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악동들.
정월대보름을 맞아 어릴 적 아련한 추억을 떠올려본다.
한겨울이면 마파람을 맞고는 도저히 마을로 들어설 수 없어 뒷걸음질로 가야만 했던 나루터가 있었던 구드레가 고향마을이었다. 지금은 공원으로 선착장으로 탈바꿈했지만 필자가 어릴 적에는 사람 살기가 고약한 동네였다. 백마강은 꽁꽁 얼어서 강건너 신리동네와 작은집이 있는 은산까지 얼은 강을 건너서 다녀오곤 했었다.
강바람이 세차고 모래밭에서 굴러다니며 놀았던 마을의 아이들은 자연히 억센 악동들이었다. 한겨울에 손발은 동상에 걸리는 것은 기본이고 얼굴이 트고 콧물은 자동으로 달고 살았다. 얼음 위에서 썰매를 타고 팽이를 돌렸던 그 시절이 가끔은 그립기도 하다. 눈이 오면 언덕배기에 올라 비료푸대를 타고 내려오다 뒤집어져서 가끔 다치기도 했었다.
대보름이 되면 아이들은 더욱 가관이었다. 대보름 전날에 집집마다 오곡밥과 갖가지 나물을 했고 아이들은 밤에 오곡밥을 얻어서 각종 나물을 넣고 서리를 한 들기름에 밥을 비벼서 함께 나누어 먹었다. 지금으로 치면 개꿀맛이었다. 백마강 백사장에 모여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통조림깡통에 관솔불을 담아서 뱅뱅 돌리다 던져 불꽃 포물선을 그렸다. 깡통을 돌리다가 시장끼가 들면 동네로 닭서리를 다녔다.
아랫동네 씨알좋은 닭집 주인아들은 윗동네로 빗자루서리를 보내고 그집에서 제일 실한 암탉을 서리했다. 서리한 닭의 껍데기를 홀랑 벗겨서 진흙을 발라 모닥불 속에 던져 놓으면 그만이다. 자기집 닭인 줄도 모르고 닭집 아들이 제일 맛있게 먹는다. 진실을 알고 있는 악동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 받으며 킬킬 웃었다.
산에 나무가 그리 많지 않았던 마을의 논과 밭은 지불을 놓아 불태웠다. 그리고 마당 한 가운데에 볏집이나 솔가루(솔잎)을 태워 지펴놓고 그 위를 건너 뛰며 외쳤다.
"정월대보름날 씨부려(씨뿌려)~~"
누군가 자신을 부르면..
"먼저 떠위(더위)~~"
더위를 먼저 가져가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좋지 않은 기운을 물리치고 무병을 빌며 딱딱한 것들을 깨물었고 마을 한가운데에서는 윳판도 벌어졌다. 그렇게 대보름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맞이 준비를 하는 우리고유의 최대 명절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면서 이제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정월대보름인 오늘 겨울비가 내린다. 찹쌀 잡곡밥은 먹었지만 아련했던 그때 그 추억이 떠올라 몇 자 끄적여본다.
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