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적전쟁시대의 문화-예배-찬양]이란 책에서 발췌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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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 배 * (박정관 목사)
1. 예배와 예배자의 중요성
2. 예배의 몇가지 의미, 몇 가지 오해 ( <<--- )
3. 예배의 성서적 정의
4. 진정한 섬김으로서의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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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의미 - 몇 가지 오해
너희 권능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시편 2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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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는 예배에 대한 오해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 삶에 예배란 단어가 얼마나 흔하게 들립니까? 졸업예배, 입학예배, 박사학위 수여 기념예배, 돌예배, 개업예배, 책 발간 기념예배, 주일 낮예배, 저녁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구역예배 등 모임도 많고 예배라고 이름 붙여져 있는 모임도 상당히 많고...... 예배란 것은 적어도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서는 뗄레야 뗄수 없는 단어이고 그런 어떤 일들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리스도인이 예배자로서 예배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는 의문인 것입니다.
* 예배에 대한 오해
한번 몇 가지 오해들을 구분해 봅시다.
먼저, 예배와 예배 모임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주일낮예배", "수요에배"라는 말을 합니다. 사실 그것은 주일 낮예배 모임이지 그 사건 자체는 예배가 아닙니다.
자, 결혼과 결혼식을 구분해 봅시다.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결혼에 참석했어"라고 말하세요?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일 낮예배에 갔다 왔어."
예배에 갔다 와요? 말이 좀 안되죠. "주일 낮예배 모임에 참석했어."라고 해야 맞지 않나요? 제가 지금 말장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개념이 정리되지 않으면 심각한 혼란이 일어납니다.
자, 보시죠. 결혼식에 어떤 순서가 있나요? 처음에 신랑 입장, 신부 입장, 다음에 주례사, 결혼 서약, 그 다음 성혼 선언, 축가, 다음에 하객들에게 절하고, 피로연에 대한 광고도 있습니다. 그 다음 신ㄴ랑, 신부가 행진합니다. 그게 결혼식입니다.
우리나라는 법률혼이기 때문에 결혼식을 안해도 구청에 혼인 신고를 하면 합법적인 부부가 됩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결혼식이 결혼에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또한번 생각해 봅시다. 결혼식에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합니다. 이중에 누가 결혼합니까? 물론 신랑 신부만 결혼합니다. 참석한 이들이 다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신랑 신부만 결혼합니다. 결혼이 뭡니까? 결혼은 전혀 남이었던 두 사람이 부부라는 이 세상의 어떤 관계와도 다른 특별한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것은 결혼식을 치렀다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부부의 관계를 맺었다, 또는 부부관계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결혼은 관계의 문제입니다.
그러면 예배란 무엇인가요? 예배했다는 것은 예배 모임에 참석했다는 것이 아니고 예배모임을 올려 드렸다는 뜻도 아닙니다. 결혼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예배는 주님과의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결혼이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예배는 주님과의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관계를 말합니까?
본문 말씀에 보니까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라 했습니다.
아버지께 예배하는 자, 주님과의 생명의 관계,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 이 관계를 누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주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이며, 주님의 임재에 대한 나의 응답이며, 주님이 여기 계시기 때문에 내가 그에 대해서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위해서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주님과의 관계 맺음, 이미 생명의 관계 안에 들어간 자만이 예배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임을 아는 자만이 자녀로서 반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그 주님께 반응하기 위해서 주님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임재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의 임재가 있어야만 내가 그에 대해서 반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멀리 있고, 내가 여기서 예배모임을 잘 꾸미고, 열심히 해서 주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 아니라, 멀리 하늘에 계신 것 같은 주님께서 바로 우리 모임 가운데 임하실 때, 우리가 응답함으로 예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 거기서부터 예배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찾아오신 주님.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은 훌륭한 예배 프로그램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훌륭한 예배 프로그램이 없어도 예배자가 모이면 예배는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훌륭한 예배 도구나 훌륭한 예배 의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악기나 기계가 없어도 예배자가 모이면 예배는 일어납니다. 주님과의 만남과 사귐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의 백성들의 찬양을 거처로 삼으시고 경배 안에 보좌를 세우십니다. 그의 백성이 어떤 백성입니까? 예배자로 부름받아 섬기도록 셍신 백성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을 기뻐하는 자들, 주의 영을 받았기에 본질적으로 예배할 수 있는 자들, 그리고 그 예배의 영이 키워진 자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예배자로 세워 주시옵소서. 예배하게 해 주소서. 그냥 예배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아닐, 그냥 그 순서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내게 다가오시는 주님 앞에 인격적으로 응답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 예배드림
'예배 보다'와 '예배 드리다'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보통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배 보다'는 틀렸다, '예배 드리다'라고 해야 한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니까.
우리 말에 '보다'라는 말은 꼭 시각 활동만을 가리키는 말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장보러 간다"라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물건을 사러 간다는 말입니다. 시장 구경을 간다는 말이 아닙니다. 둘이 만나 헤어질 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일 봐." 이 말은 일을 구경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우리 말에 '보다'의 의미는 그런 폭넓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 본다'라는 말도 예배를 구경한다는 뜻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 '예배 드리다'를 생각해 봅시다. 제가 이 모임에서 어느 분에게 이 책을 드리면 책이 저를 떠나갑니다. 이것이 '준다, 드린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모임이 끝난 다음 그분이 나가면 제가 따라나가지 않습니다. 왜죠?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예배를 드린다'라는 말을 쓰는데 뭘 드리면 예배를 드리는 걸까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주일 예배 모임에 간다고 합시다. 여러분의 소유로 있는 것들의 목록(리스트)를 작성해 보십시오. 내게 무엇이 있나? 옷 몇 벌, 돈 얼마, 부동산 얼마, 동산 얼마....., 예배를 드린 후 여러분의 재산 목록을 다시 작성해 보십시오. 그 다음 처음 목록에서 다음 목록을 빼 보십시오. 그 차이가 예배 동안 없어진 거계죠? 그러면 그것이 예배가 되는 것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럼 뭘 드리면 예배드리는 것이 되겠습니까? 예배모임을 잘 만들어서 이 모임을 잘 올려드리면 예배를 드린 것이 됩니까? 아니면 그 모임에 몸이 참석해서 있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드리게 되는 것입니까? 성경은 뭘 말합니까? 로마서 12:1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의 이 "몸"을 드리는 것이죠. "몸"은 성경에서 "육"과 구분이 됩니다. "몸"은 뭘 말합니까? 우리의 전 인격으로부터 나온 우리의 모든 삶의 활동들, 즉 그 말은 우리의 삶 전체, 내 전부를 주께 드린다는 겁니다. 따라서 예배모임에 참석해서 예배한 사람은 자기 것으로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의 것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소유가 다 주님의 것이란 뜻입니다. 이건 심각한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다음에는 예수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기에 다시 한번 주께 헌신하고 나를 주께 드리고... 나는 주님의 것이므로.
자,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예배를 드린다든지 예배를 본다고 하면 나는 주체고 예배는 객체가 됩니다. 나와 예배가 분리되어 있게 됩니다. 예배는 여기 있고 나는 이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예배하다'라고 할 때는 '내가 먹는다, 입는다, 쓰다'처럼 나의 행위가 되기 때문에 분리되지 않습니다.
"예배 합시다." 그 말은 "예수님을 만납시다. 그분과의 사귐을 가집시다. 그 분을 뵈러 날마다 우리 삶 가운데 예수님을 초청합시다. 이미 우리 가운데 와 계시는 주님의 얼굴을 우리가 대면합시다. 그래서 내 삶 전체가 예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을 확인합시다. 주님이 내 삶을 계획하시고 인도해 가시며 내 앞날을 예배하시는 것을 확인하고 그 자리를 일어섭시다. 그리고 주와 함께 걸어갑시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예배하다'라는 뜻인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예배하는 마음이 넘치고 여러분의 삶이 예배하는 삶이 되어서 순간순간마다 주님의 임재에 대해서 역동적으로 응답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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