한 딸을 데리고 홍콩으로 떠나버렸다. 홍콩으로 간 리즈 헌트는 짝 잃은 외기러기가 된 권순도에게 매번 돈을 부쳐왔고 권순도는 그 돈으로 중구 동광동 3가에 포목점을 차려서 거부가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31년 권순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만나지 못했다. | 오일 장날을 맞이한 양산남부시장. |
물안뜰 마을 입구에 있는 비석은 권순도가 영남대로를 따라 한양으로 오가는 세계인(외국인)을 환영한다는 뜻에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권순도는 이 마을을 거쳐 가는 외국인들에게는 숙식을 제공하는 등 따뜻하게 배려했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글로벌 시대가 올 것을 100여 년 전부터 예측이라도 한 듯이. 계곡을 따라 10여 분 올라가면 물안뜰 저수지가 나온다. 장마철에 계곡물이 넘치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고 갈수기엔 논과 밭에 물을 대는 젖줄 노릇을 하기 위해 만든 저수지다. 하지만 지금은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과 여름철 초등학생의 체험 학습장으로 그 역할이 바뀌었다고 한다. | 물안뜰 마을 입구에 세워진 세계인 환영비. |
저수지 위편에는 평상들이 놓여 있다. 해가 지면 마을 사람들이 나와 동동주를 건네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다. 잠깐 신발을 벗고 계곡 물에 발을 담그니 피로가 절로 풀린다. 물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천성산 깊은 골짜기를 흐르는 1급수답게 은어가 떼를 지어 다닌다. 눈을 돌려 계곡 위쪽을 바라보면 기암괴석이 줄을 지어 서 있다. ■물보라와 푸른 이끼 살아 있는 폭포
신발을 벗어들고 골짜기 물길을 따라 걷기를 40여 분. 홍룡사 정문이 눈앞에 다가온다. 원효대사가 창건했을 때는 물이 떨어지는 절이라는 뜻에서 '낙수사'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는 안내문과 함께. 경내로 들어서면 대나무 숲이 절 마당 앞을 장식한다.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대웅전 옆으로 스쳐 간다. | 홍룡사 전경 |
대웅전 오른쪽 옆으로는 아치형 다리 아래로 새로운 계곡 길이 시작된다. 계곡 옆 오솔길을 따라 2분쯤 걸었을까. 천룡이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홍룡폭포가 나온다. 80척(24m)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물줄기가 1천300년을 버텨온 세월만큼 위세가 당당하다.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물보라 사이로 푸른 이끼가 살아 있다.
이렇게 시작된 천성산 계곡 물이 물안뜰 마을에서 저수지를 이루어 인근 주민들의 젖줄이 된다고 생각하니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폭포 옆에 세워진 홍룡사 관음전. 108배를 하면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스님의 귀띔에 땀을 흘려 절을 하고 나니 갑자기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 물안뜰 저수지. 강태공의 모습이 여유롭다. |
사찰로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다. 마침 장날이라 들린 양산 남부시장. 햇복숭아가 탐스러운 모습으로 장터 마당에 나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을까. 노점에 앉은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눈길마저 겸손해진다. 글·사진=정순형 선임기자 junsh@busan.com 여행 팁
■대중교통 부산과 양산 간에는 버스들이 수시로 오간다. 직행버스 1500, 1200번, 일반버스 12, 179, 110-1번. 소요 시간 직행버스 1시간, 일반버스 1시간 30분 내외. 자가용을 이용하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양산IC에서 빠져나가면 된다. 약 40분 소요. 도로 사용료 1천 600원. ■먹거리 서민들의 여름 보양식으로는 어탕국수(사진)가 최고다. 홍룡폭포 아래 계곡에서 잡은 피리, 붕어, 쏘가리 등 민물고기들을 넣고 3~4시간 곤 물에 된장을 풀어 삶은 어탕국수는 더위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 보약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산바다(055-375-6677) 1인분 7천 원. 정순형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