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어지간히 하십시오.”
--- 중부연회 김포지방 푸른언덕교회 지동흠 목사 (당당뉴스 기고 글)
꽤 오래전... 아마 20년도 더 된 일인 듯싶습니다. 그때 저는 젊었고 그래서 지금보단 더 거침없고 당차고 하지만 거칠고 설익고 뭐 그랬겠지요...
그래저래 농촌목회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는데 선배들로부터 임지이동에 관한 제의가 있었고 고민 끝에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이래저래 일이 잘 진행되어서 별 일없이 성사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담임목사로 부임하기로 한 그 교회의 원로목사님께서 나의 담임목사 부임을 환영한다고 하면서 하신 몇몇 말씀들이 저를 속상하고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사재를 다 하나님께 바쳐서 그 교회를 설립하신 매우 훌륭한 헌신을 하신 원로목사님은 또한 그 헌신의 이유 때문에 새로운 담임목사가 부임해도 교회목회행정의 이모저모에서 물러나실 의향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그 대단한 헌신의 크기에 비해 여타의 목회자들은 이것저것 마음에 들지 않고 뭐 도대체 별것도 아닌 것인 양 폄훼 하는듯한 말씀을 쏟아 놓으셨습니다. 저는 원로목사님의 말씀이 부당하다고 느꼈고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눈을 크게 뜨고 거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습니다.
“00교회가 목사님 껍니까? 교회를 설립하는 훌륭한 일을 하셨다고 해서 목사님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 의견은 다 무시해도 되는 겁니까? 지금 도시든 농촌이든 작은 교회에서 목회하는 목회자들도 최선을 다해서 기도하며 하나님 뜻 받들고 따르려고 애쓰시는 분들입니다. 목사님만 옳고 훌륭한 줄 아시는 데 그분들도 다 존경받아야 할 훌륭한 목회자들입니다. 그만 욕심 부리시고 지금이라도 후배들에게 존경받으시려거든 00교회를 떠나십시오.”
배석했던 감리사님은 당황해서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 원로목사님은 안색이 창백해지고 입술이 파르르 떨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해부치고 돌아와서 다음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목사관에 들어왔는데 그 원로목사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제가 어제 한숨도 못잤습니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보니 지 목사님이 농촌목회를 아주 훌륭하게 잘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여기 올라오실 생각 말고 농촌목회에 전념하시는 게 어떨까합니다” 저는 퉁명스럽게 답했습니다. “부임하든 안하든 그건 제가 알아서 합니다.” 그렇게 버르장머리 없이 전화를 받고선 임지이동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제가 참 버릇없이 굴었다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나름 훌륭한 신앙의 이력을 지니신 대선배 목사님인데 제가 좀 거칠고 무례하게 말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때 그 원로목사님께 드렸던 제 말을 거둬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어떤 업적을 이루었든, 무슨무슨 자리에 올라 앉아있든 그 업적과 자리로 인해 교만해져서 “나만 잘났고 너는 못났다. 내 생각만 맞고 너는 틀렸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 업적이나 자리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이지요.
가치를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업적과 자리로 인해 목이 뻣뻣해져서 스스로 대단하다고 으스대며 억압하고 차별하고 판단하고 심판한답시고 흉하고 민망한 꼴로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 오히려 지금 우리 감리교에 해악을 끼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 뭐들 그리 잘나셔서 그만그만한 직함을 이용해서 “나만 옳고 너는 틀렸으니 심판 받아라.” 그리 외치고들 계십니까?
성소수자 축복식에 관한 왈가왈부로 감리교가 소란스럽습니다.
이른바 반동성애 활동에 애쓰고 계신 목사님들 가운데 저하고 친분이 있는 가까운 분들도 있습니다. 성실하게 목회하시는... 제가 본받을 것이 많은 분들이기도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성소수자들도 하나님께서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시는 귀한 존재들이니 정죄하고 내치려 하지 말고 기꺼이 품어주고 축복해야한다고 성소수자 환대목회에 힘쓰고 계신 분들도 있습니다. 이 일에 앞장서고 계신 분들과도 저는 제법 친분이 있습니다. 그분들의 면면을 잘 압니다. 진실하게 목회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시는... 정말 훌륭하고 본받을 점이 많은, 존경받아 마땅한 선후배 목사님들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을 고발해서 재판받게 하겠다고 핏대를 올리고 있고...
제발 우리 감리교가 하나님의 뜻을 바르고 귀하고 복되게 받들고 나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사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한 저와 같은 정회원 목사들을 자격심사위원회로 회부한다느니 어쩌니 하며 설치고 있으니 참 안쓰럽고 딱한 심정만 듭니다.
대체 누가 누구를 판단하고 심판한단 말입니까?
동성애 혹은 성소수자 문제가 교회를 집어삼킬 광풍처럼 인식하고 있는 분들도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수많은 비리와 거짓과 불의... 차마 입에 담기 부끄러운 악행들을 저지르고서도 뻔뻔하게 교회와 교단의 지도자로 행세하고 있는 이들이 수두룩한데도 교회와 교단은 건재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별이 그렇듯, 사람은 무시로 해치고 망가뜨리지만 하나님은 끊임없이 어루만지고 품어주고 치유하고 회복시키시는 가없는 은혜와 사랑 덕분이 아닐까요?
그러니 좀 어지간히들 하십시오.
그렇게 필요한일이라 생각되시거든 뜻이 맞는 분들끼리 열심히 모이세요. 열심히들 모여서 기도하고 연구하고 애쓰시는 거야 제가 감히 뭐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내 주장과 다르다고 해서 귀하고 귀한 목사님들을 그렇게 무슨 대단한 죄인인양 함부로 판단하고 심판하는 볼썽사나운 일들은 이제 좀 그만 하셨으면 합니다.
부디... 반목과 불신과 차별이 일상화 되어 가고 있는 이 안타까운 현실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힘입어 귀한 존중과 신뢰를 회복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감사가 되며 기쁨과 소망을 나누는 그런 아름답고 복된 일이 더러더러 생겨나는 우리 기독교대한감리회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합니다.
끝으로 지금 이 시기에 귀한 울림을 주는...
제가 존경해마지 않는 정명성 목사님의 시를 올려드립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소수를 단죄하는 이들에게 고함 -마태복음 13:24-30-
주인인 나의 뜻이다
뽑아버리지 마라, 행여
그것들이 가라지라 해도 그냥 두어라
내 밭에선 상한 갈대도 꺾지 않는다
대지가 생명을 가려서 키우던가
헤살짓는 피와 가라지도 내겐 소중하고
뒤틈바리 잡초인 겨자풀을 나는 아낀다
나의 정원에는 선악과도 뱀도 있지 않았던가
내 나라에는 양과 표범이 함께 뒹굴지 않던가
분명, 나는 씨뿌릴 종들을 들로 내보내고
추수할 밭으로 일꾼들을 불러 모은다
그런데 그대들은 누가 보냈는가,
내 밭에서 가라지를 심판하겠다는 그대들은?
때가 되면 가라지들을 거두고
단으로 묶어 불 속에 던져 넣겠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고
그때에도 그 일은 그대들의 몫이 아니다
원수들로부터 주인의 밭을 보호하겠다는 일꾼들아
내가 일꾼들을 싸움터로 보낸 적이 있었더냐
주인을 지키겠다고 칼을 뽑아 든 종들아
너희는 스스로 주인이 되었구나
나의 이름으로 성전(聖戰)에 나선 자들아
나는 너희를 도무지 모르겠노라
대답하라, 누가 나의 원수이냐?
너희는 가라지가 아닌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