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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축복의 열쇠 원문보기 글쓴이: 보아너게
시55편 제 목 : 쓰라린 고뇌의 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시55;22)
개 요
시55편은 “다윗의 마스길(교훈) 영장(지휘자)으로 현악에 맞춘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다윗의 시입니다 이 시의 전반부는 배신당한 자의 고통에 대해서 그리고 후반부는 승리에 대한 확신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은 노년에 이르러 그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과 최측근인 “아히도벨”에게 배반을 당하여 왕좌를 버려두고 쫓겨 도망하는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고통 중에 기록한 비탄의 시입니다. (삼하15;-18;) 배신자들의 가공할 위협으로 인한 구원을 호소하고 시인의 내외적으로 당하는 고통을 담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처한 암담한 상태에서도 전능하시며 구원자이신 주님께로 시선을 돌려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원숙한 신앙인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믿는 자들의 구원과 안전과 영원함을 노래한 쓰라린 고뇌의 시이기도 합니다.
내용 분석
1. 시55;1-8 : 다윗의 박해에 대한 불평
2. 시55;9-15 : 악인의 비난과 압제자의 운명
3. 시55;16-23 : 다윗의 기도를 통한 확신
시55편 강해
1. 시55;1-8 : 다윗의 박해에 대한 불평
1-3절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1) 1절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다윗의 마음의 표현이며 간절한 기도의 표현입니다. 이는 그가 극심한 고통 가운데 있음을 나타내며 “십” 사람들의 밀고로 위급한 상태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내가 간구할 때 숨지 마소서” “숨다”는 기도자의 기도를 무시하지 마시고 응답해 줄 것을 탄원하는 내용입니다. 신명기에는 우양의 길 잃은 것을 보거든 못 본체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신22;1)
3)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이 더욱 간절히 찾도록 오래 참으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4) 2절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다윗은 근심으로 슬퍼하고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도 억울한 일을 당하여 마음의 상처를 탄식으로 표출하고 있습니다. 욥도 고통 가운데서 “가령 내가 말하기를 내 원통함을 잊고 얼굴빛을 고쳐 즐거운 모양을 하자 할지라도 오히려 내 모든 고통을 두려워하오니 주께서 나를 무죄히 여기지 않으실 줄을 아나이다“ (욥9;27-28)
5) 우리의 삶에서도 억울한 일을 당하면 안절부절 못하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눈물을 흘리며 오직 억울함을 호소할 대는 하나님 밖에 없음을 깨닫고 기도로 울부짖을 때가 있습니다.
6) 3절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다윗의 원수는 그가 친히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이며 모사꾼인 아히도벨입니다.
“제사 드릴 때에 압살롬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의 모사 ”길로“ 사람 아히도벨을 그 성읍 길로에서 청하여 온지라 반역하는 일이 커 가매 압살롬에게로 돌아오는 백성이 많아지니라‘ (삼하15;12)
7) “소리” 다윗의 원수들이 모여서 고함치는 소리이며 이 소리로 사기를 돋우어 다윗을 압박하고 압제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8) “노하여” 노할 것도 없는 자들이 죄를 더하여 이는 원수들의 압박행위를 말합니다. 노하다는 말은 미워하다 또는 대항하다고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4-5절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미쳤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황공(惶恐)함이 나를 덮었도다”
1) 4절 “마음이 속에서 심히 아파서” 마음은 인간의 내면을 이르는 말로 “속”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자신의 고통이 얼마나 혹독한지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2) 다윗은 자신의 고통을 사망의 위험에까지 비교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란과 중신(重臣) 아히도벨이 왕인 자신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로 인하여 마음은 참담한 고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3) 어느 시대나 배신자는 있게 마련입니다. 다윗의 시대 배신자는 아히도벨이었다면 우리나라의 배신자는 이완용입니다. 배신자의 말로는 배신자의 말로는 비참한 죽음입니다.
스승을 배신한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스승을 판돈을 돌려주고 나무에 목매어 자살했습니다. 배신은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며 그 말로는 처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배반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4) 5절 “두려움과 떨림” 이는 공포에 사로잡힌 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황공하다는 의미는 사람이 지체 높은 사람의 은혜나 배려가 위엄 있고 분에 넘쳐 어렵고 두렵다는 뜻이지만 여기서 “황공함”(horror)은 공포가 나를 덮었다로 해석함이 옳은 것 같습니다. 사지가 벌벌 떨릴 정도로 다윗은 두려운 공포를 느꼈습니다.
6-8절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 (셀라) “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1) 6-8절 “날개가 있으면” 다윗은 이 어려운 난관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었으면 멀리 날아가서 쉬고 싶었습니다.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2) 다윗은 모반의 위험이 죽음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초라하고 애처로운 신세를 한탄할 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피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인들도 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많은 고난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고난의 위기들은 신앙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1;4-5)
4) 다윗은 자신을 비둘기에 비유한 것은 압살롬이나 아히도벨을 매로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피란처를 찾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때로는 광야가 피난처를 재공 했지만 우리의 참된 피난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46;1)
2. 시55;9-15 : 악인의 비난과 압제자의 운명
9-11절 “내가 성내에서 강포와 분쟁을 보았사오니 주여 저희를 멸하소서 저희 혀를 나누소서” “저희가 주야로 성벽 위에 두루 다니니 성중에는 죄악과 잔해함이 있으며” “악독이 그 중에 있고 압박과 궤사가 그 거리를 떠나지 않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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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절 “성내에서” 다윗은 성내에 강포가 있고 분쟁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압살롬의 음모는 비밀리에 진행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2) “저희를 멸하소서” 악인들을 멸해 주실 것을 간청합니다. 혀를 잘라버릴 것을 아뢰는 것은 그들의 모의가 성립되지 않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해 주실 것을 탄원한 것이기도 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도모가 성취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 바벨탑 사건에서는 언어를 혼동시키셨습니다.
4) 다윗의 이러한 기도는 응답되어 아히도벨의 계략은 압살롬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악한 두 사람은 결별하게 되었고 압살롬의 군대는 다윗에 의해 파멸되었습니다.
5) 10절 “성벽위에 두루 다니니” 이는 파수꾼들의 행순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압살롬 일당이 파수꾼처럼 성벽 위를 돌면서 간첩 행위를 하는 것을 뜻할 것 같습니다. 다윗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성벽을 건축했는데 압살롬 일당은 반대 목적으로 사용했습니다.
6) “죄악과 잔해함” 성중에는 악이 떠돌고 있었습니다. 잔해(殘骸)는 부서지거나 못 쓰게 되어 남아 있는 물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곤경의 뜻도 있습니다. 압살롬과 같은 악한 자들이 불의하게 왕권을 탈취하려고 날뛰고 있습니다.
7) 11절 “악독과 압박과 궤사”(詭詐) 이런 것들이 떠돌고 있는 성안에 평안이 있겠습니까?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기만적 행위를 자행하는 이들은 악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되어야 할 성안에 이런 행위는 재앙입니다.
12절-15절 “나를 책망한 자가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그가 곧 너로다 나의 동류(同類), 나의 동무요 나의 가까운 친우로다” “우리가 같이 재미롭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안에서 다녔도다” “사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며 산 채로 음부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저희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1) 12절-15절 “나의 동류, 나의 동무, 친우” 다윗을 모반하고 미워한 자들이 원수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원수였다면 심적 고통은 훨씬 적었을 것입니다. 가까운 동류, 동무, 친구들이었습니다.
2) 압살롬과 아히도벨은 한 때는 아들이었고 훌륭한 조언자였습니다. 이들 모반자들의 말을 다윗은 하나님 말씀같이 들었습니다. 모반의 주동자들이 원수였다면 다윗은 준비를 하고 도망하였을 것입니다.
3) 다윗은 한 때 동무로 가까운 친우로 달콤한 교제를 나누며 중요한 정책도 결정했습니다. 국가적인 행사에 함께 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안에 동행할 정도로 개인적이며 공적인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4) “산체로 음부에” 다윗은 그들이 멸망하기를 바랐습니다. 아히도벨 뿐만 아니라 그와 공모했던 대적 자들에 대한 저주로 초자연적인 형벌을 하나님께서 내리시기를 바랐습니다. 고라 일당의 사건처럼 되기를 바랐습니다. (민16;30-35)
5) 다윗에게 압살롬과 아히도벨과 같은 반역을 도모한 자들이 있었다면 예수님께는 가룟 유다 같은 배신자가 있었습니다. 성도들에게도 은혜를 모르는 대적 자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시55;16-23 : 다윗의 기도를 통한 확신
16-18절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저가 내 생명을 구속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1) 16절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압살롬의 반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에서도 다윗은 기도를 계속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2) 다윗은 당면한 문제의 해결책은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임을 확신했습니다.
3) 17절 “저녁과 아침과 정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던 세 번의시간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단6:10)
4) 탄식하리니“ 큰 소리로 외치는 것으로 대개 불안한 심리 상태를 억제치 못해 크게 소리 내어 부르짖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5) 다윗은 전쟁에서 생명을 구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여기서 “나에 대한 전쟁”으로 언급한 것은 압살롬과 모사 아히도벧에 의해 주도된 모반을 가리킵니다.
6) “구속하사 평안하게” 다윗은, 압살롬에게 쫓기는 신세이지만,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확실함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극한 상태에서도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을 성도인 우리도 확신할 수 있습니다.
19-21절 “태고부터 계신 하나님이 들으시고 (셀라) 변치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치 아니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리로다” “저는 손을 들어 자기와 화목(和睦)한 자를 치고 그 언약을 배반하였도다” “그 입은 우유 기름보다 미끄러워도 그 마음은 전쟁이요 그 말은 기름보다 유하여도 실상은 뽑힌 칼이로다”
1) 19절 “태고(太古)부터 계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공의로운 심판자 되시는 분으로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신33;27)
2) 다윗은 소망의 근거를 하나님은 영원한 심판의 주로써 영원토록 좌정하셔서 당신의 백성을 해치거나 하나님을 경외치 않는 자들을 반드시 보응하실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저가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며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 저희가 해가 있을 동안에 주를 두려워하며 달이 있을 동안에 대대로 그리하리로다. (시72:4-5)
3) 20-21절 반역자들은 신실하신 하나님과 반대로 친한 친구를 배신하고 화목한 자를 치고 언약을 배반한 자들입니다. 아히도벨은 다윗과 맺은 언약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 것은 언약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증인으로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4) 아히도벧은 평소에 “유순한 말” “아첨하는 말”을 사용했지만 실상은 “우유 기름” 보다 미끄러운 간계를 감추고 있었음이 그 행동을 통하여 들어났습니다. 그 자의 마음은 전쟁이요 뽑힌 칼이었습니다. 겉과는 달리 마음속에는 살의를 품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히도벨의 잔악성을 폭로해 주는 말입니다.
22-23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1) 22-23절 “맡겨버리라” 다윗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압살롬과 아히도벧의 반역 사건으로 깨닫게 된 결론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2) “네 짐” 다윗이 말한 짐은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염려” 또는 “근심”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모든 짐을 붙드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3) “파멸의 웅덩이” 이는 부패 또는 멸망의 구덩이로 사람의 시체가 썩어 부패하는 무덤을 말 한 것으로 악인의 결국은 주검이라는 사실입니다.
4) 아히도벧은 다윗을 피 흘리게 했고 속였습니다. 악한 자의 일당은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압살롬은 요압의 손에 의해서 살해되었고 아히도벧은 자살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이 자기 모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자기 집에 이르러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으매 그 아비 묘에 장사되니라” (삼하17 23),
5)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다윗은 악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공의의 심판을 내리셔서 파멸의 웅덩이에 던지실 것이지만 자신에게는 구원의 은총을 베풀어주시고 날마다 자신의 짐을 대신 져주실 하나님을 의지 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신앙의 표본입니다. 당신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을 의지 하십니까? 흔들리거나 요동치 아니하고 평강과 행복의 삶을 사는 것은 주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결 론
이 시를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배신당한 자의 고통”입니다. 다윗은 노년에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과 믿었던 신하 아히도벨의 배신으로 도망가는 치욕스러운 비탄을 당하여 이 시를 기록했습니다.
배신자들의 가공할 만한 위협으로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며 공의의 하나님께서 악인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악인에게서 눈을 하나님께 돌린 다윗은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다윗은 극한 시련 속에서도 자신의 짐을 날마다 짊어지시는 공의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잃지 않았습니다. 더욱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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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축복의 열쇠 원문보기 글쓴이: 보아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