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학적 시야, 유한성의 자각
- 한국산문 14년 10월호를 중심으로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수필가는 초월론적 현상학적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본다. 자신이 세상 속의 일부가 아니라 세상은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다. 수필가는 창조자다. 작가라는 말의 ‘작’자에는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create'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수필의 출발점은 항상 인식에 두어야 한다.
임하의 <귓속의 공포>라는 수필에 주목한다. ‘귀속의 공포’라는 메타포적 제재와 상식에 묻혀 발휘되지 못한 회의를 통해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인간 본질을 발견해낸다. 수필은 불안과 공포가 과거를 현재화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주제로 내세웠다. 수필은 인식의 그림이다. 작가는 여러 가지 예화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깨어있음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현실을 직시하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작가는 상황과 의미 양자에 대한 연루 및 이 연루를 통해 의식을 일깨우고자 시도한다. 어찌 부조리한 현실을 작가가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 글에는 한 의식 있는 작가의 참여에 대한 사랑과 함께 깨어있음을 요구하는 애절함이 녹아 있어 감동을 준다. ‘공포는 내 안에서 온다. 그리고 지금 이 길에 공포의 실체는 없다. 내가 달리고 있는 도로는 단단한 현실이므로.’라는 결말부 진술은독자들에게 초월론적 현상학의 눈, 유한성에 대한 자각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그 출발점이 인식에 있다고 하겠다.
변애선의 <그에게 가게 해 줘요>의 발단부, ‘더위는 훅훅 절정을 향해 치달았지만, 나는 절대음지식물처럼 극도로 낮은 호흡을 유지하면서 최소한의 빛으로 은둔하였다.’는 메타포적 진술이 발단부의 기능, 전개예고라는 소임을 잘 수행하고 있다. ‘지루한 마음은 장마철의 이불보다 눅눅하여서 널고 말리고 두들겨야 목화솜이 살아나듯 피어날 것이다.’라는 진술도 멋진 표현이다. 이 수필의 매력은 사건의 반전과 마음의 풍경을 보여주는 데 있다. 반전은 재미를 주는 수필의 장치로 손색이 없다. 그 남자의 명함을 받고 작가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dislike: 관심”이란 문구를 발견하고, 그 남자를 향해 쏠렸던 마음을 돌리게 된다는 이야기는 반전이다. ‘매혹을 느낀 그 자체가 상처가 되고 말았다.’는 작가의 체험은 우리 인간의 인지시스템이 문장보다 단어에 더 주목한다는 사실도 드러낸다. 귀한 것이 사랑이지만, 때로 강한 끌림이나 유혹이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체험 고백으로 작가는 유한성의 자각 속에서 사랑의 이중적 성격을 넌지시 고발한다.
홍정현의 <낮달>은 언어적 형상화가 빛나는 수필이다. ‘낮달이 떠 있다. 우연을 가장해 슬쩍 찍어놓은 흰 지문 같다. 흐릿한 달의 표면에서 서늘함이 뚝뚝 떨어진다.’는 발단부 진술을 읽으면 알 수 있듯이 이 수필의 묘사적 문장은 압권이다. ‘생인손’의 아픈 기억으로부터 작가는 ‘타인이 할퀸 상처든 나 스스로 만든 상처든 세월이 흐르면 아픔의 실체는 사라진다. 하지만 마음을 훑고 지나간 흔적은 고스란히 남는다.’라는 진리를 터득한다. 생인손의 체험을융의 심리학에 접목시켜 한 번 상처는 비록 가라앉아 있지만, 언제라도 고개를 들고 심저 깊숙한 곳에서 올라 올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낮달이란 제재를 통해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킨 점이 돋보인다.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할 수밖에 없고, 그 소중한 가치는 시간을 두고 인내함으로써 지켜나갈 수 있다. 문학은 하나의 삶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주는 수단이다. ’낮달‘이라는 메타포는 이런 메시지를 잘 암시하고 있다.
조헌의 <침묵의 매>는 내용적으로 교훈성이 강한 수필이다. 교훈성이야말로 문학의 2대 목적 중의 하나다. 수필은 행위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위를 어떻게 문학적으로 표현하느냐에 관심을 가진다. 반성적 성찰이야말로 가장 빠른 공감의 통로다. B의 변신은 우리 사회를 이렇게나마 평화롭게 지탱해 오는 데 기여했던 ‘침묵은 금이다.’라는 가치를 다시 한 번 더 되뇌이게 하는 것 같다. 담임교사로서 제자를 구해내기 위해 무릎을 꿇고 빌었던 작가의 인간미 또한 아름다운 미술전람회의 길에 더하여 흐뭇한 풍경을 안겨준다. 도시 생활의 정신적 긴장이나 공동체 의식의 상실이나 비인간화와 같은 도시적 병리 현상으로 인하여 파생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게 사제지간의 연대다. 이 작품은 작가의 따뜻한 감정이 대상과 상호 삼투되어 동일시를 이루고 작품 속에 자기를 용해시켜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공감과 감동을 준다. 무엇보다도 삶에 있어 중요한 용서와 관용의 가치를 수필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정충영의 <뒤뜰>도 좋은 수필이다. 수필은 단순한 삶의 기록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서 인간의 진실을 발견하기 위한 수단이고, 노력의 흔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수필은 회고적 그리움을 좋은 추억으로 반추하고 있어 매우 수필적이다. 문학은 한 시대의 구성원이 지닌 고유한 정신이며 체온이고, 도도한 흐름이어야 한다. 이 수필에는 우리의 전통적인 것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표백되어 있어 감동을 준다. 추억을 그리움으로 고양시킴으로써 작가는 우리 조상의 사유와 흔적이 담긴 뒤뜰의 가치를 드높인다. 뒤뜰은 한국인의 전통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우리는 저마다 혼자 태어나서 혼자 큰 것처럼 살지만, 작가는 사유와 성찰 없이 온전한 자기 삶이 없다는 유한성에 대한 인식을 이 작품을 통해 말해준다. 뒤뜰의 일화나 비화는 전통적 삶의 가치를 고양시키는 재료로 충분하다.
평자는 작품의 출발선이 인식에 있는 수필을 원한다. 인식은 곧 발견의 현상학이다. 후설의 관점으로 보면, 인간은 단순한 사실인이 아니라 세계를 구성해 나가는 초월론적 주관자다. 수필가는 초월론적 현상학적 태도로 세상을 봐야 한다. 본고에서 다뤘던 작가들은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과 함께 현상학적 시야를 확보하고 있어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