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7638]秋江,南孝溫(추강, 남효온)-서강 한식(西江寒食)
1. 스승 김종직의 ‘최애’ 제자이자 김시습의 절친
남효온은 1454년에 태어났다.
당대 최고의 학자 김종직의 문하에서 김굉필, 정여창 등
뛰어난 엘리트들과 함께 공부했다.
스승인 김종직이 항상 이름을 부르지 않고
“우리 추강(남효온의 호)”이라 불렀을 정도로 몹시 아끼고
존경했던 훌륭한 제자였다.
또한 천재 기인 ‘김시습(1435~1493)’과도 나이를 뛰어넘은 깊은 우정을
나누며 그의 은둔적 사상과 문학에 큰 영향을 받았다.
2. 권력에 날린 팩트 폭격, ‘미친 선비’의 탄생 (만 24세)
그의 인생이 180도 바뀐 결정적 사건은 1478년(만 24세)에 일어났다.
성종이 계속되는 자연재해를 극복하기 위해 신하들에게 쓴소리(직언)를 구하자,
그는 8개 조항의 파격적인 상소문을 올렸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조항인 ‘소릉(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의 무덤) 복위’
주장이었다. 이는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하고
쿠데타로 집권한 공신들의 명분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엄청난 폭탄 발언이었다.
이 일로 당대 실세였던 임사홍, 정창손 등 훈구파의 거센 반발을 샀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친 선비(광사)’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벼슬길이 막히게 되었다.
3. 타협을 거부한 낭만주의자이자 참된 기록자 (만 26세~30대)
1480년(만 26세), 어머니의 간곡한 명령으로 마지못해
생원시에 응시해 합격했지만,
“소릉이 복위된 뒤에야 과거를 보러 나가겠다”며
더 이상의 출세를 거부했다. 이후 뜻이 맞는 친구들과
‘죽림거사’를 맺어 술과 시로 울분을 달래고 전국을 유랑하는
고상한 낭만주의자의 삶을 살았다.
특히 당시 아무도 입에 올리지 못하던 금기 사항이었던
단종의 충신들(사육신)의 사연을 적은 『육신전』을 집필했다.
문인들이 훗날 큰 화를 당할까 봐 말렸음에도,
“죽는 것이 두려워 충신의 명성을 소멸시킬 수 없다”며
당당히 책을 세상에 펴내는 엄청난 담력과 의리를 보여주었다.
4. 죽어서도 끝나지 않은 고난과 조선의 ‘생육신’으로 부활
(만 38세 사망 및 사후)
은둔 생활 중 몸과 마음이 쇠약해진 그는 1492년(만 38세),
39세(전통 나이)의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504년 갑자사화 때 과거에 쓴 ‘소릉 복위 상소’가 반역으로 몰려,
무덤 속 시신이 꺼내져 훼손당하는 끔찍한 ‘부관참시’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1513년, 마침내 소릉이 복위되면서 그의 억울함도 풀려
높은 관직에 추증되었다. 훗날 그는 단종을 향한 지조를 지킨
‘생육신(生六臣)’ 중 한 명으로 역사에 깊이 각인되었으며,
절친 김시습 등과 함께 암울한 현실에 문학으로 맞선
‘산림삼걸(山林三傑)’로 불리며 문학사에서도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西江寒食
서쪽서 강강 찰한 밥식
서강(에서의) 한식
◆西江: 서울 서쪽에 있는 마포의 한강을 이르는 말.
天陰籬外夕寒生
하늘천 그늘음 울타리리 밖외 저녁석 한기한 생길생
하늘(은) 그늘져 울타리 밖(에는) 저녁 한기(가) 생겨나고
寒食東風野水明
찰한 밥식 동쪽동 바람풍 들야 물수 밝을명
한식(에) 동쪽 바람 (불고) 들 물(은) 밝네.
無限滿船商客語
없을무 한계한 가득찰만 배선 장사상 손님객 말씀어
한계 없이 배(를) 가득 채우는 상인(들의) 말
◆無限滿船商客語: 4구와 이어져
“세상은 시끌벅적한데 나는 왜 이렇게 고향이 그리운가”라는
내면의 쓸쓸함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된 대조 장치다.
柳花時節故鄕情
버들류 꽃화 때시 절기절 옛고 마을향 정정
버들꽃 (피는) 시절(에) 고향(을 생각하는) 정
◆批: 어찌 왕유의 시 보다 못하다 하겠는가?
조선 전기의 문인 남효온(南孝温)이 지은 한시 「서강한식(西江寒食)」은
한식날 서울 마포의 서강 나루터에서 느낀 쓸쓸한 마음과
간절한 고향 생각을 담은 서정시이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활기차고 평화로워 보이는 봄 풍경을 제시하지만,
그 이면에는 시인 개인의 깊은 고독감과 향수를 숨겨두어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시의 전반부는 한식날 저녁 무렵의 차분하고 서늘한 분위기로 시작된다.
날이 어두워지며 울타리 밖으로 번지는 저녁 무렵의 차가운 기운은
시인의 마음속에 내재된 쓸쓸함을 시각적·촉각적으로 자극한다.
하지만 이내 봄철에 부는 동풍이 들판의 물줄기를 환하게 비추며
반전되는 풍경이 펼쳐진다.
후반부로 들어서면 시선은 서강 나루터에 가득 들어찬 상선(商船)들로 향한다.
배에 짐을 가득 싣고 분주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상인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는 세상의 활기찬 생명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인은 이 활기찬 풍경에 동화되지 못한다.
오히려 버들꽃이 휘날리는 이 아름다운 봄날에,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홀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즉, 상인들의 시끄러운 말소리는 시인의 내면적 쓸쓸함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더욱 극명하게 부각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된 문학적 대조 장치인 것이다.
허균은 남효온의 이 시를 읽고
“어찌 왕유(王維)의 시보다 못하다 하겠는가?”라는 비평을 남겼다.
당나라의 왕유는 중국 문학사에서 자연의 풍경 속에
깊은 서정성을 녹여내는 데 탁월했던
‘시불(詩佛)’이라 불리는 거장이다.
허균이 남효온을 왕유에 빗대어 찬사한 것은
이 시가 가진 문학적 성취가 그만큼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균이 이 시를 높게 평가한 이유는 슬픔이나 그리움을
직설적으로 쏟아내지 않고,
풍경과 대조적인 상황을 통해 절제된 감정으로 전달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고향이 그리워 슬프다”고 울부짖지 않는다.
그저 저물어가는 강가, 환하게 빛나는 들물, 바쁘게 떠드는 상인들,
그리고 흩날리는 버들꽃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이처럼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한 회화적 풍경 속에 시인의
쓸쓸한 내면을 완벽하게 녹여낸 감각은 허균의 말대로
당나라 최고의 시인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아름답고 고결하다
古方(5896)秋江,南孝溫(추강, 남효온)-서강 한식(西江寒食)
서강 한식(西江寒食)- 남효온(南孝溫)
天陰籬外夕寒生(천음리외석한생)
寒食東風野水明(한식동풍야수명)
無限滿船商客語(무한만선상객어)
柳花時節故鄕情(유화시절고향정)
흐린날 울타리 밖 저녁 한기 일더니
한식날 봄바람 불고 들판에 흐르는 물은 맑다.
무한히 계속되는 배에 가득한 상인들 이야기
버들꽃 피는 시절에 그리운 고향의 마음이어라.
원문=속동문선 제10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續東文選卷之十 / 七言絶句
西江寒食[南孝溫]
天陰籬外夕寒生。寒食東風野水明。
無限滿船商客語。柳花旹節故鄕情。
서강 한식(西江寒食)-남효온(南孝溫)
하늘 그늘 울타리 밖 차가운 저녁 / 天陰籬外夕寒生
한식날 동녘 바람 들물만 밝았고녀 / 寒食東風野水明
온배의 장사꾼 하는 얘기 / 無限滿船商客語
버들꽃 이 철에 고향 생각 절로 나네 / 柳花峕節故鄕情
ⓒ 한국고전번역원 | 양주동 (역) | 1969
원문=추강집 제3권 / 秋江先生文集卷之三 / 詩 七言絶句
西江寒食
天陰籬外夕寒生。寒食東風野水明。
無限滿船商客語。柳花時節故鄕情。
서강(西江)에서 맞은 한식
날이 흐려 울타리 밖엔 저녁 한기 일더니 / 天陰籬外夕寒生
한식날 봄바람 불어 들판 강물이 밝구나 / 寒食東風野水明
배에 가득한 장사꾼들의 끝없는 얘기 소리 / 無限滿船商客語
버들개지 날리는 시절의 고향 그리는 정일세 / 柳花時節故鄕情
ⓒ 한국고전번역원 | 박대현 (역) | 2007
남효온南孝溫
백공, 伯恭, 추강, 秋江, 행우, 杏雨, 문정, 文貞, 최락당
| 1454(단종 2) |
| 1492(성종 23) |
| 조선, 한국 |
남효온은 세조의 왕위 찬탈로 인한 단종복위운동 실패 이후 관직에 나가지 않고 초야에 묻혀 절개를 지킨 생육신 6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김종직과 김시습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김굉필, 정여창 등과 사귀었다. 1478년(성종 9) 관리등용제도의 개선, 내수사의 혁파, 불교의 배척 등 국정 및 궁중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의 능인 소릉을 복위할 것을 요구하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다. 소릉 복위 주장은 세조 즉위와 정난공신의 명분을 간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어서 훈구파의 심한 반발을 샀다. 그 이후 그는 세상에 뜻을 두지 않고 유랑생활로 나머지 삶을 마쳤다. 또한 사육신의 절의를 추모하여 <육신전>을 저술했다. 스스로 죽림거사를 자처하고 노장의 이론을 높이 여겼으며, 사회적인 체제에서 벗어나 비판적 발언과 분방한 행동을 했던 이른바 방외인문학의 입장에 섰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의령. 자는 백공(伯恭), 호는 추강(秋江)·행우(杏雨)·최락당(最樂堂)·벽사(碧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