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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공동체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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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12월14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에서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개최되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한국·중국·일본·인도·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 16개국이 참가한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각국 대표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쿠알라룸프르 선언’을 채택했다. 동아시아 정상회의 개최는 이 지역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를 갖는다. 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인 리처드 아미티지도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과연 동아시아에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을까? 필자는 회의적이다. 이 구상에는 수많은 한계 요인들이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그 뜨거운 땅
‘동아시아의 범위’는 도대체 어디까지일까? 먼저 이 정의를 내리지 않고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이 지역은 지금까지 ‘동아시아’(East Asia)라는 이름 이외에도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 왔다. ‘극동’(Far East)이라는 명칭도 있다. 이것은 유럽의 시각에서 본 지리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명칭이다.
혹은 ‘대동아 공영권’(大東亞 共榮圈)을 연상시킨다는 이유에서 이 명칭은 최근에 별로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동아’(東亞)라는 명칭도 있다. ‘원동’(遠東)이나 ‘아동’(亞東)이라는 명칭도 동아시아와 겹치는 지역을 나타내는 의미의 용어로서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이른바 ‘오리엔트’라는 명칭에 동아시아를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어떠한 분류에 기준을 두고 동아시아를 정의하면 좋을까? 우선 동아시아를 ‘유교 문화권’으로 묶는 방법이 있다. 이 분류 기준을 근거로 하면 일본은 물론 한반도·중국·대만·홍콩, 더 나아가서는 베트남·싱가포르까지 모두 동아시아에 포함된다. 이 범위는 동시에 ‘젓가락을 사용하는 문화권’과 서로 겹치게 된다.
혹은 ‘유교 문화권’에 있는 한국·중국·일본이라는 아시아의 핵심 3개국이 동아시아에 해당된다는 견해도 있다. 이같은 내용을 내세우고 있는 중국 주장에 따르면 그것은 ‘아세안 플러스 3’의 ‘3’이 ‘동아시아 공동체’의 중심 국가이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중국이다.
필자가 학장으로 있는 일본 국제교양대학의 교과 과정에서는 한반도와 일본·중국·홍콩·대만·동남아시아의 화교 사회에 캄차트카와 사할린을 포함한 극동러시아·몽골까지를 동아시아로 간주하고 있다. 학문적으로 정의하면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는 다른 지역이다.
이번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성범위를 둘러싸고 ‘아세안 플러스 3’를 중심으로 할 것인지 혹은 세 나라에 더하여 인도와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를 포함시킨 16개국을 중심으로 할 것인지 상충된 견해로 일본과 중국이 격렬한 외교전을 전개했다.
결국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2일 전에 개최된 ‘아세안 플러스 3 정상회담’의 공동선언에서 아세안 플러스 3는 ‘동아시아 공동체’ 형성에 있어서 ‘주요한 수단’이라는 문장이 중국의 주장대로 첨가되었고, 한편으로 동아시아 정상회의의 ‘쿠알라룸프르 선언’에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공동체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문장으로 표현된 일본 입장이 반영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국제정치상의 헤게모니 장악의 수단으로서 동아시아의 범위를 결정하려는 속셈일 뿐이다. 결국 동아시아는 어느 범위를 나타내는 것인가, 또한 어떠한 의미를 공유하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절름발이 공동체
현재 경제적인 기능면에서의 일체화(一體化)가 동아시아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동아시아의 비즈니스 문화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고 있다.
20년 전과 달리 지금은 중국과 홍콩, 대만 그리고 한국과 싱가포르의 어느 공항에서도 노트북을 들고 업무에 열중하는 국제 비즈니스맨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무역에 있어서도 현재 무역 총액의 약 60%에 해당하는 거래가 이곳 동아시아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 정도로 동아시아 각국 간의 경제적인 상호 의존도가 높아져 가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러한 기능적인 측면만으로 과연 공동체가 구축될 수 있는 것일까? 상호 의존도가 깊어짐에 따라 비정치적·비군사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한 일체화가 진행되어 가며 여러 가지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면 현재 동아시아 각국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 등에 의한 감염증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에는 말라카해협이 그 무대가 되고 있는 중국발 무기 불법거래와 태국·라오스·미얀마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황금의 삼각지대’의 마약거래도 활발하다.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은 이 지역에 불법 난민이 많다는 점이다. 일본에도 중국인을 중심으로 하는 약 20만명의 불법 난민이 있다. 또한 대만은 중국 대륙의 복건성(福建省)으로부터 들어온 불법 난민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주장한다면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 일체화에도 공동으로 대처해 가야 한다. 그러나 예컨대 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문제도 그러하듯이 중국의 일방적인 반대로 대만의 WHO(세계보건기구) 가입조차 실현되고 있지 않다. 이러한 문제들이 선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왜 경제의 한 측면만을 내세워 공동체를 논의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의 속셈
유럽에는 EU(유럽연합)가 있다. 동아시아에서도 EU 모델의 공동체 구축 가능성을 점치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EU 각국에는 공통의 기반에서 상호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역사적인 배경이 존재하고 있다.
17세기에 독일에서 체결된 웨스트팔리아조약으로 유러피언 스테이트 시스템(서구 국가 체제)이 탄생했다. 그리고 시민사회가 첫발을 내딛게 되고, 근대적인 ‘네이션 스테이트(국민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반을 전제로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독일과 프랑스 간에 상호 불가침 합의와 전쟁 원인의 사전 제거를 위하여 석탄과 철의 공동 관리를 목적으로 한 유럽석탄철광공동체(ECSC)가 1950년대 초에 조직되었다. 이어서 유럽경제공동체(EEC)와 1960년대의 유럽자유무역연합(EFTA)이 통합되어 동서 냉전이 종결된 이후 현재의 EU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에 반하여 동아시아에는 그러한 역사적인 공통 기반은 존재하지 않았다. 존재해 왔던 것은 단지 차이니즈 월드 오더(중화 세계 질서)였다.
중국의 황제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몇몇의 소국(小國)과 조공국(朝貢國)이 존재하는 일방적인 도식(圖式)인 것이다. 그것은 동시에 중화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인 피라미드 구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은 쇼토쿠 타이시(聖德太子)가 “동쪽 나라의 천황이 서쪽 나라의 천황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안녕하십니까?”라고 당당하게 수나라의 양제(煬帝)에게 국서를 보낸 바와 같이 그러한 중국의 일방적인 도식에는 찬성하지 않았다. 또한 인도 역시 중국과는 전혀 다른 ‘문명권’을 형성해 왔다.
이처럼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더라도 중화 세계 질서에 복종해 온 나라와 그렇지 않았던 나라가 서로 공존해 온 동아시아에 참된 공동체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중국 스스로 중화사상으로부터 어떻게 탈피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그 열쇠이다.
그렇지만 당사자인 중국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수단’으로 하여 더욱 더 중화 세계 질서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아니라 ‘아세안 플러스 3’으로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상을 진척시켜 가려는 의도가 그 증거가 되고 있다. 이미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은 그러한 중국의 의도에 뒤얽혀져 있는 듯한 분위기다.
노정된 한계
중국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진하여, 그 ‘문명권’을 확대해 가려는 움직임 속에서 역사적으로 일본과 같이 여러 가지 문화를 유연하게 받아들여 온 ‘문화권’이 난폭한 ‘문명권’에 의해 침략을 받을 가능성마저 있다. 이러한 “문명이 문화를 침략”하는 상황에 대하여 과연 어느 정도의 대응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 것일까?
냉전 시대의 옛 서독과 동독의 소득을 비교해 보면 그 격차는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겨우 6대1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본과 중국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 비율은 35대1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싱가포르와 부르나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인당 GDP가 1만 달러를 넘지 못한다. 또 선진국 수준의 한국과 대만 등과 견주어 보아도 일본의 경제적인 풍요로움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동아시아에는 그 정도로 결코 ‘평등하지 않는’ 나라들이 존재하고 있어, 과연 보조를 맞출 수 있을지 의문을 갖게 된다.
또한 공동체를 구축하는 경우, 공통어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가 있다. 유럽의 경우, 영어와 프랑스어는 서로 다르다고 하더라도 유럽계의 언어라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
동아시아의 공통어를 영어로 한다면 커뮤니케이션 도구로서의 문제는 없다. 그러나 싱가포르 등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아직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영어는 전면적으로 보급되어 있지 않는 실정이다. 중국은 언어적인 측면에 있어서도 매우 불리한 입장에 처해 있다. 자국 대학에 유학온 다른 나라 학생에 대한 강의는 중국어로 한정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연합에서는 공용어를 채택할 때, 회원국 간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영어와 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중국어 등의 언어를 지정했다. 그러나 이번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공동체’의 공통 언어에 관해서는 논의된 바가 없다.
또한 각국 간의 종교의 차이도 결코 간과할 수 없다. 동아시아에는 이슬람·힌두교·유교 등 각기 다양한 종교 국가들이 있고 일본과 같이 신도(神道)와 불교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도 있다. 이러한 한계점을 모두 보류한 채 이번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는 급조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패권주의적 행동
동서 냉전이 종결된 이후 점차 글로벌화가 진척되어 감에 따라, 국가 간 국경의 개념이 점차 모호해져 가고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는 이전의 냉전 구조가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가 아직까지 중국과 북한에 그대로 남아 있다. 동아시아에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가 남아 있는 한, ‘동아시아 공동체’의 구상도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최근에 중국은 세계 패권을 목표로 미국에 대한 대항 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끝없는 군비 확장을 꾀하고 있다. 미 국방성 발표에 의하면 중국의 국방비는 그 나라가 대외적으로 공표한 바 있는 수치의 3배에 해당하는 9,60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해군력의 증강 폭이 현저하다. 대만해협 남쪽의 바스해협과 일본의 이시가키섬의 옆을 통하여 오키나와로부터 태평양으로 빠져나가는 해역에는 중국의 송(宋)급 잠수함이 매일처럼 오가고 있다. 또한 센카쿠(尖閣) 열도를 중국의 영해로 간주, 중·일 중간선 부근에서 일본의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가스전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등의 5개국과 함께 ‘상해협력기구’를 구성하고 있다. 가맹국은 국제테러와 민족분리운동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등 경제와 문화 부문에서의 상호 협력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상호 협력을 추진해 가고 있다. 2005년 8월에는 이 기구를 기반으로 중국과 러시아에 의한 대규모의 군사훈련이 행해진 바 있다. 상해협력기구 설립의 당초 목적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에 기지를 둔 것에 대한 대항조치였다.
중국은 재빨리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으로부터 이탈한 필리핀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으며, 북한 문제를 다루는 6자 회담에서 언뜻 보기에는 협조적인 자세를 보이는 듯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철저히 북한 편을 들고 있다. 이라크와 리비아, 현재로서는 수단과 짐바브웨, 아이티 등 이른바 ‘문제국가’들과도 우호관계를 맺으려 하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 공동체’ 구축이 논의되고 있는 이 지역에는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이라는 조직이 구성되어 있다. APEC에는 인도 등 몇 나라를 제외한 아세안 각국과 북미, 오세아니아와 아시아 등의 주요 국가가 거의 대부분이 참가하고 있다.
APEC은 이름 그대로 경제협력기구이므로 ‘동아시아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하나를 이미 실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왜 중국은 APEC과는 다른 조직의 구축을 꾀하고 있는 것일까?
EU처럼 ‘동아시아 공동체’가 탄생해 세계의 모든 분야가 서로 연결돼 최종적으로는 지구 전체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인다는 구상을 전제로 한다면 ‘국제연합’이 오히려 더욱 더 주목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라크 문제를 보더라도 지금의 국제연합은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다. 국제연합의 개혁은 매우 중요한 사항이지만, 중국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의 지위를 악용해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국제연합 분담금을 부담하고 있는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고 있다. 국제연합의 개혁에 참여하려고 하는 일본에 대하여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는 나라가 한편에서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주도권을 손에 넣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중국이 보이고 있는 일련의 패권주의적인 행동은 비상식적인 행위라고밖에 볼 수 없다.
중국은 패권주의적인 행동과 ‘동아시아 공동체’와의 관계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그러한 나라가 ‘동아시아 공동체’를 주도해 가려는 의도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서로 다른 세 나라
동아시아의 중심인 한국·중국·일본의 3개국 사람들의 풍모는 서로 비슷하지만 거기에는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적·문명적인 위화감’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한 위화감을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고찰해 보면 한국의 반도성(peninsularity), 중국의 대륙성(continentality), 일본의 도서성(insularity)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중국은 이른바 대륙 국가이며, 중국의 4,000년의 역사는 대륙적인 풍토와 함께한 흥망의 역사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자기 중심적인 세계관만이 존재해 왔으며,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권력투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대륙 국가인 중국의 우주관에는 ‘음양이원론’이 있다. 이 음양이원론이란 예를 들어 죽어서도 악한(惡漢)은 악한이라는 발상이다. ‘죽게 되면 모두 신(神)이 된다’는 일본인의 생사관과는 완전히 다르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의 경우 이러한 가치관이 그 배경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반도 국가이다. ‘반도성’의 특징은 ‘소(小)중화사상’에 있다. 소(小)였으므로 역사적으로는 조공국이었던 중국의 안색을 살필 수밖에 없었다. 최근의 한국은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민족주의적인 경향과 더불어 반일적인 여론이 있다. 이러한 경향에서 볼 때 한국은 일본보다는 중국에 더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일본은 어떠할까? ‘도서성’이라는 것을 보다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해양성이다. 해양성에는 한반도와 중국 대륙뿐만 아니라 유럽과 북미대륙,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로부터 다양한 문화와 제도·문물을 받아들여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도록 바꿔가는 독특한 창조성이 함께하고 있다.
중국은 ‘원한(怨恨)의 문화’를 지닌 나라이다. 오늘날에 와서도 일본을 원망하고 있다. 전후 60년 동안 정치적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큰 혼란과 실패를 거듭해 온 중국은 패전 이후에도 번영을 계속해 온 일본에 대한 선망을 원한으로 바꿔가고 있다. 또한 한국은 ‘노(怒)의 문화’, 일본은 ‘치(恥)의 문화’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필자는 이러한 상이점을 ‘매운맛’에 비유하곤 한다. 한국의 경우는 급격하게 달아 오르는 ‘청양 고추와도 같은 매운맛’이다. 그리고 중국의 경우는 언제까지라도 그 매운맛이 가시지 않는 혹독한 ‘라유(辣油)의 매운맛’이다. 일본은 맵기는 하지만 그 매운맛이 곧 없어지고 마는 ‘고추냉이의 담백한 매운맛’이다.
현실적으로 이러한 ‘문화적·문명적인 위화감’이 존재하고 있는 세 나라에서 근·현대사의 공동연구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체험의 상이점과 역사인식에 대한 상이점을 상호 이해해 가는 성실한 논의가 없이는 단지 형식적인 겉치레로 끝나고 말 것이다.
역사적인 성숙 없이 ‘동아시아 공동체’를 아무리 주창해도 그것은 단지 구호에 불과하다는 게 필자 생각이다.
일·미 동맹의 유지와 강화
지금까지 ‘동아시아 공동체’의 비현실성에 관해 논의해 보았다. 그러나 일본을 둘러싼 국외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도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진하려는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은 아시아 지역의 경제 상호 의존 관계와 무역의 확대라는 관점에서 미국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아시아 각국 간의 관계를 강화해 가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잘못된 판단이다. 앞서 말한 바와도 같이 일본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많은 나라들과 역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공통의 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
중국을 조심스럽게 국제무대로 유도해 내기 위해서라도 ‘동아시아 공동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자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의견 역시 잘못된 판단이다. 중국은 다른 나라의 충고와 영향력에 의하여 좌우되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에서 정책이 크게 전환될 때에는 반드시 내부의 격렬한 투쟁이 수반된다. 정책 전환은 국외적인 요인이 아니고, 언제나 중국 내의 요인에서 비롯된다. 마오쩌둥 사후 측근 4인방이 체포되어 문화대혁명이 종결되고, 화궈평(華國鋒) 수상을 추방한 덩샤오핑(鄧小平)에 의해 경제개혁과 대외개방이라는 정책 전환이 전격 이뤄진 것이 좋은 예가 된다. 즉 중국을 정책적으로 가능한 한 연착륙시키려고 주변이 아무리 애써도 아무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이 점이야말로 중국의 ‘자율성(自律性)’이다.
애당초 작년 말에 동아시아 정상회의가 개최된 배경에는 고이즈미 총리가 2002년 1월 아세안 방문길에 언급한 바 있는 애드벌룬과도 같은 발언이 그 단서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고이즈미 총리의 신념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구상이 지금의 동아시아 정세에 부합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내의 ‘동아시아 공동체’ 추진 세력들이다. 그러한 일부 유력 정치가들의 중국에 대한 견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다시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일본이 취해야 할 노선은 일·미관계의 유지·강화 이외에는 없다. 현실적으로 중국에 의한 대만 침공의 가능성을 상정해 둘 필요가 있다. 중국이 군사력의 확대를 꾀하고 있는 것은 우선적으로 대만 침공을 위한 준비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만은 여러 가지 국내 문제를 안고 있다. 2005년 12월의 통일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이 압승한 것을 보더라도, 중화 세계에서 처음으로 민주화를 실현한 바 있는 리덩후이(李登輝) 전 총통이 주창한 대만화(臺灣化)의 진전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대만 정체성만큼은 더욱 강화되어 갈 것으로 보여진다. 이전의 총통 선거에서 천수이볜(陳水扁)이 당선되었을 때, 민진당(民進黨) 등 녹색 진영(민진당·대만단결연맹)의 득표율은 약 30%였다. 2004년의 재선거 때에는 51%로 늘어났다. 아마도 다음 총통 선거에서는 70% 전후의 높은 득표율을 획득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반드시 헌법 개정의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현재 대만의 헌법은 손문(孫文)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근거로 하는 중화민국헌법으로 일본의 전후 헌법보다도 훨씬 시대에 뒤떨어져 있다. 정세의 변화에 맞추어 개정할 헌법 내용이 많다.
그러나 헌법 개정이 독립 주권 국가의 행위라는 측면에서 볼 때, 대만 국민들 스스로가 결정해 가야 할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에 대하여 중국이 반응을 나타내지 않을 리가 없다. 현실적으로 중국은 군사력의 확대와 더불어 2005년 3월에는 ‘반국가분열법’을 제정하는 등 일련의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정세의 움직임을 전제로 일본은 확실하게 일·미동맹을 견지하며 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 연합을 구축해 갈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중국 주도 하에 들어가 버리고 말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슬로건은 아무리 주창해도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한다. ‘동아시아 공동체’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필자가 내리는 결론이다.
문> 동아시아 공동체는 환상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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