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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위해 축복기도하라 민6:23-27
교회가 유대인들과 함께 ❛바룩하바 베쉠 아도나이❜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를 노래할 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꿈꾸신 교회는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범죄를 저질러서는 안되며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자의 축복을 받길 원한다. 아직도 이스라엘 땅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분명한 사실은 이스라엘 땅에서 팔레스타인들이 나라를 세운 적도 없고 아랍인들이 난민을 가자지구에서 살도록 허락해 준 것이 지금의 팔레스타인들이다. 팔레스타인이란 말은 로마제국이 유대땅을 블레셋이라고 부른 것인데 블레셋을 영어로 팔레스타인이라 하며 블레셋이라 한 이유는 이스라엘과 적대관계인 블레셋으로 이름을 지었을 뿐 이스라엘 땅은 유대인들이 떠나자 아랍인들이 유대땅에 들어와 살았던 사람들을 팔레스타인이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모압왕 발락은 발람을 매수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채를 가지고 발람에게 보내 발락의 말을 전하매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할 수 없다고 하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가는 발람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마5:43-44)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셨기 때문이다.(롬12:19-20)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주는 평생에 단 한번이라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다. 우리는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부터 형제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은 마치 우리가 주님께 받은 것처럼 말이다.지난해 10월7일 유대인 명절 초막절마지막날이며 안식일을 맞이하여 대부분 군인들이 휴가 갔던 상황에서 하마스가 5000발의 로켓으로 기습 공격을 하면서 이스라엘백성들 1200명이 살해되었고 2400명이 다쳤으며 240명이 포로로 잡혀가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이 시작된지도 9개월이 지났다. 이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이스라엘은 하마스에 군사보복을 가하면서 전쟁 장기화로 가면서 양쪽의 인명피해도 계속 증가하고 있는데 개전 이후 팔레스타인 측 누적 사망자 수는 3만7900명으로 집계되는데 이는 무장대원과 상당수는 민간인으로 추정되는데 민간이의 사상자가 그렇게 많이 나온다는 것은 서울의 1/3정도의 가자 지구에다 땅굴은 500km(수도권지하철길이 350km)인데 이는 가자지구 땅꿀은 학교와 병원과 관공서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간 자국민들을 구출시키고자 가자지구를 공격하면서 피해자는 민간인 쪽으로 확대되고 있다. 오늘 이시간은 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발발 배경에 대해 말하고자 하려면 먼저 이슬람교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 유럽 최강 로마제국은 서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의 동로마로 분리된 이후 476년 서로마는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하면서 로마 카톨릭이 종교 정치 등 모든 권한을 장악했으며 동로마를 가리키는 비잔틴제국은 천년동안 비잔틴제국의 영광을 지켜나간다. 비잔틴제국의 황제들은 멸망당한 서로마의 옛 영토를 수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비잔틴제국과 페르시아 사산왕조간의 수백년에 걸친 전쟁으로 오랫동안 동서양의 실크로드의 교역이 어려워져 대체 교역로인 지중해 홍해 해양루트의 중심에 이슬람의 메카가 있었다. 아라비아반도는 땅덩어리는 넓지만 쓸모 있는 땅이 별로 없었고 인구도 적은 탓에 주변 강대국들이 정복할 메리트도 없었던 이 메카에서 태어난 무함마드에 의해 622년에 창시된 이슬람교는 세계3대 종교 중 하나인데 코란에 의하면 모세에 이어 예수그리스도 이후 마지막 메시야로서 선택받은 인물이 무함마드라고 한다.
1. 이스라엘 민족의 유대교 등장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75세 때 갈대아우르를 떠나서 가나안땅으로 들어왔었을 때 아브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이방에서 나그네가 되어 사백년 동안 그들을 섬기겠다고 하시면서 그런 후 가나안 지역을 주시겠다고 언약을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언약을 받은 후 적어도 200년 후에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이 가족들을 이끌고 요셉이 총리로 있는 이집트로 갔을 때는 총리의 가족으로 갔었지만 후에는 애굽의 종이 되어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게 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까지는 사십년이 걸렸다. 이 광야생활 중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십계명과 율법을 받게 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고 그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족속이 되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면서 선민이 됩니다.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 이외는 어떤 신도 어떤 우상도 섬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믿으면 그들의 나라가 영원히 세워지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경고했다.
(신28:63) 주께서 너희로 인해 너희에게 선을 행하시고 너희를 번성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신 것 같이 주께서 너희로 인해 너희를 멸하시며 망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리니 네가 들어가 소유할 땅에서 너희가 끊어져 뿌리가 뽑히리라.
(1) 이스라엘의 멸망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는 왕국을 세워 다윗왕 솔로몬왕 때에는 전성기를 누리다가 솔로몬왕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뉘었다가 북 이스라엘은 BC722년에 앗시리아에게 멸망하였고 유다 왕국은 BC587년에 바빌로니아에게 멸망당합니다. 바빌론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대왕(고레스 왕)은 유대인에게 유다로 돌아가도록 허용했는데 그 때부터 이스라엘은 페르시아 헬라 로마의 속국으로 지내다가 예수님이 오셨을 때는 로마의 지배를 받던 때이다. 특히 로마는 다신교를 믿는 나라인데 유일신을 믿는 이스라엘에게 다른 신들을 강요하는 것은 반감을 살 수 밖에 없으므로 이스라엘은 로마를 대항하다 궤멸되면서 이스라엘 민족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게 되었다. 보통 나라가 망한 다음 사람들이 흩어지면 처음에는 자신들의 문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더라도 세월이 지나면 민족성도 문화도 종교도 소멸되고 그 지역문화에 흡수되기 마련이지만 유대인들은 여러 지역으로 흩어졌지만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 받았다는 선민사상을 가지고 자신들만의 예배처소인 회당에서 율법이라는 구약성경을 근본으로 생활하였다. 가장 확실한 것은 이스라엘 멸망에 대해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악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렘16:13)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가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하리라. 너희가 거기서 밤낮으로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요. 내가 거기서 너희에게 호의를 베풀지 아니하리라, 하라.
(눅21:24) 또 그들이 칼날에 쓰러지고 모든 민족들에게 포로로 잡혀 가며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때가 찰 때까지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리라.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시장하신지라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다음날 아침 제자들이 그 무화과나무 앞을 지나갈 때에 뿌리로부터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를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하신 것은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은 무화과나무가 말라 죽듯이 멸망한다는 예언이었다. 예수님의 이 예언 이후 40년이 지나 AD 70년 4월 로마장군 티투스는 예루살렘성을 함락시키면서 돌위에 돌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당시 이스라엘 멸망을 똑똑히 지켜봤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AD37-100)가 쓴 유대전쟁사를 보면 그날의 참상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성 밖으로 나가는 길이 단절되고 기근이 더욱 심해지면서 희망은 끊어졌고 집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사람을 먹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요세푸스의 기록은 이미 이같은 상황을 미리 내다 보셨던 예수님의 예언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후로 유대인들은 세계 각처로 흩어져 디아스포라로 살면서 모진 고난과 박해를 받게 되었다.
(2) 팔레스타인 유래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유다는 바벨론에 멸망된 이후 유대인의 역사는 이방민족의 지배를 받아 오다가 BC 63년 로마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유다인들의 왕조는 완전히 소멸하였고 지역명만 마지막 유다왕국의 이름을 따서 줄곧 유다라고 불렀다. 그 후 유대인들은 로마가 이교숭배를 강요하자 이에 대항하여 AD70년(1차 독립전쟁)과 AD132-135년(2차 독립전쟁) 두차례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는데 로마는 철저한 유대인 말살정책으로 1차 독립전쟁 때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였고 2차 독립전쟁 때에는 유대인의 다수는 죽임을 당하였다. 특히 132년에 발생한 시므온 바로코크바의 반란(2차 독립전쟁)을 진압한 로마는 더 이상 반란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1. 예루살렘을 로마 직속지로 다스리며 유대인 출입을 금하였으며
2. 이 지역 이름을 유다에서 팔레스타인(블레셋사람의 땅)으로 바꿨다.
이에 따라 유대전쟁에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을 잃은 채 세계각처로 흩어진 디아스포라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통해서 일들을 하실 때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신다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과의 무력충돌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구약성경의 이해가 필요하다. 사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과 예수님이 다윗왕의 계보를 따라 이 땅에 오시기 전 BC 63년 로마가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유대인들의 왕조는 소멸하였고 지역명만 마지막 유다왕국의 이름을 따서 줄곧 유다라고 불렀다. 한편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 제자들은 46년 동안에 리모델링한 헤롯성전의 웅장함에 대해 자랑스러워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보는 이 성전은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뜨리워진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예언에 따라 AD70년 유다1차 독립전쟁 때 로마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성전은 예수님말씀처럼 돌위에 돌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파괴되었고 2차 독립전쟁 때에 유대인의 다수는 죽임을 당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추방당하게 되었다. 그렇게 전 세계로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어떻게 2000년 만에 나라를 건국하게 되었는지는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밖에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사66:8) 누가 그러한 일을 들었느냐? 누가 이러한 일들을 보았느냐? 땅이 하루에 만들어 져서 열매를 내겠느냐? 혹은 한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시온은 진통하자마자 자기 자녀들을 낳았도다.
(겔36:24) 내가 너희를 이교도들 가운데서 취하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 너희 땅으로 데려가리라
위의 말씀은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고 흩어져 살다가 하나님께서 포로된 땅에서 취하여서 나라를 다시 건국하겠다는 말씀인데 실제로 세계1차 대전과 세계 2차 대전을 맞이하면서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시오니즘운동으로 자신들 조상의 땅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건국하였던 것을 보고 세계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3) 이스라엘의 건국과정
이스라엘의 멸망이 성경에서 예언되었듯이 이스라엘의 재건도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한 구절을 찾아보자.
(렘16:14-15) 14 주가 말하노라. 그런즉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다시는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께서 살아계신다 하지 아니하고 15 오히려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을 북쪽 땅과 모든 땅 곧 친히 그들을 쫓아내어 머물게 한 모든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께서 살아계신다 하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그들의 땅으로 다시 데려가리라.
(마24:32-34) 32 이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것의 가지가 아직 연하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너희가 아나니 33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가 이 모든 일을 볼 그때가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 34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리라.
로마에 멸망당한 후 1900년 동안 이스라엘 땅은 이방인의 지배를 받았는데 시대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70년-395년 로마
395년-638년 동로마 즉 비잔틴제국
638년-1072년 이슬람 사라센 제국
1072년-1099년 터키
1099년-1291년 십자군
1291년-1517년 이집트
1517년-1917년 오스만 터키
1917년-1948년 영국
마지막 영국(1920-1948)이 지배할 당시는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터키군이 패퇴하고 앨런비 장군이 거느리는 영국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으며 1920년부터 팔레스타인은 영국의 위임 통치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후 1차 대전 중의 영국 외상 벨포어 선언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유대인들이 격증하였으며 사실 1882년부터 이미 시오니즘운동으로 귀환자들이 증가하였고 19세기 말 부터 러시아, 폴란드 등 동구권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자 시온주의 운동에 공감한 일부 청년들은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에 돌아와 민족국가 재건의 꿈을 키워간다.
2. 기독교 탄생
구약은 메시야가 올 것을 약속했는데 그 약속에 따라 예수님이 오셨다.
(갈4:4-5) 4 그러나 충만한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있게 하셨나니 5 이것은 율법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 또 우리가 아들로 입양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여자의 몸을 빌어서 이 땅에 탄생하셨으며 30세에 공생애 생활을 시작한 이후 마지막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해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박해도 그만큼 심해졌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졌다. 이때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하던 사울이란 사람은 예수가 다윗이 예언한 구세주이며 이사야 선지가가 예언한 그리스도 곧 메시아라고 전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해 격분했다. 그리스도인들 이야말로 거룩한 성전과 율법을 거스르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다메섹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잡아넣기 위해 산헤드린의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는 중 예수님을 만나면서 바울은 기독교의 세계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복음을 이방 세계에 전하기 위해 구원의 의미를 은혜중심으로 설명함으로써, 율법의 완성이 믿음이며 모든 인간은 죄인이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게 된다는 구원의 도를 전했다. 바울은 3차례 선교를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성공했다. 신약성경 복음서를 제외한 대부분은 사도바울이 기록한 말씀이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가 유대교를 모체로 나왔지만 극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면 유대교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은 것에 한정된 반면 기독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계기로 전 인류의 구원을 지향하는 보편적인 종교로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구약은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율법을 지키면 구원하겠다는 약속이지만 인간은 그 계명이나 율법을 지킬 수 없어서 새로운 약속 곧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곧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구약은 어떻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느냐였다면 신약은 예수가 하나님께서 보낸 그리스도 곧 구세주임을 알고 그를 왜 믿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안내서이다.
3. 이슬람교와 유대교와 기독교의 비교
(1) 알라와 하나님은 같은 창조주 하나님이신가?
많은 사람들은 이슬람의 알라와 기독교 하나님과는 같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은 이슬람교의 조상 아브라함과 유대교의 조상 아브라함이 동일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성경을 연구하고 쿠란을 보면 이슬람교 조상인 아브라함과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은 전혀 다르다. 사실 메카 성지순례의 모든 행위들은 아브라함과 관련된 이야기로 만들어 놓았기에 기독교인들조차 이슬람을 아브라함의 종교라는 오류를 범하고 있으나 꾸란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성경의 아브라함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성경의 아브라함은 데라의 아들로서 99세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셨는데(창17:5) 꾸란의 아브라함은 아자르의 아들(꾸란6:74)로서 어려서부터 아브라함으로 불렸다(꾸란21:60). 성경의 아브라함은 예루살렘 모리아산에서 이삭을 번제로 드렸으나, 꾸란의 아브라함은 메카 부근에서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렸던 사람이었다(꾸란37:102-106). 성경의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부근을 방문한 일도 없었는데, 꾸란의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함께 메카에서 카바 신전을 건축했다고 한다(꾸란2:127).
성경의 아브라함은 경전을 받은 일이 없는데, 꾸란의 아브라함은 모세처럼 경전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꾸란87:18). 꾸란의 아브라함은 이교도들이 죽이려고 불속에 던졌는데 알라가 건졌다고 한다(꾸란21:68-69). 심지어는 양을 잡는 풍습도 아브라함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던 일과 관련시켜 놓았고, 사탄에게 돌을 던지는 풍습도 아브라함과 관련시켜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는 꾸라이시 종족이 섬기던 알라(Allah)신을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여호와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믿게 하려고 예루살렘의 아브라함을 메카에 적용시킨 것으로,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이 꾸며낸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일곱 번 왕래하는 왕복의식은 성지순례에서 매우 중요한 행사로서, 그곳은 무슬림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이스마엘과 그의 모친 하갈이 물을 구하기 위해서 방황했던 언덕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해바다 남서쪽에 있는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창21:14).
이슬람의 역사에는 젖먹이 이스마엘이 사막에서 목말라 하자 하갈이 물을 찾아 사파와 마르와 언덕을 일곱 번 왕래하면서 헤매고 있을 때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발꿈치 혹은 날개로 땅을 파니 샘이 솟아 나왔다는 우물을 잠잠(Zam zam)우물이라고 부르는데, 카바 신전 동쪽 20m 지점에 있으며 무슬림들은 이를 거룩한 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경은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았고(창16:16), 그를 내쫓은 것은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이 젖을 뗀 후이니(창21:8), 당시 이스마엘은 15세쯤 되었을 큰 아이를 젖먹이라고 부를 리가 없다. 성경에는 천사가 ‘없던’ 우물을 새로 팠다는 기록도 없으며, “하나님께서 하갈의 눈을 열어주시매 ‘이미 있었던’ 샘이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다(창21:19). 성경의 이스마엘은 바란 광야에 살았으며 이집트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기록되었는데(창21:21), 이슬람의 이스마엘은 메카 부근에 살았으며 주르훔 족의 아랍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성경의 아브라함은 메카 쪽으로 간 일이 없고 가나안 땅에서 이스마엘을 추방한 후 죽을 때까지 그를 다시 만나지 않았으나 이슬람에 보면 아브라함은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최소한 다섯 차례나 방문한 것으로 나와 있다.
첫째 방문: 하갈 모자를 추방할 때 메카까지 데리고 와서 버리고 갔다고 한다(Sahih 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두번째 방문: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릴 때 메카 부근에 와서 번제로 드렸다고 한다(꾸란37:102-106).
세번째 방문: 카바 신전을 지을 때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같이 지었다고 한다(꾸란2:127).
네번째 방문: 이스마엘이 처음 결혼한 여자가 마음에 안 든다며 아브라함이 이혼을 명했다고 한다(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다섯째 방문: 아브라함의 명령에 따라 이스마엘이 첫 번째 아내를 버리고 다른 아랍 여인과 결혼을 했더니 아브라함이 다시 와서 그녀를 보고 만족해하면서 축복했다고 한다(Bukhari volume4, Book55, Number584).
가나안 땅에 살았던 아브라함이 직선거리로 1,000Km도 넘는 메카를 100세가 넘는 노구를 이끌고 다섯 번이나 왕래하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을 진리로 믿고 있는 무슬림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들은 결코 우리가 미워하거나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그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렇게 배웠고 속아왔던 피해자들이다.
오랜 세월 속아왔던 무슬림들에게, 죄 사함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방문함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려줘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루에 다섯 번이나 메카를 향해 기도하고 일년중 라마단 한달 동안은 해가 떠있는 중에는 금식하며 메카에 성지순례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종교적이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한다고 보는 무슬림들이야말로 정말 거짓 종교를 진리처럼 믿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그들이 믿는 알라는 전혀 다른 신이라는 것을 기독교인들이 먼저 알아야 하겠다. 아멘
4. 이스라엘 건국을 위한 세계대전
(1) 세계 1차 대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영국은 전쟁을 치르는 중 유대인들로부터 경제적으로 많은 지원을 받게 되느데 가장 큰 도움은 폭약인 무연화약부족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유대인으로 폭발물 제조 방법을 고안해낸 사람이 맨치스터대학 화학교수였던 하임 바이츠만인데 그는 열렬한 시온운동가이기도 한 초대 이스라엘 대통령이 되었다. 1차 대전에서 영국을 도운 것은 바이츠뿐만이 아니었다 금융부호가인 로스차일드는 돈과 무기로 그리고 수많은 유대인들도 영국을 도와서 1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1차대전 승리는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던 오스만 터키를 몰아내고 영국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면서 영국은 유대인들에게 팔레스타인에 들어갈 명분을 갖게 한 벨포어 선언을 통해서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이 속속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오면서 유대인 자치기구나 유대인 마을이 형성되면서 국가를 세울 꿈은 현실로 다가서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히틀러가 독일을 통치하면서 더욱 극심해진 반유대정책은 절정에 치달았고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2) 세계 2차 대전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류역사는 전무후무한 대 참극이 벌어진다. 1933년 독일 나치당에서 아돌프 히틀러(1889-1945)가 독일의 총통으로 선출된 히틀러는 1차 세계대전의 패배에 침체된 독일게르만민족을 민족주의로 승화시키면서 이면에는 반유대인정서를 자극하고 있었다. 히틀러는 유대인 차별정책으로 유대인들에게 완장을 차게 하면서 유대인들을 핍박하는 독일인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유대인 상점은 약탈되고 유대인 회당은 불에 탔다. 이같은 상황을 피하는 길은 독일을 떠나는 것 뿐이었으나 그 사회에 애착이 있었던 유대인들은 수용소 게토에 갇히는 유대인의 수도 늘어만 갔다.
(3) 홀로코스트
2차 대전이 극으로 치달으면서 게토에 갇혀있던 유대인들은 기차에 실렸고 기차의 선로가 끝나는 곳은 아우슈비츠 학살수용소였다. 2차 대전이 남긴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참극은 바로 아우슈비츠에서 이루어졌다. 연합군이 아우슈비츠를 점령했을 때. 유대인들은 무려 7년 동안 갇혀 있다가 죽음을 당한 유대인 수가 약 1000만명 중 600만명이 나치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는 홀로코스트소식은 온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런 상활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렘30:7) 아아 슬프도다! 그 날이 커서 그것과 비길 날이 없나니 그 날은 야곱의 고난의 때로다. 그러나 그가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아이러니하게도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정책은 이스라엘의 민족을 팔레스타인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후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국가의 소중함이 뼈속 깊이 사무쳤던 것이 국가재건의 기초를 쌓은 것이다. 유럽사회에 정착하여 유대국가 건설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유대인들에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열망이 물밀 듯이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 250,000만 명이 나치즘을 피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것이다. 가장 대규모의 Aliyah는 이스라엘 독립 이후인 1948년부터 1950년까지 50만이 넘는 유대인들이 한꺼번에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하였다. 이일 후 국제사회는 다시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면서 유대인 국가건설에 대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유대민족의 씨를 말리고자 저질렀던 홀로코스트가 아이러니하게도 이스라엘 건국을 앞당기는 기적을 낳았었다.
(4) 이스라엘 독립을 위한 유엔총회 가결
1947년 11월 29일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국가 건설에 대한 안이 유엔 총회에 상정되었다. 당시 석유이권을 내세우면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던 아랍국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유엔총회 결과는 찬성 33 반대 13 유엔은 개표결과에 따라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이스라엘의 승리였다.
(5) 이스라엘 독립
(렘30:3,7) 3 주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들이 이르리니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된 자들을 다시 데려오며 또 그들로 하여금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되돌아오게 할 터인즉 그들이 그 땅을 소유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7 아아, 슬프도다! 그날이 커서 그것과 비길 날이 없나니 그날은 야곱의 고난의 때로다. 그러나 그가 그 고난에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 독립되었던 상황을 역사는 이렇게 전하여 주고 있습니다.
“그 날 이른 아침에 대영제국의 국기인 유니온 잭이 내려지고 태양이 빛나게 내리쪼이는 가운데 새로운 수도인 텔 아비브의 로스 차일드 거리에 많은 군중들이 몰려왔다. 여기에는 세계의 여러 신문사 대표자들과 유대 랍비의 지도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오후 4시 정각, 드디어 데이비드 벤 구리온이 개회를 선언했다.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가 끝나자마자 벤 구리온이 일어나서 히브리말로 이스라엘의 독립선언을 똑똑하게 읽어 나갔다. 온 회중은 일어나서 박수갈채를 보냈으며 많은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길고도 험난한 세월 끝에 이스라엘 독립이 이루어 진 것은 성경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이스라엘은 2000년간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다가 하나님 말씀대로 갑자기 하루 아침에 생겨났다. 우리가 이스라엘을 보는 것 자체가 놀라운 기적이다. 세계 1차 대전이나 2차 대전이 일어날 확률도 적었지만 그 전쟁으로 인해 이스라엘을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다. 1차 대전으로 인해서는 이스라엘 땅에 대한 권리를 얻게 되었고 2차대전에서는 홀로코스트로 인하여 세계의 여론과 유대인들 자체적으로 나라에 대한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로 이스라엘 독립국가 건설은 출애굽 이후 가장 큰 기적 이라고 볼 수 있다. 왜 이것이 더 큰 기적이냐 하면 출애굽은 애굽 고센땅에서 종살이 한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나온 것이지만 이스라엘의 재건은 세계전역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나온 역사이고 어쨌든 출애굽 이상의 기적을 하나님이 역사하셨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역사는 이스라엘은 나라를 잃고 유랑한지 1900년 만인 1948년 독립국가를 세웠는데 세상은 이런 유례를 찾아 볼 수 없기에 기적이라고 했다.
(6) 이스라엘 건국과 전쟁
유엔이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하라는 것이 가결되면서 1948년 5월14일에 이스라엘은 독립 국가를 선포하였고 독립이 선언되고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집트 6개국은 신생 독립국 이스라엘을 향해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이스라엘은 8개월간 계속된 독립전쟁에서 유대인 인구의 1%에 가까운 6천명이 전사했으나 대부분 지역에서 아랍 연합군 부대를 물리쳤지만 이 독립 전쟁은 시작에 불과했다. 1948년 5월 14일 독립하면서 독립전쟁을 하여 죽을지언정 몇천년만에 온 이 기회를 잃을 순 없었다. 당시 유대인 인구 65만명인데 전쟁을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이 바로 적기이다. 벤구리온 지도자들이 이것이 몇 천년만에 온 기회를 놓치면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전쟁은 6나라의 연합국과 한 것인데 결과는 이스라엘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1950년대 들어 이집트에서 나세르 대통령에 의해 범아랍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고 군비를 증강시킨 끝에 1956년 이집트가 수웨즈 운하를 국유화하는 위기가 조성되자 이스라엘은 '시나이 작전'이라는 이름하에 순식간에 시나이 반도를 점령과 동시에 최신 장비로 무장한 이집트군을 무력화시킨 후 휴전 협정을 체결하여 전쟁을 종결시킨다. 독립 전쟁을 포함 6차의 중동전중 [독립전쟁 (1948), 시나이작전(1956), 6일전쟁(1967) 이집트와의소모전 (1968-1970), 10월(욤키푸르)전쟁(1973), 레바논전쟁(1982)]중에서 현대 이스라엘 역사의 분수령이 된 것은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로부터 골란 고원, 가자 지구, 요르단 서안 지구 시나이 반도 등 자기 영토의 3배나 넘는 넓은 지역을 점령한다. 통곡의 벽을 다시 탈환하는 감격을 맛보며 순식간에 감람산, 구 예루살렘성, 베들레헴, 헤브론, 세겜, 여리고 등 민족의 성지들을 순식간에 점령해 버렸다.
다시 이스라엘과 하마스간의 전쟁으로 돌아가자.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이번 하마스의 기습에 대해 즉각 성명을 내고 하마스에 전례 없는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하면서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호재로 평가됐다. 지금총리는 베냐민 네타냐후인데 이전 총리는 진보좌파 베네트총리였는데 보통은 이스라엘 하면 보수적인 나라로 알았지만 전 진보좌파정권에서는 이스라엘은 앞으로 미래의 이스라엘로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개혁을 했는데 전 같으면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못했는데 예를들면 식사준비하는 것도 없으며 저녁에는 형광등 스위치도 안킨다는 것이며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10분정도 기다리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3분 뒤에 닫히고 각 층마다 3분씩 정차한다면 10층짜리 올라가는 것만 30분 걸린다는 것입니다. 이외도 대중교통일체 운행하지 않고 슈퍼나 백화점도 금요일 저녁부터는 문을 닫고 그래서 베네트정부에서는 오늘날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데 그들이 안식일 날 외부로 가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래서 안식일에도 병원, 백화점 열고 대중교통 운행해야 하고 통곡의 벽 여자 구역 남자구역 없애버렸고 과거에는 정통유대인들은 군대도 안가고 직장도 안다녔어도 국가에서 생활비주었는데 지금은 그런거 다 없애고 모두가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한다고 했으며 생활비도 줄이면서 모두가 돈벌라고 독려했다. 또 동성애가 어때 하면서 보건부장관을 동성애자로 앉혔고 이스라엘은 종교의 자유가 있으므로 유대교가 아니라도 기독교도 괜찮아 그래서 지난 베네트정부에서는 정통유대인들의 불만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베테트 정부가 쫓겨나면서 작년 11월에 선거로 등장한 정부가 전에 15년 총리했던 베냐민 네탸냐후가 다시 정권을 잡게 되면서 정통유대인들이 군대를 가지 않게 되었고 생활비도 충분히 주게 되었다는 것은 이 나라가 유지되는 것은 저들의 기도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국회가 법을 바꾼다하여도 사법부가 제동을 걸면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니 정통유대인들은 사법개혁반대를 위한 법을 입법하면서 사법권의 무효화할 수 있는 법을 무효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법부는 이것은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고 독재정치이다 라고 목소리를 높일 수 밖에 없었다. 정통유대인 이런 독재국가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재산을 해외로 빼돌리고 군인들도 이런 독재국가에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고 예비군들 훈련을 불참하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안보의 공백을 하마스가 알아차렸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안보장관으로 임명된 사람이 군인 1000명을 대동하고 황금사원을 방문했다. 아랍사람들은 황금사원은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흰말을 타고 눈깜작할 사이에 예루살렘에 와서 하늘로 올라가서 아브라함 모세 등을 만나고 내려왔다는 장소에 황금사원을 세워서 이슬람교의 3대 성지로 정해져있다. 안보장관은 1월부터 9월까지 황금사원을 3번이나 갔었고 나라는 보수와 진보로 갈려져 결단나기 직전이고 군인들은 나라안지키겠다고하고 정통유대인들은 병원이고 학교고 아랍사람들과는 같이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일반 유대인들은 이번 하마스가 199명을 포로로 잡아가고 총을 싸서 240명이 죽었던 그 축제현장은 밤새도록 마약파티를 하였으며 그 축제현장의 가운데는 불상을 갖다 놓고 춤을 추었는데 마치 광야에서 유대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춤추었듯이 이번에도 불상주변에서 춤추는 중에 하늘에서 하마스군인들 글라이더가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이 마약파티를 정말 누가 마지막을 가장 놀라울 이벤트로 준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마자 총소리에 쓰러져가는 사람을 보면서 혼비백산하여 뛰어다녔지만 일부 240명은 총에 맞아 죽었고 일부는 인질로 잡혀 차에 실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텔아비브는 전체 인구중 25%가 동성애자라고 하며 매년 5월이면 텔아비브에서 동성애자들의 축제에는 전세계에서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숫자만 40-50만명이라고 하다니 그때가 되면 현대판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이스라엘 땅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성적타락은 텔아비브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사람들하면 이스라엘하면 영적인 사람들이라 영적으로 무장되어 있으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라는 것에 놀라게 된다. 하나님의 진노가 극에 달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결과 이번 10월7일에 일어났었던 사건은 하마스 혼자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뒤에서 이란이 물자를 대 줘가면서 배후조종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란은 하마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공격하도록 장비와 기술을 지원했으리라고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도 하마스가 판 땅굴 500km는 북한의 무기를 이란에 주면 이란은 이 북한무기를 하마스에게 주었던 것이 이 전쟁에서 밝혀졌다는 것이다. 한편 중동에서 벌어진 분쟁은 동맹인 미국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0년 기준 미국 내 유대인 인구는 760만 명, 인구 2.4% 수준으로 추산되는 유대계 미국인 표심은 미국 정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친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2024년 재집권을 노리는 바이든 행정부에 있어서 그간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한 아랍계 미국인 표심 이탈도 엿보인다. 전쟁장기화는 이스라엘도 초반에는 네타냐후 총리의 기사회생 기회로 평가됐지만, 이후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가며 국제적인 비판에서 이스라엘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9개월째 이어지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피해 상황을 조사한 유엔 독립 조사위원회(조사위)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살상을 저지른 이스라엘 당국과 하마스 모두에 전쟁범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내용의 첫 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위는 지난 4월까지 최소 7300명의 어린이가 사망하고, 지난 5월까지 어린이 1만2332명, 여성 1만3996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주민 살해와 인질 납치 등도 불법행위로 규정했다.
튀르키예 대통령 에르도안이 최초로 이스라엘을 전범국가라고 강력하게 규탄하고 있지만, 이는 에르도안의 정치적 고려도, 튀르키에 대중의 의사도 상당부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특히 튀르키에의 반응이 격렬한 것은 향후 중동에 대한 주도권을 놓고 미리 포석을 깔고 있는 것 아닌가 한다. 이스라엘을 전범으로 선포할 준비를 하는 가운데 한달 튀르키에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공격한 것은 전범국가라고 열변을 토하면서 외치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져서 사망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이 모습을 보고 튀르키에 에르드안 대통령도 그 장면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월 13일 밤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폭탄을 실은 100기 이상의 공격용 무인기(드론)를 발진시켰습니다. 또한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 영토 내 목표물을 향해 이란의 탄도미사일이 발사됐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공습은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이란의 첫 전면적 공격입니다. 그 결과는 2024년 5월 19일, 이란은 중대한 비극을 맞이했다.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였다. 헬기에는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외에도 호세인 아미돌라히안 외무장관 등 총 9명 모두 정부 고위 관계자로, 이란 정부의 핵심 인물들이었다. 사고 헬기와 함께 이동한 나머지 헬기 2대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라이시 대통령이 탑승한 헬기는 기상 악화로 인해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을 향해 저주하는 사람들이 쓰러지거나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는 것을 그냥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싸우면서도 그들에게 물과 전기와 식량을 공급해 가면서 전쟁을 하는 것이 무슨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인지 이런 것은 하나님이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니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대신 갚아주시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위해 축복기도하여야만 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