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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의 시선 원문보기 글쓴이: 카페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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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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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하고 분명한 목적이나 목표가 없는 것을 방황이라 하고, 혹은 방랑이라고 부름이다.
방황의 시간이 길어지고, 방랑의 거리가 멀어 질수록 그와같은 삶이 지치고 허무할 수 밖 없는 까닭은 목표와 목적을 상실한 삶 속에는 생애의 의미를 찾을 수 가 없고, 또한 목적 과 목표를 상실한 삶은, 그 삶을 계속 추진 해 나갈 에너지가 생기지 않는 까닭입니다.
그래서 의미와 보람이 없는 삶의 반복은 필경 지치고, 뒤틀리고 결국 삶이 고갈되어서 고통스러운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살아가면서 분명한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목표와 목적이 있는 사람만이 보람과 의미를 찾을 수가 있고, 더욱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그 분명한 목표의 목적 속에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뚜렷한 목표와 목적을 가지는 만큼 중요한 것은 다른 목표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 다. 다른 목표를 갖는 것이 뚜렷한 목표와 목적을 갖는 것 보다 더 중요합니다. 뚜렷한 목 표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할 지라도 만약 그 목표가 바르지 못 하다면 그 삶은 어떤 재미 나 즐거움 같은 것은 있을지 모르나, 그릇된 목표를 가진 삶은 반드시 그 자신이 한 모든 노력을 헛되게 만들고, 나아가서 그 자신과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파멸로 몰고 갈 것입니 다.
말단 세무 공무원을 남편으로 둔 아내가 목표를 세웠습니다. 십년안에 돈을 10억을 모아 큰집을 짓고 좋은 차를 굴리며, 남부럽지 않게 살아 보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말하자 면 그 여인의 목표는 큰 부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분명한 기간 10년, 분명한 목표 10억, 이렇게 분명한 기간과 목표가 설정되었으니 이 것은 바람직하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그 돈을 벌려고 그 목표를 이루려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하지 않 았습니다. 그 여인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전 적으로 의존한 것은 세무 공무원인 남편이 관내 업자들로부터 받아 오는 부정한 뇌물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 목표를 정하고 부지런히 아주 열심히 그 목적을 추구하면서 살았습니다. 남편이 받아오는 돈을 꼬박 꼬박 가게 부에 기록하고, 저축을 하고 투자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더 빨리 십 년 안에 10억을 모을 수 있었고, 목표가 당겨지게 되었 습니다.
이때 이 여인은 사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웠을지 모르나 그 여인의 삶이 신나고 재미있고 아무리 열심이었을 망정 그 여인의 목적은 절대 바람직한 것이 안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남편의 부정한 뇌물로 목표를 잘 못 잡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에서 제 가 잘 못 목표를 잡지 못한 것을 방랑이라고 하고, 그 삶은 의미가 없는 황폐한 삶이 된다 고 말했는데, 목표와 목적을 잘 못 정한 삶은 더더욱 그 삶을 파멸시키고 만다고 말했습 니다.
목표를 잘 못 잡은 이 여인의 삶은 어느 날 느닷없이, 그리던 목표가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와르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부정이 발각되어 남편의 부정한 행위가 매스 컴에 보도되고 남편이 파면 당하고, 구속을 당하고 이제까지 모았던 재산도 몰수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녀의 남편을 부패한 공모자, 그 여인도 범법자의 아 내가 되고 말았습니다.
말단 세무 공무원의 아내가 몇 년만에 수억을 모았다고 사람이 손가락질을 할 때, 그녀 는 억울하다. 세상에 어디 나만의 일인가 세상이 다 그렇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아주 재 수 없이 걸리지 않았는가 사실 나는 억울하지 않는가. 라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그녀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실은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의 대부분은 잘 못된 고리 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참됨과 그릇됨은 다른 사람이 다 한다고, 다수결에 의해 서 결정되어지는 것은 안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절대적입니다. 그러므로 그릇됨은 모든 사람이 그 길로 간다고 할 지라도, 또 일시적으로는 그것이 풍요하게 보인다고 할 지라 도, 그릇된 길은 결코 용서 할 수가 없고, 그것은 결국 비참하고 부끄러운 파멸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참됨은 진리는 연하디 연한 새싹처럼, 곧 사그라질 것처럼 보일 지라도, 필경 거 기서 싹이 나고 큰 나무가 되어 귀한 열매를 맺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참되고, 영원히 헛되지 않는 열매를 맺은 인생을 우리가 원한다면, 우리는 뚜렷한 목표를 가짐과 동시에 참되고 바른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참되고 바른 목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릇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물론 그 바른 목표를 이루는 것이, 그릇된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때로는 더 어렵게도 보이고 때로는 미미하게도 보이고, 때로는 힘들지라도, 참된 목표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이 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반드시 바른 목표를 가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것만이 무 너지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며, 헛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 는 것이며, 무엇보다도 그것만이 절대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기 때 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밤새도록 갈리리 바다에서 그물질을 했지만 허탕만 치고 날이 밝 아올 때에 주님은 그 갈리리 바다에 나타나시어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신 말씀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더 3년 전에 갈리리 바닷가에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 을 적에도 주님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 3년 전에 베드로로는 주님께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 그물과 배를 버리고, 주님을 따라 주님의 제자가 되 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3년 동안 밤낮 주님과 함께 동고 동락(同居同樂)하며 살았습 니다. 그런데 이제 다시 3년이 지난 지금 주님께서는 또 다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따르 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베드로가 주님을 따르는 목적은 베드로의 욕심을 욕망을 이루기 위한 것 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보기에 예수님은 놀라운 초능력을 가지셨습니다. 물고기 2마리 보리 떡 5개로, 5천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를 남기는 사건의 주인공이 주님이었습니다. 베드 로가 보니 주님은 앉은뱅이를 일으킬 수가 있었습니다. 바다위로 오신 주님의 모습을 베드 로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사람을 따르게 되면 한 자리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아니 베드로는 이 사람을 따르면 무엇인가 큰 것을 얻게 되겠구나 하 는 목표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보면은 많은 정치인들이 보스를 따릅니다. 김영삼 김대중 이회창 전두환 이런 사 람들이 정치 보스를 하고있습니다. 그 밑에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왜 많은 정치 인들이 국회의원들이 이런 보스들을 따릅니까? 그것은 물론 정치적 신념도 작용하겠지만 대개는 서로 공생하면서, 자신들의 욕망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으로서 보스 정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따르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이 사람을 따르면 무엇인가 얻을 수 있겠구나 무엇인가 한 자리 할 수 있겠구나, 이 사람을 따르면 수양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에 베드로는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3년 동안 주님을 따 라 다녔는데 그것은 자신을 위함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주님께서 가이사빌림보 에서 내가 죽음의 길을 가야 되겠다고, 내가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되겠다고, 이야기 할 때 베드로는 주님을 붙들고 그리하지 마옵소서, 주님을 다그치고 책망하기까지 하였던 사람입 니다. 주님이 죽으면 주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면, 자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하였던 것입니다.
또 성경의 여러 구절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누가 더 크냐, 누가 더 잘 났느냐, 누가 더 좋은 자리로 갈 것이냐, 하고 싸우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주님께서 가 이사라 법정에 섰을 때 베드로는 고난받은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더 나아가서는 주 님을 저주하면서 까지 주님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주님을 배반했던 사람입니다. 그리 고 지난밤에는 고기나 잡으러 가자고, 제자들을 충동질하여 다시 갈리리 바다로,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참으로 믿는다고 하는 사람의 행동일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베드로의 길은 결코 제자로서의 행동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이용하려다가 안되니까 주님을 버렸습니다. 목표가 잘 못 된 믿음이었다는 것입니 다. 그러니 베드로가 3년을 주님을 따라 다녔지 만은 그의 삶이 전혀 변화 될 수 없는 것 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왜 그랬습니까? 목적이 잘 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베드로를 잘 아는 주님께서 이제 다시 한번 요한 복음 4복음의 마지막 단락에서, 주님은 다시 한번 베드로에게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라, 베드로에게 촉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냥 나를 따르라고 만 하신 것이 아니라, 18절에 보면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 씀은 네가 젊어서는 네 마음대로 살았지만 네 목적을 위해서 살았지만 이제는 네가 원하 지 않는 곳으로 가게 되고, 네가 원하지 않는 목적을 위해서 살게 되고, 그렇게 사르라는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라 이렇게 주님은 말씀하십니 다.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어떻게 응답을 하고 있습니까?
20절에서 21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여기서 예수 의 사랑하는 제자란 우리가 잘 아는 이 글을 기록한 사도 요한 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 게 나를 따르라고 했는데, 베드로는 예하고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뒤를 보면서 그리고 뒤에 서있는 요한을 바라다보면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나 한데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 데 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은 일종의 주님에 항의이기도합니다 주님 나게는 원치 않는 길을 가라 원치 않는 일을 하라 하면서, 저 사람 요한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까? 왜 나에게만 그러십니까? 그런 뜻입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런 항의성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22절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 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 르라 주님의 말씀은 그렇습니다. 왜 다른 사람을 보느냐 왜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해서 살 려고 하느냐? 다른 사람이 다 그리하면 너도 그리 하겠다는 말이냐? 아니다, 그것은 잘 못된 생각이다. 다른 사람 생각하지 말고 오직 너는 나를 따르라 남이야 상관없이 너는 절 대적으로 나를 따라야 한다는 이런 말씀입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이십니다. 그 진리에 절대성은 어떤 경우에도 다른 사람이 많이 간다고, 가고 말고 숫자에 좌우되는 것 이 아니라, 상황이 어렵고 좋다고 해서 상황에 관계없이 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 을 절대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다 하니까 하고, 다른 사람 이 안하닌까 안 하는, 것은 옳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에 대한 올바른 자세 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야할 길이 안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이 갈릴리 바닷가에서, 나를 따르라는 절대 명령을 받은 베드로를 이제 이후로 이 복음서 이후로, 베드로를 사도행전에서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베드로의 행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데 처음 사도행전 3장에 보면은 베드로의 유명한 행적이 있습니다. 날 때부터 앉 은뱅이로 태어나서 40년 동안이나 예루살럼성 앞 미문에서 구걸하던 거지가 있었습니다. 그 거지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그래서 그 거지를 그 걸인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음으로 베드로를 강건하게 만듭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의 말을 듣고자 했고, 베드로에게 모여들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시선을 받 게되고, 베드로는 거기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베드로를 보고 예수님을 십자가게 못 박았던 대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위협을 느끼고는 베드로를 불러다가 앞으로 는 절대로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말도 하지 말라, 한다면 너는 목숨을 빼앗긴다고 위협을 줍니다. 이것은 베드로에게 커다란 핑계이고 위기였습니다. 만일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말을 거슬리게 된다면, 베드로는 이제 목숨을 잃게 됩니다.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말에 이 렇게 대답합니다.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 말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나는 보고 듣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노라,
여러분 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면 네가 예수 증거 하면 죽이겠다고 말하는데도, 베드 로는 담대히 그들의 말을 추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 말을 듣 는 것이, 어느 것이 옳은가 판단하라. 나는 보고 듣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노라, 사도 행전이 막이 오름과 동시에 놀랍게도 주님을 부인하던 베드로는 정말로 정말로 주님을 따 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부인하던 베드로, 주님을 저주 하던 베드로, 목적을 자기의 욕망을 위해서 살던 그 베드로가,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살 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베드로 전서 2장 19절 21절을 보면은 베 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하며 참으며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베드로 전서 2장 19절 21절 이제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다가 고난을 당 해도 복이 있다. 주님을 따르다가 주님을 위해서 살다가 목숨을 잃어도 그것은 복이 있다. 이렇게 베드로는 다른 사람을 격려까지 하면서 주님을 따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 는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는 심지어 고난 속에서도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다는 뜻 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적이 바른 사람은 주님을 따르다가 고난을 받고 주님을 따르다가 욕 을 먹고, 주님을 따르다가 괴로움을 당하고 내 목숨을 순교의 제물로 내어 노을지라도, 그것은 복이 있는 것이고 그것은 잘 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목적이 다른 사람은 주 님 믿다가 오해받아도 섭섭해서 주님 믿다가 손해보면 불평하고 불만하고 믿음이 식어 버 립니다. 요는 우리 목표의 차이입니다. 우리의 목표가 어디에 잇느냐. 주님 앞에 우리의 목표가 있는 사람은 헛되지 않는 것에 목표를 둔 사람은 주님 때문에 고난받은 것이 복 이 있다 주님 때문에 오해를 받은 것이 결코 나쁜 것이 아님이다.
우리는 우리가 잘 아는 영화 퀘바디스라는 영화는 외경 성경에 근거해서 만들어진 베드 로 영화입니다. 성경 정경은 아니지만 성경의 내용들을 support 해 주는 밑받침 해 주는 많은 기사들이 있습니다. 거기 외경 책에 보면은 네로의 핍박이 아주 심했던 로마 시절에 베드로가 그리스찬들과 함께 로마에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네로가 얼마나 그리스찬들 을 핍박하던지 예수 믿은 사람들을 잡으면 일 주일씩 굶주린 사자 굴속에다 사람들을 집 어넣어 사자의 밥에 되게 하였던 것입니다. 심지는 어느 큰 가마솥에다 예수 믿지 않으면 지옥가서 기름 가마 속에 불구덩이 속에 빠져 죽는다고 하니까. 너희들도 살아서 그렇게 해보라고 믿는 사람들을 큰 기름 가마솥에 다 집어넣어 튀겨 죽게 하였던 것입니다. 네로 가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그리스찬들을 박해하고 죽게 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다 죽어 갔습니다. 이에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로마에서 더 이상 복음을 전할 수 없으니 도망가라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베드로는 변장을 하고 밤에 그 로마를 탈출해 갑니다. 로마시를 탈 출하여 허겁지겁 저 언덕을 넘어 로마성을 막 빠져 나가려하자, 새벽에 희뿌연 안개 속에 서 누군가가 마주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본이 히브리 망또를 걸친 어디선가 많이 보는 얼굴인데 가까이 보니 예수님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놀라서 뛰어가서 하는 말이 유명 한 말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여기서 작자가 영감을 얻어서 퀘어바디스라는 영화를 만 들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묻자 베드로야 나는 네가 버리고 간 로마로 간다. 나 는 죽으로 간다 . 주님 안됩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손을 잡자, 알겠습니다. 하고 베드로 는 죽음의 땅 박해의 로마로 다시 달려갔습니다.
베드로의 초대교회의 외경에 있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다시 베드로가 로마로 가는 길은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베드로는 너무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시 로마로 가는 길은 가혹 한 무서운 순교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확실히 알았습니다. 베드로는 거기 남아 있는 성도들과 함께 잡혀 죽었습니다. 순교 당할 때에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에도 우리 주님께서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너무나도 황송하오니 나는 거꾸로 못박 아 주시오 하고 베드로는 발이 위로 머리가 밑으로 못 박혀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를 통하여 무엇을 알았습니까? 두 번째 부름을 받은 이후 부터 이제 그의 삶이 마지막까지 주님을 따르는 것이 삶의 절대 목표가 되고, 주님을 위해 서 살고 주님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는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모를 때에는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모르는 것을 변명할 수는 없지만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이상, 예수가 절대 진리이고 예수에게만 영생이 있고, 예수로 살아가는 것이 헛되지 않는 것을 아는 이상, 그리고 예수로만 천국에 이르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을 아는 이 상, 이제 그 길을 가야만 한다는 그 삶을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 는 것입니다. 헛되지 않는 길을 헛되지 않는 인생을 살려면 저 무서운 지옥 길을 가지 안 이하고, 우리가 살려면은 참된 목표요 절대 진리이신 예수를 따라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2000년 전의 로마를 아십니까? 지금부터 2000년 전의 로마는 온 유럽을 차지 했고, 아프리카를 차지했고, 중동을 차지했고, 서남 아시아 일부까지 세력을 뻗어 모든 길 은 로마로 통한다고 할만큼, 이 세상 유사이래 최대의 제국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제국은 이 세상에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갈리리 바닷가의 우리 나라로 말하면 초등 학교도 제대로 못나오고, 문자나 겨우 해득할 수 있는 어부였습니다.
여러분 누가 베드로를 기억하겠습니까? 참으로 그는 말도 안돼는 미미한 존재였습니 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2000년이 지난 오늘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거대한 로마 제국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영광과 모든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미미했던 초등 학교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고 어부로 생활했던 베드로의 삶은, 사라지지 안이하고 더욱 더 높아지고 사랑과 존경과 추모 받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절대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로 하고 살아가는 삶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 니다, 만약 베드로가 돈을 목표로 살았다면, 어떤 것을 목표로 살았다면, 그를 기억이나 하 겠습니까? 그의 후손들 마저도 그를 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목표 로 삼고, 예수님 뜻대로 온전히 살아 그는 이생과 저생에서 영원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서 이정표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몰론 베드로도 돈 없이도 살았다는 것은 아닙 니다. 베드로도 돈을 벌기 위해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 마저도 주 님을 따르기 위한 방편, 도구로 쓰기 위해서 돈을 벌었습니다.
사랑하는 온누리 교회 성도임 오늘날 삶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되겠습니까? 삶의 목표를 무엇으로 잡고 살아야 되겠습니까? 돈으로 잡고 명예로 잡고 자식으로 잡고 혹은 다른 여 러 가지로 목표를 잘 못 잡은 인생은 반드시 허무합니다. 반드시 후회합니다. 여러분 죽음 앞에서 두려움 없이, 몰론 우리가 돈을 외면하고 우리가 자식을 외면하고 우리가 명예나 건강을 외면하고 살자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원해도 그것은 하나의 도구 로서 그것은 중간의 목표로서 더 높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목표를 세워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세상 모든 사람들이 돈을 목표로 삼고, 명예를 목표로 삼고, 헛되 고 거짓된 것을 목표로 삼고, 그 길을 가면서 그것을 당연시 할 지라도 우리 믿은 사람들 은 예수를 믿은 사람들은 넓은 길을,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좁은 길 을 가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왜 우리에게 절대 명령을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이 말씀을 듣고 우리가 혹은 가혹 하게 생각되지. 않습니까? 가혹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영 생을 주시어 우리에게 천국을 주시어 우리에게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주시려고, 우리 에게 두렵지 않은 죽음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이렇게 나를 따르라 고 주의 말씀대로 살라고 절대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요 길이요 생명이신 주님 을 믿고 따르는 삶만이 바른 삶이요. 후회하지 않는 삶입니다.
사람들이 의적이라고도 하고 대도라고도 하는 조세형 씨가 16년만에 감옥에서 나왔습니 다. 그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임석근 목사님이 있는데, 다만 선교에 담당하신 목사이십니 다. 그분의 말을 의하면 조세형 씨는 물방울 다이아몬드라든지 우리 나라 최고 부호들 집 만 터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돈을 털어서 하루에 5억도 돈을 써 보았다는 것입니 다. 어떻게 돈을 섰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돈을 마음대로 쓰면서 살았던 삶은 다 헛되고 감옥에서 살았던 삶이 보람있는 삶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조세형 씨는 이제 신학을 해서 목사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왜 목사가 되겠느냐 고 하니까 자기의 삶이 헛되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목사가 되겠 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5억을 써본 그 삶도 헛되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목사가 되 겠다는 것은, 잘 못된 목표의 헛됨을 알아 다른 목표를 늦게나마 찾게 된 것입니다.
오늘 제가 세무 공무원 부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범죄가 탈로 나서 온 세상이 그들을 도둑이라고 부를 때, 그들은 우리만 그런가 모두 그렇지 않는가 이 렇게 억울해하고 항변하며, 재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맞습니다. 여러분 실은 그 사람 말이 맞다는 말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도 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들도 다 어떤 의미에서 도둑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십계명 중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은 저 감옥에 갇혀있는 죄수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라, 오늘 날 우리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특별히 우리의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죽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위해서 죽으셨 습니다. 우리의 모든 부끄러운 죄악과 허물을 사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용서를 넘어서 새로운 삶을 사르라고, 죄가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여러분 그 헛된 삶의 죄가 그 렇게도 고통스러운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려고 죽으신 것입니다. 이제 목표를 하나님께 맞기고 주님께 맞기고 사르라고 그렇게 죽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삶의 크고 작은 목적은 무엇입 니까? 돈, 자녀, 성공, 건강 다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보다도 크다면 사실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찬일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잘못되었습니다. 자녀를 우리는 사랑하지만, 주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목표가 만약에 이삭이었다 면은, 이삭의 삶은 헛되고, 이삭의 삶은 무너져 내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하시어 이삭을 주셨고 이삭을 바치라고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돈, 자녀, 성공에 힘을 써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그도 를 능가 한 것이라면 헛된 목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 문 앞에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것들을 구하되 더 큰 목표 주님의 말씀대로 사십시오. 주님을 목적 으로 삼으십시오. 그래야 헛되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갈리리 바닷가에서 두 번째 나타나시어 나를 따르라 여러분 나를 따르라 오늘 여러분에 게도 다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그 말은 네 목표를 예수 그리그도를 위해서 사르라 는 주님의 간곡한 마지막 부탁이십니다. 그 삶만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너는 나를 따르라. 이 주님의 음성이 우리 마음 깊숙이 잘 못 박히기를 바랍니 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도 베드로처럼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내 욕망을 위해서 내 욕심을 위해서 내 소원만을 위해서 믿었던 삶을 이제 돌이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그것만이 헛되지 않고 그것만이 무너지지 않고 그 목표만이 영원한 명 예도 참된 행복을 얻는 것을 믿사오니, 주여 성령의 감화로 우리를 깨우쳐 주시옵소서 예 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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