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시대’ 월북 부친의 초상, ‘시대와의 불화’ 시작이었다
이문열, 시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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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균열의 시작 시대와의 불화
여러 자리에서 말한 적이 있지만 나는 두 가지를 믿지 않는다. 하나는 만병통치약이고, 다른 하나는 선택의 여지 없이 오로지 하나의 정답만 존재한다고 믿는 태도다.
돌이켜보면 1980년대에는 만병통치약과 유일한 정답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치 과잉의 시대, 이념 과잉의 시대였다. 이념의 인간들은 자기들의 이데올로기라면 병든 정치, 병든 경제, 심지어 역사와 미학(美學)의 문제까지 한꺼번에 치료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반대로 유일무이한 자기들의 정답을 승인하지 않으면 보수 반동이거나 무지 혹은 비겁한 자로 치부하겠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복잡하고 미묘한 인간, 세상사가 어떻게 수학 문제처럼 깔끔하게만 풀리겠는가. 심지어 수학에서도 두 개 이상의 정답이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들었다. 요란한 80년대와 문학을 같이 시작했다는 게 작가로서의 내 불운이었고, 그럼에도 독자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았다는 점이 내가 맞닥뜨린 아이러니였다.
그런 모순을 나는 ‘시대와의 불화’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1992년 가을 출간한 첫 산문집 제목이었다. 시대정신이라고 할 만한 어떤 정신적 유행, 그 유행의 이상 열기에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장편소설 『영웅시대』의 배경이 된 경북 영양 고향마을을 찾은 이문열씨.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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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두 권으로 이뤄진 장편소설 『영웅시대』의 출간이 내가 당대와 불화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의 치기를 부렸던 것인데 『영웅시대』의 ‘작가의 말’에 나는 이런 문장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