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풍자의 특성과 기능’
{해제} 풍자의 원리와 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글이다. ‘풍자’의 어원을 통해 풍자의 핵심적 요소가 ‘웃음’과 ‘비판’임을 밝히고, 풍자의 기법인 ‘반어’와 ‘우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또한 부정적 요소를 폭로하고 현실을 교정하고자 하는 풍자의 목적과 그 한계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주제} 풍자의 특성과 기능
{구성}
• 1문단: 풍자의 개념과 핵심 요소
• 2문단: 풍자의 주요 기법
• 3문단: 풍자 문학의 기원
• 4문단: 풍자의 목적
• 5문단: 풍자의 한계
(나) 김광규, 「묘비명」
http://blog.naver.com/sureadmit/220484351421
{해제} 1970년대에 발표된 이 작품은 물질적 가치에 의해 정신적 가치가 밀려난 현실을 비판하고 있는 시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반어적 표현을 통해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지적하고, 역사가와 시인의 역할에 대해 반성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주제} 물질적 가치에 경도된 세태 비판과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한 성찰
{구성}
• 1연: 세속적 영달을 추구했던 인물이 남긴 ‘훌륭한 비석’
• 2연: 물질적 가치에 영합한 문인의 위선
• 3연: 묘비의 가치와 시인의 역할에 대한 비관적 전망
(다) 최승호, 「북어」
https://www.youtube.com/watch?v=V925Kqyiyh0
http://9594jh.blog.me/207794138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bikku1001&logNo=220117883007&beginTime=0&jumpingVid=&from=section&redirect=Log&widgetTypeCall=true
{해제} 이 작품은 ‘북어’라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현대인의 모습을 성찰적으로 묘사한 시이다. 이 시의 화자는 ‘말의 변비증’, ‘막대기 같은 생각’ 등의 시어를 통해 무기력하고 획일화된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시의 마지막에서 자신 역시 다른 현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주제} 삶의 지향점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 대한 비판과 반성
{구성}
• 1∼7행: 식료품 가게에 진열된 북어의 모습
• 8∼19행: 생기를 잃은 북어와 닮은 현대인의 무기력한 삶
• 20∼23행: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비판과 반성
39. 세부 정보에 대한 이해 2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② (가)의 4문단을 통해 퇴폐한 시기나 여론이 억압당하는 시기에 풍자 문학이 활성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자는 현실 생활의 부정적 요소를 폭로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발생하기 때문에 현실에 부정적인 요소가 많을수록 더 활성화된다고 할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가)의 3문단을 통해 ‘풍(諷)’이 부당한 사태를 읊은 노래를 일컬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유희 정신만을 추구하는 노래와는 다르며, 인간 생활의 부조리나 불합리를 폭로하는 노래라 할 수 있다.
③ 풍자는 현실의 불합리함을 폭로하고 교정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출발하지만, 풍자의 주체인 작가가 부정적인 성격을 지닌 독자를 교정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하지는 않는다. 교정을 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그것은 독자가 아니라 풍자의 대상에 대한 교정에 있다 하겠다.
④ (가)에서는 풍자 문학이 실패하게 되는 이유가 아니라 쉽게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를 풍자하는 주체와 풍자를 수용하는 주체 사이의 의사소통이 지닌 특수성에서 찾고 있다. 또한 부정적 요소의 과장된 표현에 대한 서술은 아예 나타나 있지 않다.
⑤ (가)의 2문단에 따르면 반어와 우의는 풍자에 곧잘 동원되는 기법이다. 이는 반어와 우의의 특성상 비판과 웃음이라는 풍자의 핵심적 요소를 획득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의와 반어의 기법이 사용되었다고 하여 곧 풍자 문학이 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으므로 풍자 문학의 정체성을 보장해 준다는 진술은 옳지 않다.
40. 표현상 특징 파악 1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① (나)의 ‘이처럼’, ‘여기’, ‘이 묘비’와 같은 지시어의 사용은 화자가 현재 묘비를 직접 관찰하며 서술하는 듯한 효과를 준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② (다)에서 ‘북어’는 어떤 덕성을 기준으로 인간과 대비되는 소재가 아니라 인간과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시인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상징적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③ (나)와 (다) 모두에서 시적 화자의 독백적 어조가 지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명시적인 청자가 나타나 있지 않으며, 대화적 어조도 사용되고 있지 않다.
④ (나)는 현재 ‘묘비’를 앞에 두고 관찰하는 방식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다) 역시 ‘북어’를 눈앞에 두고 성찰하는 방식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과거에서 현재로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상 전개는 나타나 있지 않다.
⑤ (나)는 외부 사물인 ‘묘비’, (다)는 외부 사물인 ‘북어’를 통해 현실에 대해 성찰하는 시이다. 그런데 (나)에서는 외부 사물이나 장면들로부터 포착한 삶의 바람직한 가치를 일반화하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으나, (다)의 화자는 스스로에 대한 자조적 태도를 드러내며 시를 마무리하고 있어 바람직한 가치를 일반화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41. 외적 준거에 따른 작품 감상 3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③ (다)에서 북어들은 의인화되어 화자에게 ‘너도 북어지’ 하며 부르짖는다. 그러나 북어들이 서로 말을 주고받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돈’, ‘높은 자리’와 같은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던 인물의 비석은 화자에게 비판의 대상이다. 비판의 대상을 ‘훌륭한 비석’, ‘귀중한 사료’라 표현하는 것은 화자가 의도하는 심층적 의미와 표면적 의미가 불일치하는 반어적 표현에 해당한다.
② ‘한 줄의 시’, ‘한 권의 소설’도 읽은 적 없는 인물의 묘비명을 ‘유명한 문인’이 썼다는 것은 상황의 부조화를 보여 주는 반어적 표현에 해당한다.
④ 우의는 인간의 삶을 다른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다)에서 화자는 ‘빳빳한 지느러미’를 지닌 북어로부터 ‘막대기 같은 사람들’을 유추하여 현대인의 무기력한 삶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는 북어의 형상을 통한 우의적 기법이라 할 수 있다.
⑤ (다)에서 화자는 무기력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북어에 빗대며 불쌍히 여기고 있다. 그런데 화자는 작품의 말미에서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했던 현대인의 모습이 사실 자기 자신의 모습임을 깨닫게 된다. 이는 무기력한 현대인들에 대한 비판과 연민이라는, 원래 의도한 목표와는 불일치하는 결과이며, 이에 따라 반어적 표현에 해당한다.
42. 감상의 적절성 평가 5
{정답이 정답인 이유}
⑤ (나)에서 주된 풍자의 대상은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했던 인물과 물질적 가치에 굴복한 문인이다. (나)의 화자 자신은 이러한 인물형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두고 있으므로 풍자 대상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다)에서 풍자의 대상은 현대인들이지만, 작품의 말미에서 화자 자신 역시 풍자의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따라서 (나)에 비해 (다)가 자기반성적 성격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오답이 오답인 이유}
① [A]에 따르면 풍자 문학에서 부당한 현실은 독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 잣대를 기준으로 평가되며, 이는 ‘자신의 실제 삶과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용인되거나 장려되는 윤리적·도덕적 기준’이다. 이에 따르면 (나)에서 풍자하고 있는 대상인 ‘시나 소설을 외면하고 재력이나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실제 삶과 무관하게 보편적 잣대에 따라 부당한 현실에 대한 풍자에 공감할 여지가 있다.
② [A]에 따르면 풍자를 통한 현실 교정 욕망은 쉽사리 성취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하여 (나)의 화자는 작품의 후반부에서 역사와 시인의 미래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시선을 보여 주고 있다.
③ [A]에 따르면 풍자는 현실의 부정적 국면과 부정적 가치를 드러내지만 대체로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다)는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여 주고 있지만, 구체적인 대안이나 전망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④ [A]에 따르면 풍자하는 주체와 그 목소리를 듣는 주체의 의사 소통은 공모 의식을 전제로 성립된다. 따라서 풍자의 내용과 관점에 동의할수록 공모 의식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작품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