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中 선교사 마테오 리치 ‘가경자’ 선포
‘영웅적 성덕’ 인정 교령 반포, 중국 복음화 긍정 효과 기대
-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있는 16세기 중국 선교사 마테오 리치 신부. CNS 자료사진.
[외신종합] 16세기 이탈리아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 신부의 ‘영웅적 성덕의 삶’이 공식 인정됨으로써 시복시성의 첫 단계인 교구 단계 절차가 마무리됐다.
교황청 시성부는 12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세기 중국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 신부가 하느님의 종으로서의 ‘영웅적 성덕’을 인정하는 교령을 반포하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1552년 10월 6일 이탈리아 마체라타에서 태어난 예수회원으로서 1610년 5월 11일 중국 북경에서 선종했다.
중국 선교 역사에서 탁월한 모범을 보인 마테오 리치 신부 시복시성 절차의 첫 단계가 마무리된 것은 약 1200만 명의 신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교회 복음화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교황은 지난 5월 마체라타대학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마테오 리치 신부를 ‘대화 문화의 달인’으로 묘사한 바 있다. 그는 당시 마테오 리치 신부가 자신의 업적과 저술뿐만 아니라 “외국인의 신분을 넘어서 세계의 시민이 된 만남의 장인으로서 명성을 떨쳤다”고 평가했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1582년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마카오에서 중국 선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 중국인들의 생활 방식에 적응하고 중국어에 능통했으며, 28년 동안의 여생을 중국에서 선교사의 삶을 살았다.
그는 1601년 자금성 출입이 허가된 첫 유럽인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명나라 제13대 황제인 만력제는 천문학 등 그의 과학적 지식을 높이 평가해 친히 초대했다. 이마두(利瑪竇·Li Madou)라는 중국명으로 알려진 그는 이후 광학, 천문학, 음악, 지리학, 기하학 등 많은 학문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특히 학자이며 고위 관리였던 서광계를 비롯한 저명한 중국인들을 개종시켰다. 현재 서광계의 시복 절차 역시 논의되고 있지만, 현재 상하이교구가 보유한 관련 문서 자료들에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마테오 리치 신부는 서광계와 함께 서양 고전을 중국어로, 유교 경전을 라틴어로 번역했다.
마테오 리치 신부 시복시성을 위한 교구 단계는 1984년에 시작됐다. 그의 업적과 성덕을 증거하는 문서들이 수집돼 2014년 교황청 시성부에 제출됐다.
9명으로 구성된 신학위원회와 교황청 시성부의 투표를 통해 시복시성 절차 진행이 결정된 후 교황은 시성부에 그가 ‘가경자’임을 선언하는 교령을 반포하도록 승인했다. 이후 시복과 시성 절차 추진 과정이 이어지는데 각 단계에서 마테오 리치 신부의 중재로 인한 기적이 인정돼야 한다.
[가톨릭신문, 2022년 1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